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22장 만유의 주 앞에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45번 시편 103편
(인도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회중)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인도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회중)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인도자)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회중)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1-5)
(인도자)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회중)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인도자)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래도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회중)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인도자)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회중)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다같이)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8-14)
송영 _ 찬송가 2장 찬양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259장 예수 십자가에 흘린 피로써
말씀 _ 베드로전서 1장 1~12절, 마태복음 16장 18절. 베드로전서를 기록한 베드로는 누구인가?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그동안 우리교회는 교회력에 따른 성서일과 본문으로 말씀을 전해왔습니다.
성서일과는 1972년부터 논의되고 연구되어 1992년 완결판이 나왔습니다. 제가 96학번이니 저는 성서일과를 매우 자연스럽게 접하게 되었지요.
1972년 “교회일치를 위한 협의회(COCU-Consultation on Church Union)”를 조직하였고, 그 산하에 “공동본문 위원회(CCT-Consultation on Common Texts)”를 두어 모든 교단들이 수용할 수 있는 교회력과 성서일과를 만들 것을 결의하였습니다.
그 결과 위원회는 1978년부터 4년간에 걸친 연구 끝에 1982년 “공동성서일과(Common Lectionary)”를 만들었고, 그 후에 9년이라는 실험의 기간을 거친 후 지난 1992년에 드디어 완결판이라고 할 수 있는 “개정판 공동성서일과”(The Revised Common Lectionary)가 완성되었습니다.
현재 이 개정판 공동 성서일과는 전 세계의 개신 교회에서 공동으로 사용하고 있으며, 한국에서는 정장복 교수 등을 중심으로 편찬되고 있는 “예배와 설교 핸드북”을 통하여 소개되어 사용 중에 있습니다.
교회의 일치, 교회력에 따른 말씀 제공, 목사의 편향된 본문 선택을 막기 위하여 등등의 이유가 성서일과를 사용하는 이유가 될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교회력에서 제외된 말씀들은 어떻게 해야하는지? 시대의 요청에 어떻게 부응해야하는지?는 고민이 많이 되는 지점입니다. 물론 이 부분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주일예배 외에 더 많은 예배와 모임을 통해 말씀이 전해지면 해결될 수 있기도 할 것 같습니다. 앞으로 함께 고민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를 보완하기 위하여 교회력에 따른 성서일과 설교를 진행하되 사이사이 인물설교를 해보려고 합니다. 사람을 안다는 건? 현실에서나 성서에서나 매우 중요한 일이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을 통해 나를 보고 믿음과 소망, 인내와 절제, 의의 목마름과 갈급함, 고난과 영광의 비밀들을 경험할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래서 이번주일 첫 번째 인물로 베드로를 만나 보려고 합니다.
베드로전서 1장 1절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베드로는"이라고 명시하며 저자를 밝히고 있습니다.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사도 중 한 명으로, 원래 이름은 시몬이었으나 예수님께로부터 '반석', '바위'라는 뜻의 베드로 (아람어로는 게바)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성경 말씀 마태복음 16:18, 요한복음 1:42을 찾아보시겠습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KἀγωˋδεˊσοιλεˊγωὅτισυˋεἶΠεˊτρος,καιˋἐπιˋταυˊτῃτῇπεˊτρᾳοἰκοδομηˊσωμουτηˋνἐκκλησιˊαν
Kagō de soi legō hoti sy ei Petros, kai epi tautē tē petra oikodomēsō mou tēn ekklēsian, kai pylai hadou ou katischysousin autēs.
1. Πέτρος페트로스(Petros)남자 이름, 돌, 작은 돌 / πέτρᾳ페트라(petra)반석(남성명사), 큰 바위(여성명사)
2. οἰκοδομήσω 오이코도메소 : 내가 세울 것이다(미래 시제)
3. ἐκκλησίαν 에클레시안 : 교회, 회중
4. πύλαι ᾅδου 퓔라이 하두 : 음부의 문들, 음부(지옥)의 권세, 권능을 상징
5. κατισχύσουσιν 카티스퀴수신 : ~을 이기다, 극복하다
요한복음 1장 42절 말씀입니다.
데리고 예수께로 오니 예수께서 보시고 이르시되 네가 요한의 아들 시몬이니 장차 게바라 하리라 하시니라 (כֵּיפָא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라)
두 본문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베드로의 이름은 다음과 같습니다.
- 부모님께서 주신 이름은 시몬이었다.
- 예수를 만나 다른 이름을 받았다. 아람어로는 게바요, 헬라어로는 페트로스.
시몬의 히브리어 이름 '쉬므온'에서 유래했으며, 듣다, (하나님께서) 들으심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시몬은 갈릴리 호수 근처 벳새다 출신의 어부였습니다. 동생 안드레와 함께 고기를 잡으며 생활하고 있었습니다. 결혼도 하였지요. 마태복음 8:14, 마가복음 1:30, 누가복음 4:38에 따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쳐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장모가 있었다는 사실은 그에게 아내가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또한 고린도전서 9장 5절 말씀에 그의 아내가 등장합니다.
"우리가 다른 사도들과 주의 형제들과 게바(베드로)와 같이 자매 된 아내를 데리고 다닐 권리가 없겠느냐?" 시몬의 이름을 버리고 베드로가 된 남편과 함께 말씀을 전한 그녀는 시몬의 아내에서 자매가 되었습니다. 저는 이 부분에서 적잖이 놀랐습니다. 자매가 된 아내, 다른 말로 아내에서 자매가 되었구나. 아내에서 말씀을 전하시는 자매가 되시길 소망합니다.
시몬의 아버지 이름도 등장합니다. 요한복음 1:42, 21:15-17에서 예수님은 베드로를 "요한의 아들 시몬" 또는 "요나의 아들 시몬"이라고 부르셨습니다. 요나와 요한이 같은 사람인건 맞지만 같은 이름일까요? 그건 아닙니다.
요나 (Yoˉnaˉ): 히브리어로 '비둘기'를 뜻합니다. (구약성경의 요나 선지자와 같은 이름)
요한 (Yoˉḥaˉnaˉn): 히브리어로 '야훼는 은혜로우시다' 또는 '야훼의 선물'을 뜻하는 이름입니다 .יוחנן요하난 (Yoˆḥaˉnaˉn)축약형.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 יהוחנן 예호하난 (Ye˘hoˆḥaˉnaˉn)전체형.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다’
그러니 아무래도 필사하는 과정에서 오류가 있었거나 ‘예호하난’이라는 긴 발음을 요나라고 부른거라고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그리고 시몬의 동생 안드레가 있습니다. 바로 이 동생 안드레를 통해 시몬은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요한복음 1:40-42에 따르면 안드레가 먼저 예수님을 만난 후 자신의 형제 시몬(베드로)을 예수님께 데려왔습니다. 마태복음 4장 18~22절 말씀에서는 예수님의 첫 부름을 받고 제자가 된 2명이 시몬과 안드레입니다.
우리가 주목하지 않는 안드레는 사실 매우 중요한 인물입니다. 바로 첫 번째 예수님의 제자이기 때문입니다.
요한이 지나가시는 예수님을 가리켜 "보라,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라고 했을 때, 안드레는 그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습니다. (요한복음 1:35-40)
이 때문에 초대 교회에서는 그를 프로토클레토스 (Proˉtokleˉtos, '가장 먼저 부름받은 자')라고 부르기도 했습니다.
무엇이든지 첫 번째가 어려운 법이지요. 첫 번째가 된다는 것은 결단력이 있고, 변화에 민감하고 용감하고 자신의 선택에 확신이 있는 사람, 아무나 첫 번째가 되는 것은 아닌 것 같습니다. 아무도 안한 그 일을 가장 먼저하는 사람은 분명 남다른 사람입니다.
그런데 전승에 따르면 안드레는 비교적 조용하고 신중하며 겸손한 성격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첫 번째 제자가 되었지만 놀랍게도 그는 전혀 첫 번째 제자라는 것을 나타내지 않습니다. 그는 스스로 나서기보다 다른 사람을 예수님께 인도하는 역할을 자주 했습니다. 오병이어 기적이 일어날 때에도 보리떡을 가진 소년을 예수님께 데려온 사람이 안드레입니다. 그는 겸손하게 조용히 예수님께 사람들을 인도하였습니다.
사실 그는 세례 요한의 제자였습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는 예수님과 세례요한에 대한 설명이 등장합니다. 19절 말씀에 예루살렘의 유대인들이 제사장과 레위인들을 요한에게 보내어 묻습니다. “당신은 누구요?” 그러자 20절에서 요한이 대답합니다. “나는 그리스도가 아닙니다.” 23절 말씀입니다. “나는 예언자 이사야가 말한 것 같이 너희는 주님의 길을 곧게 하라고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입니다.”라고 대답합니다. 그리고 29절에서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만나는 장면이 등장합니다.
다음 날 요한은 예수님께서 자기에게로 오시는 것을 보고 말하였다. “보라 세상 죄를 치워 없애시는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다.”
35절에서 요한은 다시 예수님을 보게됩니다. 그때에 그의 제자 2명이 함께 있었는데 그 중 한명이 안드레입니다.
36절에서 요한이 다시 한번 고백합니다. “보라, 하나님의 어린양이시다.” 그의 말을 들은 제자들은 즉시 예수님을 따라 갑니다. 그리고 묻습니다. “랍비여, 어디에 머물고 계십니까?” 그러자 그들에게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오라. 그러면 보게 될 것이다.” 성서는 그날 그들이 예수님과 함께 지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41절에서 안드레가 등장합니다. 그는 오후가 되자 형 시몬을 찾아갑니다. “우리가 메시야를 만났소.” 그리고 곧장 안드레는 시몬을 예수님께 데려갑니다.
이 장면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이 요한복음 1장 42절 말씀입니다.
“너는 요한의 아들 시몬이구나. 너는 게바라고 불릴 것이다.” - 게바는 번역하면 베드로이다.
처음 만난 시몬에게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선 시몬을 알고 계셨겠지요? 그렇습니다. 우리가 아는 바와 같이 주님은 시몬을 아셨습니다. 그러나 시몬은 예수님을 모르는 상태입니다. 소문으로 들어서 알고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분명한 것은 이 시몬이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무슨 말씀을 전하고 하는 것이냐?하면은 시몬이 예수님을 만나 이후 베드로의 인생이 시작되었다는 것이 중요한 것이라는 점입니다.
그러니까 여기서 우리는 우리가 무엇을 했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의 행위에 따라 인생의 전환점을 만들어 주신다고 생각하기 쉬운데 그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만나 순간 시작되는 것이 우리의 삶이고 그 말씀대로 이루어 진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미 예수님을 만나셨다면, 지금 우리는 베드로같이 예수님을 만날 수 없지만 그의 말씀을 들었다면, 또는 그를 믿는다면 ‘만났다’는 표현을 쓰는 것이지요. 뭐냐하면은 시몬이 한 것은 딱 하나거든요. 예수님을 찾아 간 것, 안드레의 말을 듣고 예수님께 찾아 간 것 뿐입니다. 그런데 그 때 베드로의 인생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엉망진창이어도 좀 괜찮다는 겁니다. 뭐 한게 없어도 되요. 그런데 그 시작이 있다는 거죠.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예수님을 만나 시작하시길 바랍니다. 또는 시작되었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근데 또 이게 말 그대로 시작입니다. 시작되고도 또 엉망진창이에요. 그래도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 결국 베드로로 살게 된다는 것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이제, 앞선 말씀에서 등장한 단어들을 하나하나 살펴보고자 합니다. 마태복음 16장 18절 말씀입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마16:18)
우리는 먼저 이 말씀을 통해 베드로가 누구인지? 알게 됩니다. 두 번째로 베드로가 누구인지? 는 베드로전서를 통해서 살펴보겠습니다.
1. Πέτρος페트로스(Petros)남자 이름, 돌, 작은 돌 / πέτρᾳ페트라(petra)반석(남성명사), 큰 바위(여성명사)
2. οἰκοδομήσω 오이코도메소 : 내가 세울 것이다(미래 시제)
3. ἐκκλησίαν 에클레시안 : 교회, 회중
4. πύλαι ᾅδου 퓔라이 하두 : 음부의 문들, 음부(지옥)의 권세, 권능을 상징
5. κατισχύσουσιν 카티스퀴수신 : ~을 이기다, 극복하다
베드로는 헬라어로 페트로스 ‘돌’이라는 뜻을 담고 있습니다.
1세기 팔레스타인 지역에서 '돌'이나 '바위'는 단순한 물질 이상의 통상적인 용도와 상징적인 의미를 동시에 가졌습니다.
1. 통상적인 용도 (실제 생활에서의 역할)
돌이 많은 팔레스타인 지형에서 돌은 일상생활의 핵심 자원이었습니다.
- 건축 재료: 집, 성벽, 궁궐, 회당, 도로 등을 짓는 가장 기본적이고 견고한 건축 재료였습니다. (예: 예루살렘 성전, 헤롯의 건축물들)
- 생활 용품: 맷돌: 곡식을 가는 데 필수적인 도구. 저울추: 상거래에 사용되는 무게 측정 도구. 그릇/항아리: 물이나 포도주를 담는 용기 (요한복음의 물 항아리). 우물 마개: 우물을 덮고 물을 보호하는 덮개.
- 경계표: 땅의 경계를 표시하는 표식.
- 기념비/제단: 특별한 사건을 기념하거나 제사를 지내는 제단(다듬지 않은 돌 사용).
- 무기/형벌: 투석형(돌로 쳐 죽이는 형벌)에 사용되는 도구.
- 무덤 문: 무덤 입구를 막는 둥글거나 네모난 큰 돌.
2. 상징적인 의미 (종교적/문화적 역할)
성경과 유대 문화에서 돌과 바위는 매우 깊은 상징성을 가집니다.
A. 견고함과 기초
견고함/안정성: 돌은 움직이지 않고 변하지 않는 강하고 영원한 속성을 상징합니다.
기초/반석 (핵심 상징): 집이나 공동체의 기초가 되는 신뢰할 수 있는 근본을 의미합니다.
하나님: 구약성경에서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반석 (피난처, 보호자, 구원자)으로 자주 비유됩니다.
B. 율법과 심판
율법: 하나님이 모세에게 주신 십계명이 돌판에 새겨졌기 때문에, 돌은 하나님의 말씀 또는 율법의 기준을 상징했습니다.
심판/경고: 돌로 쳐 죽이는 투석형은 율법에 따른 공적인 심판을 의미했습니다.
굳은 마음: 영적으로는 죄나 불신으로 굳어진 마음을 '돌 같은 마음'에 비유하기도 했습니다. (에스겔 36:26)
이러한 의미에서 시몬에서 주신 ‘페트로스’라고 하는 새 이름은 무한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모든 것입니다.
‘페트로스’라는 이름을 좀더 명확하게하는 설명이 바로 이어집니다.
1.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2.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이 반석 위에서 등장하는 반석은 헬라어로 ‘페트라’입니다. 그런데 이 반석, 페트라는 우리가 아는 반석, 바위가 아니라 ‘페트로스’ 베드로라는 것이지요. 이 반석 위에 예수께서 뭔가를 하시는데 그것이 ‘세울 것’이라는 것입니다. 무엇을 세우느냐? “교회”를 세운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점이 드러납니다.
교회는 무엇으로 세우는가요? 건물 말입니다. 교회를 빌딩으로 생각하면 church가 되는데요. 대부분의 유럽교회들이 모두 돌로 교회를 지었습니다. 제가 정말 가 보고 싶은 교회가 있는데 그것이 스페인(카탈루니아)의 안토니 가우디가 1882년 착공을 시작하여 아직까지도 공사중인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주된 재료도 돌입니다. 돌로 교회를 만들고 세우고 하는 것이지요. 여기서 사용하는 단어가 ‘페트라’입니다.
그런데 다시 말씀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 ‘페트로스’라고 불리는 베드로, 페트라는 다른 위치에 등장합니다. 페트라 다음에 등장하는 단어가 무엇입니까? “위에”입니다. 다시 말하면 페트라의 위치는 “아래”입니다. 그리고 그 위에 교회를 세울 것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베드로 위에 교회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사람 위에 정확하게는 예수님을 찾아와 예수님을 만나고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 위에 교회가 세워진다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아래에 있어야, 제자 베드로가 있어야 교회가 세워지는 것입니다. 제가 좋아하는 꼭 가보고 싶은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도 안토니 가우디가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이 있어야 세워지는 것이 교회입니다. 그런데 또 하나 중요한 지점이 있습니다. 세우시는 주체가 누구이냐?인데 "세우실 것이다."의 주체가 예수님입니다. 베드로 위에 세우시는 분이 예수님입니다. 베드로가 세우는 것이 교회가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세우실 교회는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음부의 권세가 무엇입니까? 헬라어 그대로 하면 πύλαι ᾅδου 퓔라이 하두 : 음부의 문들입니다. 다르게 해석하면 지옥의 문이 됩니다.
이 음부의 권세는 죽음, 사망, 죄, 그리고 사탄의 영역을 통치하는 권세 그리고 또다른 의미는 세상의 권력과 힘 (Worldly Power)의 본질입니다.
'세상의 권력'은 정치, 경제, 사회, 군사적 힘 등 지상의 가시적인 통치 구조이자
1. 박해의 수단: 로마 제국의 황제 숭배 요구, 종교 지도자들의 정치적 탄압 등, 세상의 권력은 역사를 통해 교회를 물리적으로 박해하고 복음 전파를 막는 주요 수단이 되어 왔습니다.
2. 유혹의 수단: 부와 명예 같은 세상의 힘은 성도들을 영적으로 타락시키고, 교회 공동체가 본질적인 사명을 잊고 세속적인 가치를 따르게 유혹하는 통로가 되기도 합니다.
이 음부의 권세가 예수님이 세우실 교회는 이기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지금 교회는 음부의 세력에 삼키운 바 되는 것일까요? ‘페트로스’라 불리우는 베드로 위에 세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건물이 교회가 아닙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먼저 베드로를 알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베드로는
- 교회의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고요.
- 그래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사람, 죽음과 죄, 세상의 권세의 유혹을 극복한 사람입니다.
베드로라는 이름을 받은 그날 이후 예수님과 3년, 예수님의 죽으심과 부활의 아침을 맞이하고 다시 너무나 소중하고 경이로운 은혜로 가닥한 40일의 예수님과 동행, 그리고 마침내 예수님께서 하늘로 올라가시고, 그는 초대 교회의 지도자로서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하며 그의 위에 교회가 세워지게 됩니다.(사도행전)
그는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는 연약함을 보이기도 했지만(마태복음 26:69-75), 부활하신 예수님과의 만남을 통해 회복되었고(요한복음 21:15-19), 이후 강력한 믿음과 소망을 가진 사도로 변모했습니다. 베드로전서에는 그리스도의 고난과 부활에 대한 베드로 자신의 깊은 경험과 소망이 반영되어 있습니다. (베드로전서 1:3).
오늘 말씀이 길었습니다. 다음번에 오늘의 말씀에 이어 베드로전서 말씀을 통해 베드로가 누구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찬양 _ 210장 시온성과 같은 교회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