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21장 다 찬양하여라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문 _ 56번 시편128편

(인도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길을 걷는 자마다 복이 있도다
(회중) 네가 네 손이 수고한 대로 먹을 것이라 네가 복되고 형통하리로다
(인도자) 네 집 안방에 있는 네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으며
(회중) 네 식탁에 둘러 앉은 자들은 어린 감람나무 같으리로다
(인도자)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이같이 복을 얻으리로다
(회중)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네게 복을 주실지어다
(인도자) 너는 평생에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며 네 자식의 자식을 볼지어다
(회중) 이스라엘에게 평강이 있을지로다(1-6)

송영 _ 2장 찬양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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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300장 내 맘이 낙심되며

봉헌 _ 마음을 다하여

말씀 _ 마가복음 10장 46~52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지난주에 이어 마가복음 10장의 마지막 부분에 해당합니다. 이 사건 이후에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에 들어가시고 십자가의 길을 준비하시게 됩니다.

신학자, 버논 K. 로빈스(Vernon K. Robbins)는 이 사건이 마가복음에 등장하는 마지막 치유라는 것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무엇이든 마지막이라는 단어에는 크고 숨겨진 의미를 담고 있는 것 같습니다. 마지막 인사, 마지막 눈물, 마지막 잎새... 마가복음에서 전하는 마지막 치유사건의 주인공은 바디매오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사람, 바디매오

바디매오(Bartimaeus)는 사실, 이름이 아닙니다. ‘디메오의 아들’이란 뜻이지요. 바(Bar)는 아람어로 아들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바디매오는 디매오의 아들로 알려져 있었으며 여리고에 살고 있었습니다. 여리고에 살고 있던 그는 볼 수 없는 소경이었습니다. 마가는 바디매오를 ‘눈먼 거지’라고 소개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여리고로 갔다. 예수님과 그의 제자들이 많은 무리와 함께 여리고에서 떠나가실 때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마가복음10:46)”

디매오(Timaeus)는 ‘명예’란 뜻입니다. 이름과 어울리지 않은 그의 상황은, 그가 예수님을 만날 순간에 대한 긴장감을 높여주는 것 같습니다.

그가 과연 예수님을 만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지? 그가 예수님을 만난 후 어떻게 변화될지? 그가 처한 상황은 다르게 생각해 보면 변화와 미래에 대한 기대감을 높여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지금, 다른 이들보다, 남들보다 어려운 상황에 힘들어 하고 계신가요? 다들 잘 살고 있는데 나만 이렇게 힘든 것처럼 느끼고 계신가요?

그렇다면 “바디매오”, 그의 변화를 상상해 보십시오. 그의 변화, 그의 미래, 그의 삶이 얼마나 놀라운 반전(Reversal)을 담고 있었는지? 상상해 볼 수 있다면 우리에게 필요한 유일한 한가지는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는 것” 뿐이지 않을까요?

오늘, 저와 여러분이 예수님을 진정으로 만나는 그날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오늘 이야기의 중요한 열쇠는 47절의 “나사렛 예수시란 말을 듣고”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의 마지막 치유 사건은 “나사렛 예수시다.” 라는 말을 들은 그 순간 시작됩니다.

이 기적의 장면에서 없어서는 안될 두 사람이, 하나는 “나사렛 예수시다.” 외치는 사람이요.

또 하나는 “예수”라는 말을 들은 사람입니다. 눈먼 사람, 소경 바디매오가 “예수시다”라는 말을 들은 사람인 것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예수시다.” 외친 사람일까요?

바디매오가 듣기를 기대했는지? 누군가 외쳤습니다. “예수시다.”

외치는 사람, 누군가가 들을는지, 또 듣지 않을는지 알 수 없지만 성경은 이 “외치는 사람”을 매우 의미심장하게 전하고 있습니다.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세례 요한”의 또 다른 이름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전, 예수님께서 갈릴리에서 제자들을 부르시기 전에 요한은 “외치는 자”였습니다. 그의 외침은 광야에서도 이어집니다. “나보다 더 능력이 많으신 분이 내 뒤에 오신다. 나는 허리를 굽혀 그분의 신발 끈도 풀어 드릴 자격도 없다. 나는 너희에게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분은 너희에게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은 후에 예수님께서 그의 길을 걷기 시작하셨습니다.

“예수시다.” 외치는 자를 통하여 소경 바디매오의 기적이 시작됩니다. 누가 외치는 자입니까?

마가복음은 외치는 자의 이름을 기록하고 있지 않지만, 그 외치는 자를 통하여 예수님의 마지막 기적이 일어났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우리 시대에는 누가 외치는 자일까요?

저와 여러분이, 우리 교회와 한국 교회가 외치는 자의 소리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렇게 바디매오는 외치는 소리를 들었고 그의 반응은 다음과 같이 이루어 집니다.

  1. 외치기 시작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2.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서 갔다.

3. 예수님의 질문에 대답했다.

4.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다.

“예수시다.”라는 말을 듣고는 바디매오는 외치기 시작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사람들은 바디매오를 꾸짖었습니다. 그도 그럴것이 예수님과 제자들, 그리고 그 주변은 수 많은 사람들이 무리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 거대하고 웅장한 행진에 바디매오의 외침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거기다 소경에 거지인 그가 소리를 지르니 많은 사람들이 바디매오를 행해, 조용히 하라고 나무랐을 것입니다. 그런데 바디매오는 사람들이 꾸짖어도 더욱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그의 외침은 거대한 무리를 뚫고 예수님께 전해집니다.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기도가 이와 같은 것입니다. “주님, 우리를 불쌍히 여겨주십시오. 주님, 우리를 긍휼히 여겨 주십시오!”

지금, 우리도 큰소리로 외쳐 부를 수 있습니다. 나의 연약함을 아시는 분, 나의 궁핍과 상처, 아픔을 아시는 분, 예수님을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다고 생각하는 그 순간에도 우리는 외쳐 부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어 예수님을 외쳐 부르는 순간, 도리어 기적이 시작되는 순간일지도 모릅니다.

예수님께서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걸음을 멈추시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를 불러오라!”

예수님이 말씀하시니 바디매오를 꾸짖던 사람들이 바디매오를 부르며 말합니다. “용기를 내어 일어나라! 예수님께서 너를 부르신다.!”

그러자 바디매오가 벌떡 일어나 예수님께로 갑니다. 망설임없이, 예수님께로... 보이지 않는 그가 벌떡 일어나 겉옷을 벗어 던져 버리고 걸어갑니다.

무리가 홍해같이 갈라졌을 것입니다. 바디매오가 한 걸음 한 걸음을 내딛을 때마다 거대한 무리는 양쪽으로 갈라져 홍해같았겠지요. 그의 걸음에 두려움은 사라지고 그는 이미 달라졌습니다.

몇 걸음을 걸었을까요? 홍해처럼 갈라진 거대한 무리의 틈에 예수님과 바디매오가 대면합니다. 그는 예수님을 볼 수 없지만 그는 알고 있습니다. “곧, 예수님을 보게 될 것이다.”

바디매오에게 예수님께서 물으십니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해주시기를 바라느냐?”

그가 대답합니다. “내가 다시 볼 수 있게 해 주십시오.”

이에 예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러자 그는 즉시 보게되었습니다.

저는 이와 같은 장면을 읽을 때마다 이런 생각이 들곤 하였습니다. 이렇게 싱겁게? 이렇게 간단하게? 이렇게 끝이 난다고? 뭔가 엄청난 설명이 있을 것이란 제 생각은 늘 무참히 깨지고 성경은 이렇게 간단하게 결론을 보여줍니다.

이것이 믿음의 사람들이 기적을 바라보는 시선이어야 하는구나!라는 생각이 이제야 들었습니다. 요란스럽지 않고 화려하지 않게 기적은 일어나는 것입니다. 대단한 것 같은 결론은 그 과정을 통해 자연스러운 것일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기적은 삶으로 이어지기 마련입니다.

기적이 기적으로 멈춘다면 그것은 악몽일 뿐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바디매오는 눈을 떴고 그는 다시 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섰습니다.

이것이 오늘 마지막 이야기입니다. 그는 예수님과 길을 나섰습니다. 마가복음의 마지막 치유 사건은 이렇게 다시, 또다른 이야기의 시작이 됩니다.

길가에 앉아 있던 바디매오, 그는 이제 예수님을 따라 길을 나섭니다.

우리, 아직 길가에 앉아만 있는지요?

오늘, 마가복음을 통해 예수님을 만나셨다면?

이제, 우리 예수님을 따라 복음의 길을 걸어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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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주기도문(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