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12일 성령강림 후 제 6주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이사야서입니다. 지난주 선지자에 대한 말씀을 전했었는데요. 이사야는 대선지자로, 이사야서는 대선지서의 첫 번째 책에 해당합니다.

이사야(Isaiah), 히브리어로는 ‘예솨야후’로 나타나는데, ‘구원하다’는 뜻의 동사 ‘예솨야’와 ‘여호와’를 가리키는 ‘야후’가 합성된 말로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는 의미를 갖습니다.

이는 ‘여호수아’, 신약의 ‘예수’와 그 의미가 같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B.C. 739년경부터 B.C. 680년경까지 60년 동안 활동한 선지자입니다.

결코 짧지 않는 60여년의 세월이 말해 주듯이

이사야는 유다의 웃시야,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므낫세 왕 등 5명의 왕이 통치하던 시기에 선지자 사명을 감당하였고 이 시기에 북이스라엘에서는 7명의 왕이 교체되고 호세아 왕 때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 당하게 됩니다(B.C. 722년경).

아모스, 호세아, 미가와 동시대 선지자이며 북이스라엘의 멸망을 지켜보았고 곧 다가올 바벨론의 유다 침공을 경고하였으며 예수 그리스도, 메시야에 대한 예언을 선포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 (이사야 53:5)

아하스 왕 때 발생했던 수리아와 에브라임 간의 전쟁(이사야 7:1-9)으로 유다는 극심한 재난을 겪게 됩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이보다 큰 재난을 예언하는데 지금의 어려움은 그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라며 앗수르의 침공을 경고합니다.

앗수르의 유다침공은 곧 실현되었고 이사야서 7~39장은 앗수르와 관련된 사건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와 동시에 이사야서 13~14장은 곧 앗수르보다 더 큰 세력인 바벨론이 다가오고 있다는 사실과 그 바벨론의 결국, 멸망할 것을 예언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예언은 이사야서 40~48장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B.C. 1115 - 612년경〉 앗수르제국

또한 이사야서를 1~39장과 40~66장으로 전반부와 후반부로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1~39장 전반부에는 불의하고 범죄하는 자를 향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이 선포되는데 택한 백성이라 할지라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심판 중에도 회개하는 자를 불쌍히 여기시고 구원하시는데 그것이 바로 ‘남은 자’입니다. 그리고 마침내는 ‘메시야의 오심’과 나아가 세상 마지막 날 다시 오실 메시야에 의한 심판과 구원의 실현이 이사야서 40~66장 후반부의 주제입니다.

결국 이사야서는 ‘심판’과 ‘구원’의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심판은 결코 목적이 되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목적은 ‘구원하심’에 있습니다. 심판의 경고는 구원의 시작인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간절히 소망하던 메시야,(히브리어‘기름 부음받은 자’란 뜻. 헬라어로는 ‘그리스도’)가 오실 것을 약속하고 있는 것입니다.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이사야 55:3)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우리가 예배를 드리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오늘 말씀에서 살펴보면, 첫째는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합니다.

어디에서 예배하든 예배는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벌써 여러 달을 교회에 모여 예배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집에 있다보니 좀 늦게 되고 그러다보니 예배시간을 점점 미루다보면 주일 예배를 드리지 못하게 된다는 이야기를 듣게 됩니다. 그래도 교회에 나갈 땐 시간에 맞춰 준비도 했었지만 집에 있으면 잘 안된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교회 가는 이유는 교회에 나오는 것이 목적이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함인 것을 잊지 말아야 하겠습니다. 교회에 모이는 것이 중요하지 않다는 의미가 아닙니다. 성경에는 모이기에 힘쓰라는 말씀도 분명 기록되어 있습니다. 교회는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는 예수님의 말씀도 우리는 기억합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성도, 그런 성도가 교회를 사랑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 하나님이 계시는 거룩한 장소, 그럴 때 성전(Sanctuary)이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듣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예배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배의 가장 많은 부분이 말씀에 있습니다. 500년 전, 종교개혁의 한 가지 이유, 한 가지 목적도 오직 말씀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구원의 은혜가 시작됩니다.

이 ‘말씀’을 오늘 본문 말씀 이사야서 55장 1~2절 말씀에는 물과, 포도주, 젖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물은 생명을 의미하지요, 말씀은 생명입니다. 또 포도주와 젖은 풍요를 상징합니다. 좋은 것, 기름진 것으로 표현된 말씀으로 즐거움을 얻을 것이라는 것입니다.

셋째가 영혼이 살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영혼을 믿는 이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만드시고 그 코에 생기를 불어 넣으셨으니 ‘생기’, ‘하나님의 영’으로 우리는 창조되었음을 믿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세상의 것만을 사랑할 수 없고, 세상의 법만을 따라서 살 수 없으며, 세상의 방식대로만 살아갈 수 없음이, 바로 세상은 보이는 육체, 몸만을 사랑한다면 그리스도인은 보이지 않지만 우리 안의 영혼을 믿는 이들이기 때문입니다.

신기한 것은 세상에서도 놀라운 업적을 남긴 이들을 향해 영혼의 예술가, 영혼의 사람들이라는 표현을 쓴다는 것입니다.

이 영혼을 살리기 위함이 예배의 이유입니다. 그런데 이 셋째 이유는 첫째 하나님께 나아가고 둘째 들으면 자연스럽게 이루어지는 것이기도 합니다.

“살리는 것은 영이니 육은 무익하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은 영이요 생명이라.”(요한복음 6:63) 예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영혼을 살리는 것이 우리를 살리는 것입니다. 몸을 위해 먹고 마시고 쉬는 것이 다가 아니라 진정으로 우리를 살게 하는 것은 우리의 영혼을 살리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구원이지요.

결국 우리의 예배는 날마다 우리의 구원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을 구원하신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메시야)를 이 땅에 보내셔서 2000년 전  구원의 역사를 이루신 하나님께 나아가 그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우리의 영혼이 살아나며 그 구원의 감사와 기쁨을 누리는 것이 우리의 예배입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
너희는 기쁨으로 나아가며 평안히 인도함을 받을 것이요 산들과 언덕들이 너희 앞에서 노래를 발하고 들의 모든 나무가 손뼉을 칠 것이며
잣나무는 가시나무를 대신하여 나며 화석류는 찔레를 대신하여 날 것이라 이것이 여호와의 기념이 되며 영영한 표징이 되어 끊어지지 아니하리라.(이사야 55:6-7,12-13)

이 말씀을 들음으로 우리의 영혼이 살아나길 바랍니다.

그리하여 이 예배를 통해 기쁨으로 다시 나아가며 하나님께서 인도하시는 평안의 길로 나아가길,

우리의 삶이 잣나무와 화석류(상록수)처럼 높고 푸르며 그 열매와 향기가 가득하여 여호와의 기념과 영영한 표징이 되시길 진정으로 기도합니다.

여호와를 만날 만할 때, 그 날이 바로 오늘입니다.                                                     When it is worth meeting Jehovah, that day is to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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