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9장 찬양하는 소리 있어
신앙고백 _ 사도신경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81번 에베소서 4장
(인도자) 그러므로 주 안에서 갇힌 내가 너희를 권하노니
(회중)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일에 합당하게 행하여
(인도자)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회중)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인도자) 몸이 하나요 성령도 한 분이시니
(회중)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받았느니라
(인도자) 주도 한 분이시요 믿음도 하나요 세례도 하나요
(회중) 하나님도 한 분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다같이) 만유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1-6)
송영 _ 찬송가 2장 찬양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84장 온 세상이 캄캄하여서
말씀 _ 마태복음 14장 22~33절, 오라!
제목: 물 위로 오라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우리는 당시 상황을 상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들은 무언가의 기대가 있었고, 굉장히 흥분한 상태였다고 볼 수 있을 것 같아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러한 분위기에 휩쓸렸다고 해야 할까요?
"아, 이제 이스라엘에 왕이 생기는구나" 하는 그러한 고무적이고 흥분되어 있던 언덕을 조용히 시키시면서 정리를 하라고 하십니다. 잘 정리를 하고 난 다음에 무리를 그들의 가정으로 돌아가게 하시고, 제자들을 서둘러 배에 타게 하십니다. 그러니까 저녁을 먹고 이제 각 가정으로 돌아가라고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면, 제자들은 서둘러 호숫가—우리가 추정하기로 갈릴리 호수라고 추정하고 있지 않습니까?—그 호숫가에 있는 배에 제자들을 막 타라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리고 건너편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그 건너편이 게네사렛입니다.
오늘은 게네사렛에 대해서는 이야기를 하지 않겠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그 배를 타라고 하시고 나서 서둘러 건너편으로 가라고 이야기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배에 타서 서둘러 호수를 건너가라고 이야기를 하시면서도, 정작 예수님 자신은 그 배에 타지 않으십니다.
그리고 홀로 산으로 가십니다. 홀로 산으로 가셔서 기도하려 하신다고 설명하는 부분이 바로 지금 22절과 23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서둘러 건너편으로 건너가게 하시고, 그동안에는 무리를 흩어 집으로 보내셨으며, 무리를 흩어 보내신 후에 예수님께서 따로 기도하러 산에 올라가셨습니다.
다시 성경을 보면 장소가 매우 중요합니다. 이 산은 어떠한 개념을 가지고 있을까요? 인간의 통제 구역에서 벗어난 외딴곳이자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거룩한 장소로 표현되는 곳이 바로 산입니다.
어제 우리가 《오디세이아》를 봤지 않습니까? 그때 '통제'라고 하는 단어를 들으셨나요? 삶을 통제하려고 하는 오디세우스에게 신이 이야기하죠. 통제하려고 하지 말고, 싸우려 하지 말고, 받아들이라고 하는 이야기를 합니다. 사실 인간들은 자신의 삶을 통제하려고 하지만 그것이 통제되지 않습니다. 그 통제를 벗어나 홀로 기도하심으로 나의 삶을 통제하려는 시도를 멈추고 하나님을 만나는 곳, 신을 만나는 곳, 그것이 이 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래서 굉장히 놀라운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1980년대, 90년대까지는 대부분 다 산기도를 갔습니다. 그래서 갈멜산 기도원이라든지 할렐루야 기도원 같은 곳들이 다 어디에 있습니까? 산에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기도하셨다는 이 말씀을 가지고 아마 기도원들이 다 산에 있을 텐데요. 상징적으로, 신학적으로는 그런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통제 구역을 벗어나 외딴곳에서 하나님과 깊이 교제하는 거룩한 장소, 그곳을 향해 예수님께서 가셨습니다. 번잡함과 혼란함, 인간의 욕망과 야망에서 벗어나 하나님과의 관계 속으로 들어가시는 예수님의 모습에 주목하게 됩니다.
그리고 제자들을 보내시는 것입니다. 배를 태워서 건너가게 하십니다. 저녁이 되었고, 게네사렛으로 건너가려 하다 보니 밤이 깊어집니다. 그 호수를 건너가는 동안, 《오디세이아》 기억나시죠? 엄청난 풍랑이 제자들과 그 배에 불어닥쳤습니다. 거센 물결로 인해서 배가 크게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제자들에게는 사실 '거센'이라고 하기에는 바다가 아닌 호수여서 어느 정도 예상할 수 있는 범주의 맞바람이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바다 같은 경우에는 거대한 소용돌이에 휘말려서 정말 죽음에 대한 공포를 느낄 수 있다면, 호수는 그렇지 않지 않습니까? 바람이 불어 호수에 물결이 일고, 그 물결 때문에 배가 흔들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 흔들리는 배 안에서 중심을 잡고 힘겹게 저쪽 건너편으로 가야 한다는 사투를 벌이고 있는 것이 제자들의 상황이었습니다.
상황적으로는 그들도 저녁을 먹었고, 게네사렛으로 건너가야 해서 배에 탔습니다. 잔잔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호수였는데 바람이 불었고, 물결이 일면서 배가 흔들리는 상황 속에 밤이 깊어가고 있었습니다. 그때 누구는 없었을까요? 예수님이 계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은 어디에 계십니까? 지금 산에 계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함께 기도하고 계신 시간이었습니다.
그렇게 밤이 무르익어 가고 시간이 지났음을 알게 됩니다. 어떤 단어가 나옵니까? '밤 사경'입니다. 밤 사경, 한자로 쓰여 있는 이 사경을 지금의 시간으로 이야기하면 새벽 3시에서 6시 사이가 되는 시간입니다. 새벽 정도가 되는 것입니다.
아까 제자들이 물결 속에서 노를 저어 건너편으로 가려고 시도하고 있을 때, 시간이 한참 지나 저녁부터 한 6시간은 지난 것 같습니다. 저녁 먹고 흩어져 호수 위 바람 부는 곳에서 노를 젓고 있는 이 상황에서 시간이 몇 시간 흘러 새벽 3시쯤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럼 이때쯤 제자들은 어떨까요? 비몽사몽이었을 것입니다. 소용돌이에 빠져 죽을 지경까지는 아니니까 어느 정도 맞바람에 익숙해진 채 비몽사몽 힘들어하고 있는 상황인데, 그때 놀라운 장면이 펼쳐집니다.
25절 말씀입니다. 25절의 말씀은 굉장히 신비롭고 놀라운 말씀인데 딱 한 줄입니다. 제가 헬라어 직역으로 성경 말씀을 읽으면 이렇게 됩니다.
"밤 사경에 예수께서는 호수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로 오셨다."
너무 단순한 문장이죠. 호수 위를 걸어 제자들에게로 오셨습니다. 엄청나게 놀라운 장면입니다. 이럴 때 영화적 기법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호수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 믿어 주십시오.
이 장면이 너무 놀라워서 제자들은 그렇게 걸어오시는 예수님을 보자, 26절에 겁에 질려서 크게 소리를 쳤습니다. 뭐라고 합니까? "유령이다!"라고 크게 소리를 지르며 비명을 질렀다는 것입니다. 소리만 지른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보자마자 비명을 질렀습니다. 저도 그랬을 것이고 여러분도 다 그러셨을 것입니다. 사람이 호수 위를 걸어올 수는 없지 않습니까? 단 한 번도 보지 못한 광경이 눈앞에 있으니, 그때 그들이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유령이다"라고 말할 수밖에 없죠.
그때 예수님의 대답이 이것입니다.
"에고 에이미(Ego Eimi)"
"에고 에이미!"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는 "나다"라는 의미입니다. "나는 나다." 이 문장이 굉장히 중요합니다. 신학자들과 성경을 연구하는 많은 사람은 25절의 이 한 문장을 '신의 현현(Theophany)'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신의 현현을 본 인간의 반응은 극심한 공포였습니다. 신이 현현했는데 알아보지 못합니다. 《오디세이아》도 그렇잖아요. 그래서 인간은 신을 알아보지 못하기 때문에 신이 항상 인간의 모습으로 변장해서 올 것이라는 사고체계를 가지게 되는데, 신의 현현을 보자 제자들은 신을 알아보지 못하고 "와, 이게 뭐지?" 하며 비명을 지릅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마태복음 14장 27절에 있는 말씀입니다. "안심하라, 나다(에고 에이미). 그러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누구인지 그들에게 이야기하시는데, 그냥 "에고 에이미, 나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에고 에이미, 나다"라고 하시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으셨을 때 어떠한 마음, 생각, 영혼의 움직임이 있으셨습니까?
저는 이 장면에서 모세를 떠올렸습니다. 지난주에 제가 영화와 하나님의 이름을 여러분과 함께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셨을 때, 얼굴을 보여 주신 것이 아니라 떨기나무 가운데 신의 현현으로 임하셨습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하신 말씀이 무엇입니까? "I AM WHO I AM",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기억이 나십니까? 그것입니다.
"내가 나다"라고 하시는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셨던 그 신의 현현 장면과 일치하는 장면입니다.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 나는 나다." "I AM WHO I AM"을 헬라어로 하면 '에고 에이미'가 됩니다.
그러나 그 음성을 들은 모세와 베드로의 반응은 다릅니다. 모세는 두려워서 엎드리고 사양을 하지요. 그것은 나중에 말씀드리겠습니다. "에고 에이미, 나는 나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베드로의 즉각적인 반응이 놀랍습니다. 어떻게 반응합니까? 성경에 있는 말씀을 찾아보시겠습니다.
27절에 예수님께서 "나는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시니, 28절에 베드로가 대답하는 반응이 놀랍습니다. 뭐라고 합니까? "주님, 만일 주님이시거든 저더러 물 위를 걸어 주님께로 오라고 명령해 주십시오"라고 요청합니다. 만약 주님이시라면—지금 주님이 물 위를 걸어오고 계시지 않습니까?—베드로가 요청합니다. "만약 주님이시라면 저도 주님처럼, 주님이 계신 곳으로 물 위를 걸어서 주님께로 걸어갈 수 있도록 명령해 주십시오."
이것은 굉장히 중요합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물 위로 오시는 예수님을 보며 제자들은 놀랐고, 그때 예수님은 배 위가 아니라 물 위에서 "나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음성을 듣고 베드로는 배 안에 가만히 있지 않고 이렇게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주님이시라면 저에게 주님이 계신 곳으로 물 위를 걸어 오라고 명령해 주십시오."
베드로는 지금 배를 떠나 물 위를 걸어서 주님께로 가겠다고 결심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을 스스로 하지 않고 주님의 명령에 의지하여 가겠다고 이야기하는 것입니다. 그것이 베드로의 반응이었습니다.
놀라운 베드로입니다. 그래서 교회의 반석이 되고 교회를 세우게 되는 베드로의 모습이 이때의 장면에서도 이해가 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배를 떠나 예수님께로 가기로 합니다. 여러분, 예수님께 가려면 일단 어디를 떠나야 합니까? 배를 떠나야 합니다.
여러분은 흔들리고 힘겹지만 죽지는 않는 그 배 안에 있으면서 안전하다고 착각합니다. 그 배에 타고 있으면서 "이곳에 있으면 안전하다"고 착각하는 것이죠. 그래서 막 흔들리고 어렵고 사투를 벌이면서 "어디로 가야 하나? 저쪽 게네사렛으로 가야 하나?" 생각하며 힘겹게 살아가고 계신 것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해야 그 배를 떠납니까? 배를 떠나면 무엇이 있습니까? 물이 있고, 어마어마한 바람과 일렁이는 물결이 있습니다. 거기를 서서 건너야 합니다. 할 수 있을까요? 못 합니다. 우리는 안 됩니다. 그러나 그곳에 누구가 계십니까? 가야 하는 목적지에 예수님이 계십니다.
예수님께로 가야 한다면 배를 떠나 그 물결 위를 걸어서 예수님께로 가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놀랍습니다. 우리의 삶이 배라고 착각하고 있는 상황 속에서 흔들리고 있고 아무것도 되지 않지만, 우리 인생의 종착지는 예수님입니다. 예수님에게로 가기 때문에 배에서 나와 물 위를 걸어서 예수님께로 가는 것이 우리의 인생입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을 보고 예수님께로 가고자 결심했을 때, 과감하고 담대하게 배에서 딱 일어납니다. 그리고 물 위에 발을 얹었습니다. 섰을까요, 안 섰을까요? 상상해 보면 베드로가 몇 발자국을 물 위를 걸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배를 떠나서 뗀 그 몇 발자국, 그것이 은혜입니다. 놀라운 신비가 삶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배를 떠나 죽을 줄 알았는데 물 위를 몇 발짝 떼어 걸어갔습니다.
그런데 걸어가다 보니 무엇이 보였을까요? 바람이 불고, 호수의 물결이 보이고, 바람이 보입니다. 누구를 보지 못하고요? 예수님을 보지 못하고, 그 순간 바람과 물결을 깨닫는 순간 베드로가 허우적거리기 시작합니다.
이때 오늘 설교 제목에서 빠진 부분이 나옵니다. 오늘의 제목이었습니다.
"오라!"
베드로가 "주님이시거든 저에게 오라고 명령해 주십시오"라고 요청했을 때, 예수님의 대답은 아주 분명한 음성이었습니다. "오라!"
"오라"는 말씀을 듣고 베드로가 배에서 일어나 물결 위를 걸어 예수님께 가기 시작했던 것입니다. 몇 발짝이었을지라도 베드로는 발자국을 떼었고 물 위를 걸었습니다. 그러다 바람과 물결에 휘청거리며 다시 바다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그때 절규처럼 부르짖는 베드로의 소리가 더욱 놀랍습니다.
"주님!" 뭐라고 부르짖습니까? "주님, 저를 구원해 주십시오!"라고 외칩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잡아 주시며 말씀하시죠. "왜 의심하였느냐." 그리고 어떻게 합니까? 예수님과 베드로가 함께 물 위를 걸어 배에 도착하게 됩니다. 이 장면을 목격한 배 안에 있던 사람들이 예수님의 발 앞에 절하며 고백한 장면이 마지막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
저는 오늘 배 안에만 머물러 있지 말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주님께서는 오늘 우리 삶의 중심이 예수님께로 오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주님께서 당신에게로 오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의 삶의 목표와 목적은 어디를 향하고 계십니까? "오라" 하시는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우리가 가진 한계이자 적은 배, 우리가 안전하다고 착각하고 있는 이 배를 벗어나십시오. 세상을 향해, 여러분의 인생을 향해 발을 내디디십시오. 그 인생의 바다가 아무리 험난할지라도 물 위를 건너는 그리스도인이 될 줄로 믿습니다.
몇 발짝 지나면 다시 무슨 일이 일어나 빠질 수도 있습니다. 그때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주님, 우리를 구원해 주십시오"라고 부르짖는 것입니다. 그러면 주님께서 다시 우리를 건지시고 손을 잡으시며, 우리가 가고자 하는 그곳까지 물 위를 함께 걸어 주실 줄 믿습니다. 그러한 우리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예수님의 음성 "오라"는 말씀의 시작은 "에고 에이미, 나다"였습니다. 우리 삶의 주인이 되신 예수 그리스도를 이 시간 만나시고, 여러분의 가정에 "에고 에이미, 나다"라고 말씀하시는 예수님이 계시기를 바랍니다. 그러한 삶이 이루어지는 여러분의 가정과 우리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찬양 _ 찬송가 432장 큰 물결이 설레는 어둔 바다
주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