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25일 성령강림 후 제 21주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어느새 10월 마지막 주일입니다. 지나 간 2020년 10개월의 시간을 다시 돌아봅니다. 1월부터 시작된 코로나19 사태는 3월부터 교회의 예배가 중단되기에 이르렀고 그 이후 계속된 예배와 모임중단이 반복된 일상이 되어 버린 것 같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우리들의 시간 무관한 듯, 봄과 여름을 지나 이제 가을이 깊어지고 있습니다. 자연은 많은 열매를 맺고 다시 겨울을 준비하며 물들어 가는 단풍을 보니 지난 시간이 부끄러워집니다. 단풍은 다가 올 혹독한 겨울을 위해 화려했던 잎새를 버려 나무 자신을 지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무엇을 버리고 무엇을 지켜야 할까요? 혼돈과 혼란의 시기, 무엇을 지켜야 하는지? 우리들의 중심이 무엇인지?
출애굽기는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우리가 너무도 잘 알고 있는 십계명의 시작입니다.
성경의 십계명을 이용하여 참으로 많은 십계명들이 탄생하였습니다. 부부십계명, 자녀를 위한 십계명, 성공을 위한 십계명......
십계명(十誡命, Ten Commandments) 열가지 계명, 또는 명령이라 하여 십계명이라 부르는 것입니다. 정작, 출애굽기에는 십계명이란 단어가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신명기에 십계명이란 단어가 등장하는데 신명기 4장 13절과 10장 4절 ‘십계명’은 히브리어로는 ‘열 마디 말씀’으로 기록되어 있고 ‘십계명’(十誡命)이란 말은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Clement of Alexandria, A.D. 150-213년)가 최초로 사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출애굽기 20장부터 30장까지의 모든 말씀이 이스라엘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법규, 율법입니다. 여기서 20장 3~17절 말씀을 십계명이라 부르게 된 것입니다.
결국 십계명은 율법을 정리한 것입니다. 기억하고 또 분명하게 알게 하기 위한 율법이 십계명인 것입니다.
율법(律法, law)은 복종(服從, obedience)이 있을 때 작동하게 됩니다.
24장 3절은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의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전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모든 것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모든 것을 준행하리이다. 다른 말로, 모든 것을 따르겠습니다. 모든 것을 지키겠습니다.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지키는 것이 “복종”입니다. 복종이 있을 때 율법이 그 의미를 갖게 됩니다. 말씀의 힘은 우리가 그대로 따르고 지킬 때 그 힘이 발현되는 것입니다.
복종 (만해 한용운, 1879년~1944년, 독립운동가)
남들은 자유를 사랑한다지마는, 나는 복종을 좋아하여요.
자유를 모르는 것은 아니지만, 당신에게는 복종만 하고 싶어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그러나 당신이 나더러 다른 사람을 복종하라면 그것만은 복종할 수가 없습니다.
다른 사람을 복종하려면, 당신에게 복종할 수가 없는 까닭입니다.
복종이 저와 여러분의 행복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네가 백성 앞에 세울 법규는 이러하니라” (출애굽기 21장 1절)
하나님의 명령, 율법은 ‘던지다’, ‘(물을) 뿌리다’는 뜻의 ‘야라’에서 유래한 말로, 지시, 교훈, 법령, 계명, 법, 관습이라는 의미를 지닙니다.(민 15:16; 시 19:8)
또 헬라어 ‘노모스’는 ‘분배(할당)하다’, ‘나누다’, ‘분리시키다’는 뜻의 ‘네모’에서 파생된 말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여금 세상에서 거룩히 구별하여 살도록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친히 세우신 법을 의미하게 됩니다.(요 7:19; 롬 10:4)
삶의 명확한 법규가 있다는 것, 그것은 혼돈의 시대, 유일한 생명의 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너는 나 외에 다른 신을 네게 두지 말라.” 십계명의 제1계명입니다.
십계명은 제1계명부터 4계명까지를 하나님과의 관계, 5계명부터 10계명까지를 사람들과의 관계로 나누어 이해하곤 합니다.
이를 예수님께서는 다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한 율법학자가 예수님을 찾아와 물었습니다. “선생님 율법 중에서 어느 계명이 큽니까?”
“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것이 크고 첫째 되는 계명이요.”
“둘째도 그와 같으니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셨으니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그렇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웃을 사랑하라. 이 두 계명이 온 율법이며 십계명의 전부인 것입니다.
그런데
“사랑이 뭐라고 생각해요?” 초등학교 어린이에게 물었습니다.
“음, 좋아하는데 갑자기 꼭 껴안아 주고 싶은 마음이요.”
사랑이란? 갑자기 꼭 껴안아 주고 싶은 마음, 이 말을 듣고는 마음이 쿵 내려 앉는 것 같았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을 섬기는 것으로만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섬기다는 말은 ‘신(神)이나 윗사람을 잘 모시어 받들다.’라고 국어 사전에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어려운 말을 영어로 표현하면 너무나 쉬운 의미가 됩니다. serve, take care of.
그러니까 섬긴다는 것은 ‘서비스’를 해야한다고 생각하게 된다는 것이죠.
서비스는 사랑이 아닙니다. 갑자기 꼭 껴안아 주고 싶은 마음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은 아름다운 자유보다도 달콤합니다, 그것이 나의 행복입니다.
복종이 행복이 되는 이유, 바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복종하고 싶은데 복종하는 것, 그래서 행복한 것입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 우리에게 원하시는 것은 이 마음, 단 하나라는 생각이 듭니다.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라.
먼저라는 말은 언제나, 항상, 다른 것보다 우선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것이 있고 다음이 있는 것이고 그것을 해야 다음이 있는 것입니다.
즉, 시작과 기준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 중심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가을이 깊어지는 10월의 마지막 주일입니다. 단풍이 물들어 가듯이 사랑으로 우리들의 가슴이 물들어 가기를, 갑자기 꼭 껴안아 주고 싶은 그 마음을 고백하는 오늘이 되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