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8일 성령강림 후 제23주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출애굽기 33장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내 산을 떠나라는 말씀으로 시작됩니다.
“그 땅으로 올라가라. 그러나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희는 목이 곧은 완고한 백성이므로 내가 가는 길에서 너희를 멸망시킬지도 모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은 이와 같은 서글픈 말씀을 듣고 애통하였으며 몸에 장신구를 떼어 내고 모세는 여호와께 나아갑니다.
모세가 여호와께 말했다. “보십시오, 주님께서는 저에게 ‘이 백성들을 데리고 올라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저와 함께 보낼 자를 알려주시지 않으셨습니다. 이 민족이 주님의 백성들임을 생각해 주십시오”
이 때, 이 모습을 “여호와께서는 마치 사람이 친구와 더불어 이야기하는 것처럼 모세와 얼굴과 얼굴을 맞대어 말씀하셨다.”라고 성경은 기록하고 있습니다.
마치 사람이 친구와 더불어 이야기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만나고 그와 함께 대화하는 것, 이것이 모세의 기도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기도할 수 있을까요? 이러한 기도가 가능할까요?
기도의 의미를 다시 생각해 보며 오늘의 본문 말씀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오늘 본문말씀은 32장과 34장의 중요한 연결고리가 됩니다.
많은 사람들이 출애굽기를 모세와 돌판으로 기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이를 증명하는 듯 많은 화가들이 2개의 돌판을 든 모세를 작품으로 남겼습니다. 2개의 돌판, 이 돌판에 우리가 알고 있는 십계명이 새겨져 있는 것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십계명과 같이 각인된 이 돌판은 하루 아침에 모세에게 전해진 것이 아닙니다.
출애굽기 24장, 화목제를 드린 모세에게 여호와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산으로 내게 올라와서 거기에 머물러 있어라. 내가 백성들을 가르치려고 율법과 계명을 쓴 돌판들을 너에게 주겠다.”
이에 모세가 산으로 올라가 그 산에 있으며 하나님의 말씀, 율법과 계명을 들으니
그것이 출애굽기 25장 성소, 26장 ~27장 성막, 28장 ~29장 제사장, 30장 제단, 31장 성소와 제사장을 위한 봉사자에 관한 율례입니다.
이 기간이 40일입니다. 결코 짧지 않은 시간일 것입니다.
모세가 여호수아를 데리고 산으로 올라가며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부탁합니다.
“우리가 돌아올 때까지 여기에서 우리를 기다리십시오, 보십시오. 여기 아론과 훌이 여러분과 함께 있으니 누구에게든지 법적인 문제가 있으면 그들에게 가서 상의하십시오.”
그리고 일주일, 다시 일주일, 우리의 기다림은 언제나 완전하지 않으며 언제나 흔들리기 마련인가 봅니다.
“기다려”, “언제까지?” 언제인지 모를 그 날이 반드시 온다는 것, 그 또한 분명한 진리라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언제까지?” “그때까지”가 그리스도인의 고백입니다.
모세가 산에 머무는 그 시간, 출애굽기 32장은 또 다른 사건을 전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는 것이 늦어지는 것을 보고 아론에게로 몰려와서 말했다. “일어나서 우리를 위해 앞장서서 우리를 이끌어줄 신을 만들어 주십시오.”
그러자 아론은 그들을 위해 금으로 수송아지 상을 만들고 그들은 외칩니다. “이스라엘아, 이것이 이집트 땅에서 너를 올라오게 한 너희의 신이다.”
이를 하나님은 아시고, 보셨습니다. 그리고 모세에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이 백성을 보았다. 보라, 그들은 참으로 목이 뻣뻣한 완고한 백성이다.”
“내가 그들을 향해 분노가 타오르고 있으며 그들을 완전히 깨뜨려 버리겠다.”
그러자 모세가 여호와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어찌하여 주님이 큰 권능과 강한 손으로 인도해 내신 주님의 백성에게 이와 같이 진노하십니까? 주님의 마음을 바꾸어 주십시오, 주님의 종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기억해 주십시오.”
모세의 간청을 들으신 여호와께서는 마음을 돌이키시고 자기 백성에게 내리시겠다고 말씀하신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모세가 산에서 내려오자마자 그 수송아지를 보았고 백성들이 춤추는 것을 보았습니다.
이때 모세의 심경을 ‘화를 내며’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모세는 화를 내며 그들이 보는 앞에서 2개의 돌판을 깨뜨리고 그 금송아지를 가져다가 불에 태우고 가루가 될 때까지 빻았고 그 가루를 물에 뿌려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마시게 하고 아론에게 묻습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입니까?”
이스라엘이 한마디로 발칵 뒤집어 진 것입니다. 자기를 위해 우상을 만든 백성, 그 씻을 수 없는 죄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희생의 피를 쏟게 합니다. 백성 가운데 3천명 쯤이 그들의 목숨을 잃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모세는 여호와께로 올라 가겠다고 이스라엘에게 전합니다.
“여러분의 죄를 속죄할 수 있을까?...하여 내가 다시 여호와께로 올라가 보겠습니다.”
이렇게 다시 시내 산에 오른 모세에게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는 장면이 33장입니다.
그리고 34장에 여호와께서 다시 2개의 돌판을 모세에게 주시니 그것이 지금까지 전해지는 십계명의 돌판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 33장은 32장과 34장의 연결고리가 되는 것입니다. 모세의 기도가 있지 않으면 하나님의 응답이 없다면 34장은 이루어질 수 없는 이야기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든 이스라엘 백성, 그들을 모세는 하나님께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간청합니다. 범죄한 그들이라 하여도 하나님의 백성이니 여호와여, 그 마음을 돌이켜 달라고 간청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을 기억해 달라고 간청하는 모세의 기도를 들으시고 또 모세를 보시고 그 마음을 돌이키사 모세에게 말씀하시니
출애굽기 33장 1절입니다.
“그 땅으로 올라가라.그러나 나는 너희와 함께 올라가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희는 목이 곧은 완고한 백성이므로 내가 가는 길에서 너희를 멸망시킬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가라, 내가 주기로 약속한 땅으로 가라, 그 땅을 너희에게 주겠다.
그런데 나는 너희와 같이 가지 않을 것이다.
너희,,, 목이 곧은 너희를,,, 내가 한 순간에 멸망시킬 수도 있을 것이다.
성경은 이 말씀을 서글픈 말씀이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이 서글픈 마음을 아는 것이 부모의 마음, 성숙한 어른의 마음이겠지요. 사랑깊은 마음, 안타까움과 어찌하지 못하는 절절한 마음, 그러나 참으로 기다리는 마음...
여호와의 말씀을 들은 모세가 말합니다. “주님은 올라가라 말씀하셨지만 누구와 함께 가는지 말씀해 주지 않으셨습니다. 주님, 제가 주님께 은총을 입었다고 말씀해 주시지 않으셨습니까? 제가 지금 은총을 입었다면 저에게 주님의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주님께서 친히 우리와 함께 가시지 않으시려거든 저희도 이곳을 떠나 올라가지 않도록 해 주십시오.”
“주님께서 함께 가시지 않는다면 저와 주님의 백성들이 은총을 입었다는 사실을 누가 알겠습니까?”
주님과 함께 가지 않는다면 약속하신 그 땅도 율법도 아무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율법도 약속하신 그 땅도 결국 여호와께서 우리와 함께하심의 증거가 되기 때문입니다.
세상에는 참으로 많은 은총을 입은 이들이 있습니다.
땅을 차지한 사람들, 태어날 때부터 높은 신분으로 부와 명성을 가진 사람들, 아름다운 외모와 재능, 능력을 가진 사람들, 부러움을 한 몸에 받는 참으로 많은 은총을 입은 이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과 우리를 구분하는 단 한 가지의 기준이 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함께하심입니다.
우리에게 은총을 입은 자라는 의미는 하나님이 함께하심입니다.
광야에서 그들의 원망에도 만나와 메추라기를 보내 먹이시는 그 은혜, 그 은혜가 아니면 살 수 없는 우리는 주님이 함께하셔야만, 주님이 함께하실 때 세상과 구별된 존재가 됩니다.
요즘 건축에 관심을 갖고 이것저것 살펴보고 있습니다. 얼마나 아름답고 훌륭한 건축물들이 많은지? 매번 놀랍기만 합니다.
교회가 단지 건축물로 평가된다면 우리교회는 낙제점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은총을 입은 교회는 하나님이 함께하심이 기준이 된다는 것이 당연한 이치이겠지요?
우상을 만들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은 그들의 장신구를 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든 이스라엘이 보이지 않은 하나님과 40일이라는 긴 시간 동안 보이지 않는 모세를 대신하여 보이는 금송아지를 만들었다는 것을 곰곰이 생각해 보아야 하겠습니다. 우리는 은총을 보이는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는 것입니다. 보여지는 은총과 비교할 수 없는 것이 하나님, 여호와 그 분이 진정 우리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우리와 함께 가지 않으신다면 우리가 주님께 은총을 입었다는 것을 어떻게 알 수 있겠습니까?” 모세가 이야기 하듯이 진정한 은총은 하나님이 친히 우리와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저에게 주님의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오늘도 하나님께 나아와 기도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