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30일 성령강림후 제13주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출애굽기, 모세의 이야기입니다.
이집트의 왕자, 1998년 애니메이션으로 제작된 이 영화는 정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집트의 왕자는 바로 모세의 이야기인데요. 성경을 믿지 않더라도 참으로 매력적인 내용인 것이지요.
노예로 태어난 운명, 곧 죽음의 위기에서 이집트의 공주에게 구원받은 한 아이, 그는 이집트의 왕자로 자라나지만 자신이 누구인지 깨닫게 되고 그의 백성과 이집트를 탈출하는 이야기는 블록버스터급 영화보다 더 흥미롭고 놀라운 이야기입니다. 영화보다 더 영화같은 한 사람의 이야기, 그것이 바로 이집트의 왕자, 모세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모세의 이야기는 출애굽기(Exodus)를 통해 시작되고 흔히 우리가 부르는 모세5경,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는 모세가 기록한 것으로 고백되며 이스라엘의 역사가 시작됩니다. 이스라엘의 위대한 여정이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이 놀랍기만 합니다.
그런데 역사란, 아무리 거대한 역사라 하더라도 한 사람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걸 우리는 이미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왜 우리는 그 사실을 잊고 살아가는 것일까요?
한 사람으로부터 역사가 시작된다는 것, 다시 말하면 우리로부터 역사가 시작된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이야기가 역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있습니다.


모세는 ‘물에서 건져내다’란 뜻입니다. 그의 이름대로 모세의 삶은 물에서 건져짐으로 시작됩니다. 그런데 모세의 이야기가 전개되기 위해선 앞선 이야기가 필요합니다.
왜 이스라엘은 이집트에서 노예로 살게 되었을까요?
기억하고 계실까요? 요셉, 이집트의 총리, “하나님께서는 생명을 구하려고 형님들보다 먼저 나를 이곳에 보내셨습니다.” 요셉을 통해 야곱의 아들들은 모두 이집트에서 살게 되었고 이 후 이스라엘은 이집트에 터전을 잡게 되었지요. 그리고 우리는 꿈쟁이 요셉에서 희생, 순종, 인내, 진실, 순결, 사랑의 사람으로 요셉을 고백하길 원한다고 말씀을 전했었습니다.
세월이 흘러 요셉을 모르는 이집트의 왕(바로)과 이집트인들은 이집트에서 점점 그 수가 늘어나는 이스라엘을 두려워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결과 바로는 "히브리인들이 계집아이를 낳으면 살려두되 사내아이를 낳으면 모두 강물에 집어넣어라."라고 명령했습니다.(출애굽기 1:6-22)
모세는 어머니 요게벳과 누나 미리암의 지혜로 겨우 살아남았고 아기를 더 숨겨둘 수 없게 되자 갈대상자 속에 아기를 뉘어 강가 갈대 숲 속에 놓아두었는데, 마침 바로의 딸이 강에 목욕하러 왔다 아기를 보자 마음이 움직여 아기를 양자로 삼았고, 강에서 건진 아이라는 뜻으로 모세라고 이름을 지었습니다.
이렇게 이집트의 왕자가 된 모세의 삶은 대략 40년씩 3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첫 번째 40년 간은, 갈대 상자에 담겨 나일 강에서 구출된 뒤 이집트의 왕자로 산 40세까지의 세월입니다.(출 2:1-15)
두 번째 40년 간은, 나이 40세 때 자신의 동족을 괴롭히는 이집트인을 살해한 뒤 그것이 탄로날까 두려워 미디안 땅으로 도피하여 살인자요 도망자이자 또 목자요 한 가정의 가장으로서 미디안 광야에서 산 40년의 세월입니다.(출 2:11~22)
마지막 40년 간은, 시내(호렙) 산에서 하나님으로부터 소명을 받고 이집트를 탈출하여 십계명을 받고 성막을 완공하였으나 그 후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 때문에 광야에서 생활한 40년입니다.(신 2:13-15).
오늘 본문 말씀은 모세의 두 번째 40년 세월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고통을 마주하게 된 모세는 불의를 참지 못하고 이집트인을 살해하고 미디안으로 도망하여 그 곳에서 결혼을 하고 목자로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고향을 떠나 낯선 곳에서 살아가는 그에게 이스라엘과 이집트는 다시는 갈 수 없는 곳이 되었을 것입니다. 40여년의 세월, 꿈에서라도 갈 수 없는 그 곳...
그런 어느 날 그를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모세는 미디안의 제사장인 그의 장인 이드로의 양떼를 치고 있었다. 그가 양떼를 이끌고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갔다. 하나님께서는 떨기나무의 한 가운데서 “모세야, 모세야!”하고 그를 부르셨다.
그리고 그 분께서는 또 말씀하셨다. “나는 네 조상의 하나님, 곧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그리고 야곱의 하나님이다.”
출애굽기 3장에서 하나님은 강렬하게, 불꽃 가운데 모세를 부르십니다.
그런데 40년 동안 미디안에서 도망자로, 숨어살던 모세입니다.
그런 그를 부르시는 하나님, 그의 앞에 나타나신 하나님, 그 때 모세는 하나님을 쳐다보는 것이 두려웠기 때문에 자신의 얼굴을 감추었습니다.
굳이 설명을 하지 않더라도 모세의 상황과 심정을 우리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습니다...... 나를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두렵지 않은 믿음의 사람이 될 수 있기를 소망해 봅니다.
그런데 그런 그에게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이제 가거라. 내가 너를 바로에게 보내어 너로 하여금 내 백성 곧 이스라엘 자손들을 이집트에서 데리고 나오게 하겠다.”
듣고도 믿을 수 없는 말씀, 아니, 도무지 이해가 되지 않는 말씀입니다.
그러니 모세가 감히 하나님께 말씀을 드립니다.
“제가 누구이기에 감히 바로에게 가며 또한 이스라엘 자손을 이집트에서 인도해 낼 수 있겠습니까?”
“제가 누구이기에?” 그렇습니다. 모세가 누구이기에 출애굽의 지도자요, 율법의 기록자며, 대선지자로서, 구약을 대표하는 인물로, 모세 5경을 기록할 수 있었을까요?
오늘 본문 말씀을 살펴보면 미디안에서 40년 간 그의 삶은 자세히 기록되어 있지 않습니다.
출애굽기 3장은 마치 다른 어떤 설명은 필요 없다는 듯이 하나님이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 나타나시는 장면으로, 또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시는 장면에서 시작합니다.
결국 오늘 본문말씀에서 전하고자는 의미는 바로
그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이기에, 그 모든 것을 이룰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누구이기에? 묻는 모세는 이미 하나님을 만난 사람,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사람으로,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성경은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의 연약함 또한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다시 말씀하십니다. “내가 틀림없이 너와 함께 있을 것이다.”
우리들도 모세와 같은 질문을 할 때가 있는 것 같습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내가 무엇이라고? 내가 무슨 능력으로? 그 때 가슴 깊은 곳에서 이러한 음성이 들리길 원합니다.
너는 하나님을 만난 사람이다.
너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사람이다.
너는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이다.
이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 그것으로 충분한 것이지요. 다른 이유는 없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모세를 부르신 그 때, 이스라엘 백성의 상황을 동시에 전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고된 노예살이 때문에 신음하였고 큰 소리로 부르짖었다. 도움을 청하는 그들의 울부짖는 소리가 하나님께로 올라갔다.
가난과 굶주림, 압제와 폭력, 고통의 몸부림과 울부짖는 이스라엘 백성을 모세는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풍요롭고 아름다운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게 된 것입니다.
지금, 우리의 상황은 어떠한가요? 세계는 기후변화와 코로나19로 인해 황폐해지고 일상이 무너지고 가난과 질병, 분노와 원망으로 고통스러운 지금,
지금이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땅을 향해 떠날 수 있는 은혜의 시기인지도 모릅니다. 출애굽기 2장은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들으셨고 맺으신 언약을 기억하였다.
겉으로 보이는 풍요의 땅 이집트, 우상으로 가득 찬 이집트를 떠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그 땅을 향한 새로운 출발점, 완전히 삶의 태도를 바꿀 수 있는 진정 은혜의 때인지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이순간, 모세를 부르신 것처럼 우리를 부르시고 당신의 백성이 거짓과 고통의 땅을 떠나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그 땅을 향해 떠나길 원하시고 계십니다.
우리가 누구이기에? 바로 스스로 있는 자, I AM WHO I AM, 여호와 하나님 그 분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