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0장 전능왕 오셔서

신앙고백 _ 사도신경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137번 삼위일체

(인도자)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회중)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인도자)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회중)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 3:16-17)
(인도자)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회중)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인도자)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마 28:19-20)
(회중)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인도자) 주도 한 분이시오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회중)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엡 4:4-6)

송영 _ 찬송가 5장 이 천지간 만물들아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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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270장 변찮는 주님의 사랑과

말씀 _ 마태복음 28장 1~20절,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존재의 신비와 삼위일체의 하나 됨

1. 분주한 일상에서 발견한 존재(Being)의 가치

요즘 저는 '내가 어떻게 살았는가, 앞으로 어떻게 살 것인가, 그리고 어떠한 기준과 가치를 가지고 살아야 하는가'를 두고 깊이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중 저에게 매일 일어나는 해프닝과도 같은 여러 가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서울시립대학교에 가서 해커톤 심사를 했던 일련의 과정도 있었고, 인스타그램이나 카카오톡을 통해 찾아온 일상적인 변화도 있었습니다.

제 카카오톡 프로필 사진이 생일 알림으로 바뀌고 나서 하루 종일 수많은 생일 축하 인사를 받게 되었습니다. 동시에 놀라웠던 것은, 정말 많은 사람이 카카오톡이라는 공간에 자신이 하는 일, 자신의 감정, 자기가 행한 일들을 굉장히 많이 공개한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스스로는 나름대로 자기 공개를 잘하는 편이라고 생각했는데, 미처 알지 못했던 타인들의 모습을 보며 큰 놀라움을 느꼈습니다. 이러한 일상들을 다시 한번 삶의 스크린에 올려 점검하는 과정에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한 것, 살면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다시금 정비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하기 위해서 하는 행동들(Doing)'이 아니었습니다. 우리는 흔히 공부를 잘하기 위해서 공부를 하고,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서 공부를 하며, 성공하기 위해서 무언가를 하고, 돈을 벌기 위해서 무언가를 행합니다. 그러나 인생의 본질은 이렇듯 무엇을 성취하기 위한 행위가 아니라, 매일(Everyday)의 삶 속에서 마주하는 존재의 영역, 즉 '두잉(Doing)'이 아닌 '빙(Being)'에 있습니다.

오늘은 삼위일체주일입니다. 인생이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하나가 되시는 비밀을 우리 삶 속에서 실현하기 위해 발버둥 치는 과정입니다. 지난 금요일에 저는 YWCA북클럽을 통해 '내가 누구인가'에 대한 답은 결국 '시간'이다"라는 말씀을 드렸습니다. 세월과 시간이 곧 나 자신입니다. 그런데 그 시간은 그저 흘러가 버리는 시간이 아니라, 오늘 지금 이 시간에 온전히 하나가 되는 시간이어야 합니다.

지금 이 자리에 있으면서도 여러분의 생각은 각자 산만하게 흩어져 있을지 모릅니다. 오늘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에 집중하지 못하고, 저를 굉장히 좋아한다고 말하면서도 저와 온전히 하나가 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가 된다는 것은 같이 있는 그 자리에 집중하고 몰입하는 것입니다. 나의 생각을 다해 상대방을 엄청 열심히 들여다보고, 서로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집중하여 깊이 나누는 것입니다.

이제 인공지능(AI) 시대에 가장 필요한 능력은 '말하지 않고 말하기'라고 합니다. 굳이 말로 다 표현하지 않아도 정확하게 교감하고 교류하는 능력이 제일 중요하다는 뜻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이 하나라는 신비도 이와 같습니다. 그 시간에 내가 온전히 살아있고, 영적으로 정확하게 교감하고 교류하는 상태를 의미합니다. 성령의 기능은 우리가 무언가를 성취하기 위해 행하는 '두잉'에 있지 않습니다. 마지막 때에 부어주시는 성령의 '감화와 감동, 역사하심'은 지금 일어나는 그 시간 속에 온전히 거하는 사람만이 누릴 수 있는 존재의 은총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지금 이 순간 영적으로 살아있어야 합니다.

우리가 살아있다는 것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증거는 바로 '호흡'입니다. 지난주에 말씀드렸듯이, 매 시간 깊이 호흡한다는 것은 지금 우리가 하나님의 영과 생명을 깊이 받아들이는 행위입니다. 숨을 깊이 들이마시고 내보낼 때, 내 안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가리라는 말씀을 기억하며 '생명을 주고 사랑을 주는 숨'을 쉬어야 합니다. 우리의 언어, 우리의 숨소리, 우리의 눈빛이 사랑과 생명이어야 합니다. 그렇게 단 1초라도 온전히 행할 수 있다면, 그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진짜 살아 있는 시간입니다.

저에게도 참 많은 분주함이 있었습니다. 해커톤 심사를 위해 오후 세 시에 가서 밤 여덟 시 반, 아홉 시가 되어 끝나는 분주한 시간들을 보냈습니다. 그러나 작년과 올해를 지나오며 깨달은 바가 있습니다. 되게 의식적으로든 혹은 의무적으로든 분주하게 무언가를 행하는 사람들에게, 그 시간은 참으로 무의미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서로가 참 무엇을 하는지 모른 채 흘려보내면 결과 역시 전혀 다른 방향으로 나올 수밖에 없습니다. 인스타그램과 유튜브를 들여다보아도 사람들이 살아가는 모습은 놀라울 정도로 다 똑같습니다. 돈이 많든 적든, 많이 배웠든 배우지 못했든 본질적으로 별다를 게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진정으로 원하는 삶은 무엇입니까?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간다고 했을 때, 세상과 다른 꿈을 꾸는 삶의 모습은 과연 어떠해야 하겠습니까?

2. 영화 *이프 온리(If Only)*를 통해 바라본 하나 됨의 세계

지난 토요일에는 한국노총 노조를 새로 결성하신 선생님들과 함께 신도림의 한 영화관을 대관하여 편히 누워서 볼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을 가졌습니다. 마침 요즘 핫플레이스 극장에서 영화 *이프 온리(If Only)*를 재개봉하여 함께 관람하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는 사랑이 한창 힘들 때여서 그랬는지 미처 보지 못했던 영화였는데, 이번에 다시 보며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영화 속 주인공들의 이름이나 감독의 이름이 다 명확히 외워지지는 않지만, 매우 아름다운 커플이 등장합니다. 여자친구는 바이올린을 전공하는 학생이고, 남자친구는 영국에서 매우 유능하고 성실하게 일하며 성공 가도를 달리는 직장인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를 사랑하지만, 여자친구가 늘 갈망했던 것은 단 하나였습니다. 단 한 번이라도 체면이나 예의, 먹고사는 문제, 나에게 주어진 계획이나 명예, 돈 버는 일보다 너와 내가 온전히 하나가 되는 진짜 사랑을 경험하는 것이었습니다. 너에게 내가 가장 우선순위이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남자친구 역시 여자친구를 진심으로 사랑했고 그녀가 없는 삶은 상상할 수도 없다고 말하지만, 성공을 위한 PT 준비 등으로 늘 바빴습니다. 물론 여자친구 역시 16년 동안 명문대에서 바이올린을 켜며 열심히 살아가는 인물입니다. 여자친구는 함께 오하이오로 여행을 떠나 둘이 온전히 하나가 되는 경험을 하자고 계속 요청하지만, 남자친구는 바쁜 현실 때문에 갈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다 결국 비극적인 교통사고가 발생하여 여자친구가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런데 남자친구가 절규하며 눈을 뜬 다음 날 아침, 기적처럼 딱 하루(One Day)의 시간이 다시 주어집니다. 어제와 똑같은 하루가 반복되는 상황 속에서, 어제는 죽었던 여자친구가 다시 내 곁에 살아있는 것을 보며 남자는 혼란에 빠집니다. 이 짧은 시간 동안 내가 선택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해 번민합니다. 남자는 런던을 벗어나거나 세계여행을 떠나는 등 사고를 막기 위해 갖은 설계를 해보지만, 결국 일어날 일은 일어날 수밖에 없으며 그녀의 죽음이라는 운명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때 남자친구가 여자친구에게 묻습니다. "인생에서 딱 하루밖에 남아있지 않다면 너는 무엇을 하고 싶어?"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이 전혀 없는 마지막 하루라면 무엇을 하겠냐는 질문에 여자친구는 이렇게 답합니다.

"당연히 너랑 같이 있어야지.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을 거야."

이 말이 거대한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무언가를 성취하려는 행위가 없어도, '뭘 하지 않아도' 그저 함께 있는 것만으로 온전히 하나가 되는 존재의 결합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단순히 같은 공간에 있다고 해서 하나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눈을 마주칠 때 마음이 하나가 되어야 하고, 숨을 쉴 때 그 숨결에 진심 어린 사랑이 담겨 있어야 하며, 표정에 사랑과 평안이 묻어나야 합니다.

상대의 표정에서 무언가를 억지로 읽어내거나 요구하려 하지 말고, 내가 먼저 진심을 표현(말하기)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한 '말하지 않고 말하기'입니다. 인생의 마지막 하루가 주어졌을 때, 못다 한 일들을 정리하거나 해결해야 한다는 집착을 내려놓고, 존재 대 존재로 완벽하게 하나가 되는 것보다 소중한 것은 없습니다. 결국 영화의 결말은 주인공의 선택에 따라 다르게 흘러가는데, 그것은 나중에 한 번 직접 확인해보시기 바랍니다.

3. 삼위일체의 신비와 교회가 품어야 할 참된 비전

오늘 이 긴 이야기를 통해 여러분과 나누고 싶은 핵심 문장은 성경의 지상 명령에 담겨 있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그들을 가르치라. 그날에는 내가 내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는 내 안에 있으며, 또 내가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을 너희가 알게 될 것이다."

우리가 선교를 한다는 것의 본질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우리가 예수 안에 거하고, 예수가 우리 안에 계심을 온전히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 성부 하나님, 성자 예수님, 성령 하나님이 함께 계시다는 사실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세상에서 선하고 영광스러우며 대단한 일을 행할지라도,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이 마지막 명령의 끝은 결국 우리 안에 삼위일체 하나님이 살아계심을 알고 그분과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결국 삼위일체(Trinity)는 '하나 됨'이며, 이 신비가 우리 삶의 본질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은 명확하게 구별되는 세 개의 위격(Person)으로 존재하십니다. 영어로 분명히 구분해야 하듯이, 성부는 몽골의 탱그리와 같은 막연한 신 개념과는 명확히 다른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십자가에 달리신 분은 성자 예수님이시며, 우리는 이 십자가의 예수를 주님이자 메시아(그리스도)로 고백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죽으시고 부활하사 하늘에 오르시며 우리에게 약속하신 분이 바로 성령(Holy Spirit)이십니다.

마틴 루터는 이 깊은 삼위일체의 신비에 대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삼위일체를 부인하고자 하면 당신의 구원이 위험에 빠진다. 그러나 삼위일체를 이성으로 이해하고자 하면 당신의 정신이 위험에 빠진다."

삼위일체는 우리의 이성으로 해석하거나 논증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니라 거룩한 '신비'입니다. 세 개의 위격으로 존재하시되 서로 분리될 수 없는 하나의 신적 본성과 본질, 하나의 실체로서 동일한 권능과 영광을 지니신 분이 바로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삶 속에서 이 하나 됨을 단 한 번도 영적으로 경험해보지 못했기 때문에 삼위일체라는 말이 가슴에 와닿지 않는 것입니다. 이 비밀을 모르면 훌륭하고 성실한 어머니, 믿음직하고 자상하며 돈을 많이 버는 아버지로 살아갈지라도, 결국은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각자 고립된 혼자의 삶을 살아갈 뿐입니다.

지난주에 우리는 감리교의 전통인 존 웨슬리 목사의 회심 기념 주일을 보냈습니다. 웨슬리 목사가 올더스게이트 거리에서 회심했을 때, 그가 신학을 몰랐거나 하나님과 예수님, 성령님에 대한 지식이 없어서 거듭난 것이 아닙니다. 그의 회심은 단순히 의식적인 언어로 율법적인 죄를 고백하고 용서받은 사건을 넘어섭니다. 그날 그 시간, 그 거리에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웨슬리의 영혼과 단번에 '하나'가 되신 사건입니다. 그 순간 장소와 거리는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삼위일체의 연합 안에 온전히 녹아드는 이 경험이 바로 신앙의 핵심입니다.

여러분에게는 내 영혼과 중심 전체가 하나님과 하나 되고 싶다는 간절한 갈망이 있으십니까? 단 한 순간이라도 내 생각과 고집으로 존재하지 않고 성부, 성자, 성령과 온전히 결합하기를 갈구해 본 적이 있으십니까?

인생을 이성으로만 이해하려 허비하지 마시고, 신비로 가득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갈망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우리를 창조하신 목적은 이해가 아니라 신비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오늘 저는 여러분이 품은 비전을 새롭게 조정하고자 합니다. 세상적인 성공의 비전이 아니라, 단 하루, 단 한 시간, 단 한 순간이라도 성부·성자·성령이 내 안에서 하나가 되는 것을 경험하고, 그 충만함을 간절히 바라는 삶을 살아가는 것이 여러분의 진짜 비전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마태복음 28장은 우리에게 "가서 전하라(Go and say)"고 명령합니다. 부활하신 주님을 목격한 마리아에게 주신 말씀처럼, 우리들의 꿈과 비전은 세상 속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세상으로 나아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용서하며, 주님의 말씀을 지키도록 가르치고, 세상 끝날까지 우리와 함께하시는 예수님과 동행하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마태복음 28장 18절에서 20절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의 지상 명령을 선포합니다. 주님께서 모든 권세를 우리에게 '주셨고', 그러므로 너희는 '가라'고 명령하십니다. 세상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는 이 명령을 품고 세상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이번 한 주간 동안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상 속에 나아가 살아내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시편 34편 말씀처럼 우리의 삶은 주님의 살아계심을 똑똑히 목도하는 삶이 되어야 합니다.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Taste and see that the Lord is good)"

하나님의 선하심을 친히 맛보고 경험하며, 세상 끝날까지 항상 함께하시겠다는 임마누엘의 약속을 누리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말씀의 주제처럼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상에 나아가, 내 안에 살아계신 삼위일체 하나님과 날마다 온전히 하나 되기를 갈망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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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주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