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0장 전능왕 오셔서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문 _ 15번 시편 27편
(인도자) 여호와는 나의 빛이요 나의 구원이시니 내가 누구를 두려워하리요
(회중) 여호와는 내 생명의 능력이시니 내가 누구를 무서워하리요
(인도자) 악인들이 내 살을 먹으려고 내게로 왔으나
(회중) 나의 대적들, 나의 원수들인 그들은 실족하여 넘어졌도다
(인도자)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회중)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
(인도자) 내가 여호와께 바라는 한 가지 일 그것을 구하리니 곧 내가 내 평생에 여호와의 집에 살면서
(회중) 여호와의 아름다움을 바라보며 그의 성전에서 사모하는 그것이라
(인도자)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회중)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
(인도자) 이제 내 머리가 나를 둘러싼 내 원수 위에 들리리니
(회중) 내가 그의 장막에서 즐거운 제사를 드리겠고 노래하며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1-6)
송영 _ 찬송가 4장 성부 성자와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88장 내 진정 사모하는
봉헌 _ 마음을 다하여
말씀 _ 마가복음 12장 28~34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서기관의 질문으로 시작됩니다.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입니까?”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왜? 어떻게? 무엇을? 그러나 잘 생각해 보면 묻는 이들의 숨겨진 의도가 있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정말 알고 싶어서 묻는 경우도 있지만 알고 싶지 않으면서 논쟁을 위해 묻기도 하지요. 소위 시험하기 위해 묻는 것입니다.
사실, 마가복음 12장, 오늘의 말씀 전에 이미 예수님과 많은 논쟁 있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시험하기 위해 묻고 또 물었는지 마가는 11장 27절부터 12장 37절까지 하나하나 전하고 있습니다.
- 11:27-33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과 장로들의 권위에 관한 질문
- 12:1-12 포도밭 주인과 농부들의 행위에 관한 비유 (예수님의 질문/ 포도밭 주인이 어떻게 하겠느냐?)
- 12:13-17 바리새인들과 헤롯당의 세금에 관한 질문
- 12:18-27 사두개인들의 부활에 관한 질문
- 12:28-34 서기관의 가장 큰 계명에 관한 질문
- 12:35-37 메시아가 다윗의 후손이라는 것에 관한 예수의 질문
우리 또한 질문을 하곤합니다.
기독교의 진리? 교회의 권위? 교회의 사명? 성도들의 거룩? 죽음과 부활?
그런데 정말 우리는 알고 싶어서 묻고 있는 것일까요?
그저, 우리도 시험하기 위해 질문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우리는 부활의 능력을 알고 싶어서, 진정 믿고 싶어서 묻고 있는 것일까요?
서기관의 질문은 달랐습니다. 마가복음 12장에 등장하는 이 서기관은 이름도 없이 등장합니다. 이스라엘의 엘리트, 공부를 아주 많이 한 사람입니다. 글을 좀 쓸줄 안다는 사람이 서기관입니다. 출세와 성공에 어울리는 사람이 서기관입니다.
아마도 이 서기관도 예수님과 논쟁에 대해 듣고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서기관과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바리새인, 사두개인, 대제사장, 율법학자입니다. 그들은 끊임없이 예수님과 그에 관한 논쟁을 벌여왔고, 쉬지 않고 예수님에 관한 이야기를 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서기관은 예수님께 묻기로 결심하였습니다.
“모든 계명 중에 첫째가는 계명이 무엇입니까?”
여러분도 묻고 싶었던 내용이신가요? 그 많은 말씀 중에 가장 중요한 말씀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지켜야하는 그 많은 계명 중에 가장 중요한 계명은 무엇인가요? 우리가 가장 우선적으로 지켜야 하는 것은 무엇인가요? 어떻게 해야 하늘나라에 갈 수 있는 건가요? 어떻게해야 구원받을 수 있나요? 우리가 정말 부활할 수 있나요?
진정 알고 싶다면? 들어야합니다.
예수님의 대답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들으라!”
들으라는 이 명령어는 마가복음에서 자주 듣게 됩니다. 마가복음 뿐만 아니라 성경 전체에서 우리는 들으라는 명령어를 자주 듣게 됩니다.
“들으라! 씨를 뿌리는 자가 뿌리러 나가서”(4:3)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4:9, 23; 7:16)
"너희는 다 내 말을 듣고 깨달으라"(7:14)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9:7)
또 실제로 듣는다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도 마가복음은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그들이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게 하여(4:12)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4:24)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4:33)
…너희가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느냐?(8:18)
아마도 “모든 것 중의 첫 번째 명령”은 “들으라!”일 것입니다. 계명과 명령은 그 무엇을 말한다하여도 먼저 “들으라”는 명령을 품고 있습니다.
오늘도 말씀을 진정으로 “듣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그리고 이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것이 기독교의 가장 위대하고 절대적인 계명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오직 한분이신 주님이시다.
그러므로 네 온 마음을 다하고 네 온 정신을 다하고 네 온 힘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
“둘째는 이것이다.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하라. 이 계명들보다 더 큰 계명은 없다.”
그러자, 서기관이 대답합니다.
“옳습니다. 선생님, 하나님은 한 분이시오. 그 밖에 다른 하나님은 없다는 말씀이 옳습니다.”
“또 온 마음을 다하고 온 지식을 다하고 온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과 이웃을 자기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모든 번제물과 희생 제물보다 낫습니다.”
역시, 서기관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그는 해답을 얻었습니다.
기독교의 위대한 가르침은 두 문장으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라.
자기 자신처럼 이웃을 사랑하라.
그래서 우리의 종교를 사랑의 종교라고 부르게 된 것 같습니다.
신학자 윌리엄 이섬(William Easum)은 “착한 사람이 되지 말고, ‘복음을 위해 살라”라는 글을 통해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하였습니다.
나는 우리가 “다정하게 대하는 것”과 “다른 사람을 사랑하는 것”을 혼동한다고 생각한다. 교회의 중대한 죄악 가운데 하나는 우리 자신에게 기독교인이라고 되라고 가르치는 대신에 좋은 사람이 되라고 가르친 것이라고 확신한다. 기독교인이 되기보다 좋은 사람이 되려는 사람들은 충분히 사랑하지 않는다. 그들은 충분한 긍휼의 마음을 품고 있지 않다. 대신에 그들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거나 상처를 받는 것을 두려워한다. 그러나 두려움은 사랑의 반대말이다. “온전한 사랑이 두려움을 내쫓는다.”(요한일서 4:18).


유대교의 율법은 613개입니다. 그 중 긍정계명은 365이고, 부정계명은 248입니다. 서기관은 이 계명들을 “무거운” 계명과 “가벼운” 계명으로 분류한 것입니다. 가벼운 계명들은 덜 중요한 계명이고, 무거운 계명들은 더 중요한 계명인 것입니다. 서기관은 모든 율법 하나하나를 세세하게 검토했고, 모든 가능한 상황에서 모든 율법에 복종하기 위한 방법을 백성들이 이해하도록 도울 수 있는 규칙들을 만들었습니다. 또한 많은 선지자들과 랍비들은 그 율법을 요약하려고 노력했습니다.
• “여호와께서 네게 구하시는 것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것이 아니냐?”(미가 6:8)
• “네가 싫어하는 것을 네 이웃에게 행하지 말라. 이것이 모든 율법이고, 나머지는 설명이다”(Hillel).
• “네 이웃을 네 자신처럼 사랑해야만 한다” (Akiba).
결국, 사랑이 율법의 전부입니다.
그런데 이 사랑이 담고 있는 의미를 깊게 들여다 보아야 합니다.
사랑하되,
온 마음과 목숨을 다하고 온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kardias)을 다하고, 목숨(psuches)을 다하고 뜻(dianoias)을 다하고 힘(ischuos)을 다하여 주 너희 하나님을 사랑하라(agapeseis)”
이 말씀은 신명기 6장 5절의 말씀과 이어지는 말씀입니다.
하나님을 마음, 목숨. 뜻, 그리고 힘을 다해서 사랑하는 것은 우리의 모든 것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마음(kardia)을 감정 뿐만 아니라 생각의 중심지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힘 (ischuos)은 그것이 육체적인 체력, 아름다운, 재물, 지위, 명성, 또는 능력이든지간에 우리에게 힘(power)을 제공하는 어떠한 것을 가리킬 수 있습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에서 사랑(agape)은 감정적인(느낌) 단어라기 보다는 “행동”의 단어에 해당하는 것이지요.
쉬운 말로, 말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동으로 사랑하라는 것입니다.
아가페(사랑)는 행동을 요구합니다. 즉 우리에게 어떤 실천적인 방식으로 우리의 사랑을 증명할 것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예배에 참여할 것이고, 하나님께 순종하고자 할 것이고, 하나님을 섬길 기회를 얻고자 할 것입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으로 이어지고 또 그렇게 완성 될 수 밖에 없는 것입니다.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것이라 이보다 더 큰 계명이 없느니라”(31절).
이웃을 사랑하라는 계명은 레위기 19장 18절에서 온 것입니다.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이웃 사랑하기를 네 몸과 같이 하라 나는 여호와니라.”
예수님은 우리에게 이 두 계명이 하나인 것을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노라 하고 그 형제를 미워하면 이는 거짓말 하는 자니 보는 바 그 형제를 사랑치 아니하는 자가 보지 못하는 바 하나님을 사랑할 수가 없느니라 우리가 이 계명을 주께 받았나니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또한 그 형제를 사랑할지니라”(요한일서 4장 20-21절)
사랑이란 말이 참 쉬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단지 좋은 사람이 아니라 기독교인으로서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드라마의 한 대사처럼 “제가 이 어려운 걸 해냅니다.” 말할 수 있다면 그것은 예수님께서 이미 우리를 목숨을 다하여 사랑하셨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 (요한일서 4장 19절)
찬양 _ 찬송가 191장 내가 매일 기쁘게
주기도문(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