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9일 성령강림 후 제7주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지난주에 이어 이사야서의 말씀을 전합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는 것, 그것이 예배인 것이지요.

그래서 지난 주 우리가 예배 드리는 이유는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함이며 듣기 위함이며 영혼이 살기 위함이라고 말씀을 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은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간다고 했을 때 그 하나님이 누구인지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누구신가요? 그 이름의 의미를 우리는 잘 알고 있는 것일까요?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때 이런 단어들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 여호와, 야훼, 엘로힘, 엘

하나님은 우리말로 신(神, God)을 의미하지요. 그런데 우리가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사용할 때 단지 일반적인 신의 의미가 아니라 ‘나의 하나님, 나의 주님’이란 의미로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두 개의 의미로 사용하는 하나님이라는 단어를

히브리어에서는 여호와, 야훼 / 엘로힘, 엘 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여 구분하고 있습니다. 즉, 성서의 여호와, 야훼, 엘로힘, 엘, 이 단어들은 모두 히브리어(이스라엘어) 그대로를 발음하여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엘(El)> 또는 <엘로힘(Elohim)> ‘신’(神), ‘하나님’이란 뜻으로 모든 셈족 언어에서 ‘신’을 가리키는 용어로 쓰이며 기본 의미는 ‘강한 존재’입니다.

성서에서 ‘엘’은 참되신 하나님을 가리키는 고유명사로(창 33:20 거기에 제단을 쌓고 그 이름을 엘 엘로헤 이스라엘이라 불렀더라)

또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묘사하는 데(창 17:1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사용되었습니다.

‘엘로힘’은 ‘엘’의 복수형태입니다. 그러나 형태상 복수형일 뿐 의미는 같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말씀에 사용된 단어                                                                                          여호와 [Jehovah, LORD]는 ‘스스로 있는 자’, ‘나는 나다’(I AM WHO I AM)는 뜻으로 출애굽기 3장 14절에서 그 말씀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되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서 이르기를 너희의 조상의 하나님이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면 그들이 내게 묻기를 그의 이름이 무엇이냐 하리니 내가 무엇이라고 그들에게 말하리이까
하나님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애굽기 3:13~14)

여호와는 절대자, 영원하심, 유일하심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특히 여호와는 자기 백성과의 관계를 통해 구원과 언약의 성취 그리고 당신의 신실하심과 인자하심과 관련하여 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이에 비해 ‘엘로힘’ 곧 ‘하나님’은 이방인을 포함한 모든 세계를 대상으로 하는 창조주요 통치자(지배자)로서 그 절대적인 힘과 권위를 지니신 하나님이심을 나타내는 거룩한 호칭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신성한 이름인 여호와(יהוה)는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이름을 망령되게 부르지 말라’(출애굽기 20:7)는 제3계명에 따라 엄격하게 지켜졌습니다.(레 24:16). 그래서 바벨론 포로 이후에는 거룩한 이름인 ‘여호와’를 부주의하게 부르는 불경죄를 범하지 않기 위하여 아예 그 거룩한 이름을 표기만 한 채 발음하지 않음으로써 정확한 음가(音價)가 전해지지 않고 있습니다. 따라서 한글성경에 묘사된 ‘여호와’라는 발음은 정확한 것이라 볼 수는 없습니다. 정확하게 부를 수 없는 신성한 하나님의 이름 여호와, 유대인들은 히브리어 자음자만(YHWH)을 사용하였고 대신 ‘주님’(LORD)을 의미하는 ‘아도나이’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하였으며 신약시대에는 '퀴리오스'라는 단어로 사용됩니다.

즉 여호와, 야훼의 하나님은 언약에 의한 의미가 더해진 것입니다. 나와 하나님, 그 관계 안에서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부를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주, 나의 하나님이라는 고백이 여호와라는 하나님의 이름을 사용할 때 이미 담겨 있는 것이지요.

세상에 얼마나 많은 신들이 있을까요? 얼마나 많은 신의 이름이 있을까요?

약 3만개 이상의 신과 신의 이름이 사용된다고 합니다. 세상에 이렇게 많은 신들이 있음에 놀랍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 말씀 이사야 44장 6절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강력하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우리에게 다른 신은 없습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를 때 이루어진 계약, 약속, 언약입니다. 유일하신 이, 오직 한분이신 우리의 하나님,

우리는 그 유일하신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그가 누구인지 이사야 44장에서 하나님은 당신의 목소리로 우리에게 전하고 계십니다.

먼저, 여호와는 이스라엘, 즉 그의 백성의 왕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또한 여호와는 이스라엘의 구원자이시며

여호와는 처음과 마지막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알파와 오메가)

우리의 왕이요 구원자되시며 우리의 처음과 마지막이신 여호와, 우리의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를 부르시는 그 곳에 우리가 그의 앞으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예로부터 너희에게 듣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알리지 아니하였느냐

예부터 우리에게 알리시고 듣게하신 여호와 그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나의 종 야곱, 내가 택한 이스라엘아 이제 들으라. 너를 만들고 너를 모태에서부터 지어 낸 너를 도와 줄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여호와가 누구십니까?

나를 만드신 분, 나를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만드시고 알고 계시는 분이시며

나의 도움이신 분, 그가 나의 하나님, 여호와이십니다.

수 없이 많은 사람들과 살아가고 있는데 정말 나를 아는 이가 하나 없다는 생각에 서글퍼 질 때가 있습니다. 매일 함께 살아가는 가족들 간에도 서로를 진정 알고 있는 것인지? 혼란스러울 때도 있습니다. 나를 알아 주는 이, 세상에 없다해도

하나님, 한분 만은 나를 알고 계십니다. 그 분이 우리를 알고 계십니다.

여호와는 나를 알고 계신 유일하시고 전능하신 이십니다.

그 하나님, 여호와가 우리에게 결국 전하고 싶은 말씀은 무엇일까요?

우리에게 하나님께 나아와 들으라고 명령하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 말씀을 전하기 위함입니다.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며 겁내지 말라

이러한 다른 신이 있을까요? 부르심의 이유가 우리를 위함인 것입니다.

하나님 당신을 위함이 아니고 우리를 간절히 부르신 이유가 우리 때문인 것입니다.

“나의 사랑, 나의 자녀야, 두려워하지 말아라. 겁내지 말아라. 내가 너의 하나님됨이라.”
“놀라지 말아라. 너희는 나의 증인이라.  내가 너희의 구원자됨이라.”
“다른 신이 없으니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할 것임이라.”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풀 가운데에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같이 할 것이라.”
“너희가 존귀히 여김을 받으리라.”

결국 하나님이 우리를 부르신 이유, 우리에게 들으라 명령하신 이유는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인 것입니다. 우리의 영혼이 살아나는 유일한 방법이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고 들을 때이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 내가 너희의 하나님됨이라. 이 말씀을 전하기 위하여 우리 때문에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이 누구인지 지금도 우리에게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저와 우리 모두가 듣는 오늘이 되길 간절히 바랍니다.

우리를 진정으로 사랑하시는 하나님, 여호와는

목마른 우리에게 생명의 물을, 메마른 땅에서도 시냇물이 흐르게 하시며 우리와 우리의 자손과 후손들에게 복을 부어주셔서 그들이 시냇가의 버드나무 같이 무성하게 자라게 하실 것이니

여호와는 사랑이십니다. Jehovah, God is love.

두려움을 이기는 사랑, 그것은 진정한 그 분의 사랑입니다. Love that overcomes fear, it is the true love of hi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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