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6장 목소리 높여서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37번 시편 91편

(인도자)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회중)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인도자)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회중)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인도자)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회중)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1-4)
(인도자)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회중)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7)
(인도자)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회중)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11)
(다같이)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14)

송영 _ 찬송가 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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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213장 나의 생명 드리니

말씀 _ 베드로전서 1장 1~12절, 믿의 결과 영혼의 구원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이번 주일은 베드로에 관한 두 번째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지난 베드로는 누구인가? 말씀을 다시한번 생각해 보면

베드로는 예수 그리스도의 열두 사도 중 한 명으로, 원래 이름은 시몬이었으나 예수님께로부터 '반석', '바위'라는 뜻의 베드로 (아람어로는 게바)라는 이름을 받았습니다.

시몬에게 주신 ‘페트로스’라고 하는 새 이름은 무한의 의미를 담고 있으며 앞으로 일어날 일들의 모든 것이 담겨 있습니다.

내가 이 반석 위에 내 교회를 세우리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먼저 베드로를 알 수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베드로는

  1. 교회의 아래 있는 사람입니다. 교회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고요.
  2. 그래서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 사람, 죽음과 죄, 세상의 권세의 유혹을 극복한 사람입니다.

지난시간에 베드로라는 이름을 통해 그 의미를 살펴보았다면 오늘은 베드로전서를 통해 그가 누구인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베드로전서는 대략 주후 64년경 로마(당시 바벨론이라는 은어로 지칭된 곳, 벧전 5:13)에서 기록되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이 시기는 로마 네로 황제의 통치 아래 그리스도인들에 대한 박해가 서서히 그리고 조직적으로 시작되던 때였습니다.

그런데 동시에 예수의 제자들은 예루살렘을 넘어 지금의 시리아, 터키, 그리스로 확산되고 있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이러한 시기에 소아시아(현재의 터키) 북부와 중서부 지역의 다섯 개 로마 속주에 흩어져 살던 그리스도인들에게 베드로가 편지를 보냈습니다. 그것이 베드로전서와 후서입니다. 당시 소아시아 교회의 대부분은 바울의 선교를 통해 복음을 받아들인 이방인 출신의 신자들이 많았으나, 흩어진 유대인(디아스포라) 출신 신자들도 포함되어 있었고 박해의 대한 소문은 끊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당시 박해는 로마 제국 차원의 대대적인 핍박이라기보다는,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과 세상의 관습 및 우상 숭배가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지역 사회의 반대, 비방, 고난, 그리고 곧 다가올 '불 같은 시험'의 위협이었습니다. 벧전 1:6, 2:12, 4:12, 4:16

여기서 제가 주목하는 지점이 바로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과 세상의 관습이 충돌하면서 일어나는 박해입니다.

로마가 그리스도인들을 편집적으로 잡아들여 모두 가두거나, 죽이고자 했다기 보다는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자 어려운 일을 당하게 되었다는 지점입니다. 이것이 ‘시험’이라고 부를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들을 영적인 의미의 '흩어진 나그네'(디아스포라)와 '택하심을 입은 자들'로 부르고 있습니다. (벧전 1:1-2). 그리고 이방인들로부터의 산발적인 박해와 시험에 직면하고 있었으며(벧전 4:12), 앞으로 더 큰 고난에 처할 위기에 놓여 있었던 성도들에게 베드로는 저들이 처한 상황을 ‘고난’이라고 설명하고, 고난 속에서 성도들의 믿음을 굳건히 하고, 소망을 잃지 않도록 격려하며, 거룩하고 선한 삶을 살도록 권면하기 위해 편지를 쓰기 시작합니다.

이 편지를 통해 베드로가 누구인지? 우리는 알게 됩니다. 베드로의 진심을 읽게 되면서 그가 어떠한 삶을 살고자 하는지? 알게 됩니다.

베드로는 소아시아에 흩어져있는 성도들을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예루살렘에 살고 있지 않는 저들은 단순히 흩어진 사람들이 아니라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신 대로 성령께서 거룩하게 하시는 역사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게 되고 그분의 피 뿌림을 받기 위해 택하심을 입은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1:2). 이 신분은 세상의 박해로 흔들릴 수 없습니다.

너는 누구니?

1. 그 첫 번째 대답이 이것입니다.

“택하심을 받은 자” 베드로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입니다. 이 하나님의 택하심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그리스도께 순종하고, 그분의 피 뿌림을 받기 위함, 즉 구원받기 위함입니다. 택하심을 받았다는 것은 예수께 순종하는 것이요. 구원받음의 증인인 것입니다.

베드로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로 순종하는 사람이요. 구원의 증인입니다.

2. 이어지는 3절 말씀에 매우 중요한 내용이 등장합니다.

베드로는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우리를 거듭나게 하시고 산 소망이 있게하셨다"고 선포합니다(1:3).

베드로는 소망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말씀이 저와 여러분에게 큰 은혜가 되시길 바랍니다. 세상의 이야기를 하지 않겠습니다. 그저 말씀대로 소망이 있는 사람, 베드로처럼 저와 여러분이 소망이 있는 사람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그런데 이 소망은 어떻게 생기는지? 말씀을 다시 들여다보면 ‘거듭나야’ 소망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거듭나게 하시는 이가 등장하는데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거듭난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소망입니다. 그래서 세상엔 소망이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세상에서 소망을 찾지 마십시오. 그 어디에도 소망이 있을 수 없으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를 통해 거듭난 이들에게 주어지는 것이 ‘소망’이기 때문입니다.

3. 또 상속받을 유산이 있는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여러분 상속받을 유산이 있으신가요? 저는 있습니다. 하늘의 유산입니다. 이 하늘의 유산은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시들지 않습니다.

하늘나라가 베드로의 것입니다.

 

4.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은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이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이 왜 필요한가요? 마지막 때에 예비된 구원을 얻기 위해, 즉 끝까지, 그날에 구원받기 위하여 하나님의 능력으로 보호하심을 입게됩니다. 그런데 이 보호사하심은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믿음을 통해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보호하심은 우리들의 믿음을 통해 드러나게 됩니다.

끝까지 믿음을 지키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5. 시련 중에도 크게 기뻐하는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6절 말씀을 보면 흩어진 그리스도인 그러나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성도들의 상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여러분은 여러 가지 시험을 인하여 지금 잠시 동안 근심하게 되지 않을 수 없었지만,”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시련이 없을까요? 하나님은 고약하게 우리를 시험하셔서 우리를 선별하시려는 것일까요?

앞선 말씀을 생각해 보면 그럴 수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의 거룩한 삶은 세상과 다르기 때문에 일어나는 일들이 시련이요. 시험인 것입니다. 우리의 삶이 세상의 관습 및 우상 숭배가 충돌하면서 발생하는 가족과 사회의 반대, 비방, 시기와 질투. 믿음으로 인해 믿음을 시험하고 이 모든 것이 ‘고난’이요. 이 고난의 은혜로 하나님의 뜻과 나라가 이루어집니다.

그래서 6절의 그 다음 말씀을 보면 성도들이 크게 기뻐하고 있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7~9절 말씀은 “오히려 크게 기뻐”할 수 있는 이유를 설명하고 있습니다.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하려 함이라“

1)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게 될 것이요.

2) 시련을 당하여도 기뻐하는 것은 그리스도를 본 일이 없지만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시련을 이기는 사랑, 이 사랑의 비밀을 아시는 삶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3)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영광스러운 기쁨으로 즐거워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다는 것은 ‘기쁨’입니다. 우리에게 긍휼과 자비, 연민이 있어야 합니다. 이를 사람들은 ‘슬픔’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호승 시인의 <슬픔이 기쁨에게>에서 그려내는 슬픔은 공감이요. 사랑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믿음으로 인해 즐거이 기뻐하시길 기도합니다.

4) 마지막으로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믿음의 결과로 영혼이 구원받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믿음의 결과가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상상하는 모든 것들 위에 영혼의 구원이 있다는 것입니다.

베드로가 전하는 믿음의 결국은 영혼의 구원입니다.

 

6. 결국 구원받은 사람 베드로

베드로는 이 구원이 예언자들이 열심히 찾고 연구했던 바로 그 구원이요. 이미 자신들, 예언자들 안에 계신 그리스도의 영이 그리스도께서 받으실 고난과 그 뒤에 올 영광을 미리 증언하실 때에 그리스도의 영이 무엇을 두고 어느 때를 말하는 것인지 알아보려고 노력하였으나 그들의 노력은 그들을 위한이 것이 아니고 여러분, 성도들을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고 전합니다.

그리고 이제 그 일들은 하늘에서 보내신 성령의 도움으로 복음을 전한 사람들을 통해 여러분에게 선포되었으며 이런 일들은 천사들도 들여다보고 싶어하는 일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영혼의 구원입니다.

여러분의 믿음의 결과가 여러분이 상상하는 그 모든 것 위에 영혼의 구원으로 완성됨을 깨달으시는 오늘이 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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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508장 지금은 우리가 나그네 되어도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