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13일  강림절 제3주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Merry Christmas! 메리 크리스마스! 이 말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네 물론 있습니다.

수전노(miser), 자린고비로 불리우는 사람들, 돈을 지키는 노예가 된, 돈을 모을 줄만 알고 쓸 줄을 모르는, 매우 인색한 사람들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영국의 작가 찰스 디킨스의 소설 크리스마스 캐롤에 등장하는 스크루지가 딱, 수전노, 삶의 기쁨을 모르는 돈의 노예였지요. 돈 때문에 사랑하는 여인과 헤어지고 혼자 외롭게, 오직 돈을 모으기만 하는 그에겐 가난한 사람들은 연민과 사랑의 대상이 아니라 한심하고 모자란 사람들일 뿐입니다.

그런 그에게 크리스마스 유령이 찾아오고 스크루지는 자신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크리스마스 유령과 함께 들여다보게 되지요. 끔찍하도록 외로운 그의 삶은, 불행한 삶일 뿐입니다. 가난한 이들을 향한 그의 인색함이 오히려 그를 더욱 불행한 사람을 만들고 있었다는 것을 그제서야 깨닫게 된 스크루지는 크리스마스 유령에게 간청합니다. "제발 한번 더 기회를 주십시오"

그가 간절하게 되찾은 그의 두 번째 삶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메리 크리스마스! 이렇게 즐거울수가 있다니! 모두 메리 크리스마스!

오늘은 크리스마스라네, 자네의 월급을 올려주도록 하겠네! 걱정하지 말게, 내가 자네의 아이들을 더 잘 돌보도록 하겠네! 석유를 좀더 사오게! 따뜻한 날이 되어야하지 않겠나!

스크루지 할아버지가 다시 찾은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기쁨입니다.

기쁘다. 구주 오셨네! 기쁜 날, 기쁨을 아는 사람들, 그들이 소망을 품은 사람들입니다.

기다리던 그 날이, 바로 오늘이라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기다리던 그 사람을 만난다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이렇게 함께할 수 있다니 기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교회에 왜 다니냐?는 물음에 “기뻐서요.” “너무 좋아서요.” 라고 대답할 수 있었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너무 좋아서 너무 기뻐서, 구원의 기쁨이 가득하여 시작된 교회가 바로 데살로니가교회입니다.

데살로니가교회는 사도바울이 2차 선교여행(A.D. 50-52년경) 때 설립한 교회입니다. 교회는 3주만에 설립되었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선교 중 유대인들의 위협을 받았습니다. 이 때 한 사람이 바울과 실라를 자신의 집에 피신시켜 주었습니다.

그가 야손이란 사람이고 헬라인이었습니다. 그로 인해 그의 가정에서 데살로니가 교회가 탄생하게 된 것입니다. 사실, 초대 교회는 모두 성도들의 가정에서 교회가 시작되었습니다. 믿음의 가정 위에 세워진 교회, 성도로 살기로 고백한 이들은 교회를 위해 자신들의 집을 내어주는 것을 당연하게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따라 산다는 것은 아마도 그래야 하는 것이라고, 그 일을 참으로 기쁨으로 여겼을지도 모릅니다. 크고 어렵고 대단한 일이 아니고요. 정말 기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야손은 바울을 도와준 일로 유대인들에게 고발을 당하게 되었고 보석금을 내고 풀려났습니다. 야손은 풀려났지만 바울은 유대인들의 방해와 간섭으로 급히 데살로니가를 떠나지 않으면 안되었고 결국 바울은 베뢰아 선교에 나섰고, 계속해서 남쪽으로 선교여행을 계속합니다.

고린도에 도착한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회의 사정이 궁금하여 견딜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디모데를 데살로니가로 파송하였고, 다시 디모데로부터 보고를 받은 뒤 고린도에서 데살로니가교회에 편지를 쓴 것이 데살로니가전서입니다.

“너희는 많은 환난 가운데서 성령의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 우리와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 그러므로 너희가 마게도냐와 아가야에 있는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었느니라. 주의 말씀이 너희에게로부터 마게도냐와 아가야에만 들릴 뿐 아니라 하나님을 향하는 너희 믿음의 소문이 각처에 퍼졌으므로 우리는 아무 말도 할 것이 없노라.”(데살로니가전서 1장 6~8절)

주를 본받는 자, 모든 믿는 자의 본이 되는 데살로니가 교회에도 환난이 있었습니다. 그것도 많은 환난입니다. 바울은 이를 알고 있었습니다. “너희가 많은 환난 가운데서 주를 본받은 자가 되었으니”라고 편지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계속된 환난, 어려움과 박해는 데살로니가교회를 뒤흔들고 점차 지쳐가는 그들에게 바울이 마지막 당부하는 말씀이 오늘 본문 말씀입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항상, 쉬지 말고, 범사에

참으로 어려운 말씀입니다. 사실 이게 가능한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바울은 명령형으로 이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가능한지 아닌지? 가늠할 일이 아니라 가능하게 하라는 말씀인 것이지요.

그래서 어떻게 가능할 수 있는지 앞서 그 말씀 또한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낮에 속하였으니 정신을 차리고 믿음과 사랑의 호심경을 붙이고 구원의 소망의 투구를 쓰자.”(5장 8절)

헬라어 성경에는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낮에 속한 사람들이므로 정신을 차려서 믿음과 사랑의 가슴막이 갑옷을 입고 구원에 대한 소망의 투구를 씁시다."

호심경은 가슴막이 갑옷입니다. 로마시대 군인들에게 필수적이었던 갑옷과 투구는 철저한 준비와 대비, 방어 도구였습니다. 싸움에 앞서 갑옷과 투구를 준비하고 갑옷과 투구 없이는 싸움에 나서지 않았습니다.

호심경에 대한 바울의 이 말씀은 에베소서에도 등장합니다.

“그런즉 서서 진리로 너희 허리 띠를 띠고 의의 호심경을 붙이고 평안의 복음이 준비한 것으로 신을 신고 모든 것 위에 믿음의 방패를 가지고 이로써 능히 악한 자의 모든 불화살을 소멸하고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 곧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 (에베소서6장 14~17절)

갑옷과 방패, 투구, 검.  이를 바울은 하나님의 전신갑주(full armor of God)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입으라.”(에베소서 6장13절)

항상, 쉬지않고, 범사에 기뻐하는 삶을 위하여 정신을 차리고 깨어 하나님의 전신갑주, 믿음과 소망, 진리와 의의 옷을 입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잘 보여주는 이야기가 바로 존 번연의 천로역정(The Pilgrim's Progress)입니다.

위 그림의 남자가 주인공 크리스천입니다. 크리스천의 달라진 점이 눈에 보이시나요?

처음에 그는 무거운 짐을 지고 있습니다. 무겁고 힘겨운 그의 짐을 지고 넘어지고 쓰러지길 몇 번, 그러나 포기하지 않고 십자가 언덕을 향해 올라가던 그는 그 무거운 짐을 벗었습니다. 그리고 그가 새로 입게 된 저 옷이 하나님의 옷입니다.

무거운 짐을 내려놓은 크리스천의 기쁨이 상상이 되시나요? 그 기쁨을 지키기 위해서는 다시 새로운 옷을 입어야 합니다.

항상 쉬지말고 범사에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기 위해서

먼저 하나님이 주신 옷을 입고 믿음과 소망, 사랑과 진리의 옷을 입고

지금 하고 있는 대로 서로 격려하고 서로를 위해 세워 주십시오. 그리고 여러분을 지도하는 이들에게 그들이 하는 일 때문에 사랑으로 극진히 존경하십시오. 서로 평화롭게 지내십시오.
서로 경고하고 격려하고 도와주며 참을성 있게 항상 좋은 일을 하려고 힘을 쓰십시오.
이것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뜻입니다.(5장 8~15절)

바울의 이 간곡한 당부가 지금 우리에게도 꼭 필요한 말씀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베드로후서를 통해 들었던 말씀이 데살로니가전서를 통해서도 이어집니다.

주의 날이 밤에 도둑 같이 이를 줄을 우리가 알고 있습니다. (5장 2절)

마침내 그 날이 도둑같이 올 것입니다.

그 때까지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평강의 하나님이 친히 우리를 온전히 거룩하게 하시고 또 우리의 온 영과 혼과 몸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강림하실 때에 흠 없게 보전되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부르시는 이는 미쁘시니 그가 또한 이루실 것입니다.(5장 23~24절)

그가 이루실 것입니다.

여러분에게 간곡히 부탁합니다. 이 편지가 모든 형제들에게 읽혀지도록 해 주십시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여러분과 함께 있기를 빕니다. (5장27~28절)

이렇게 바울은 편지를 마칩니다.

간곡한 끝인사에 등장하는 형제들에게 라는 말에 다시 주목해 봅니다. 지난 주, 우리의 소원? 우리의 소망이 무엇인지? 기억하고 계실까요?

그 소망이 바울에게는 형제들입니다. 데살로니가전서 2장 편지의 시작부분입니다.

“우리의 소망이나 기쁨이나 자랑의 면류관이 무엇입니까? 그가 강림하실 때 우리 주 예수 앞에 여러분이 아니겠습니까?” “여러분은 우리의 영광이요 기쁨입니다.”

우리의 소망과 기쁨은 여러분입니다.

우리의 소망과 기쁨이 우리의 형제들입니다.

여러분을 통해 크리스마스의 기쁨이 온 세상에 전해지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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