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5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99번 나라사랑(1)
(인도자) 온 땅은 여호와를 두려워하며 세상의 모든 거민들은 그를 경외할지어다(시33:8)
(회중) 여호와께서 나라들의 계획을 폐하시며 민족들의 사상을 무효하게 하시도다
(인도자) 여호와의 계획은 영원히 서고 그의 생각은 대대에 이르리로다
(회중) 여호와를 자기 하나님으로 삼은 나라 곧 하나님의 기업으로 선택된 백성은 복이 있도다
(인도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굽어보사 모든 인생을 살피심이여
(회중) 곧 그가 거하시는 곳에서 세상의 모든 거민들을 굽어살피시는도다(시33:10-14)
(인도자) 많은 군대로 구원 얻은 왕이 없으며
(회중) 용사가 힘이 세어도 스스로 구원하지 못하는도다(시33:16)
(인도자) 여호와는 그를 경외하는 자 곧 그의 인자하심을 바라는 자를 살피사
(회중) 그들의 영혼을 사망에서 건지시며 그들이 굶주릴 때에 그들을 살리시는도다
(인도자) 우리 영혼이 여호와를 바람이여 그는 우리의 도움과 방패시로다(시33:18-20)
(회중) 여호와여 우리가 주께 바라는 대로 주의 인자하심을 우리에게 베푸소서(시33:22)
송영 _ 찬송가 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430장 주와 같이 길 가는 것
말씀 _ 고린도후서 3장 12절 ~4장 2절 이 같은 소망으로 담대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 말씀 고린도후서는 바울의 자서전이라고 불리는 서신(편지)입니다. 신약성서에 포함된 바울의 서신은 모두 13편으로 이중 최초의 서신은 데살로니가전서, 마지막 서신은 디모데후서입니다.
이 서신(편지)들은 사도 바울이 세 차례의 선교여행 중 개척한 교회들에게 보낸 편지와 사랑하는 동역자들을 위해 보낸 서신들로 구분될 수 있수 있는데 오늘의 말씀 고린도후서는 교회에 보낸 편지요. 마지막 서신으로 디모데후서는 사랑하는 제자 디모데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오늘, 고린도교회에 진심을 담은 편지를 보내고 있는 바울의 또다른 이름은 사울입니다. ‘사울’은 히브리 이름이요. 바울은 로마 이름입니다. 사울의 ‘여호와께 구하다’라는 뜻이요. 바울의 뜻은 ‘작은 자’, ‘작음’입니다.
바울은 혈통적으로는 아브라함의 씨에서 난 자요, 베냐민 지파 출신으로서 순수 히브리인이며, 난 지 8일 만에 할례를 받고 유대교와 유대 전통에 정통했던 자로 소개되고 있습니다. (롬 11:1; 고후 11:22; 갈 1:14; 빌 3:5-6)
길리기아의 다소에서 태어났고 출생시부터 로마 시민권자였습니다. (행 21~22장)
모세의 율법에 열심이었던 바울은 당대 최고 유대 학자인 랍비 가말리엘 문하에서 매우 엄격하게 교육을 받은 철저한 바리새인으로 유대교를 신봉하였습니다.
이러한 바울을 잘 보여주는 사건이 스데반의 순교 사건입니다. 바울은 스데반의 처형에 적극 가담하였고 증언을 하여 결국 스데반을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바울은 기독교인(교회)을 박해하는 데 앞장 섰던 것입니다. 달리 말하면 예수를 믿지 않았던 것이지요. 그는 성도들의 각 집에 들어가 남녀를 끌어다가 옥에 넘기는 등 교회를 ‘잔멸’하려고 했습니다. 당시 바울의 난폭함을 여실히 드러내주는 표현으로 바울은 예루살렘 교회를 핍박하는 데 그치지 않고 다메섹 성도들을 체포하기 위해 대제사장의 공문을 받아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 밝은 대낮, 정오에 노상에서 상상할 수 없었던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 예수를 믿게 됩니다.(행 9:1-9; 22:6-16; 26:12-18)
그는 밝은 빛 앞에서 일순간 시력을 잃었으며, 그렇게도 핍박하던 예수 앞에 무너졌고, 그때 이방인을 위한 '사도'로서의 사명을 부여받았습니다.(행 9:4-9; 26:12-18; 엡 3:1-8)

이후 다메섹 시내에서 주의 제자 아나니아를 만나 세례를 받고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 시력을 회복하게 되지요.(행 9:6-19)
그리고 다메섹에서 그리스도를 전파하다가 유대인들의 핍박으로 그곳을 탈출할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후 아라비아로 가서 3년 동안 신앙 훈련을 받았습니다. (갈 1:17-18)
3년 후, 바울은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서 베드로와 주의 형제 야고보를 만났습니다.(갈 1:18-19). 그러나 헬라파 유대인들의 음모로 그곳에 오래 머물 수 없었고 예루살렘에서 물러나 수리아와 길리기아 지역(바울의 고향)에서 약 10여 년의 시간을 보냅니다.(행 9:29-30)
약 13년 후 바울은 바나바의 부름을 받아 안디옥 교회에서 공동 사역하게 됩니다.(행 11:25-26).
이후 바나바의 신원 보증으로 예루살렘 교회 사도들의 인정을 받게 되어 바나바, 마가와 더불어 안디옥 교회로부터 선교사로 파송받고 1차 선교여행을 떠납니다. 그후 구브로 섬의 도시들, 소아시아의 버가, 이고니온, 루스드라, 더베 등지에서 선교합니다.
마가의 문제로 바나바와 결별하고 실라와 함께 2차 선교여행을 떠나 소아시아를 거쳐 헬라, 마게도냐 지방의 빌립보, 데살로니가, 베뢰아, 아가야 지방의 아덴, 고린도 등지에서 선교합니다.
1, 2차 선교여행 때 세운 교회들을 돌아보며 에베소에서 3년 간 목회하며 전도하는데 이것이 3차 선교여행입니다.
3차 선교여행 후 예루살렘으로 귀환하여 유대인들에게 체포되어 가이사랴에 이송되었다가 로마황제에게 재판받기 위해 로마로 향하게 됩니다. 1차로 2년 간의 로마 옥중 생활을 마치고(이때 자유롭게 복음을 전할 수 있었음, 행 28:30-31) A.D. 63년경 잠시 석방되었다가 A.D. 64년경 로마 대화재로 인한 네로의 기독교인 박해가 극에 달한 때에 다시 체포되어 A.D. 67년경 로마 인근 오스티안 가도에서 순교당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그때를 교회사가 유세비우스(Eusebius)는 67년경, 히에로니무스(Hieronymus)는 68년경으로 보고 있습니다.
긴 여정 중, 고린도교회는 2차 선교여행으로 세워진 교회입니다.
당시 고린도는 로마의 식민지 아가야 지방의 행정 수도로 바울은 이 고린도에서 1년 6개월동안 머물며 전도합니다. 디도 유스도, 그리스보를 포함한 많은 사람들을 예수께로 인도하고 디도 유스도의 집을 중심으로 고린도 교회를 형성합니다.
디도 유스도는 고린도에 사는 로마 시민으로 바울이 고린도 회당에서 유대인들에게 쫓겨나자 자기 집을 집회처로 제공하여 바울의 복음 사역에 큰 도움을 제공한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였다고 사도행전은 전하고 있습니다.(행 18:7)
그런데 오늘 바울은 눈물로 고린도 교회에 편지를 쓰고 있습니다.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떠나 있는 동안 거짓 교사들이 침입하여 ‘추천서’문제를 거론하며 바울의 ‘사도권’에 이의를 제기하였고 사이비 복음을 가르치면서 고린도 교인들의 신앙을 혼미케 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바울은 책망의 메시지를 담은 눈물의 편지를 보냈었고 고린도 교인들은 그 편지를 통하여 깨달음을 얻고 다시 본래의 교회로 회복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 들인 바울은 일단 안심하며 재차 그들의 신앙을 각성시키고 더욱 견고하게 하기 위하여 기독교인이 누구인지 요약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3장은 두 부분으로 나뉘는데 1~6절은 바울의 추천서 문제를 다루면서 옛 언약의 사역과 새 언약의 사역을 대조하여 설명하고 있습니다. 7~18절은 모세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영광을 대립하여 설명함으로써 새 언약의 영원성과 완전성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고린도 교회를 세운 바울을 향한 문제제기는 ‘추천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천거서라' 불리는 '추천서'는 당시 여러 교회에서 널리 사용하고 있었습니다. 바울도 다메섹으로 떠나기 전 예루살렘의 대제사장으로부터 공문을 받았었지요.
바울이 고린도 교회를 떠난 후 바울의 적대자들은 이 ‘추천서’를 가지고 교회에 들어 와 자신들은 예루살렘 교회의 바리새파 출신 유대주의자들로 복음의 발상지는 예루살렘이기 때문에 예루살렘 밖에서 전도하려는 사람은 자기 임무를 증명할 수 있어야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바울도 예외가 될 수 없으며 더 더욱 추천서를 무시하는 바울의 태도에 말로 그가 거짓 사도이며 사기꾼임을 증명한다는 것입니다.
이러한 혼란 속에서 바울은 자신이 ‘추천서’를 필요로 하지 않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우리가 어찌 어떤 사람처럼 추천서를 너희에게 부치거나 혹은 너희에게 받거나 할 필요가 있느냐
너희는 우리의 편지라 우리 마음에 썼고 뭇 사람이 알고 읽는 바라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추천서의 있고 없음이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은 이미 성령의 인도하심으로 고린도에 온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가운데 고린도 교인들의 마음의 감동을 받고 예수를 주님으로 영접하는 사건들이 계속되었고 그렇게 교회가 세워진 것입니다.
바울의 눈물의 사역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능력의 결과인 고린도의 성도들 자체가 바로 바울, 자신의 추천서라는 것입니다.
바울의 추천서는 인간의 기록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하나님의 편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바울의 확신은 자신으로부터 나온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로부터 나온 것이라고 바울은 고백합니다. 자신에게 무슨 힘이나 자격이 있어서 사도가 된 것이 아니라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가능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우리의 삶에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가능하게 하시는 일들이 일어나시길 소망합니다.
전에는 옛 언약(모세)의 일꾼이었던 바울이 변화하여 영, 곧 새 언약의 일꾼이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라는 것입니다.
‘사도’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가능하게 하셨다는 바울의 고백은 우리의 고백이 될 수 있습니다. ‘집사’가 된 것은, ‘성도’가 된 것은, ‘목사’가 된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께서 하신 일입니다.
이 하나님께서 전적으로 하신 일의 결과는 ‘사도’ 또는 ‘집사’ ‘목사’가 아니라 영광이 넘치는 것입니다.
정죄의 직분도 영광이 있은즉 의의 직분은 영광이 더욱 넘치리라.(3:9)
우리가 이같은 소망이 있으므로 담대히 말하노니(3:12)
우리는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들로 장차 없어질 것의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 수건을 그 얼굴에 쓴 것 같이 아니하노라.(3:13)
13절에서 바울이 설명하고 있는 장면은 출애굽기 34장의 모습입니다. 모세가 시내 산에서 여호와께서 시내 산에서 자기에게 이르신 말씀을 다 백성에게 말하기를 마치고 수건으로 얼굴을 가립니다.
‘결국을 주목하지 못하게 하려고’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관용구 ‘프로스 토 메’ ‘...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가 사용되었습니다.
모세 얼굴의 사라지는 광채는 율법이 임시적인 것이라는 사실을 나타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자기가 하나님의 완전한 계시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았고 이스라엘의 오해를 없애기 위해 수건을 썼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모세 당시 뿐 아니라 현재까지 모세의 율법에 의존함으로 하나님의 구원을 얻을 수 있다고 잘못 생각하고 있음을 바울은 14절에서 다시 설명합니다.
“그러나 너희 마음이 완고하여 오늘까지라도 구약을 읽을 때에 그 수건이 오히려 벗어지지 아니하고 있으니 그 수건은 그리스도 안에서 없어질 것이라.”
오늘 말씀의 결론부분입니다.
고린도교회에 전하고자 하는 바울의 진짜 이야기는 18절 말씀입니다.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이 말씀을 헬라어로 직역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우리 모두가 벗어 왔던 얼굴로 주의 영광을 거울로 보면서 우리가 영광으로부터 영광에 바로 그 형상으로 변화된다. 마치 주의 영으로부터인 것처럼’
‘저와 같은 형상’은 ‘그 동일한 형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되었다는 말씀에서 비롯된 것으로 타락하여 잃어버렸던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한다는 의미를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이 발급하는 ‘추천서’로 흔들리는 고린도교회에 바울은 너희가 우리의 편지라 전하며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로서 성도들에게 옛 언약과 새 언약, 모세의 영광과 그리스도의 영광의 차이를 명확하게 규정하고 결국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회복하여 영광에 참여하게 될 것이요.
이러하므로 우리가 이 직분을 받아 긍휼하심을 입은 대로 낙심하지 아니라고 이에 숨은 부끄러움의 일을 버리고 궤휼(악한 일을 행하려는 준비) 가운데 행하지 아니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혼잡케 아니하고 오직 진리를 나타냄으로 하나님 앞에서 각 사람의 양심에 대하여 스스로 천거(4:1~2)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이 모든 말씀을 ‘이 같은 소망’으로 전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소망’이 우리 가운데 함께하시고 ‘이 같은 소망’으로 담대히 살아가는 우리의 삶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찬양 _ 찬송가 515장 눈을 들어 하늘 보라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