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35장 큰 영화로신 주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129번 종려주일
(인도자)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회중) 예루살렘의 딸아 즐거이 부를지어다
(인도자)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나니 그는 공의로우시며 구원을 베푸시며
(회중) 겸손하셔서 나귀를 타시나니 나귀의 작은 것 곧 나귀 새끼니라
(인도자)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회중)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인도자)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회중)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슥 9:9-10)
(인도자) 앞에서 가고 뒤에서 따르는 무리가 소리 높여 이르되
(회중)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 찬송하리로다
(다같이) 주의 이름으로 오시는 이여 가장 높은 곳에서 호산나 하더라(마 21:9)
송영 _ 찬송가 4장 성부 성자와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154장 생명의 주여 면류관
말씀 _ 마가복음 11장 1~11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우리가 오늘을 ‘종려주일’로 부르게 된 이유에 관한 장면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러자 수많은 사람들이 자기들의 겉옷을 길에 폈고 또 어떤 사람들은 들에서 잎이 많은 나뭇가지들을 꺽어다 길에 펴서 깔았다.”(11:7)
종려나무를 알고 계시나요? 종려나무는 모르셔도 야자나무는 알고 계실 것 같습니다. 야자나무가 종려나무입니다. 좀더 정확하게는 대추야자나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종려주일은 영어로는 Palm Sunday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요한만이 종려나무(phoinix)의 가지들[baion]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에서 제자들은 들(agros)에서 나뭇가지(stibas)를 베어오고 마태복음에서, 그들은 나무들(dendron)의 가지들(klados)를 가져옵니다. 그리고 누가복음에서는 어떤 종류의 가지도 언급하지 않습니다.
무리들이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이든지 간에, 그것들은 무슨 뜻일까요? 구약성서에서는 이와 같은 것이 모습이 나오지 않습니다.
한 가지 의견은 요한이 묘사한 행동은 사람들이 감람나무 가지와 화석류 나무 가지와 종려나무 가지를 가져오는 장막절 행렬을 닮았다는 것입니다. 원래 이 가지들은 초막을 짓는데 사용되었습니다.(느헤미야 8:13-18). 그리고 몇 가지를 루랍(lulab)이라고 불린 축제의 깃털로 묶고 시트론(citron, 오렌지의 일종)을 추가하였습니다. 루랍은 기쁨의 상징이었고, 매일 할렐 시편(시편113-118편)을 부르는 의식동안에 그것을 들고 있었습니다.
또 다른 의견은 이것을 마카베오상하와 연관 짓는 것인데 아래의 인용은 한글 공동번역 개정판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마카베오상 13:49-52 -- 예루살렘에 있는 이방인 요새의 점령
그 동안 예루살렘 요새 안에 있던 자들은 시골을 왕래하면서 물건을 사고파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기 때문에 몹시 굶주려 많은 사람이 굶어 죽었다. 그들은 소리를 지르며 시몬에게 화평을 청하였다. 시몬은 그 요청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그들을 요새에서 추방하고 요새의 온갖 더러운 것을 치워 깨끗이 했다.
백칠십일년 이월 이십삼일에 유다인들은 종려나무 가지[baion]를 흔들며 환호 소리도 드높게 비파와 꽹과리와 거문고 소리에 맞춰 찬미와 노래를 부르면서 요새 안으로 들어왔다. 민족의 큰 적이 참패를 당하고 이스라엘 땅 밖으로 쫓겨 간 것을 축하하는 것이었다. 시몬은 매년 이 날을 경축일로 정하였다. 그리고 요새 가까이 있는 성전 산의 방비를 더욱 굳히고 부하들과 함께 그 안에 살았다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오시기 오래 전, 예루살렘에선 마카비 운동이 있었습니다. 기원전 166-160, 셀류쿠스 왕조에 의한 헬라 문화와 우상숭배에 반대하여 예루살렘의 마카비가 주도하여 승리를 거두어 성전을 탈환하고 율법의 규례대로 성전을 정화시켰습니다. 이것을 ‘마카비 혁명’이라고 합니다. 즉, 마카베오서에 나오는 종려나무 가지의 용도는 군사적인 승리와 관련이 있었습니다.
예루살렘에 모인 무리들이 예수께 기대하고 있던 것은 무엇일까요?
그들은 나뭇가지를 꺽어 예수께서 가시는 길에 깔고 소리쳤습니다. “호산나,” “호산나”, “호산나”
호산나(Hosanna)는 히브리어 호쉬아-나에서 파생된 말로, 그리스어로 음역되면서 호산나가 되었습니다.
'호쉬아'는 구원이라는 뜻으로 호세아나 여호수아와 같은 어원에서 온 말입니다. '나'의 경우엔 지금이라는 뜻으로 ‘호쉬아-나’를 직역하면 '지금 구원하소서'라는 뜻이 됩니다.
시편 118편 25절(공동번역)의 "주소서, 야훼여, 구원을 주소서. 주소서, 야훼여, 승리를 주소서."에서 '구원을 주소서' 부분이 호산나에 해당합니다.
이는 본래 절박한 호소이며, 대략 '도와주세요!'라는 의미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출애굽과 광야의 40년을 기억하였습니다. 그것이 장막절(초막절)입니다.
“일주일간 진행되는 장막절에 사제들은 일곱 번째 날, 일곱 번에 걸쳐 번제물을 바치는 제단 주위를 돌며 비를 청하는 호소로서 이 말을 단순하게 반복했다. 하지만 초막절이 청원의 축제에서 기쁨의 축제로 바뀌었듯이 이 청원의 외침 또한 점점 환호로 변화되었다.”<요제프 라칭거(=베네딕토 16세) 지음, 이진수 옮김, "나자렛 예수 2권"(Jesus von Nazareth II)>
즉 “우리를 구하소서”(누가복음에는 이 외침의 부분이 없습니다.)라고 외칠 때, 그 “구원”이 마카베오의 구원과 같은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다시 말해, 예루살렘에서 점령군을 쫓아내는 것이라고 생각했을까요? 만약 그렇다면 그 때 예수는 그들의 기대에 미치는 데 불행하게도 실패한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떠하신가요? 어떤 마음으로 “호산나”를 외치고 계신지요?
오늘 본문 말씀 마가복음 11장은 예수의 마지막 일주일이 시작되는 부분입니다. 그리고 마가복음 15장에서 예수의 마지막 일주일이 끝이 납니다. 마가복음의 마지막 16장은 부활하신 예수의 이야기와 승천의 이야기로 마가복음이 끝이 납니다.
종려주일은 사순절 제6주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내일이 고난주간이 시작되고 우리는 다음주 부활절을 맞이하게 됩니다.
종려주일은 예수께서 “고난”을 준비하실 때에 무리들은 “승리”를 외쳤음을, 예수의 뜻과, 무리의 뜻이 달랐음을 알게 해 줍니다.
그래도, 예수께서 우리를 ‘구원’하셨고 그것은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그러니 고난주간 만큼은 예수와 함께 예수의 마지막 일주일을 살아가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찬양 _ 찬송가 144장 예수 나를 위하여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