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9장 하늘에 가득찬 영광의 하나님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문 _ 61번 시편 142편
(인도자) 내가 소리 내어 여호와께 부르짖으며
(회중) 소리 내어 여호와께 간구하는도다
(인도자) 내가 내 원통함을 그의 앞에 토로하며
(회중) 내 우환을 그의 앞에 진술하는도다
(인도자) 내 영이 내 속에서 상할 때에도 주께서 내 길을 아셨나이다
(회중) 내가 가는 길에 그들이 나를 잡으려고 올무를 숨겼나이다
(인도자) 오른쪽을 살펴보소서 나를 아는 이도 없고 나의 파난처도 없고
(회중) 내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나이다
(인도자) 여호와여 내가 주께 부르짖어 말하기를
(회중) 주는 나의 피난처시오 살아 있는 사람들의 땅에서 나의 분깃이시라 하였나이다
(인도자)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소서 나는 심히 비천하니이다
(회중) 나를 핍박하는 자들에게서 나를 건지소서 그들은 나보다 강하니이다
(인도자) 내 영혼을 옥에서 이끌어 내사 주의 이름을 감사하게 하소서
(회중) 주께서 나에게 갚아 주시리니 의인들이 나를 두르리이다(1-7)
송영 _ 찬송가 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90장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봉헌 _ 마음을 다하여
말씀 _ 마가복음 10장 35~45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부터 교회력(敎會曆, church year)에 따라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교회력은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생애, 고난, 죽으심과 부활 등을 매주, 또는 매년 주기로 기념하고 경축하기 위해 교회에서 지켜온 교회의 달력입니다. 이 교회력에 따라 해마다 매일, 매주 말씀을 선정하여 지켜나가고 있습니다.
성령강림 후 제21주 오늘의 말씀은 마가복음 10장입니다.
예수님과 제자들은 오늘도 예수님의 예루살렘으로 향한 여행길에 함께 하고 있습니다. 예루살렘을 향해 떠나시던 그날도 예수님은 한 맹인을 치료하셨습니다.
그의 “시력이 회복되었고, 그가 모든 것을 밝히 보았다”(마가복음 8:22-26).
그러나 정작 제자들은 예수님과 함께하는 여행에서 모든 것을 밝히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임박한 죽음을 세 번 예고하셨습니다.
• 첫 번째 예고는 마가복음 8장 31절 말씀에 등장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인자가 마땅히 많은 고난을 당하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배척을 받아 죽임을 당하셨다가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셔야 한다는 것을 가르치기 시작하셨다.”
그러자, 베드로가 화를 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붙들고 나무라기 시작했다.”
“나무라기 시작했다.”는 표현이 의아해집니다. 말씀을 다시 읽게 만들기도 합니다. 분명하게 베드로가 예수님을 꾸짖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아마도 예수님의 말씀에 베드로는 너무도 당황하고 놀라서 이렇게 얘기를 했을 것입니다.
“무슨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아니, 저희가 이렇게 곁에 있는데 무슨 말씀을 이세요? 이제 예수님을 만난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죽으신다니 무슨 말씀이세요?” “그런 말씀은 하지 마십시오!”
베드로의 마음이 이해가 됩니다. 저라도 그런 마음이 들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더욱 단호하게 베드로에게 말씀하십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왜냐하면 너는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들의 일들만을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예수님은 제자들과 무리들을 계속 가르치셨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 (마가복음 8:34).
• 두 번째 예고는 마가복음 9장 31절 말씀입니다.
“인자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지고 그들은 인자를 죽일 것이며 사흘 후에 살아날 것이라.”
예수님께서 두 번째로 자신의 죽음을 제자들에게 예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 후에 예수님과 함께 가버나움으로 가는 제자들은 믿을 수 없는 논쟁을 벌입니다.
“누가 가장 크냐?” (마가복음 9:34)
제자들은 예수님과 걸으면서도 누가 크냐? 논쟁을 할 뿐입니다. 제자들은 “누가 크냐?” “누가 가장 높은 사람이냐?” 때문에 밝히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도 “누가 크냐?” 때문에 정작 보아야 할 것을 밝히 보지 못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마가복음9:35).
그리곤 어린아이 한 명을 데리고 오시더니 그들 가운데 세우신 다음 팔로 꼭 껴안으시며 이렇게 가르치셨습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받아들이는 사람은 나를 받아들이는 것이다.”
우리들이 어느때든지 높아지고 싶어지는 순간에는 작은 어린아이를 꼭 껴안으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꼭 기억하시길 기도합니다.

•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 예고는 오늘의 말씀 바로 앞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보라, 우리는 예루살렘으로 올라가고 있다. 거기에서 인자는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에게 넘겨질 것이며 그들은 인자에게 사형 선고를 내릴 것이며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 조롱하고 침 뱉고 채찍질하고 난 다음 죽일 것이다. 그러나 인자는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날 것이다.”
여기서 지난 주까지 말씀을 전했던 사도 요한이 그의 형제 야고보와 함께 등장합니다. 기억하시는지요? 여기 등장하는 야고보가 예수님의 12제자 중 최초의 순교자입니다.
그런데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것을 완전하게 무시하면서 다음과 같이 예수님께 이야기를 합니다.
“선생님, 우리가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우리에게 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선생님께서 영광스럽게 되실 때 우리 중 하나는 선생님의 오른쪽에, 하나는 왼쪽에 앉게 해 주십시오.”
요한과 야고보는 “주의 영광 중에서” 높은 곳에 앉게 해달라고 예수님께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열두명 중 첫째와 둘째...
요한과 야고보, 제자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이해하지 못하였습니다. 세 번이나 수난을 예고하셨고 또 그 후의 제자도에 관해 가르치셨지만 예수님은 사람들이 기대했던 메시아와 매우 다르셨기 때문에 그들은 “그것을 이해하지” 못할 뿐이었습니다.
그들의 시선은 한 곳에만 집중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듣고 바라왔던, 사람들이 기대했던대로 바라본 것이지요. 정작 지금 메시아가 그들 앞에 서 계셨으나 그들은 그를 밝히 보지 못할 뿐입니다.
신학자 프란스(R.T. France)는 그들이 밝히보지 못한 이유를 “그들이 이해했고 좋아한 예수의 말씀의 일부에 집착해서, 나머지 말씀을 편리하게 지워버린 것”이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보고싶은 것만 보고, 듣고싶은 것만 들으려는 태도로는 결코 말씀을 완전하게 이해할 수 없습니다. 성경이, 말씀이 전하고자 하는 내용에 집중하려는 진정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그 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가복음10:44)
우리가 당신의 우편에 앉게 해주십시오.
“주의 영광 중에서 우리를 하나는 주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게 하여 주시옵소서” (마가복음10:37).
“우리가 앉게 허락해 주십시오.” 그 시대와 그 장소에서 사람들은 항상 잔치나 축제에서 식사를 할 때, 식탁에 둘러앉곤 하였습니다. 야고보와 요한이 예수의 영광 중에서, 그의 우편과 좌편에 앉기를 간청했을 때, 그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상상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께 요구할 수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께 요구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요구가 잘못된 것은, 그들은 예수의 계획에 맞추기 위한 것이 아닌, 그들의 계획에 예수님을 맞추기 위해 요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야고보와 요한은 예수님의 다가오는 죽음에 대한 예고를 알아듣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그들의 예루살렘 여행을 예수님께서 이전에 다윗왕의 영광을 회복해서 다윗왕의 보좌에 앉으시기 위한 메시아 행진으로 이해했던 것입니다.
믿고 부자가 되라는 호소로 사람들에게 다가가는 번영복음이 여전히 우리를 밝히 보지 못하게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가 번영하기를, 왕이 되기를 원하신다고 가르치면서, 우리에게 많은 돈을 벌고, 첨단 기기들을 즐기고, 가장 유행하는 차를 소유하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예수님을 오해할 수 있을까요?
무엇 때문에 그들은 십자가를 지는 것과 섬김과 희생에 관한 예수님의 가르침을 듣지 못하는 것일까요?
우리 자신의 기도를 돌아보아도 이들의 간청과 비슷한 것을 많이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의 기도가 경배와 찬양을 강조하고 있는지요? 감사를 강조하고 있는지요? 고백을 강조하고 있는지요? 우리의 기도가 이제, 달라지기를 기도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야고보와 요한을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에 예수는 그들의 행동을 가르침의 새로운 발판으로 사용하십니다. 예수는 다시, 하나님의 나라에 관해, 하나님나라의 규칙에 관해, 하나님나라가 어떻게 작동되는가에 관해 그들을 가르치십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diakonos)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 (doulos) 이 되어야 하리라” (마가복음43-44절).
하나님의 나라에서 영광은 다른 사람들의 섬김을 강요하는 사람들보다 섬기는 사람들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섬기는 사람들, 헬라어로 디아코노스(diakonos)는 상에서 기다리는 사람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또 상은 모든 사람들의 종(doulos)에게 돌아갈 것입니다. 이것이 하늘나라의 법칙이며 영광입니다. 이 말씀은 마가복음 9장 35절에서의 예수의 말씀과 완전하게 일치합니다.
"누구든지 첫째가 되고자 하면 뭇 사람의 끝이 되며 뭇 사람을 섬기는 자가 되어야 하리라."
예수님은 하나님이 권력보다 섬김을 더 귀중하게 여긴다고 말씀하시면서 우리에게 다른 윤리를 요구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여기에서, 지금, 하나님 나라의 규칙을 따라 살아가라고 요청하고 계십니다.
인자는 또한 섬기러 왔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섬기려 하고” (마가복음 10:45).
섬김을 영어성경은 서비스(service)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섬김을 “사랑”이라는 단어로 바꾸어 이야기하여도 그 의미가 통하는 것 같습니다.
만일 내가 참으로 한 사람을 사랑한다면 나는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세계를 사랑하고 삶을 사랑하게 된다.
만일 내가 어떤 사람에게 ‘나는 당신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다면 ‘나는 당신을 통해 모든 사람을 사랑하고 당신을 통해 세계를 사랑하고 당신을 통해 나 자신도 사랑한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랑의 기술_에리히 프롬)
“인자가 온 것은 사랑을 받으려 함이 아니요 도리어 사랑하려고”
섬김의 다른 말은 사랑인 것 같습니다.
"서로 사랑하여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처럼 너희도 서로 사랑하여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그것으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복음 13:34~35)
우리가 높아지고 싶을 때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을 기억하시길,
우리가 더 높아지고 싶어질 때마다 예수님께서 작은 아이를 꼭 껴안아 주셨음을 기억하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기도합니다.
찬양 _ 찬송가 510장 하나님의 진리등대
주기도문(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