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월 22일 성령강림 후 마지막 주일
주님의 이름을 평안을 전합니다. 11월 넷째주일이며 성령강림 후 마지막주일입니다.
지난 한 주간 깊은 가을 길을 걸으며, 시 하나가 마음에 내려 앉았습니다.
그대 그런 사람을 가졌는가 – 함석헌
만리길 나서는 길 / 처자를 내맡기며 / 맘 놓고 갈 만한 사람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이 나를 버려 /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 / 저 마음이야 하고 믿어지는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탔던 배 꺼지는 시간/ 구명대 서로 사양하며 / 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불의의 사형장에서 / 다 죽어도 너희 세상 빛을 위해 / 저만은 살려두어라 일러줄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온 세상의 찬성보다 / 아니 하고 가만히 머리 흔들 그 한 얼굴 생각에 / 알뜰한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 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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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그런지 설명할 수 없지만 자꾸 주책없이 눈물이 흘렀습니다. 역시 가을인가 봅니다.
그런 사람...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집니다. 그런데
우리 곁에 그런 사람이 있습니다. 예수, 그 한 얼굴 생각에 모든 유혹을 물리치게 되는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이 우리요. 우리들의 그 사람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에스겔서입니다.
에스겔은 ‘하나님은 강하게 하신다’는 뜻으로, 바벨론 포로시대의 선지자입니다.

그는 제사장 가문으로 혼란스러웠던 남유다 왕국의 말기에 유다 땅에서 성장하여 청년기인 20대 중반에 유다 왕 여호야긴과 함께 바벨론으로 잡혀가(제2차 바벨론 포로, B.C. 597년경) 유다 포로들과 함께 그발 강가(티그리스 강과 바벨론 위의 유브라데 강을 연결하는 운하) 델 아빕에 거하면서 사역했던 대선지자입니다. (B.C. 593-570년).
우리에겐 환상과 비유와 상징이 가득하고 이해할 수 없는 행동들로 가득한 에스겔서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에스겔서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표현에 주목해 보아야 합니다.
‘내가 주 여호와인 줄 너희가 알리라’ 60여번이나 등장하는 이 말씀은 하나님께서 에스겔을 불러 소명을 주시고, 메시지를 주신 궁극적 목적이 포로 된 유다 백성에게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리기 위함임을 분명하게 보여 주고 있습니다.
“그들이 내가 여호와 그들의 하나님이며 그들과 함께 있는 줄을 알고 그들 곧 이스라엘 족속이 내 백성인 줄 알리라 주 여호와의 말씀이라.” (34:30)
에스겔 시대, 유다의 왕 여호야긴은(Jehoiachin) 여호야김의 아들로 유다 제19대 왕입니다. 18세에 왕위에 올라 3개월간 유다를 통치했습니다. (역대하 36:9에서는 8세에 등극한 것으로 소개되어있기도 합니다.)
그런데 그 짧은 3개월의 통치 기간, 그의 행적을 열왕기서는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야긴이 그의 아버지의 모든 행위를 따라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더라.”(왕하 24:9)
이 때 예레미야 선지자는 유다를 향하여 슬픈 예언을 쏟아내었습니다.
“네 목자들은 다 바람에 삼켜질 것이요 너를 사랑하는 자들은 사로잡혀 가리니 그 때에 네가 반드시 네 모든 악 때문에 수치와 욕을 당하리라.”
예레미야의 예언은 곧 이루어져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의 공격을 받고 유다는 패하여 여호야긴과 그의 어머니와 아내들과 신하들은 포로로 끌려가게 되고 여호야긴의 포로 생활은 37년 동안 이어집니다.
하나님이 선택한 민족, 이스라엘은 출애굽과 가나안 정복을 통해 그리고 다윗 왕이 이스라엘 왕국을 하나의 위대한 제국으로 건설한 이후 “하나님이 우리를 택하셨다”는 생각이 점차 그들 깊이 자라잡게 되었습니다.
선택된 민족, 택한 백성, 특별히 선택받았다는 그들의 생각은 어느덧 거대한 사상으로 자리잡게 되었습니다. 우리가 아는 바로 “선민사상”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자신들을 스스로 신성화하고 긍지를 넘어 우월감을 갖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민은 즉, 유다 백성은 결코 이방인들에게 멸망당하지 않을 것이며, 또 하나님의 임재 처소가 있는 예루살렘은 이방인들의 말발굽에 짓밟히지 않을 것이라 확신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그들의 행위를 점차 돌아보지 않았습니다. 그러면서 여전히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전에 계실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출애굽을 통해 시내 광야에서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그들은 그들 마음대로 해석하고 하나님께 범죄하고 회개치 않으면 멸망당할 것이라는 사실은 까맣게 잊기 시작하였습니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너는 과부나 고아를 해롭게 하지 말라
네가 만일 그들을 해롭게 하므로 그들이 내게 부르짖으면 내가 반드시 그 부르짖음을 들으리라
나의 노가 맹렬하므로 내가 칼로 너희를 죽이리니 너희의 아내는 과부가 되고 너희 자녀는 고아가 되리라 (출애굽기 22장 21~24절)
그들 중심에 만들어진 선민사상은 또다시 그들의 우상이 되어 그들은 자신들의 “악”의 문제에 둔해졌던 것이지요.
이스라엘은 범죄하였고 유다왕 여호야긴은 그의 아버지의 모든 행위를 따라서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므로
결국 바벨론의 침공을 받은 이스라엘은 다시 포로로, 노예로 전락하고 말았습니다.
바벨론의 2차 침공 때 여호야긴 왕과 더불어 포로가 된 에스겔은 바벨론의 그발 강가에서 소명을 받았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바벨론 강가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에스겔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포로의 신분, 처참한 상황에서 그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아니고 거룩한 시내산이 아니며 야곱이 돌기둥을 세워 예배한 벧엘이 아닙니다.
바벨론 강가, 성서에는 그발 강가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그발강은 유브라데 강에서 갈라져 나온 대운하가 있었고, 당시 유다 포로들은 이 일대에 거주하며 노동에 동원되었습니다.
어릴적 들었던 노래 중에 유난히 중독성이 강한 팝송이 있었습니다. 영어이다 보니 정확한 발음은 모른채 “다들이불개고밥먹어” 이렇게 흥얼거리던 노래, 그 노래가 신학을 공부하고 보니 “바빌론 강가에서”라는 슬픈 가사를 담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By the rivers of Babylon, there we sat down Ye-eah we wept, when we remembered Zion.” “바빌론 강가에서 시온을 생각하며 울었습니다.”
그 슬픔의 강가, 고통의 강가, 후회와 통한의 강가에서 에스겔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으나 그의 신분은 포로였고 그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그 모든 시간 동안도 여전히 그는 바벨론에서 포로의 신분이었습니다. 그가 선지자로 활동한 22년을 그는 바벨론에서 살았습니다.
포로로 잡혀간 처참한 상황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는 것이 어떠할지 저는 가늠할 길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 수 있는 사실 한 가지는 우리가 생각해 온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예언하는 사람들의 상황과는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의 상황과 상관없이 너무도 강력한 영감 아래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 에스겔은 먼저 유다를 향한 심판을 선포합니다.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너희 요란함이 너희를 둘러싸고 있는 이방인들보다 더하여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며 내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너희를 둘러 있는 이방인들의 규례대로도 행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나 곧 내가 너를 치며 이방인의 목전에서 너에게 벌을 내리되 네 모든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내가 전무후무하게 네게 내릴지라.” (에스겔 5장 7~9절)
“그러므로” 시작되는 하나님은 말씀은 죄의 결과라는 것을 명확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선민이라도 하나님에 대한 무지가 결국 유다 백성으로 하여금 나라를 잃고 이방의 포로가 되게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진실로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이 당신의 거룩하고 선하심을 본받아 신앙의 정결을 지키고 순결하게 살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
이런 사실을 깨우치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을 바벨론 강가에서 부르시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 주신 것입니다.
그 말씀이 바로 오늘 본문 에스겔 34장 11~16절 말씀입니다.
나 곧 내가 내 양을 찾고 찾되 목자가 양 가운데에 있는 날에 양이 흩어졌으면 그 떼를 찾는 것 같이
내가 내 양을 찾아서 흐리고 캄캄한 날에 그 흩어진 모든 곳에서 그것들을 건져낼지라
내가 그것들을 만민 가운데에서 끌어내며 여러 백성 가운데에서 모아 그 본토로 데리고 가서 이스라엘 산 위에와 시냇가에와 그 땅 모든 거주지에서 먹이되
좋은 꼴을 먹이고 그 우리를 이스라엘 높은 산에 두리니 그것들이 그 곳에 있는 좋은 우리에 누워 있으며 이스라엘 산에서 살진 꼴을 먹으리라 내가 친히 내 양의 목자가 되어 그것들을 누워 있게 할지라.
그 잃어버린 자를 내가 찾으며 쫓기는 자를 내가 돌아오게 하며 상한 자를 내가 싸매 주며 병든 자를 내가 강하게 하려니와 살진 자와 강한 자는 내가 없애고 정의대로 그것들을 먹이리라 (에스겔 34장 11~16절)
이 말씀은 다시 동사로 정리해 볼 수 있습니다.
내가 내 양을 찾고 건져내고 끌어내고 데리고 가서 먹이고 두며
내가 목자가 되어 돌아오게 하고 싸매 주며 강하게 하리라.
“내가 주 여호와인 줄 너희는 알리라” 이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눈물의 바벨론 강가에서 에스겔을 부르셨습니다.
오늘 우리의 상황이 바벨론 강가의 유다 백성과 같을 수 있습니다. 오늘이 아니어도 살다보면 우리는 저마다 바벨론 강가의 유다 백성과 같은 상황에 처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그러한 우리에게도 여전히 하나님께서는 같은 말씀을 전하고 계십니다.
“내가 너를 찾고 찾으며 어둠과 눈물의 골짜기에서 건져내고 끌어내어 내가 약속한 땅으로 데리고 가서 좋은 것을 먹이고 안전한 곳에 두리니 내가 너의 목자가 되어 쫓기는 너를 돌아오게 하고 상한 너를 싸매 주고 병든 너를 강하게 하리라.”
“내가 너의 주 여호와인줄 너는 알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