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15일 성령강림 후 제24주, 추수감사주일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출애굽기의 마지막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돌판 2개를 처음 것들처럼 깍아 만들라. 그러면 네가 깨뜨려 버린 그 처음 돌판들 위에 있던 말씀들을 내가 새 돌판들 위해 다시 쓸 것이다."

다시, 새롭게 이스라엘과 하나님의 관계가 시작됩니다.

무너진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다시 일어서는 것 같습니다. 실패가 없다는 말의 의미는 ‘다시’에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해 보면, 다시 일어서면, 다시 시작한다면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아도 되겠지요. 우리가 두려워 해야하는 것은 위기가 아니라 다시 일어서지 못함에 있는 것 같습니다.

다시, 시작하기를 두려워 하지 않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하나님은 다시, 이스라엘과 언약을 체결하시고 말씀을 전하십니다.

먼저 십계명이 선포됩니다. “절대로 다른 신에게 경배하지 말아라.”

그리고 이스라엘의 3절기를 지키길 명령하십니다.

첫째는 유월절 다음날부터 7일 동안 누룩 없는 빵, 무교병을 먹으며 이집트를 탈출하게 됨을 기억하는 무교절입니다.

둘째는 칠칠절입니다. 이 절기는 밀의 첫 소산을 하나님께 드리는 절기인 초실절에 보리를 드린 날로부터 50일째 되는 날에 지켰다 하여 오순절이라고도 부르게 됩니다. 신약시대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제자들이 오순절 절기를 지키기 위해 예루살렘, 마가의 다락방에 모였을 때 성령이 강림하였으니 이후로 ‘성령강림절’로 지켜졌습니다.

셋째는 수장절입니다. 장막절 또는 초막절이라고 부르는 이 절기는 출애굽 후 40년 광야 생활 동안 지켜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여 광야에서 장막을 치고 즐기던 축제입니다. 한 해의 농사를 마치고 은혜에 감사하는 오늘 날의 추수감사절에 해당됩니다.

마지막으로 성막을 세우라고 명령하십니다.

십계명으로 시작된 말씀의 시작은 성막을 통해 완성됩니다. 총 40장에 이르는 출애굽기는 성막의 완성을 마지막으로 끝을 맺으며 성막이 완성되고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차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때에 구름이 만남의 천막인 회막을 덮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가득찼다.” (40:34)
“그들이 길을 가는 동안에는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었고 밤에는 구름 가운데 불이 있어서 이스라엘 백성이 그것을 눈으로 보았다.” (40:38)

성막의 완성과 함께 이스라엘은  여호와께서 약속하신 가나안을 향한 길을 다시 떠납니다.

성막(聖幕, tabernacle) 또는 회막은 쉬운 말로 설명하자면 커다란 텐트(tent)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거룩한 장소로, 구별된 장소를 만들기 위해 성막, 커다란 텐트를 세운 것입니다.

성막은 길이가 약 45.6m(100규빗), 폭이 약 22.8m(50규빗)인 뜰 가운데 세워졌고, 뜰 사면은 휘장으로 가려져 있었고 이 휘장은 청동으로 만든 기둥 60개로 지탱되었습니다.

뜰(마당) 안에는 번제를 위한 큰 제단이 있었고 제사장들이 제사를 위하여 자기 몸과 제물을 씻는 청동 물두멍이 준비되었습니다.

뜰의 서쪽 끝에 세워진 성막의 성소는 목재 구조로 길이 약 14m(너비 1규빗 반의 판자 20개) 너비 약 4m(1규빗 반 되는 판자 6개를 나란히 놓은 폭)였으며, 두꺼운 휘장으로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하였습니다.

성소 지붕은 제일 안쪽(덮개)에 청색, 자색, 홍색 실로 그룹 모양의 자수를 놓은 휘장으로 덮혀 있었고 그 바로 위에는 보온을 위해 염소털 휘장이, 또 그 위에는 붉은 물을들인 숫양 가죽, 그리고 제일 바깥에는 방수를 위해 해달의 가죽이 덮힌 4중 지붕 구조를 하고 있었습니다.

또 성소 내부에는 휘장 오른편에 진설병상, 휘장 왼편에 금등대, 그리고 휘장 바로 앞 가운데 분향단이 놓여 있습니다. 휘장 안으로 들어가면 지성소가 있는데 거기에는 오직 언약궤만이 있습니다.

언약궤는 나무로 만들어지고 금박을 입힌 상자 모양인데 십계명 두 돌판, 만나를 담은 항아리, 아론의 싹난 지팡이가 들어있었습니다. 또 언약궤 위에는 두 그룹이 마주보며 날개를 펴서 덮고 있는 형상을 하고 있는데, 이를 속죄소(贖罪所)라 부릅니다. 이는 죄를 속하는 처소라는 의미인데, 하나님께서 이곳에 임재하셔서 인간의 죄를 가려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은혜의 처소입니다.

성소(聖所, sanctuary) ‘거룩하게 구별된 장소’(시150:1)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거하기 위하여 택하신 장소(시114:2; 사8:14; 겔11:19)이며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거룩한 장소란 의미로 사용됩니다. 성소 성막의 본체로서 지성소와는 구분된 장소입니다. 성막 안의 성소에는 하나님께 제사드리는 데 사용되는 진설병상, 분향단, 등대와 같은 성물이 놓여 있습니다. 하지만 대개 성소는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성막(성전) 전체를 가리키거나 넓게는 성막이 세워진 장소(성읍)를 말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본다면 최초의 성소는 성막이 세워진 시내 산이라 할 수 있고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에 들어간 후에는 세겜(수 8:30), 길갈(수 9:6), 벧엘(삿 20:27), 실로(삼상 3:3)가 성소가 되었고, 다윗이 왕이 된 후 성막을 옮기고(삼하 6:16), 훗날 솔로몬이 성전을 세운 예루살렘이 성소가 되는 것이지요.(왕상 6장).

그래서 교회의 역사는 성막에서 성전으로 또 교회로 그 이름이 변화하지만 ‘거룩하게 구별된 장소’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 가운데 거하기 위하여 택하신 장소이며 하나님께 예배 드리는 거룩한 장소란 의미는 변함이 없습니다.

지성소(至聖所, the Most Holy Place)는 성막(성전) 안에서도 가장 안쪽의 지극히 거룩한 처소를 말하는 것입니다. 이곳은 하나님의 임재하시는 거룩한 장소이며 언약궤가 놓여 있습니다. 대제사장이라 하여도 1년에 한 차례(대속죄일)만 들어갈 수 있습니다. 성소와 지성소 사이에는 휘장이 가로놓여 하나님과 인간의 좁힐 수 없는 간격을 나타내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시던 그날 휘장이 찢어진 것은 단순한 사건이 아니라 성소와 지성소 사이의 거리,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가로막힘,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깨어졌던 관계가 회복되었음을 상징하는 위대한 사건입니다.

이러한 성막에 관한 말씀은 크게 두 부분으로 출애굽기 25장부터 31장까지 성막제도와 35장부터 40장까지 성막건축으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 두 부분 모두 이렇게 시작되고 있습니다.

“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해서 내게 예물을 가져오라고 해라.” (25:2)
“너희는 너희가 가진 것들 중에서 여호와께 바칠 예물들을 가져오라.” (35:5)

이어지는 말씀 또한 같은 말씀입니다.

“마음에서 우러나와 바치려는 사람이 내게 바치는 예물이라면 무엇이든지 받으라. 그들에게서 받은 예물들은 다음과 같다. 곧, 금, 은, 동...”
“바치려는 마음이 우러나는 사람은 누구든지 주님을 위한 예물을 가져와서 바치라. 곧 금과 은 놋...”

그리고 35장 21절 말씀에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마음이 감동되어 진심에서 우러나와서 그렇게 하려는 사람은 모두 나서서 회막과 그곳에서 섬기는 일을 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과 거룩한 옷을 만드는데 쓸 예물을 여호와께로 가져왔다.”

성막의 건축은 지난 주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이끌어 줄 신을 만들어 주시오”  

이에 아론이 말합니다. “여러분의 아내와 아들들과 딸들의 귀에 있는 금 고리들을 빼어 내게로 가져 오시오.” 아론은 그들을 위해 그들이 가져온 금을 녹여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었습니다.

이 두 사건은 백성들이 예물을 가져 왔다는 것에 있어서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도 금을 가져왔다는 것이 말입니다.

그런데 하나는 우상이 되고 하나는 성막이 됩니다.

드렸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찾아 볼 수 있으나 그 드림의 이유가 다른 것이 그 결과물을 완전히 다르게 만드는 것입니다.

알고 계시지요? 먼저 그들이 금을 가져 온 것은 “자신들을 위하여”였습니다.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예물은 우상이 되는 것입니다. 십계명의 말씀입니다. 누구든지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 무엇이든지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것은 우상이 됩니다. 그래서 그들이 드린 예물은 결국 깨어지고 부서져 사라지고 마는 것입니다.

이 우상 사건 이후 다시 하나님과 언약을 체결한 이스라엘이 마음에서 드리는 예물이 바로 “감사”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아닌 마음에서 우러나와 “감사”함으로 드리니 곧 성막이 되는 것입니다.

성막은 이스라엘 신앙의 중심입니다. 십계명과 절기와 함께 성막건축은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진 가운데 거룩하고 구별된 장소, 성막을 세우고 이 성막은 하나님이 언제나 이스라엘과 함께하심을 상징하여 날마다 촛불이 꺼지지 않았으며 성막은 여호와의 영광이 가득한 임재의 장소입니다.

오늘은 추수감사주일입니다. 어릴적부터 지금까지 제게 추수감사주일은 “과일제단”인 것 같습니다. 풍성하고 아름답게 장식되었던 교회 중앙 강단에 놓여 있던 그 기억이 아직도 제겐 추수감사주일하면 제일 먼저 떠오르는 기억인 것 같습니다.

감사는 드림입니다. 그런데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것은 진정한 감사가 아닙니다. 자기를 위하여 드리는 모든 것은 우상이 된다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나를 위하여 드리는 것이 아니라 마음에서 우러나와 드리는 “감사”는 진정 가능한 것일까요?

신명기 8장에서 모세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이렇게 당부하고 있습니다.

“이 사십 년 동안에 네 의복이 해어지지 아니하였고 네 발이 부르트지 아니하였느니라.”

“네 하나님 여호와를 기억하라. 그가 네게 재물 얻을 능력을 주셨음이라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언약을 오늘과 같이 이루려 하심이니라.”

우리는 감사한다고 표현을 합니다. 그런데 감사는 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바라보는 것 같습니다.

우리에게 일어난 모든 일들을 감사함으로 바라보는 것, 출애굽과 광야 40년의 모든 일들을,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감사함으로 바라보는 것, 그것이 감사의 진정한 의미입니다. 그러니 마음에서 우러나와 드리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인정하는 것이 드림이요. 감사입니다.

기쁜 마음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다시 말하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목적이 있어서 드리는 것이 아닌 “감사”함으로 드릴 때 “성막”이 세워집니다.

조금 더 넓게 해석해 보면 “성막” 위에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였다고 말씀하셨고 “감사”로 “성막”이 세워졌으니 “감사”할 때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또한 성막 위에 여호와의 구름이 이스라엘의 길을 인도하였으니 “감사”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주님의 길로 인도하신다고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추수감사주일, 이 아침 우리들의 거룩한 성막, 우리들의 교회가 감사로 가득하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진정한 감사의 드림으로 우리들의 성막, 교회가 아름답고 견고하게 세워지길 소망해 봅니다.

그리고 우리들의 삶의 중심이 우리들의 성막, 우리들의 교회가 되어 우리들을 주님의 길로 인도하길 다시 한번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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