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5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

신앙고백 _ 사도신경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134번 부활절(2)

(인도자) 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회중) 장사 지낸 바 되셨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 게바에게 보이시고
(인도자) 후에 열두 제자에게와 그 후에 오백여 형제에게 일시에 보이셨나니
(회중) 그 중에 지금까지 대다수는 살아 있고 어떤 사람은 잠들었으며 그 후에 야고보에게 보이셨으며
(인도자) 그 후에 모든 사도에게와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고전 15:3-8)
(회중)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아나지 못하셨으면 우리가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또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고전 15:14)
(인도자) 만일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가 바라는 것이 다만 이 세상의 삶뿐이면 모든 사람 가운데 우리가 더욱 불쌍한 자이리라
(회중)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사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고전 15:19-20)

송영 _ 찬송가 2장 찬양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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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165장 주님께 영광 다시 사신 주

말씀 _ 그가 살아나셨다! 요한복음 20장 19~31절

요한복음 20:19-31

1. 바뀌지 않는 본문, 그 이유

사실 오늘의 본문은 매해 바뀌지 않는 본문입니다. 부활절 두 번째 주일에는 교회력에 따라 항상 요한복음 20장 19절에서 31절을 나눕니다. 왜일까요?

예수님께서는 죽으시고 3일 만에 부활하신 다음에 다섯 번을 나타나셨습니다. 제자들을 만나러 오시는 이 사건을 '나타나심'이라고 합니다. 오늘은 그중 두 번째와 세 번째 나타나심에 관한 기록입니다. 첫 번째는 막달라 마리아에게, 두 번째는 제자들에게, 그리고 오늘 본문처럼 도마와 제자들이 함께 있는 자리에 다시 나타나셨습니다.

십자가에 못 박혔던 그 예수, 무덤에 놓였던 예수가 다시 나타나 현존하시는 장면이 상세히 기록된 것은 요한복음이 유일합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의 사건입니다. 부활의 사건을 직접 본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부활'이라는 단어는 이렇게 우리에게 다가오게 됩니다.

2. 질문하는 제자, 도마

이 부활의 이야기를 제자 도마가 들었습니다. 제자들이 "우리가 주님을 보았어!"라고 말하자 도마는 대답합니다.

"내가 그분의 손에 못 자국을 보고, 그 손에 내 손가락을 넣어 보지 않고는, 창에 찔리신 그 옆구리에 손을 넣어 보지 않고는 믿을 수 없다."

여러분, 도마가 누구인지 아십니까? '도마'라는 이름은 히브리어 음가로 '타오마'이며, 헬라어로는 '디두모'라고 부릅니다. 그 뜻은 **'쌍둥이'**입니다. 성경에는 도마의 나이나 고향, 부모가 누구인지 전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오직 복음서의 제자 명단에 이름만 등장할 뿐입니다.

그러다 도마가 실질적으로 등장하는 장면이 요한복음 11장 16절에 나옵니다. 죽은 나사로를 보러 예루살렘 근처로 가자는 예수님의 말씀에 제자들이 생명의 위협을 느끼며 동요할 때, 도마가 딱 일어나 말합니다. "우리도 주와 함께 죽으러 가자." 참 대단한 용기이자 열정입니다.

또한 요한복음 14장 5절에서 예수님이 처소를 예비하러 가신다고 할 때, 아무도 그 뜻을 못 알아듣고 가만히 있을 때 도마가 질문합니다.

"주여 주께서 어디로 가시는지 우리가 알지 못하거늘 그 길을 어찌 알겠사옵나이까?"

도마는 그냥 믿겠다고 하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진리가 무엇인지 정말 궁금해하고, 진짜를 알고 싶어 질문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바로 도마의 모습입니다.

3. 배경이 아닌 '믿음'으로 증명되는 존재

예수님의 다른 제자들은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처럼 대개 가족 관계나 배경이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도마는 배경이 전혀 없습니다. 그런데 이 도마가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 일대일로 마주 섭니다.

그때 예수님은 "네 아빠가 누구니? 어디 살았니?"라고 묻지 않으십니다. 오직 믿음에 대해서만 말씀하십니다.

"네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내 손을 보고 네 손을 내밀어 내 옆구리에 넣어 보라 그리하여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우리가 누구인지는 우리의 믿음을 통해 증명될 뿐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증명하는 유일한 방법은 믿음밖에 없습니다. 도마는 이 만남을 통해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이라고 고백합니다.

4. 톨스토이의 '부활'이 말하는 새로운 삶

부활은 헬라어로 '아나스타시스'입니다. '아나(위로, 다시)'와 '스타시스(일어나다)'가 합쳐진 말로, 넘어진 상태에서 다시 일어나는 것, 잠들었다가 깨어나는 것을 모두 포함합니다.

이 부활의 의미를 잘 보여주는 문학 작품이 톨스토이의 소설 『부활』입니다. 주인공 네흘류도프는 과거 자신의 과오로 처참한 인생을 살게 된 카튜사를 법정에서 만난 후 죄책감에 사로잡힙니다. 그는 자신의 모든 지위와 재산을 걸고 그녀를 구원하려 결심합니다.

소설의 결말은 뜻밖입니다. 카튜사는 네흘류도프의 청혼을 거절하고, 시베리아 유배길에서 만난 정치범 시몬손과의 진정한 사랑과 독립을 택합니다. 그리고 소설은 이렇게 끝을 맺습니다.

"그날 밤부터 네흘류도프에게는 전혀 새로운 생활이 시작되었다. 이 새로운 생활의 장이 장차 어떻게 끝날 것인지는 장래가 말해 줄 것이다."

네흘류도프는 사랑에 실패한 것이 아닙니다. 전혀 새로운 생활이 시작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부활입니다. 죄책감과 위선에 사로잡혀 있던 삶에서 다시 일어서는 것, 모든 두려움의 문을 열고 앞으로 무엇이 펼쳐질지 알 수 없으나 나아가는 것, 그것이 부활의 능력입니다.

5. 소망: 부활의 또 다른 이름

부활은 열리는 것입니다. 무덤의 문이 열린 것과 같고, 나사로가 무덤에서 걸어 나온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부활은 세상을 향해 보냄을 받는 것입니다.

새로운 생활의 장이 어떻게 끝날지 알 수 없을 때 우리가 쓰는 단어가 바로 **'소망'**입니다. 부활 없이는 소망을 이야기할 수 없습니다. 시베리아 여정에서 어떤 일이 펼쳐질지 알 수 없지만 우리는 알게 됩니다. '카튜사가 부활했구나' 하고 말입니다. 우리에게 매일매일은 부활입니다.

6. 질문을 통해 고백으로, 고백에서 교회로

도마는 '의심하는 도마'가 아니라 '확실히 알고자 질문하는 도마'였습니다. 헬라어 '피스토스'는 믿음이며, '아피스토스'는 믿음이나 확실성이 없는 상태를 뜻합니다.

공동체가 건강하게 성장하기 위해서는 진지한 질문이 있고, 그 답을 찾아가는 과정이 반드시 있어야 합니다. 질문하는 과정을 통해 우리는 고백에 이르게 되며, 이 고백하는 제자들이 모인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도전하십니다.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

맺음말: 부활의 숨을 받아들이십시오

오늘의 결론은 요한복음 20장 22절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해 숨을 내쉬며 말씀하셨습니다. "성령을 받으라." 부활은 주님의 숨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향해 마치 심폐소생술을 하듯 숨을 깊게 불어넣으셨습니다. 우리의 어둠, 두려움, 고통 속에 불어넣으신 그 숨을 받아들인다면 우리는 다시 살아납니다.

바야흐로 부활의 시간, 부활의 계절입니다. 모든 만물이 다시 숨을 쉽니다. 우리의 삶도 주님의 숨결 안에서 다시 숨 쉬기를 간절히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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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250장 구주의 십자가 보혈로

주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