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13일 성령강림 후 제15주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지난 주에 이어 출애굽기 말씀을 10월까지 전하고자 합니다.

“마침내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을 내보냈다.” 출애굽기 13장 17절 말씀입니다.

그리고 19절 말씀에 모세는 요셉의 유골을 가지고 나옵니다.

왜냐하면 요셉이 전에 이스라엘의 아들들에게 엄숙히 맹세시키면서 “하나님께서 분명히 너희를 구원하러 찾아오실 것인데, 그 때 여러분은 내 뼈를 이곳에서 가지고 나가 주시오.”하고 말했기 때문이었습니다.

요셉의 이 유언은 적어도 400년 전의 이야기입니다.(12:41) 10년의 시간이, 100년의 세월이 결코 짧은 시간은 아닐터인데 400년의 세월이 지났으나

마침내, 끝내 하나님은 그의 말씀을 이루셨습니다.

죽음의 사자가 지나간 그 밤,

한밤중에 모든 일이 일어났고 이집트 전역은 통곡으로 가득합니다. 무엇으로 그 날의 일을 설명할 수 있을까요? 이유없는, 갑작스런 아들들의 죽음은 울음마저 삼켜버렸을지도 모르겠습니다. 두려움, 그리고 거대한 힘에 압도된 사람들은 마침내 “신”을 떠올리게 되었을 것입니다.

“여호와가 누구이기에?” 모세가 바로를 처음 찾아갔을 때 바로가 한, 이 말을 바로는 다시 떠올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리고 바로가 그 밤중에 모세와 아론을 불러 말합니다.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들은 어서 일어나 내 백성들에게서 떠나가라. 너희가 말한대로 이제 가서 여호와께 예배드려라.”

마지막 죽음의 재앙까지, 성경에는 여호와께서 바로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셔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내지 않았다는 말씀을 계속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런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바로의 마음만 완고 하였을까요? 이집트를 떠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이스라엘 백성은 과연 얼마나 그 말씀을 믿고 있었을까요?”

떠나라! 떠나는 것이 그렇게 쉬운 일일까요? 그것도 430년을 살았던 터전을 떠난다는 건 도대체 어떻게 가능하다는 말일까요?

바로의 완고한 마음이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이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래서 10번의 재앙이 지나서야 그들은 떠나게 됩니다.

그리고 유월절(Passover)을 경험한 이스라엘, 그들은 홍해 앞에 서게 됩니다.

홍해(Redsea)는 이집트와 아라비아 사이의 큰 물로 히브리어 구약성서에는 얌수프(yam suph)라고 되어 있는데, '갈대 바다' 또는 '늪 바다'라는 뜻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을 향해 가기 위해서 이 홍해 앞에 서 있습니다.

어린시절 ‘십계’라는 영화를 보았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 바다 앞에 가득 메우고 있던 장면에 너무 놀랐었습니다. 홍해 바다가 갈라지고 이집트의 마차와 병사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칼을 들고 달려들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 바다 가운데로 걸어들어가는 장면은 상상했던 것보다 너무도 거대한 장면이었습니다.

이 엄청난 사건을 성경에서도 14장 전체에 기록하고 있습니다.

“어쩌자고 우리를 이집트에서 끌고 나와서 이렇게 하실 수 있소?”
“두려워 하지 마십시오! 굳건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여러분에게 베푸실 구원을 보십시오.”
“너는 왜 내게 부르짖느냐? 이스라엘 백성에게 앞으로 계속 나아가라고 말해라.”
“너는 네 지팡이를 들어 올려 네 손을 바다 위로 뻗어 물을 갈라라. 그러면 이스라엘 자손들이 바다 한 가운데로 마른 땅을 걸어 바다를 건너갈 수 있게 될 것이다.”

마침내,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 바다를 건넜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을 홍해에서 인도해 내어 수르 광야로 들어갔다. 그들은 그 광야에서 3일 동안 걸었지만 물을 차지 못했다. 마침내 마라에 도착했는데 그곳의 물은 써서 마실 수 없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마라라고 했다.
우리에게 무엇을 마시라는 것이오? 백성들은 모세에게 불평하였다. 모세가 여호와께 부르짖었다.

유월절을 경험하고 그 홍해, 바다 한 가운데를 걸어 나아온 이스라엘은 목마름 때문에 3일 만에 또다시 원망합니다.

그러나 모세가 여호와께 기도하니 그 샘 곁에 나무를 보여주시고 나뭇가지를 꺾어 물에 던지니 그 샘이 단물로 변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이르시되 너희가 너희 하나님 나 여호와의 말을 들어 순종하고 내가 보기에 의를 행하며 내 계명에 귀를 기울이며 내 모든 규례를 지키면 내가 애굽 사람에게 내린 모든 질병 중 하나도 너희에게 내리지 아니하리니 나는 너희를 치료하는 여호와임이라.

순종.

우리가 진정 바라는 삶이 무엇일지요?

진정 우리는 구원을 바라는 것일까요? 출애굽, 애굽에서 탈출하여 하나님이 말씀하신 가나안을 향해 떠나는 이스라엘은 구원받은 백성입니다. “여호와께서 오늘 여러분에게 베푸실 구원을 보십시오.”

그런데 이 백성이 구원에 만족하지 못합니다.

3일 만에 그들은 목마름에 원망합니다. 저희를 왜 구원하신 것입니까?

우리는 구원 자체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닌지요?

풍요의 땅 때문에 애굽을 떠난 것일까요?

아닙니다. 출애굽기 12장을 통해 우리는 분명히 알고 있습니다.

“여호와의 절기를 지킬 수 있도록 나의 백성을 보내라.”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기 위해 떠난 것입니다.

그 땅을 떠나 여호와의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가는 것이 “구원”입니다.

구원(救援, salvation)의 뜻은 노예 상태나 곤란한 처지에 있는 사람을 건져내어 자유를 주는 행위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죄와 사망으로부터 건져내어 영원한 생명을 누리게 하는 행위를 구원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원의 완성은 순종, 결국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삶이지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귀를 기울이고, 지키면,

쓴물도 단물이 되고 이집트에 내렸던 어떤 질병도 내리지 않을 것이요.

샘이 12개, 종려나무가 70그루나 있는 엘림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엘림(Elim)은 종려(상수리)나무들, 큰나무란 뜻으로 사막의 오아시스, 풍요의 땅입니다.

그런데 엘림을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니고

구원받은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는 삶이 “엘림”이 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에게 말씀하시는대로 살아가는 삶,

여전히 우리는 혼란스럽고 혼돈 가운데 살아가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자,

그들이 거하는 곳이 엘림입니다.

오늘 우리가 구원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기를 원합니다. 바라기는 구원의 그 기쁨으로 노래하는 오늘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주께서는 주의 인자하심으로 인도하셔서 이 백성을 구속하셨습니다. 주께서는 주의 힘으로 주의 거룩한 처소로 인도하셨습니다."

"공포와 두려움이 그들 위에 덮쳤고 주의 팔의 힘으로 그들이 돌처럼 잠잠했습니다. 오,  여호와여, 주의 백성들이 지나갈 때까지, 곧 주께서 속량하신 백성들이 지나갈 때까지 그렇게 잠잠했습니다."

"오, 여호와여 이곳이 바로 주께서 사시려고 만드신 곳입니다. 오, 여호와여, 주께서 손수 세우신 성소입니다. 여호와께서 영원무궁토록 다스리실 것입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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