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16일 성령강림후 제11주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요셉의 이야기입니다.
제가 어릴 적에 들은 요셉의 이야기는 3가지로 기억됩니다.
색동옷, 꿈쟁이, 이집트의 총리.
그 중에 꿈쟁이 요셉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처럼 결코 잊을 수 없는 요셉의 대명사가 되었습니다.
요셉, 그는 어릴 때부터 꿈을 꾸었고 그 꿈은 이루어져 이스라엘 사람이지만 이집트의 총리가 된 꿈의 사람,
여러분에게 요셉은 어떻게 기억되고 계실까요?
요셉은 [Joseph] ‘여호와께서 더하실 것이다’, ‘여호와의 돕는 자’란 뜻으로 요셉의 아버지는 야곱입니다. 야곱과 에서의 그 야곱, 하나님께선 야곱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바꾸셨으며 야곱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이름이 지금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 [Israel] ‘하나님과 겨루어 이김’이란 이 이름은, 창세기 32장에 처음으로 등장합니다. 야곱이 얍복 나루에서 하나님의 천사와 겨루어 이긴 후 부여받은 새 이름(창 32:28)으로 이 후 ‘이스라엘’이란, 히브리의 열두 지파의 자손들을, 왕국시대에 이르러는 모든 이스라엘 백성과 그 땅을 의미하게 됩니다.
야곱에게는 12아들이 있었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이 문자그대로 이스라엘의 자손, 이스라엘 12지파를 이루게 되는데 이것을 가능하게 한 사람이 오늘 말씀의 요셉입니다.
요셉은 야곱의 11번째 아들입니다.
라헬에게서 태어난 그는 아름다운 외모에 야곱의 각별한 사랑으로 인해 형들의 시기를 받았습니다.(창 37:3-5) 그리하여 그의 형들은 요셉을 죽이려 하였습니다.
“저 꿈쟁이가 이리오 오고 있다. 자, 이제 가서 저 녀석을 죽여 웅덩이들 중 하나에 던져 버리자. 그리고 사나운 짐승이 잡아먹었다고 말하자. 그리고 그가 꾼 꿈이 어떻게 되나 한번 보도록 하자.” 요셉을 죽이려는 형제들 사이에서 르우벤과 유다의 도움으로 요셉은 간신히 죽임을 피하고 그 때문에 애굽으로 팔려가게 됩니다.(창 37:18-29).
사람의 시기와 질투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그 마음이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것 같습니다.
우리의 마음이 시기와 질투, 미움으로 가득할 때 그것은 이미 죄의 시작이라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우리가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고 하여도 그 마음의 시작은 이미 죄를 향해 달려가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어떻게 되나 한번 보도록 하자.” 우리와 우리 주변에 많은 이들이 이러한 생각으로 사람들을 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의 마음이 요셉의 이야기를 통해 변화되기를 소망해 봅니다.

요셉은 애굽, 이집트의 노예생활을 시작합니다. 색동옷을 입고 아버지 야곱의 각별한 사랑을 받던 그가 상상도 못하던 고통이며 끔찍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러한 요셉의 이야기를 전하고 있지 않습니다.
“요셉이 이집트로 끌려갔다. 보디발이 요셉을 그곳을 끌고 간 이스마엘 사람들의 손에서 그를 샀다.”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요셉과 함께 계셨으며 그는 성공적인 사람이 되었다.”
보디발에게 인정받은 요셉에게 또다시 죽음의 위기가 닥치게 됩니다.
“요셉의 주인은 그를 붙잡아 감옥에 쳐넣어 버렸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함께 계셨고 그에게 굳건한 사랑을 보여주셨다.”
감옥에 갇힌 요셉은 그가 꿈을 꾸었듯이 꿈을 꾸는 이들의 꿈을 해석해주고 마침내 이집트의 왕, 바로의 꿈을 해석해 줌으로 이집트의 총리에 이르게 됩니다.
죽음의 위기, 노예생활, 다시 감옥에 갇힌 요셉, 이 일은 결코 며칠동안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그의 십대와 이십대에 이르기까지 너무도 길고 긴 세월입니다.
이런 요셉의 상황을 창세기 41장 1절은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2년이 지나갔다.” 감옥에서도 2년의 세월이 지나간 것입니다.
고통스럽고 힘겨워 좌절하고 절망으로 가득한 세월일 수 있습니다.
그는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을 겪게 된 것일까요? 왜? 이런 일들이 나에게 일어난 것인지? 도대체 무엇 때문인지? 괴로움에 몸부림을 칠 것도 같은데
창세기37장부터 이어진 요셉의 이야기는 41장에 바로 왕의 앞에 선 30세까지 그 어디에서도 그의 절망하는 모습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요셉이 처음 울음을 터트린 것은 그의 동생 베냐민을 만났을 때입니다.
“자기 동생에 대한 애틋한 정이 솟구쳐 올라 밖으로 뛰쳐나가 급히 울 곳을 찾았다. 그리고는 그의 방에 들어가 울음을 터트렸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에 이어집니다.
“요셉은 자기 곁에 서 있던 모든 사람 앞에서 북받치는 감정을 억누를 수 없어서 ... 요셉이 큰 소리로 울었기 때문에 이집트 사람들이 들었고 그 소리가 바로의 궁궐까지 들렸다.”
그의 울음이 다시 요셉의 이야기를 생각해 보게 해 주었습니다.
색동옷을 입은 꿈쟁이 요셉, 30세에 이집트의 총리가 된 요셉의 이야기가 아니라
그의 10대와 20대 적어도 그가 겪어낸 10년의 세월을 떠올리게 해 주는 것 같습니다.
그의 울음,
울음에는 여러 가지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서럽고 아프고 속상하고 답답하고 절망스럽고 고통스러운 울음
그러나 울음의 의미는 그것만이 아니라 감정을 억누를 수 없어서 감격할 할 때, 말로 표현할 수 없을 때, 그리움이 깊어질 때, 사랑이 너무 깊어 쏟아지는 울음이 있는 것 같습니다.
요셉의 울음의 의미는 무엇일까요?
“내 아버지께서 살아 계십니까?” “내게로 가까이 오십시오”
“형님들이 저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거나 탄식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구하려고 형님들보다 먼저 나를 이곳에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를 형님들보다 먼저 이곳에 보내시어 이 땅에서 형님들의 자손을 보전하시고 큰 구원을 베푸셔서 형님들을 살리려고 하셨습니다.”
요셉의 울음은 마침내 그 일을 이루신 하나님, 그리고 그간의 그리움, 사랑... 그 모든 것을 쏟아내는 울음이었을 것입니다.
요셉이 고백합니다. “형님들을 살리려고” 그가 겪은 모든 일들이 그의 형님들, 야곱의 아들들, 이스라엘의 12지파를 구원하시기 위함이었다고 말입니다.
이러한 마음이 저와 여러분의 마음이 되기를 바라고 원하고 소망합니다.
이제 꿈쟁이 요셉은 희생·순종·인내·진실·순결·사랑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다시 요셉과 같이 고백한다면 "여호와께서 함께 하시고 우리에게 굳건한 사랑을 보여주실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