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9장 하늘에 가득찬 영광의 하나님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43번 시편99편

(인도자)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만민이 떨 것이요
(회중) 여호와께서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니 땅이 흔들릴 것이로다
(인도자) 시온에 계시는 여호와는 위대하시고 모든 민족보다 높으시도다
(회중) 주의 크고 두려운 이름을 찬송할지니 그는 거룩하심이로다
(인도자) 능력 있는 왕은 정의를 사랑하느니라 주께서 공의를 견고하게 세우시고
(회중) 주께서 야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시나이다
(인도자)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여 그의 발등상 앞에서 경배할지어다
(회중) 그는 거룩하시도다
(인도자) 그의 제사장들 중에는 모세와 아론이 있고 그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 중에는 사무엘이 있도다
(회중) 그들이 여호와께 간구하매 응답하셨도다
(인도자) 여호와께서 구름 기둥 가운데서 그들에게 말씀하시니
(회중) 그들은 그가 그들에게 주신 증거와 율례를 지켰도다
(인도자)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주께서는 그들에게 응답하셨고
(회중) 그들의 행한 대로 갚기는 하셨으나 그들을 용서하신 하나님이시니이다
(인도자) 너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높이고 그 성산에서 예배할지어다
(회중) 여호와 우리 하나님은 거룩하심이로다(1-9)

송영 _ 찬송가 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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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322장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

말씀 _ 출애굽기 15장 1~18절,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

오늘 말씀을 주제가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그간 가장 고민했던 부분, 그리고 이제 좀 더 명확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여 교회력을 벗어나 오늘의 주제설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신앙생활, 그러니까 그리스도인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선하고, 옳고, 바르고, 정직하게, 거룩하게, 신실하게, 진실하게, 사랑하며... 더 많은 단어를 떠올릴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자 하지만 이렇게 살아갈 수 없다는 결론 아닌 결론을 내리고 그 점을 교묘하고 교활하게 숨기면서 ‘믿음’의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왜? ‘믿음’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말하면서 왜 ‘안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왜 그걸 숨기며 살아가는 걸까요? 또는 반대로 말하자면 "그렇게 살겠다". "살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오늘의 말씀 주제는

지난 5월 셋째 주, 한국YWCA 사무총장 역량강화 워크숍에 참석하여 <연대하는 용기> 장윤재 목사님의 제1부 하나님 나라와 에큐메니컬 운동 강의를 듣다 영감을 받아 말씀을 구성하게 되었습니다. 가능하시다면 책을 읽어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성서(성경)는 구약과 신약으로 불리워집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그 전의 말씀은 구약, 그 이후의 말씀은 신약입니다.

구약, 그러니까 예수 그리스도 이전의 말씀은 아주 오랜 시간을 걸쳐 39권의 책으로 정리되었습니다. 전통적으로 네 부분으로 구분하는데 그 중 첫째 부분이 모세오경입니다. 히브리(이스라엘)성경에서는 토라라고 하며, 저자는 모세라고 전해지나 여러 의견이 있습니다. 둘째 부분은 역사서로 이스라엘 민족의 가나안 정복으로 시작하여 바빌론으로부터 멸망하고 포로로 끌려갔다 다시 이스라엘로 돌아오는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셋째 부분은 지혜문학입니다. 시의 형식으로 쓰여졌는데, 선함과 악함이란 무엇인지? 인간의 삶에서 말 그대로 ‘지혜’에 관한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넷째 부분은 예언서입니다. 예언서는 하나님이 선택하신 선지자를 통해 이스라엘에 전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신약은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제자들을 통해 전해진 말씀으로 27권으로 정리되었습니다. 4권 복음서와 사도 행적을 기록한 1편의 사도행전, 바울과 여러 저자가 각 지방의 교회 공동체에 보낸 편지와 그리고 종말에 대한 사도 요한의 예언서인 요한계시록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구약과 신약을 한 권의 책으로, 구약의 약속을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셨으며 이를 기록한 것이 ‘신약’이라고 고백합니다.

‘시작’과 ‘끝’. 우리는 시작과 끝을 아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 말씀에 깊은 마음의 동요가 있으시길 소망합니다.

이제, 오늘의 말씀의 주제 ‘하나님 나라’의 이야기를 시작하려고 합니다.

앞서 구약의 첫부분이 모세오경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모세오경은 다섯 권의 책입니다.

창세기 「בראשית」(헤브라이어의 원제는 「태초에」의 의미)

출애굽기 「שמות」(헤브라이어의 원제는 「이름」의 의미)

레위기 「ויקרא」(헤브라이어의 원제는 「신은 불렸다」의 의미)

민수기 「במדבר」(헤브라이어의 원제는 「황야에」의 의미)

신명기 「דברים」(헤브라이어의 원제는 「말」의 의미)

히브리어 원제목의 의미는 정리된 책의 내재 된 의미를 잘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창세기는 세상의 시작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인간의 죄와 세상, 거기서 하나님께서 다시 하나님의 사람을 부르시고 ‘구원’의 약속이 서서히 드러납니다. 이어지는 출애굽기는 하나님의 사람을 통해 번성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구원의 이야기로 확장되어 태초의 에덴동산을 넘어선 ‘하나님 나라’가 완성됩니다.

 

출애굽기 15장 18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하였더라.”

출애굽기 15장은 모세와 미리암이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400년 노예살이를 하던 이집트를 벗어나 홍해를 건너, 그 바다에서 일어났던 믿을 수 없던 광경을 바라보며 부른 노래였습니다.

이스라엘을 추격하여 쫓아온 이집트의 군대,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을 바라본 이스라엘의 고백, “여호와께서 영원무궁하도록 다스실 것입니다. 이제와 영원히”

장윤재목사님의 이야기를 빌자면 헨델의 오라토리오 <메시아>는 바로 이 노래라는 것입니다. “주께서 영원히 우리의 왕이 되실 것입니다.”

좀더 자료를 찾아보니 헨델은 이 곡을 24일 만에 완성하고 "<메시아>는 나를 가장 깊은 절망의 구덩이에서 건져낸 기적이다. 이제 이것은 온 세상의 희망이 되어야 한다,"고 이야기했다고 합니다.

다시 장윤재목사님의 글을 빌어 보겠습니다.

모세의 노래는 ‘여호와의 승전가’이다. 혼돈과 위협에 대한 여호와의 승리, 악과 죽음의 세력에 대한 하나님의 승전가이다. 바로가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의 영원한 왕이 되실 것이라는 이 노래가 바로 성서 안에서 찾아볼 수 있는 하나님 나라(통치)에 대한 신앙의 시작이다.
모세의 장엄한 승전가는 다시 ‘대관식 시편’이라고 불리는 여섯 시편(47,93,96,97,98,99편)으로 이어진다. 하나님께서 왕이 되어 영원무궁하도록 다스리실 것이라는 믿음이 성서 안에서 계속 이어지는 것이다. 대관식 시편들에는 두 개의 주제가 반복해서 나타난다.
첫째, 여호와께서 모든 왕의 왕이라는 선포이다.
둘째, 여호와께서 다스리시니 세계가 굳게 서고 그 정의의 통치를 기뻐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놀라운 선포는 기원전 6세기 포로기를 살던 예언자 이사야에게로 이어진다. 이스라엘은 바벨론 제국에 의해 멸망했다. 그 쓰라린 절망의 시간에 이사야 예언자는 대관식 시편을 인용하며 이렇게 희망을 이어간다. “좋은 소식을 전하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가”(이사야52:7) 바벨론의 포로로 끌려간 그 절망의 시간에 이사야는 모세와 시편의 노래를 기억하며 희망의 촛불을 이어 갔던 것이다.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라는 이 놀라운 선포는 이 땅에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치심의 중심을 차지한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마가복음 1:15) 이것이 복음서에 기록된 예수의 첫 번째 음성이다. 하나님 나라(통치)가 바로 예수가 선포하신 곧 기쁜 소식(good news)이다.
드디어 모세의 노래에서 시작된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라는 선포는 성서의 맨 마지막 책인 요한계시록까지 이어진다. 밧모섬에 갇힌 요한은 박해와 수난 속에서도 앞으로 도래할 하나님 나라(통치)를 보았다. 그래서 그는 이렇게 담대하게 선언한다. ”세상 나라가 우리 주와 그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세세토록 와 노릇 하시리로다.(요한계시록 11:15)
’저‘세상이 아니다. ’이‘ 세상 모든 나라가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가 되어 그가 영원무궁하도록 왕으로 통치하실 것이라는 선포이다.

주께서 다스린다! 그가 영원무궁하도록 다스릴 것이다!

이는 우리가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살겠다는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가 저와 여러분에게 임하시길 축원합니다.

<다스리다>는 '국가나 사회, 단체, 집안의 일을 보살펴 관리하고 통제하다.'라는 사전적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유의어로 사용되는 <지배하다>는 ‘어떤 사람이나 집단, 조직, 사물 등을 자기의 의사대로 복종하게 하여 다스리다.’라고 설명되어 있습니다.

또 <좌우하다>(左右하다)는 단어는 '어떤 일에 영향을 주어 지배하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통치하다>는 '나라나 지역을 도맡아 다스리다.'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의 의미가 무엇입니까?

출애굽기 15장 16절부터 19절 말씀을 읽겠습니다.

16 놀람과 두려움이 그들에게 임하매 주의 팔이 크므로 그들이 돌 같이 침묵하였사오니

17 여호와여 주의 백성이 통과하기까지 곧 주께서 사신 백성이 통과하기까지였나이다.

18 주께서 백성을 인도하사 그들을 주의 기업의 산에 심으시리이다. 여호와여 이는 주의 처소를 삼으시려고 예비하신 것이라. 주여 이것이 주의 손으로 세우신 성소로소이다.

19 여호와께서 영원무궁 하도록 다스리시도다 하였더라.

20 바로의 말과 병거와 마병이 함께 바다에 들어가매 여호와께서 바닷물을 그들 위에 되돌려 흐르게 하셨으나 이스라엘 자손은 바다 가운데서 마른 땅으로 지나간지라.

 

16절 말씀에 놀람과 두려움이 등장합니다. 그 두려움과 놀람이 얼마나 컸던지 그 두려움에 돌과 같이 되었습니다. 놀람과 두려움으로 돌과 같이 되어 침묵하는 자가 누구입니까?

쫓기는 이스라엘 백성입니까? 이집트의 강한 군대입니까?

이집트의 군대가 놀람과 두려움으로 돌과 같이 되었다는 말씀입니다. 말을 타고 달려오던 그들이 돌과 같이 되는 장면을 상상해 보십시오. 이것이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17절 말씀은 16절 말씀과 이어지는데 맥락을 살펴보면 주의 팔이 크시므로 그들이 돌과 같이 침묵하게 하시는데 이는 주의 백성이 바다를 통과하기까지라는 것입니다. 주의 백성이 바다를 통과하기까지 이집트의 군대는 놀람(공포)과 두려움으로 돌과 같이 되어 침묵(잠잠)하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통과하기까지, 이것이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18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주의 백성을 주의 산에 심으십니다. 이것이 <인도하신다>는 진정한 의미입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좋은 곳으로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주의 기업의 산’으로 인도하십니다.

히브리어 성서의 직역은 이렇습니다. “주의 소유인 유업의 산에 심으실 것입니다.” 주의 산에 심기운 나무를 누가 감히 옮길 수 있습니까? 산에 심기운 나무에서 어찌 풍성한 열매가 맺히지 않겠습니까? 이것이 하나님의 통치입니다. 이 유업의 산, 인도하시는 산이 어디(무엇)입니까?

18절 말씀에 그 산은 주께서 사시려고 만드신 곳, 주께서 손수 세우신 성소라고 전합니다. <성소>는 하나님이 사시는 곳입니다. 누가 감히 이 곳을 침범할 수 있습니까? 사람이 세운 것은 반드시 무너지게 되어있습니다.

우리가 오래된 건축물에 놀라는 것은, 그것이 그렇게 오랫동안 무너지지 않았다는 것에 경이로움을 느끼는 것이지요. 물론 빼어난 아름다움이 있기도 합니다. 그러나 경이로움의 기저에는 무너질 것이 무너지지 않고 지금 우리가 보고 있다는 것이지요. 세상의 모든 것이 무너진다는 것을 우리가 인정하고 있다는 방증입니다.

<성소>는 하나님이 세우신 곳입니다. 결코 무너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이 세우신 <성소>입니다. 결코 침범되지도 무너지지 않을 것입니다.

20절 말씀을 한번 더 살펴보겠습니다. 하나님의 통치는 이집트의 군대, 말과 마차, 군인과 함께 한 모든 것을 바다에 던져 허우적거리게 하시고 주의 백성을 그 바다 가운데 마른 땅을 걸어가게 하십니다. 마른 땅을 걸어가게 하십니다.

그래서 19절 말씀으로 찬송합니다. “여호와께서 영원무궁하도록 다스리실 것입니다.”

저는 오늘 말씀의 시작을 다음과 같이 시작하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이렇게 살아가고자 하지만 이렇게 살아갈 수 없다는 결론 아닌 결론을 내리고 그 점을 교묘하고 교활하게 숨기면서 ‘믿음’의 단어를 사용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도대체 왜? ‘믿음’으로 살아가고 싶다고 말하면서 왜 ‘안된다’는 결론에 도달하고 왜 그걸 숨기며 살아가는 걸까요? 또는 반대로 말하자면 그렇게 살겠다. 살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는 것일까요?”

이제 결론을 내리고자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사십시오. 하나님의 나라가 있습니다. 우리는 매주, 매일 주기도문으로 기도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시오며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시오며’의 뜻은 다스리시고 통치하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살아가길 결단하고 다짐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바랍니다.

하나님의 통치 아래 사는 주의 백성들, 홍해 바다를 건너는 이스라엘 백성을 떠올리십시오. 그리고 이제, “살 수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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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찬양 _ 찬송가 620장 여기에 모인 우리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