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8장 거룩거룩거룩 전능하신 주님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124번 사순절 (1)

(인도자)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회중)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인도자)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회중)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인도자)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회중)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시22:1-5)
(인도자) 나를 멀리 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까우나 도울 자 없나이다(시22:11)
(회중)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인도자)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회중) 여호와여 멀리 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시22:16하-19)
(인도자)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회중)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인도자)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회중)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시22:21-23)

송영 _ 찬송가 3장 성부 성자와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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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150장 갈보리 산 위에

말씀 _ 마가복음 1장 9~15절

마가복음은 1장 1절을 통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을 마가복음의 제목으로 삼아 세례요한의 선포를 가장 먼저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말씀 9절부터 15절은 3개의 내용이 이어집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다.(9-11)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시다.(12-13)

갈릴리 전도를 시작하시다.(14-15)

이렇게 내용을 나누고 보면 예수님의 목소리가 들리는 장면이 ‘꽤 긴 시간이 흐른 후’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15절 말씀입니다. “이렇게 말씀하셨다.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다.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라.”

15절 예수님의 말씀이 세상에 들리기까지 예수께서는 세례를 받으셨고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15절에서 예수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면 우리는 11절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매우 좋아한다.”

예수님은 세례를 받으시며 성령이 자신에게 내려오는 것을 보았고 하나님 아버지의 음성을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예수님을 광야로 내보내셨습니다. 40일 동안의 시험을 받으신 후 마침내 예수는 자신의 목소리를 세상에 전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도 이와 같은 길을 걷게 되지 않겠습니까?

세례요한의 선포를 듣고 즉, 예수에 관하여 하나님의 나라에 관하여 듣고

세례를 받아 “너는 나의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거듭나

우리에게 허락하신 시험을 통해 마침내 세상에 우리의 목소리를 전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모든 과정을 우리의 '때가 차고 있다'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저와 여러분이 이 분명하고도 아름다운 과정을 깨달으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저는 오늘 본문 중 특별히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시는 장면에 등장하는 인물들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마가복음에 등장하는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시는 장면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과 매우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상대적으론 긴 본문으로 시험을 받으시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면 마가복음 시험의 내용은 없고 낯선 등장 인물을 전하고 있습니다. 사실, 인물이라고 할 수 없을 것 같기도 합니다. 예수님을 제외하곤 모두 ‘사람’이 아닌 것들이 등장하기 때문이지요. 성령, 사탄, 들짐승, 천사가 그것입니다.

성령

영 또는 성령을 뜻하는 프뉴마(pneuma)는 마가복음에서 23회 등장합니다. 6회는 성령을, 3회는 인간의 내적인 정신을, 14회는 악한/더러운 귀신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예수는 성령으로 세례를 베푸실 것이다(1:8)
성령이 예수의 세례 시에 하강한다(1:10)
성령이 예수를 광야로 몰아낸다(1:12)
성령을 모독하는 자는 용서받을 수 없다(3:29)(성령을 악령이라고 부르는 것도 여기에 해당된다. 참조 3:30)
다윗이 성령으로 말미암아 말했다 (12:36)
성령이 잡혀간 제자들을 통해서 말하게 될 것이다(13:11)

오늘 본문에서 성령의 역할은 우리로 신명기를 생각하게 합니다. 신명기에서 백성들의 마음을 알기 위해, 즉, 그들이 마음과 영혼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지 여부를 알기 위해 시험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성령은 다윗에게 말하는 권위를 제공하였고, 성령은 잡혀간 제자들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선한 방향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사탄

“사탄”은 “적대하다, 반대하다”를 뜻하는 히브리어 동사에서 유래한 것입니다. 구약성서에서 명사는 지상의 존재인 “대적자”를 뜻합니다. 그러나 역대상 21:1, 욥기 1장, 2장, 스가랴 3:1,2에서 이 단어는 천상의 존재를 가리키며, “사탄”으로 음역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70인역에서 히브리어 사탄은 마가복음에서는 등장하지 않는 단어인 디아볼로(diabolos “비방하는 자, 악마”)로 항상 번역되었습니다.

사탄Satan이 광야에서 예수를 시험한다(1:13)
예수께서 “사탄이 어찌 사탄을 쫓아낼 수 있는냐?”(3:23)고 묻는다.
“만약 사탄이 자기를 거슬려 일어나 분쟁하면 설 수 없고 망하느니라”(3:26)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대한 설명에서)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4:15)
사탄아, 내 뒤로 물러가라!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사람의 일을 생각하는도다”(8:33).

마지막 마가복음 8장 말씀에서 “사탄”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는 사람, 즉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목적을 성취하는 예수(또는 우리)의 길을 방해하는 사람으로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사탄’은 자기를 거슬려 일어나 분쟁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충분히 알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사탄의 목적과 역할은 하나님의 말씀을 빼앗아 가는데 있습니다.

마음이 “너무 냉담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쉽게 뿌리내리지 못하는 사람들에게서 그 일을 쉽게 할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삶에 뿌리를 잘 내리지 못하면 그 때 우리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목적을 알 수 없게 되고 그로인해 사탄이나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그 목적으로부터 멀어지게 하는 것이 쉬워지게 됩니다.

들짐승들

들짐승은 모든 복음서들에서 중, 마가의 시험기사에서만 나옵니다. 야생 동물이나 짐승을 가리키는 이 단어는 사도행전 28:4-5에서 바울을 물었던 독사에게 사용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에서는 하나님 대신에 숭배된 “짐승”(로마제국)을 언급할 때 사용하고 있습니다.

“들짐승들”을 이해하는 두 가지 일반적인 방법이 있습니다. 위험과 방해입니다.

우리는 그들이 광야에 있는 예수에게 더 위험했다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예수가 이 세상에서 사역을 수행하는 것을 방해하고자 하는 존재들입니다.

여기서 “광야”는 물리적 공간만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위험”하고 우리를 “방해”하고자 하는 이들이 있는 곳이 광야입니다. 그런데 왜 광야에서 그것들과 함께 지내야 할까요? 그것은 더 이상 그것들을 두려워 할 것이 없다는 것을 알기 위함입니다.

광야엔 사탄과 들짐승만 있는 것이 아닙니다. “천사”가 예수를 그리고 우리를 시중들기 때문입니다.

천사들

“천사”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엥겔로스(aggelos)와 히브리 단어 말라크(mal'ak)는 둘 다 “메신저”라는 기본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우체국과 팩스, 이메일이 생기기 전에는 이 땅의 통치자들이 다른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하기 위해 메신저들이 필요했던 것처럼, 하나님께서 이 땅에 거룩한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는 하늘의 메신저들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 단어는 오늘 본문 외에도 마가복음에서 5회 등장하고 있습니다.

말라기 3:1을 인용하는 1:2  “내가 내 사자(messenger)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길을 준비하리라.”
그들은 인자가 아버지의 영광으로 와서(8:38) 택한 자들을 모을 때(13:27) 수행단의 일부가 될 것이지만 그들은 그 때가 언제인지를 알지 못한다(13:32).
다시 살아난 죽은 자들은 천사들같이, 장가도 아나하고 시집도 아니 갈 것이다(12:25).

천사에 대한 종말론적 강조는 들짐승과 함께 계시는 예수의 모습에서 다가오는 평화의 왕국을 보게 된다는 것을 암시하는 것 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들짐승들”과 “천사들” 사이를 대조했을 가능성이 더 커 보입니다.

또 여기서 “천사들”은 섬기는 사람들로 규정할 수 있습니다. ‘천사’의 존재가 무엇이냐?보다는 천사들이 그의 시중을 들었다는 것에 주목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10:45)라 말씀하셨다 할지라도. 이 표현이 사용된 모든 사례에서 예수는 천사들에게 섬김을 받고 계십니다.

루터교 성찬 예배는 “평안히 가서, 주님을 섬기십시오”라는 인사를 끝으로 나눈다고 합니다. 우리가 누군가를 섬기고 있을 때, 그 때 우리는 '천사'가 됩니다.

우리는 광야에서 “들짐승들”과 함께 지내지만 또한 “천사들”을 만나게 됩니다. 아직 그러한 경험이 없으신가요?

아직 “천사들”을 만나지 못하셨다면 먼저 “천사”가 되어 보십시오.

사순절은 하나님이 정하신 십자가의 길을 가시는 예수를 지켜보는 절기입니다. 그 길에는 예수님을 다른 길로 인도하려는 사람들, 즉 사탄과 “들짐승”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길에 “천사들”이 시중들 것입니다.

예수께서 이러한 '시험'을 통과하면서 예루살렘에서 자신의 사명을 수행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마침내 세상에서 외치게 될 것입니다. 그 길에는 반드시 그를 섬기고 그의 필요를 도와줄 사람들이 있습니다. 사순절 기간 동안 우리 각자의 여정이 그렇게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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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