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나라의 비유1. 가라지와 밀

하루하루가 복된 삶이 아니고서는 하나님의 은혜, 그리고 지켜주심이 아니면 살아가기가 참 어려운 세상인 것 같습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마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고 계십니까? 저는 살면서 제 마음에 훨씬 더 이렇게 두려움,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경외, 연민과 불쌍히 여기는 마음이 더욱더 생긴다는 것에 스스로 놀라고 있습니다.

어느 정도는 무뎌갈 수도 있을 거라고 생각했었거든요. 그런데 무뎌지지 않고요, 훨씬 더 ‘아, 이 땅이 참으로 아픔이 많구나. 이 땅이 참으로 고통이 많구나. 그리고 이 땅을 사랑하기가 참 힘겨운 거구나’ 하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아마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마태복음 9장 36절에 있는 말씀이 제게 큰 깨달음을 준 것 같습니다.

무리를 보시고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을 보고 예수님께서 불쌍히 여기셨습니다. 그 마음이 하나님의 마음이라는 것에 위로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세상이 힘겨울 때마다 우리를 향하여 우리의 삶을 지켜보시고 “내게로 오라” 말씀하시는 그 예수님의 음성을 들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마태복음의 비유들에서 교훈을 얻고 있습니다. 지난주에 언급한 것처럼 이 비유들은 마태복음 12장에서 언급된 질문에 대한 대답입니다. 그 질문이 무엇입니까? “왜 사람들이 예수를 거절하고 예수와 계속해서 갈등 속에 있는가?” 하는 질문입니다. 여러분, 2000년 동안 이 질문은 달라지지 않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왜 이 좋은 예수를 거절하고 예수와 갈등 속에 있을까요?

많은 종교의 형태나 여러 가지를 보면, 사실 예수라는 한 사람을 그냥 볼 때 그분이 한 행위 중에서 악한 일이 있습니까? 예수라는 분이 한 행위 중에서 잘못한 것이 있으신가요? 싫어하는 이야기가 있죠. “독사의 자식들아” 하신 것이나 바리새인과 유대인들에게 회개하지 않는다고 고라신, 베세다, 가버나움에서 울분을 토하시긴 하셨지만, 그 예수라는 분이 나쁜 일을 한 게 있나요? 잘못한 게 있나요? 하고 생각해보면 참 없습니다.

우리가 명확하게 이해할 만한 잘못이 없고 실제로 사건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예수께서 베푸신 기적은 엄청나잖아요. 예수께서 하신 말씀은 옳은 말씀이었고 생명의 말씀이셨으며, 기적과 이적을 통해 수없이 많은 사람이 모여 구원을 받았다는 것을 많은 사람이 목격하였습니다. 그래서 증인이 되었죠. 제자들은 증인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이 예수를 거절하고 예수와 갈등 속에 있는 사람들이 이렇게 있는가 하는 것이 질문이었습니다.

그것에 대한 대답이 마태복음 13장에 있는 말씀이었죠. 여러분, 그 말씀 기억나시죠? 씨 뿌리는 비유에서 어떤 땅이 있었습니까? 길가가 있었고, 돌밭이 있었고, 가시나무가 살고 있는 가시덤불 밭이 있었고, 좋은 밭이 있었다고 하는 비유의 말씀을 통해 우리는 지난주 말씀을 깨달았습니다.

그런데 오늘은 밭의 문제가 아니라 희한한 단어가 등장합니다. 마태복음 13장 25절, 28절, 29절에 어떤 단어가 등장합니까? 25절에 ‘가라지’가 등장합니다. 이 가라지는 정확하게 원수가 뿌린 것입니다. 25절에 “사람들이 잘 때에 그 원수가 와서 곡식 가운데 가라지를 덧뿌리고 갔더니”라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가라지가 여러분이 생각하신 길가, 돌밭, 가시나무에 있는 것이라 생각하실 수도 있는데요. 오늘 등장한 말씀에 보면 ‘원수’라고 하는 명확한 단어가 등장합니다. 이 원수가 무엇인지를 깊이 생각하면서 오늘 말씀을 들어보려 합니다.

지난주에 이어 우리는 열매에 대한 비유를 이어서 묵상하게 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지난주 말씀의 선상에서 이해해보면, 먼저 “비유를 들으라”는 말씀에서 시작하게 됩니다. 주님께서는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를 전하셨습니다. 24절 말씀입니다. “예수께서 그들 앞에 또 비유를 들어 이르시되 천국은 좋은 씨를 제 밭에 뿌린 사람과 같으니”라고 말씀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비유는 마태복음 13장 10절과 11절에서도 다음과 같이 설명하셨습니다. 제자들이 다가와 예수님께 말합니다. “주님, 저 사람들에게는 왜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입니까?” 마태복음 13장 10절에서 11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왜 비유로 말씀하십니까?” 길가, 돌밭, 가시덤불 밭 이야기가 어렵다는 것이죠. 제자들이 묻자 예수님께서 뭐라고 대답하십니까? 아주 중요한 말씀입니다.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너희에게는 허락되었으나 그들에게는 아니되었나니”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은, 오늘 마태복음 13장 10절과 11절 말씀을 보면 허락된 사람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이 있고 이해할 수 없는 사람이 있는데, 예수님의 말씀대로 하면 하늘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된 사람과 허락되지 않은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한 사람입니까? 여러분의 주변에는 어떠한 사람들이 함께하고 있습니까? 분명히 중요한 것은 비유로 말씀하시는 이유가 허락되지 않은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라는 점입니다. 굉장히 중요한 말씀입니다. 우리 주변에 아직도 허락되지 않은 사람들이 있다면 안타까워하며 예수님의 마음과 같이 그들을 위해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믿기로는, 제가 소망하기로는 저와 함께하는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미 이 하늘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된 사람들이라고 믿습니다.

 칼 바르트가 이야기하는 우리에게 신학이 필요한 이유가 이것입니다. 신학을 하는 이유, 신학자인 이유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이 허락된 사람들에게만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하나님을, 하나님 나라를, 믿음을 알 길이 없다는 것을 논리적으로 설명한 저서가 칼 바르트의 신학 서적들입니다. 여러분, 허락되었는지를 다시 한번 믿음으로 여러분의 마음을 점검해보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말씀에 이어서 두 번째 이유가 등장합니다. 그들이 보아도 보지 못하며 들어도 듣지 못하며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하시면서 주님께서는 이사야의 예언이 이루어졌다고 설명하십니다. 이사야 6장 9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여러분, 이사야 6장 9절에 있는 말씀을 찾아보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작년에 “왜 사람들이 믿지 않는가? 왜 변하지 않는가?” 하는 깊은 고민이 있었을 때,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말씀이었습니다. 저는 이사야 6장 9절 말씀 때문에 이사야서 필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기도를 하는데 이 말씀을 주셨어요. 그런데 제가 놀랍게도 이 말씀이 성경에 있다는 것을 당시에는 명확히 알지 못했습니다. 이사야 6장 9절에 명확하게 등장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왜 사람들이 바뀌지 않을까요? 왜 변화되지 않을까요?” 지난해 저의 기도 제목이었습니다. “왜 사람들이 안 바뀌지? 이정도 하면 바뀔 때쯤 된 것 같은데…” 하고 열심히 기도했을 때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이 바로 이 부분이었습니다. 6장 9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

 

하나님께서 이사야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하신 말씀입니다.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아보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 백성의 마음이 무디어졌고, 그들의 귀는 어두워서 듣지 못하고, 눈은 감겨 있다. 이는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돌아와 나에게 고침을 받을까 염려함이라고 하셨습니다.

정확하게 제게 주신 말씀은 “나에게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염려하노라” 하는 말씀이었습니다. “왜 변화되지 않을까?” 변화되어 하나님께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염려하신다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지 않으신다는 뜻을 주셨습니다. 저는 너무 놀랐습니다. ‘아, 바뀌지 않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단 말인가’ 하는 생각에 작년에 굉장히 많이 놀랐고, 그때부터 저의 기도가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 범죄한 백성에게 하나님께서 내리신 형벌이 무엇입니까? 불을 가져가는 것, 건강을 뺏어가는 것, 공부를 못하게 하는 것, 명예를 뺏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범죄한 백성에게 내리신 가장 무서운 형벌은 듣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깨닫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왜 이것이 가장 큰 형벌이 됩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면 결국 하나님께 돌아오지 못하고,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벌입니다. 듣고 깨닫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이러한 맥락에서 오늘 비유로 설명하신 이유가 결국 하늘나라의 비밀이 있다는 것입니다. 결코 무당들이 설명할 수 없는 것, 어떠한 철학자도 설명할 수 없는 바로 하늘나라의 비밀을 주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요즘 OTT에서 드라마를 보면 귀신, 무당, 퇴마사가 등장하곤 합니다. 한국이라는 나라는 오래전부터 지옥이나 귀신, 하늘을 믿었던 민족인 것 같습니다.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죠. 하나님은 믿지 못하더라도 귀신의 존재나 어둠의 세계를 믿었다는 것은 놀랍지 않습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 얼마나 오만한지, 유구한 인류의 역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미련한 일이라는 깨달음을 얻으시기 바랍니다. 보이지 않는 세계에 엄청난 힘이 있다는 것, 어둠이 실제로 작동하며 생명을 앗아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한 것입니다.

지난주의 말씀을 다시 떠올려보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주님을 적대한 이유, 저들이 예수를 믿지 않는 이유에 대한 비유가 이러하였습니다. 씨 뿌리는 사람이 씨를 뿌리러 나갔습니다. 그 씨들이 길가, 돌밭, 가시나무 속, 좋은 땅에 떨어졌습니다. 결국 좋은 밭에 떨어진 씨앗은 100배, 60배, 30배의 열매를 맺게 되는데, 그 좋은 밭은 하나로 정리되었습니다. ‘말씀을 듣고 깨닫는 사람’입니다.

마태복음 13장에 등장하는 ‘듣고 깨닫다’에서 ‘깨닫다’라는 단어가 무엇이었습니까? 헬라어로 ‘수니에미(συnative/συνίημι)’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수니(σύν, 함께)’와 ‘이에미(ἵημι, 보내다/연결하다)’가 합쳐진 말로, 여러 파편을 함께 모아 연결한다는 의미입니다.

내가 깨달았다는 것을 쉽게 풀어서 설명하면, 나 혼자 이해해서 내 뜻대로 해석하고 하고 싶은 대로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과 성령님과 예수님과 연결된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기도를 할 때 누구에게 더 가깝게 가야 합니까?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기도를 한다는 것, 말씀을 깨달았다는 것은 나에게로 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과 연결되는 것입니다. “아, 내 생각이 아니라 하나님의 생각은 이러하구나” 하고 하나님을 받아들이는 것(대초마이/δέχομαι), 영접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깨닫는 것입니다.

이러한 이해를 바탕으로 오늘 하늘나라의 비유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오늘 본문 24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늘나라는 자기 밭에 좋은 씨를 뿌리는 사람과 같다고 시작하여 비유를 설명하십니다. 여기서 문법적으로 ‘하늘나라가 사람이다’라는 뜻이 아니라, 뒤에 나오는 비유 전체가 하늘나라의 속성을 나타낸다는 의미입니다.

오늘 비유는 이렇게 정리됩니다.

1. 씨 뿌리는 자가 좋은 씨를 자기 밭에 뿌렸다.

2. 사람들이 잘 때에 그의 원수가 와서 밭 가운데 가라지를 뿌리고 갔다.

3. 싹이 나고 결실할 때에 가라지도 드러났다.

4. 종들이 와서 주인에게 물었다. “주인님, 좋은 씨를 뿌렸는데 왜 가라지가 생겼습니까?”

5. 주인이 대답한다. “원수가 이렇게하였구나.”

6. 종들이 묻는다.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7. 주인이 대답한다. “가만 두라. 가라지를 뽑다가 곡식까지 뽑을까 염려하노라. 추수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게 두라.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들에게 말하기를 가라지는 먼저 거두어 불살라 묶고,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이것이 우리가 주님께 들은 하늘나라의 비유입니다. 여러분, 이 비유를 들으면서 이것이 왜 하늘나라의 비유인가 생각해보셨습니까? 스토리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결론입니다. 결론이 무엇입니까? 추수 때에 가라지는 불태워지고, 밀은 곳간으로 거두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 하늘나라 비밀의 첫 번째는 추수의 때를 아는 것입니다. 결국 추수의 때에 드러나는 곳간이 하늘나라입니다. 밀은 곳간에 두고, 가라지는 불태워 사라집니다. 추수 때에 하늘나라 곳간이 드러납니다.

오늘 본문 이후 37절부터 주님의 설명이 이어집니다.

* 좋은 씨를 뿌리는 이는 인자(예수님)요,

* 밭은 세상이요,

* 좋은 씨는 천국의 아들들이요,

*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이요,

* 가라지를 뿌린 원수는 마귀요,

* 추수 때는 세상 끝이요,

* 추수꾼은 천사들입니다.

그러므로 가라지를 거두어 불에 태우는 것 같이 세상 끝에도 그러할 것입니다. 인자가 그 천사들을 보낼 것이요, 그들이 그 나라에서 모든 걸림돌이 되는 것과 불법을 행하는 자들을 거두어내어 용광로 불에 던져 넣으리니,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될 것입니다. 그때에 의인들은 자기 아버지 나라에서 해와 같이 빛날 것입니다. 귀 있는 자는 들으십시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가라지와 밀이 함께 자라는 곳입니다. 밀만 있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가라지는 악한 자의 아들들입니다. 우리는 주기도문을 통해 “악에서 구하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세상은 하나님이 만드셨지만 악이 있고, 악의 자녀들이 있습니다. 밀은 하나님 나라의 아들들입니다.

그러므로 악을 쉽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악을 쉽게 생각하는 순간 악의 손길이 미치게 됩니다. 그래서 성경은 계속해서 말씀과 언약과 계명을 지키라고 반복하여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동시에 기억하셔야 합니다. 가라지가 있는 세상을 두려워할 필요도 없습니다. 마태복음 10장 28절에서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 그분이 누구십니까? 우리 아버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머리카락까지 다 세신다고 하셨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가라지를 두려워하지 말고 하나님의 밀알로, 하나님의 아들들로 살아가시기를 진심으로 축복합니다. 가라지를 쳐다보며 인생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악한 자의 아들들도 세상에서 자라고 열매를 맺는다고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자연을 보십시오. 가시도 열매를 맺고, 잡초도 열매를 맺고, 독버섯도 열매를 맺습니다. 다 자라나서 자기들의 열매와 씨를 뿌립니다.

모든 가라지를 뿌리 뽑는 것이 우리의 몫일까요? 아닙니다. 예수님 시대의 바리새인들은 훌륭한 잡초 제거꾼이 되고자 힘썼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을 잡초들로부터 분리하기를 원했고, 사울은 스데반을 돌로 치는 것에 찬성했습니다. 그러나 밀과 잡초를 구별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추수 때까지 기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추수 때가 아직 이르지 않았기 때문에 가라지들은 계속해서 열매를 맺고 씨를 뿌릴 것입니다. 이제 우리가 해야 할 일은 명확합니다. 주님은 마지막 때 이전에 종들을 보내기보다 마지막 때에 수확을 위해 천사들을 보내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우리가 하늘나라의 아들들이라는 것을 세상에 나타내는 것입니다. 우리도 심판의 추수 때를 피할 수 없습니다. 그때에 우리는 밀을 내놓아야 합니다.

마태복음 12장 33절~37절 말씀입니다. 좋은 나무가 좋은 열매를 맺고 나쁜 나무가 나쁜 열매를 맺습니다. 그 열매로 나무를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입은 마음에 가득한 것을 말하므로, 선한 사람은 그 쌓은 선에서 선한 것을 내고 악한 사람은 그 쌓은 악에서 악한 것을 냅니다. 심판 날에 사람이 무슨 무익한 말을 하든지 이에 대하여 심문을 받으리니, 네 말로 의롭다 함을 받고 네 말로 정죄함을 받으리라 하셨습니다.

우리에게도 열매가 필요합니다. 가라지를 뽑아내는 데 인생을 쓰는 것이 아니라, 아름다운 열매를 맺는 인생을 살아가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갈라디아서 5장 22절~23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우리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자본주의 안에서의 자산이나 사회적, 경제적 자산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는 그리스도인들이 성령의 인도하심을 따를 때 삶 속에서 자연스럽게 맺히는 인격과 성품의 변화를 말합니다.

1.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맺히는 열매**: 사랑, 희락, 화평

2. **이웃과의 관계에서 맺히는 열매**: 오래 참음, 자비, 양선

3. **자기 자신과의 관계에서 맺히는 열매**: 충성, 온유, 절제

이 열매들은 각각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원문을 보면 ‘열매(singular)’는 단수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의 열매 안에 아홉 가지 빛깔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하나가 온전히 맺히면 아홉 가지 성품이 균형을 이루어 찬란한 빛을 내게 됩니다.

오늘 가라지와 밀에 대한 하늘나라의 비유를 정리하며 마지막으로 당부드립니다. 열매가 맺힐 때까지 우리에게는 ‘인내’의 시간이 필요합니다. 좋은 밭에서 100배, 60배, 30배의 열매를 맺는 복된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마침내 추수의 때에 해처럼 빛날 것을 확신하며, 하루하루를 인내하고 결실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