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9장 하늘에 가득찬 영광의 하나님
신앙고백 _ 사도신경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82번 빌립보서 2장
(인도자)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회중) 곧 그리스도 예수의 마음이니
(인도자)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회중)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인도자) 오히려 자기를 비워 종의 형체를 가지사
(회중) 사람들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인도자)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
(회중) 이러므로 하나님이 그를 지극히 높여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주사
(인도자) 하늘에 있는 자들과 땅에 있는 자들과 땅 아래에 있는 자들로
(회중) 모든 무릎을 예수의 이름에 꿇게 하시고
(다같이) 모든 입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주라 시인하여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셨느니라(5-11)
송영 _ 찬송가 2장 찬양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200장 달고 오묘한 그 말씀
말씀 _ 마태복음 13장 1~9, 18~23절,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
듣고 깨달아 백 배의 열매를 맺는 삶
하나님이 이 땅에 오셨고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졌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리가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를 묻는 그 어떤 질문보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내 마음속에 영접하는 것입니다. 그 마음이 선행될 때 하나님의 뜻을 아는 역사는 자연스럽게 따라오기 때문입니다. 즉, 우리의 생각과 순서가 바뀌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가 함께 나눌 하나님의 말씀은 마태복음 13장에 나오는 '네 가지 밭'에 관한 비유입니다. 여러분은 이 네 가지 밭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신 적이 있으십니까?
본문에는 씨를 뿌리는 농부가 등장합니다. 농부가 씨를 들고 나아가 땅에 씨를 뿌립니다. 비유 속에 등장하는 이 땅은 텃밭이나 화분, 혹은 넓은 논밭일 수도 있지만, 크게 보면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을 의미합니다.
농부는 씨를 뿌립니다.
- 첫 번째 씨앗은 길가에 떨어졌습니다.
- 두 번째 씨앗은 돌밭 사이에 떨어졌습니다.
- 세 번째 씨앗은 가시덤불에 떨어졌습니다.
- 네 번째 씨앗은 좋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우리가 이 마태복음 13장의 비유를 읽을 때 흔히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당연히 좋은 밭에만 씨를 뿌려야 하는 것 아닌가?" 하는 효용성의 문제입니다. 세상의 기준과 효율성으로 본다면 비유 속 농부는 매우 비효율적이고 어리석어 보입니다. 우리는 노력을 최소화하고 대가를 극대화하기 위해 당연히 좋은 밭에만 씨를 뿌리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비유하는 이 농부는 전혀 다릅니다. 우리 하나님은 가성비나 효율성을 따지는 분이 아니십니다. 얼마나 다행한 일입니까? 우리가 늘 '좋은 밭'의 상태로만 존재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마음이 때로는 길가 같고, 돌밭 같고, 가시나무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농부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포기하지 않으시고 계속해서 씨를 뿌리십니다.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복음의 씨앗은 우리와 달라서 한없이 무궁무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대의 효율성을 본받지 마시고, 한계가 없으신 하나님의 마음을 품으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오늘 우리가 이 비유를 나누는 더 중요한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이 마태복음 13장의 말씀이 앞선 12장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하는 점입니다.
마태복음 12장은 유대인들과 종교 지도자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집요하게 대적하고, 심지어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는 장면입니다. 고라신, 베세다, 가버나움 등 예수님께서 수많은 기적과 권능을 베푸셨음에도 그들은 끝내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이 생깁니다.
"하나님의 기적과 가르침이라는 완벽한 씨앗이 뿌려졌는데, 도대체 왜 저들은 회개하지 않는가? 예수님의 사역이 실패한 것인가?"
이 도전적인 물음에 대한 답으로 예수님께서 들려주신 것이 바로 13장의 비유입니다. 이 비유는 결코 예수님의 실패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말씀을 받는 사람들의 '마음 상태'를 네 가지로 나누어 설명해 줍니다. 농부가 뿌리는 씨앗, 즉 하나님의 말씀에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문제는 씨앗을 받는 토양에 있었습니다.
마태복음 13장 22절과 2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가시떨기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들으나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에 말씀이 막혀 결실하지 못하는 자요,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자니 결실하여 어떤 것은 백 배, 어떤 것은 육십 배, 어떤 것은 삼십 배가 되느니라 하시더라."
이 구절들에서 계속해서 반복되는 핵심 단어가 있습니다. 바로 "듣다"라는 단어입니다. 네 가지 밭의 차이는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어떻게 듣는가'에 달려 있습니다.
첫째, 길가는 아예 듣지 않는 사람입니다.
사람들의 발길에 밟혀 딱딱하게 굳어진 길가는 씨앗이 침투할 틈조차 없습니다. 마음이 완악하고 강팍해져서 하나님의 말씀을 아예 거부하고 듣지 않는 상태입니다. 그럼에도 은혜의 하나님은 이 딱딱한 길가에도 씨를 뿌리시며 끊임없이 마음의 문을 두드리십니다.
둘째, 돌밭은 잠시 들으나 행하지 않는 사람입니다.
돌밭에 떨어진 씨앗은 즉시 기쁨으로 말씀을 듣는 듯 보입니다. "아, 참 좋은 말씀입니다!" 하고 반응하지만, 돌짝밭 같은 삶의 현장으로 돌아가면 아무런 변화도 일어나지 않습니다. 고난이 오면 그저 자신의 어려운 상황만 탓하며, 깊은 뿌리를 내리지 못하고 사라져 버리는 마음입니다.
셋째, 가시떨기는 염려와 탐욕에 막힌 사람입니다.
말씀을 듣고 마음속에 심겨서 자라나기까지 합니다. 그러나 말씀과 함께 '세상의 염려'와 '탐욕'이라는 가시나무가 동시에 자라납니다. 결국 결정적인 순간에 세상 근심과 욕심이 말씀의 기운을 막아 열매를 맺지 못하게 만듭니다.
넷째, 좋은 밭은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입니다.
좋은 밭은 단순히 토양이 좋은 것을 넘어 "말씀을 듣고 깨닫는 마음"을 의미합니다. 깨닫는 자는 반드시 열매를 맺게 되며, 그 결실은 백 배, 육십 배, 삼십 배로 풍성하게 일어납니다. 여기서 백 배의 결실이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임할 때 우리 삶에 주어지는 원초적이고 풍성한 은혜를 강조하기 위함입니다.
그렇다면 성경이 말하는 "깨닫는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요?
오늘 마태복음 13장에서 가장 중요한 단어 하나를 꼽자면, 헬라어로 '이해하다, 깨닫다'를 뜻하는 '순이에미(συνίημι)'입니다.
이 단어는 '함께(σύν)'와 '보내다(ἵημι)'가 합쳐진 말로, "파편처럼 흩어져 있는 것들을 한데 모아 온전히 연결한다"라는 의미를 가집니다.
즉, 말씀을 깨닫는다는 것은 단순한 지식적 이해를 넘어섭니다. 내 삶의 흩어진 생각과 마음을 하나님 향해 모으고, 하나님과 온전히 연결되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이 '순이에미(깨달음)'의 상태에 이르기 위해서는 먼저 말씀을 받아들이는 '데초마이(δέχομαι)', 즉 '영접'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내 마음속에 감사히 영접하고, 그 말씀과 나를 연결하여 삶의 행동으로 옮기는 것—이것이 바로 듣고 깨닫는 '좋은 밭'의 모습입니다.
예수님 당시에도 수많은 사람이 주님의 말씀을 들었지만, 정작 그 말씀을 깨닫고 영접한 제자들은 극히 적었습니다. 이는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매우 중요한 메시지를 던집니다. 세사람들이 변하지 않는 것은 씨앗의 문제가 아니라 마음 밭의 문제라는 사실입니다.
좋은 밭은 열매를 맺기 위해 애쓰는 곳이 아닙니다. 좋은 밭이 되면 열매는 자연스럽게 맺히게 되어 있습니다. 창세기 26장 12절을 보면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하여 그해에 백 배나 얻었고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좋은 밭에 하나님의 은혜가 임할 때 백 배의 열매가 맺히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법칙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결실하지 못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의 굳은 마음과 세상의 가시입니다. 성령의 은혜로 메마른 마음을 적시고, 강팍한 돌을 걸러내며, 탐욕의 가시를 제거하시기 바랍니다. 흩어진 마음을 '순이에미', 즉 하나님을 향해 하나로 모으고, 말씀을 '데초마이', 온전히 영접합시다.
식물이 열매를 맺는 최종 목적이 무엇입니까? 바로 그 열매 안에 다시 심을 씨앗을 품기 위함입니다.
우리가 맺은 믿음의 열매를 통해 세상에 다시 복음의 씨앗을 뿌려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마음에 품어야 할 슬로건이 있습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어 씨를 뿌리자! 그리하여 아버지의 영광스러운 일에 동참하자!"
우리는 이 일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길가와 돌밭, 가시나무 같은 우리의 마음을 깨끗이 살피고, 주님의 말씀을 들음으로 깨달아, 삶 가운데 백 배의 풍성한 열매를 맺는 거룩한 성도와 교회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찬양 _ 찬송가 285장 주의 말씀 받은 그 날
주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