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0장 전능왕 오셔서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45번 시편103편
(인도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회중) 내 속에 있는 것들아 다 그의 거룩한 이름을 송축하라
(인도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며 그의 모든 은택을 잊지 말지어다
(회중) 그가 네 모든 죄악을 사하시며 네 모든 병을 고치시며
(인도자) 네 생명을 파멸에서 속량하시고 인자와 긍휼로 관을 씌우시며
(회중) 좋은 것으로 네 소원을 만족하게 하사 네 청춘을 독수리같이 새롭게 하시는도다(1-5)
(인도자) 여호와는 긍휼이 많으시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인자하심이 풍부하시도다
(회중) 자주 경책하지 아니하시며 노를 영원히 품지 아니하시리로다
(인도자) 우리의 죄를 따라 우리를 처벌하지는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우리에게 그래도 갚지는 아니하셨으니
(회중)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의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인도자)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의 죄과를 우리에게서 멀리 옮기셨으며
(회중) 아버지가 자식을 긍휼히 여김같이 여호와께서는 자기를 경외하는 자를 긍휼히 여기시나니
(다같이) 이는 그가 우리의 체질을 아시며 우리가 단지 먼지뿐임을 기억하심이로다(8-14)
송영 _ 찬송가 4장 성부 성자와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413장 내 평생에 가는 길
말씀 _ 창세기 45장 3~11절 하나님이셨습니다.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 말씀은 창세기 37장부터 시작되는 ‘요셉’ 이야기 절정부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창세기는 총 50장으로 전해지는데 그중 37~50장이 요셉의 생애에 대한 기사입니다. 그런데 창세기의 마지막 부분에서 야곱의 예언과 유언이 전해지는데 이를 통해 요셉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내용의 초점이 하나님의 약속을 선조로부터 계승한 ‘야곱’에 있다는 것을 간과하지 않으며 본문 말씀을 읽어야 할 것입니다.
요셉은 ‘여호와께서 더하실 것이다’, ‘여호와의 돕는 자’란 으로 라헬에게서 태어난 야곱의 11번째 아들입니다.(창 30:22-24).
야곱의 아들 요셉, 야곱은 '뒤를 쫓는 자', 혹은 '발뒤꿈치를 잡은 자'라는 뜻을 지녔습니다. 이 야곱은 그의 전 생애를 통해 훗날 하나님께 이름을 얻게 되는데 그 이름이 “이스라엘”입니다. 히브리어로 '하나님과 겨루어 이김' 혹은 '하나님의 전사'라는 뜻입니다.
"너는 하느님과 겨루어냈고 사람과도 겨루어 이긴 사람이다. 그러니 다시는 너를 야곱이라 하지 말고 이스라엘이라 하여라." 창세기 32:29(공동번역 성서)
야곱은 12남 1녀를 두었으나 첫눈에 반한 뒤로 평생 동안을 사랑했던 라헬의 자식은 11남 요셉과 12남이자 막내인 베냐민뿐입니다.
이 야곱의 12아들이 이스라엘의 12지파가 됩니다.
1.르우벤
2.시므온
3.레위
4.유다
5.단
6.납달리(납탈리)
7.가드(갓)
8.아세르(아셀)
9.이사카르(잇사갈)
10.즈불룬(스불론)
11.요셉
12.베냐민
13.디나
요셉은 용모가 준수했고 아버지 야곱의 총애로 인해 형들의 시기를 받았다고 창세기 37장은 시작됩니다.
37장 요셉의 꿈, 형제들의 시기로 애굽으로 팔려 감
38장 유다의 다말 사건
39~40장 보디발 아내의 유혹과 감옥 생활
41장 바로의 꿈에 대한 해석으로 총리가 됨
42~46장 형제들과의 재회와 용서
47장 야곱 가족 전체가 애굽으로 이주 함
48~50장 요셉에 대한 야곱의 축복과 열두 아들에 대한 야곱의 예언
한 사람의 생애, 어린 소년에서 장년에 이르는 긴 시간, 우리는 그 기 시간을 ‘세월’이라고도 부릅니다.
이 ‘세월’을 기록한다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우리는 창세기를 통해 아브라함에 이어 이삭, 이삭에 이은 야곱, 야곱의 아들 요셉을 통해 ‘세월’을 들여다 보고 있습니다. 거기서 한 사람의 ‘인생’을 만나게 됩니다.
인생(人生, 영어: life)의 사전적 의미는 사람이 세상에서 살아있는 동안, 살아있는 시간, 경험 등을 뜻합니다.
어떤 인생을 살아가길 원하시는지요? 어떤 인생을 살고 계십니까?
창세기의 긴 ‘요셉’ 이야기의 절정인 오늘 본문 말씀 45장 8절입니다.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형들의 계략으로 인해 애굽에 팔려간 요셉은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의 노예로 팔려 갔습니다. 원치 않는 인생을 시작한 것입니다. 다른 말로는 불평등한 삶을 시작한 거죠. 자신이 선택한 삶이 아니라는 것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가 선택한 삶. 제가 좋아하는 단어가 ‘주체’적입니다. 다들 아시겠지만 이와 비슷한 단어를 제가 정말 좋아하지요.
그런데 이 말씀을 깊이 묵상해 보면 이 ‘주체’라는 단어가 내가 선택한 삶에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과장되이 말한다면 요셉은 단 한번도 자신이 선택한 삶을 산 것이 아니라 ‘발탁’된 삶을 살았습니다. 가고 싶어 가는 것이 아니고 때로는 끌려가기까지 합니다.
그곳에서야 말로 진정 ‘주체’가 필요합니다. 노예여도, 죄수여도 ‘요셉’으로 살아가는 ‘야곱’의 아들입니다.
45장 4절 말씀입니다.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 자라.
애굽에 팔린 자, 어린 소년 요셉의 인생이 여기서 시작되었습니다. 요셉은 그 사실을 잊지 않고 있었습니다. 긴 시간, ‘세월’이 지나 요셉의 형들은 요셉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는 45장의 장면입니다.
여러분, 자신이 ‘팔려왔다’는 사실을 한 번도 잊은 적이 없는 사람, 이런 사람을 상상해 보십시오. 어떤 이미지가 떠오르시나요?
마음 상해 찌들어 있는 사람, 복수에 눈 먼 사람, 우리가 흔히 부르는 애정결핍 등등등.
또는 해외입양 되어 한국에 찾아오는 그리움으로 가득한 사람?
4절에 이은 5절 말씀입니다.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요셉은 놀라고 두려워하는 형들을 향하여 ‘한탄하지 말라’라는 말로 먼저 저들을 안심시킵니다.
그리고 이 모든 일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형님들이 저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거나 탄식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형님들보다 먼저 나를 이곳으로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이 땅에 흉년이 든지 2년이 되었지만 앞으로도 5년 동안 밭을 갈거나 거두는 일을 하지 못할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나를 형님들보다 먼저 이곳에 보내시어 이 땅에서 형님들의 자손을 보존하시고 큰 구원을 베푸셔서 형님들을 살리려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를 이곳으로 보낸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5~8절 말씀은 요셉 기사의 핵심입니다.
“생명을 보존한다”가 바로 이스라엘 구속사에 매우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이 별과 같이 많아질 것’이라는 하나님의 약속이 실현되어 가는 과정을 우리는 요셉의 인생을 통해 볼게 됩니다. ‘당신들의 생명을 보존하고’라는 말에서 하나님께서 생명의 근원이 되심을 깨닫게 됩니다.
‘살아남게 하다’는 어떤 고통과 위기 속에서도 하나님께서 의인들을 살아 남게 하시며, 남은 자들을 통해 새로운 역사를 이어간다는 ‘구속사’의 핵심을 보여주는 말입니다.
‘남은 자’라는 이 단어는 홍수 기사, 아브라함의 소명, 롯의 구출 등 창세기 전반에 걸쳐 매우 중요한 구원의 주제로 등장하며 나아가 ‘출애굽’ 사상이 이미 함축되어 있으며 훗날 선지자들이 ‘남은 자’ 사상을 더욱 발전시키게 됩니다.
하나님께선 언제나 고통과 위기 속에서 의인들을 살아남게 하시며 인류 전체는 이 남은 자 안에서 새로운 삶을 시작하게 된다는 구원의 희망을 요셉의 고백을 통해 알게 됩니다.
여기서 ‘의인’들이 누구냐?와 팔려간 인생에서 시작한 요셉의 ‘주체’성에 대한 이야기로 말씀을 마무리 하고자 합니다.
하나님께서 고통과 위기 속에서 ‘의인’, 즉 ‘남은 자’를 통해 역사를 이어가십니다. 여기서 우리가 바로 이해해야하는 부분이 생깁니다. 윤리와 도덕적 측면의 의인이 아니라는 점입니다. 37~50장은 요셉의 이야기이지만 중요한 내용의 초점이 야곱에 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이스라엘의 12지파, 다윗 왕의 계보는 요셉으로 이어질까요? 전혀 아닙니다. 요셉이 아닌 ‘유다’를 통해 이어집니다. 38장에 등장하는 이해할 수 없는 ‘유다’의 사건이 있었음에도 ‘유다’를 통해 전해지는 이스라엘의 계보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 그 약속을 믿은 아브라함을 통해 하나님은 ‘남은 자’를 언제나 선택하십니다.
그리고 요셉의 인생은 발탁된 삶이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요셉이 선택한 것이 하나도 없었다고 말씀드렸습니다. 일반적으로 이러한 인생은 상처투성이지요. 억울하고 서럽고 분하고 우리 말로는 ‘한’이 가득합니다.
그런데 45장의 요셉의 고백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여줍니다.
그 다름이 바로 한 문장입니다.
“나를 보내신 것은 형님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셨습니다.”
선택한 시작이 아니었을 때, 내가 원하는 삶이 아니라 할지라도 거기서 ‘주체’적인 삶을 보여주는 요셉을 통해 이 ‘주체’성이 하나님을 향한 ‘믿음’을 통해 시작되고 유지된다는 것을, 야곱의 아들 ‘요셉’에서 시작되고 유지된다는 것을 마음 깊이 새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인생’이 경험이라면 ‘하나님’을 경험하는 인생을 살아가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찬양 _ 찬송가 539장 너 예수께 조용히 나가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