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9장 하늘에 가득찬 영광의 하나님

신앙고백 _ 사도신경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84번 히브리서 11장

(인도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회중) 선진들이 이로써 증거를 얻었느니라
(인도자)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회중)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
(인도자) 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회중)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
(인도자)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이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회중)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
(인도자)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회중)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1-6)

송영 _ 찬송가 4장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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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90장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말씀 _ 마태복음 21장 23~32절/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23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 가르치실새 대제사장들과 백성의 장로들이 나아와 이르되 네가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느냐 또 누가 이 권위를 주었느냐
24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나도 한 말을 너희에게 물으리니 너희가 대답하면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이르리라
25 요한의 세례가 어디로부터 왔느냐 하늘로부터냐 사람으로부터냐 그들이 서로 의논하여 이르되 만일 하늘로부터라 하면 어찌하여 그를 믿지 아니하였느냐 할 것이요
26 만일 사람으로부터라 하면 모든 사람이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니 백성이 무섭다 하여
27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우리가 알지 못하노라 하니 예수께서 이르시되 나도 무슨 권위로 이런 일을 하는지 너희에게 이르지 아니하리라
28 그러나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 어떤 사람에게 두 아들이 있는데 맏아들에게 가서 이르되 얘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라 하니
29 대답하여 이르되 아버지 가겠나이다 하더니 가지 아니하고
30 둘째 아들에게 가서 또 그와 같이 말하니 대답하여 이르되 싫소이다 하였다가 그 후에 뉘우치고 갔으니
31 그 둘 중의 누가 아버지의 뜻대로 하였느냐 이르되 둘째 아들이니이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세리들과 창녀들이 너희보다 먼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리라
32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마태복음 21장에서 예수는 겸손한 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셨습니다(21:9). 예루살렘에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는 함성이 가득 찼고, 예수는 당신이 하시고자 하는 그 일을 아버지와 함께하셨습니다. 성전으로 들어가서 매매하는 모든 사람들을 내어쫓으시고, 맹인과 저는 자들이 예수께 나아올 때 그들을 고치셨습니다. 이 기적들은 어린 아이들의 “다윗의 아들에게 호산나”라는 외침과 함께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을 분노하게 만들었습니다(21:15). 그 시점에 예수는 베다니로 가기 위해 성전을 떠나셨고, 이튿날 성으로 되돌아올 때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시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우리가 너무나 많이 들었던 “너희가 기도할 때에 믿고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다 받을 것이다”라는 말씀이 바로 여기서 선포되었습니다.
그 다음에 오늘 본문이 나옵니다. 예수께서 성전으로 돌아오셨습니다. 전날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화를 낼 때 그곳을 떠나셨던 예수의 행적을 고려할 때, 오늘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이 예수의 자격과 권위에 관해 물은 것은 당연해 보입니다.
M. Eugene Boring(Matthew, New Interpreter's Bible)은 예수의 권위에 대한 이 단락의 개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 예수의 권위에 대한 도전(21:23)
    • A. 예수의 질문(21:24-27)
      • B. 세 가지 비유들
        1. 두 아들들(21:28-32)
        2. 주의 포도원(21:33-46)
        3. 혼인 잔치(22:1-14)
      • B'. 세 가지 논쟁 기사들
        1. 세금에 관한 논쟁(22:15-22)
        2. 부활에 관한 논쟁(22:23-33)
        3. 가장 큰 계명(22:34-40)
    • A'. 예수의 질문(22:41-46)

이와 같은 구조 안에서 앞으로 몇 주간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그 첫 시작으로 “두 아들의 비유” 이야기를 전합니다.
마태복음은 다른 복음서들보다 행위(또는 열매 맺음)를 강하게 강조하고 있습니다.

“나더러 주여 주여 하는 자마다 다 천국에 들어갈 것이 아니요 다만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라야 들어가리라” (마태복음 7:21)

이 짧은 비유는 행위와 실천이 말보다 더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어떤 면에서 이 짧은 비유는 마태 공동체에 내재했던 교회와 회당 사이의 갈등 관계를 다루고 있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두 아들의 이야기

본문에는 두 아들이 등장합니다. 아버지가 두 아들에게 찾아가 말합니다. “얘야, 오늘 포도원에 가서 일하여라.”

  • 첫째가 대답합니다. “싫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뉘우치고 가서 일을 했습니다.
  • 둘째는 “아버지, 가겠습니다”라고 말하였지만 가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질문하십니다. “이 둘 가운데 누가 아버지의 뜻을 실천했느냐?”사람들은 대답합니다. “첫째입니다.”
Bernard Brandon Scott(Hear Then the Parable)은 1세기 명예 문화의 관점에서 두 아들 모두 아버지에게 큰 잘못을 저질렀다는 해석을 제시합니다. “아니오”라고 공개적으로 거절한 첫째 아들은 아버지의 명예를 들추어 수치를 안겼고, 둘째 아들은 말로만 “예” 하고 행하지 않음으로써 아버지를 속이고 모욕했습니다.
비유를 듣는 이들에게 이 상황은 난처한 딜레마를 안겨줍니다. 둘 중 누구도 아버지를 온전히 공경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아버지가 진정 원하셨던 아들의 모습은 무엇이었을까요? 그것은 거절 후 뒤늦게 수습하는 모습도, 말만 번지르르하게 하고 행동하지 않는 거짓됨도 아니었습니다. 아버지가 진정 바라신 것은 ‘기쁨으로 순종하겠다고 대답하고, 그 대답대로 밭에 나가 일하는 온전한 태도’였습니다.
그러나 현실의 두 아들 모두 그 온전함에 이르지 못했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스스로에게 질문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오늘 내 삶을 향한 하나님의 진짜 뜻은 무엇인가?”
이 질문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주 던지는 질문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그 대답을 이미 너무나 명확히 알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마음을 헤아려 “기꺼이 대답하고, 그 말씀대로 밭에 가서 일하는 것”입니다. 다만 우리는 첫째 아들처럼 거부하고 싶거나, 둘째 아들처럼 말로만 때우고 싶어 할 뿐, 그 온전한 순종의 책임 앞에 서는 것을 두려워하며 피하려 할 뿐입니다.

원어로 보는 순종, 권위, 그리고 완악함

오늘 말씀의 가장 중요한 단어이자 비유의 핵심 열쇠는 29절의 “뉘우치다”입니다.NRSV 번역본은 이 단어를 “마음을 바꾸다(change one's mind)”로 번역합니다. 이 단어의 헬라어 원어는 메타멜로마이(μεταμέλομαι)입니다. 이 단어의 동사 어원인 melo는 “보살피다, 소중히 여기다, 걱정하다”라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따라서 메타멜로마이는 단순히 감정적으로 슬퍼하는 것을 넘어, “자신이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던 우선순위와 관심사를 바꾸다”라는 깊은 의미를 지닙니다.
그렇다면 29절은 이렇게 읽을 수 있습니다.

그가 “나는 그럴 마음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지만, 나중에 그가 소중히 여기던 마음을 바꾸었기 때문에 포도원으로 갔다.

성경이 말하는 '순종'의 의미 또한 이와 맞닿아 있습니다. 헬라어로 순종은 후파쿠오(ὑπακούω)입니다. 이 단어는 ‘~ 아래에서(ὑπό)’와 ‘귀를 기울여 듣다(ἀκούω)’가 합쳐진 말입니다. 즉, 참된 순종이란 ‘하나님의 음성과 그분의 마음 아래 내 영혼을 낮추어 경청하는 태도’를 뜻합니다.

첫째 아들이 처음에 거부했으나 발걸음을 돌릴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의 음성이 그의 마음속에 다시 울릴 때 자신을 낮추어 그 소리를 경청했기 때문입니다. 반면 둘째 아들은 말로는 “예” 했지만 아버지의 마음 아래 자신을 두지 않았고, 귀를 기울이지 않았기에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종교지도자들이 물었던 ‘권위(ἐξουσία, 엑수시아)’의 문제가 밝히 드러납니다. 엑수시아는 ‘~로부터 나오다(ἐκ + οὐσία)’라는 뜻으로, 존재의 뿌리와 근원을 의미합니다.대제사장들과 장로들은 권위를 자신들이 쥔 기득권, 성전이라는 기득권 체제, 신학적 자격증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하늘의 권위를 가지고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참된 권위 앞에 서는 자는 자신을 낮추어 그 권위에 경청(순종)하지만, 권위를 자기 지배의 수단으로 삼는 자는 참된 권위자 앞에서도 고개를 숙이지 않습니다.
성전 지도자들은 요한의 권위가 하늘로부터 왔음을 내심 알고 있었음에도 그를 믿기로 결정하지 않았습니다. 과거 그들의 행동대로라면 요한의 권위를 부정해야 했지만, 무리들의 반응이 두려워 “우리는 알지 못한다”(21:27)라며 정치적 계산 뒤로 숨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의 질문에 직접 답하지 않으셨지만, 세례 요한의 권위에 대한 역질문을 통해 당신의 권위가 하늘로부터 왔음을 암시하셨습니다.
왜 그들은 끝내 돌이키지 않았을까요? 그것이 바로 성경이 말하는 ‘완악함(스클레로카르디아)’입니다. 완악함이란 진리를 몰라서가 아니라, 자신의 기득권과 통제권을 내려놓기 싫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거부하는 비-경청의 상태입니다. 그들은 세리와 창녀들이 삶을 돌이키는 명백한 권위의 열매를 눈으로 보고도 마음을 굳게 닫았습니다.

“요한이 의의 도로 너희에게 왔거늘 너희는 그를 믿지 아니하였으되 세리와 창녀는 믿었으며 너희는 이것을 보고도 끝내 뉘우쳐 믿지 아니하였도다” (21:32)

결론: 진짜 열매를 맺는 삶으로

예수께서는 성전 지도자들에게 세리와 창녀들의 회개가 오히려 그들을 하나님 나라로 먼저 인도하고 있음을 지적하셨습니다. 그러나 심판의 경고 속에서도 예수의 음성에는 그들이 지금이라도 돌이키길 바라는 친절과 기회가 담겨 있습니다.

32절은 그들이 본 후조차도 고집을 부렸음을 지적함과 동시에, 여전히 그들의 마음과 길을 바꿀 수 있는 기회가 남아있음을 역설적으로 보여줍니다.
예수께서 “너희 생각에는 어떠하냐?”라는 질문으로 이 비유를 시작하실 때, 그분은 성전의 지도자들뿐만 아니라 오늘 비유를 듣고 있는 우리 모두에게 묻고 계십니다. 누구의 권위를 따를 것인가? 그리고 어떤 종류의 순종을 보일 것인가?


여러분은 지금 마음을 바꾸셨습니까? 내가 가장 소중하게 여기던 고집과 기득권을 내려놓고, 아버지의 마음을 보살피는 자리로 이동하셨습니까?
권위의 증거는 말에 있지 않고 좋은 열매에 있습니다.가을이 깊어가고 추석이 지났습니다. 계절의 풍요로움은 탐스러운 열매에서 옵니다. 우리 삶의 진짜 열매를 바라보기 원합니다. 선함, 친절, 절제, 인내, 사랑, 기쁨, 평화, 관대함, 온유함의 삶.


참된 순종은 입술의 공허한 “예”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 아래 귀를 기울이는 경청(후파쿠오)에 있습니다. 그리고 그 경청은 내가 고집하던 삶을 내려놓고 마음을 바꾸는 돌이킴(메타멜로마이)으로 완성됩니다.
완악한 마음을 깨뜨리고, 아버지의 권위 아래 나 자신을 낮추어 포도원으로 들어가는 사람—그 사람이 바로 진짜 아버지의 뜻을 행하는 자입니다. 내 고집을 내려놓는 뉘우침의 열매, 그리고 아버지의 음성에 경청하는 순종의 열매가 성도 여러분의 삶과 가정 가운데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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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93장 예수는 나의 힘이요

주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