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7일  성탄 후 제1주, 송년주일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의 인사를 전하며 크리스마스의 기쁨이 오늘도 가득한 주일이 되시길 바랍니다.

크리스마스의 기쁨과 함께 오늘 본문 말씀은 아기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전하고 있습니다.

때가 차매, 하나님이 그 아들을 보내신 이유, 여자에게서 나게 하신 이유이며,

율법 즉, 유대인으로서 율법의 아래 태어나신 이유를 전하고 있습니다.

이 땅에 오신 예수, 왜? 사람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을까요? 바람과 영도 아니고, 천사와 요정도 아니며 헤라클라스도 아닌 사람으로 이 땅에 오신 이유를 갈라디아서 4장 5절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먼저, 속량하시기 위함입니다.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은 유대인들 모두, 그리고 세상의 법 아래 살아가는 우리 모두를 의미합니다. 이 세상을 살아가는 모든 이들을 속량하시려고 아기 예수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다는 것이지요. 여기서 중요한 단어가 ‘속량’입니다.

우리국어 사전에 속량[贖良]은 ‘몸값을 받고 종을 놓아주어 양민이 되게 함’이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헬라어로도 같은 의미입니다. 금전이나 노동, 심지어 생명 등을 대가로 지불하고 종의 신분을 면하고 자유인이 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대가를 지불하고 종이었던 신분에서 벗어나는 속량은 반드시 그 대가를 지불해야하는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십자가의 의미입니다. 우리들의 죄의 값, 죄로 인해 죄의 종이 될 수 없었던 우리를 속량하시러 예수는 인간의 모습으로 오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생명을 대가로 지불하여 종의 신분을 벗겨주시고 자유인이 되게 하시기 위하여 예수는 인간의 모습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 것이 두 번째 이유입니다.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속량하시려는 이유가 이미 종의 신분을 벗어나기 위함인데 궁극적인 목적은 종의 신분을 단지 벗어나는 것만이 아니라 ‘아들의 신분’을 얻기 위한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또한 아빠, 아버지라 부르게 하셨으니 그러므로 네가 이 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니 아들이면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유업을 받을 자라고 6절과 7절에 말씀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우리는 오늘도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릅니다.

아버지와 아들,

우리를 이후로는 종이 아니요. 아들이라고 말씀하시는 오늘 본문 말씀은 누가복음 15장에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돌아온 탕자를 떠오르게 합니다.

아버지에게는 아들이 둘이 있었지요. 그런데 둘째 아들이 아버지에게 자신이 받게 될 유산을 지금 당장 달라며 자신은 그 돈을 가지고 떠나겠다고 하고 아버지는 둘째 아들에게 자신의 재산을 팔아 주지요. 그렇게 둘째 아들은 떠나고 얼마의 시간이 지나 아들은 모든 재산을 낭비하고 더없이 비참한 상태가 되어 아버지께 돌아가기를 결심합니다.

돌아온 둘째 아들이 말합니다. “지금부터는 아버지의 아들이라 불릴 자격이 없습니다. 저를 품꾼들 가운데 하나로 써 주십시오.”

그런데 둘째 아들을 멀리서 알아본 아버지는 달려가서 아들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며 자신의 종들에게 말합니다. “어서 빨리 제일 좋은 옷을 가져와서 아들에게 입혀라.”

이 이야기는 성경을 알지 못하는 이들에게도 너무나 많이 알려지게 되고 또한 너무도 사랑받게 되는데요. 17세기 렘브란트의 작품 “돌아온 탕자” 때문입니다.

17세기, 네델란드의 화가 렘브란트는 부요한 집안에서 태어나 미술적 재능까지 갖추어 네델란드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화가였습니다. 그러나 그는 지위와 명성에 연연하고 허세에 가득 찬 생활을 계속하다가 결국 재산을 모두 탕진하고 맙니다. 그 후 계속되는 불행과 가난으로 지친 그가 그의 생에 마지막 무렵 혼신의 힘을 다해 그린 그림이 ‘돌아온 탕자’입니다. 둘째 아들과 같았던 자신의 삶의 고백이며 그의 초상인 이 그림에 대한 수없이 많은 해석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큰 아들과 둘째 아들, 그리고 잘 보이지 않는 어둠 속 사람들...

그러나 이 그림의 중심은 바로 '아버지'이지요. 아버지의 얼굴에 비친 환한 빛, 아들을 포근히 껴안고 있는 '아버지'

아버지는 다시 '아들'을 위해 가장 좋은 옷과 음식을 준비합니다.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주시기 위해,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아들이라 부르시기 위하여 이 땅에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내가 여호와의 명령을 전하노라 여호와께서 내게 이르시되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 (시편2편 7절)

다윗에게 전하신 이 말씀은 마태복음을 통해 이어지게 됩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태복음 3장 17절)

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받게 된 우리 모두를 향하신 하나님의 말씀이 되는 것이지요.

“아버지”, 아들이 아버지를 부르는 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겠지요. 언제 어디서나 무슨 일이 있든지 아들이 아버지를 부르는 것은 가장 자연스러운 일이며 “아버지”를 부른다는 것은 아들의 권리, 그 모든 것을 아우르는 가장 순수한 행동일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입니까?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아들, 하나님의 자녀, 유업을 받을 자들입니다.

우리가 우리를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할 수 있게하기 위하여 이 땅에 예수께서 오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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