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9장 하늘에 가득찬 영광의 하나님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문 _ 46번 시편 104편
(인도자) 내 영혼아 여호와를 송축하라 여호와 나의 하나님이여
(회중) 주는 심히 위대하시며 존귀와 권위로 옷 입으셨나이다
(인도자) 주께서 옷을 입음같이 빛을 입으시며 하늘을 휘장같이 치시며
(회중) 물에 자기 누각의 들보를 얹으시며 구름으로 자기 수레를 삼으시고
(인도자) 바람 날개로 다니시며 바람을 자기 사신으로 삼으시고 불꽃으로 자기 사역자를 삼으시며
(회중) 땅에 기초를 놓으사 영원히 흔들리지 아니하게 하셨나이다(1-5)
(인도자) 주께서 물의 경계를 정하여 넘치지 못하게 하시며
(회중) 다시 돌아와 땅을 덮지 못하게 하셨나이다
(인도자) 여호와께서 샘을 골짜기에서 솟아나게 하시고 산 사이에 흐르게 하사
(회중) 각종 들짐승에게 마시게 하시니 들나귀들도 해갈하며
(인도자) 공중의 새들도 그 가에서 깃들이며
(회중) 나뭇가지 사이에서 지저귀는도다
(인도자) 그가 그의 누각에서부터 산에 물을 부어 주시니
(회중) 주께서 하시는 일의 결실이 땅을 만족시켜 주는도다(9-13)
송영 _ 찬송가 4장 찬양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293장 주의 사랑 비출 때
봉헌 _ 마음을 다하여
말씀 _ 마가복음 13장 32~37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지난 10월 17일부터 마가복음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10장부터 13장, 오늘 본문 말씀까지 이렇게도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들으라!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
모두,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또한 우리에게 전하는 명령(command입니다. 오늘도 저와 여러분이 말씀을 들으며 깨어 있기를 소망합니다.
오늘 말씀, 마가복음 13장 전체가 하나의 이야기입니다. 꽤 긴 부분인데요. 제자들의 질문에서 시작된 이 말씀은 호흡이 무척 긴 말씀입니다. 그러니까 이런 느낌인데요. 쉽게, 명료하게 대답을 들을 줄 알았으나 대답이 계속 길어지는 느낌입니다.
그래서 1절부터 37절까지의 말씀은 조금 천천히 읽어야 이해할 수 있는 본문입니다.
무엇보다 마가복음 13장은 마가복음 안에서도 조금 다른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신학자들이 마가복음 13장을 묵시문학이라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묵시문학 [默示文學 , Apocalyptic literature]은 사람들이 잘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뜻을 밝히 보여 주고, 세상에서 겪는 고난의 의미를 상징이나 은유 등의 표현법을 사용하여 미래에 대한 소망과 마지막 날(종말)에 마침내 도래할 하늘나라에 대한 확신, 용기를 주려는 의도를 가진 문학 양식을 말합니다.
여기에 속하는 성경의 대표적 책으로는 구약의 다니엘서와 신약의 요한계시록이 있습니다. 이외에도 부분적으로 이사야 24-27장, 요엘 3장, 스가랴 9-14장, 마태복음 24장과 마가복음 13장이 묵시문학에 속합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묵시문학과 달리, 마가복음 13장은 미래 사건들의 시기에 단서를 제공하는 징조들에 관심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오늘, 제자들이 예수에게 “이 모든 일이 이루일 때의 징조”에 대해 물을 때(4절),
예수님은 그들에게 전쟁들과 자연적인 재앙들에 대해 말하신 다음에, “끝은 아니고” “이 일들은 해산의 고통의 시작”이라고 말하십니다.(7-8절)
다시 말해서 이 일들은 종말의 징조들이 아니라, 종말이 오기 전에 사람들이 견디어야 할 사건들일 뿐입니다. 예수님도 그들이 이 사건들이 언제 일어날지 알도록 도울 수 없다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그 날과 그 시는 아무도 모르고, 천사들과 인자조차도 모르고, 하나님 아버지만 아시기 때문입니다.”(32절).
그런데 여전히 사람들은 종말, 그 자체에 관심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파국(破局, dissolution)이라는 말을 들어 보셨는지요? 경쟁에 내몰리고 불평등과 부조리에 지치고 상처받은 현대인들은 다같이 망하는 길?을 자꾸만 떠올리는 것 같습니다. 혼자 망하는 건, 억울하니 다같이 망하자?, 싸움의 끝이 결국은 파멸을 향해 내리달려갈 때, 파국이라는 말을 쓰게 됩니다.
그래서, 종말?의 징조에만 관심을 갖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오늘 예수님은 우리에게 종말은 끝이 아니고 해산의 고통의 시작이라고 가르쳐 주고 계십니다. 결국은 해산(birth)을 위하여 고통이 있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십니다.
해산은 영어로 번역하면, birth인데요. 이 탄생 안에는 생명을 품고 있으며, 생명이 드디어 세상에 드러나는 것을 탄생이라고 생각한다면 해산은 생명이 됩니다.
그러니 우리가 고통 가운데 있다면 그것은 분명 해산, 생명을 위함일 것입니다. 단, 예수님 안에서만 이 신비가 가능합니다. 고통은 실제적이기 때문에 고통이란 때로 그 고통의 깊이를 감히 가늠할 수도 없기 때문에, 우리가 예수님 안에 살지 않는다면 고통은 우리의 삶을 통째로 파괴할 수도 있습니다.
종말에 대한 잘못된 이해를 제거하기 위하여 신학자 라이트풋(R. H. Lightfoot)은 마가복음 13장을 “묵시록”이 아니라 씨 뿌리는 자의 비유(마가복음 4:1-20)와 무척 동일한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견해를 제시합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서 다시 살펴보아야하는 부분은 많이 낭비된 씨앗, 즉 길이나 바위사이와 가시덤불사이에 떨어진 씨앗입니다. 하지만 결국 이 비유는 30배, 60배, 100배 수확에 대한 비전으로 끝난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마가복음 13장은 시련과 고통을 예언하지만 이것들은 해산의 고통의 시작일 뿐이며 중요한 것은 고통에 있는 것이 아니라, 희망, 즉 구원에 있습니다.
우리는 어디에 강조점을 두고 살아갈까요?
삶의 고통스러운 순간에도, 구원의 확신으로 우리의 고통은 늘 해산의 고통의 시작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마가복음의 또다른 의미는 13장이 16장의 부활의 이야기에서 절정에 이르는 수난이야기(14-15장)의 서론의 역할을 한다는 것입니다.(Lightfoot, Juel, Jensen). 이런 메시지는 박해를 당하는 마가의 교회에 특별한 가치를 담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을 기록하게 한 13장의 정황을 신학자들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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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 당시에 예수의 이름으로 와서, 예수라고 주장하면서, 신자들을 미혹하는 사람들이 있었다(6,21-22절). 이 위선자들 때문에, 예수 이야기를 기록해서 예수에 관한 진실을 보존할 필요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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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자들은 (가족 구성원들에 의해서조차) 박해를 받았고, 체포되었다(9-13절). 예수의 처음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순교함으로써, 권위 있는 증인들이 사라져갔고, 기록된 기사와 같은 또 하나의 신뢰할만한 “권위”가 필요하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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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멸망의 가증한 것”(성전에 있는 황제의 형상)이 존재했었지만, 성전이 파괴되었던 것 같지는 않다(14절). 그러므로 마가복음의 저작 시기는 일반적으로 70년의 성전의 멸망 직전이었을 것이다. 당시 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종말이 도래했다고 주장하거나, 종말이 언제 도래할지를 안다고 주장했을 것이다.
언제나 우리를 힘들게 하는 것은 “상황”인 것 같습니다. 우리를 둘러 싼 “환경”, 이 환경에 둘러쌓여 살아가다 보면 우리는 때때로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됩니다.
이 “상황”을 예수님은 “조심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이 “상황”을 더욱 혼돈으로 몰아놓는 이들이 우리 곁엔 항상 있을 수 있습니다. “거짓 선지자”들이 선지자 행세를 할 수 있는 이유가 바로, 우리의 “상황” 때문이고 거짓 선지자들은 이 상황을 교묘히 이용하는 자들일 뿐입니다.
많은 사람이 내 이름으로 와서 이르되 내가 그라 하여 많은 사람을 미혹하리라(13:6)
거짓 그리스도들과 거짓 선지자들이 일어나서 이적과 기사를 행하여 할 수만 있으면 택하신 자들을 미혹하려 하리라(13:22)
그 때에 예수님이 말씀을 기억해야합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사람의 미혹을 받지 않도록 주의하라(13:5)
난리와 난리의 소문을 들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라(13:7)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13:9)
염려하지 말고 무엇이든지 그 때에 (성령이) 너희에게 주시는 그 말을 하라(13:11)
이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13:18)
너희는 삼가라 내가 모든 일을 너희에게 미리 말하였노라(13:23)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13:28)
주의하라 깨어 있으라(13:33)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13:35)
너희가 자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13:36)
깨어 있으라 (13:37)
깨어 있어야 합니다. 늘 깨어 있어야 합니다. 고난의 시기가 우리 앞에 기다리고 있다면, 종말의 징조를 찾을 것이 아니라,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다는 의미를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 중에 찾아볼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배우고 기도하라! 깨어 있으라는 다른 말인 것입니다.
배움과 기도는 항상 같이 있어야 합니다. 어느 한 쪽으로 기울어진다면 그로써 독이 될 수 있습니다. 진정으로 배우고 기도해야 합니다.
배우고 기도하면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1세기의 60년대에 대해 역사가 요세푸스는 기근, 사회적 불안, 제도적 타락, 극심한 내적인 갈등들, 계급투쟁, 강도, 반란, 음모, 배반, 학살, 그리고 유대인들이 팔레스타인 도처로 흩어졌다고 설명합니다. 예루살렘이 포위공격을 당하는 기간 동안(66-70년)에는 대중적인 메시아들, 도시와 신전에서 화를 외치는 선지자들, 모의재판들, 순례의 시기에 폭동을 일으키는 군중들의 이야기들이 전파되었으며 그 시기의 10년 내내 전쟁들과 전쟁의 소문들이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마가는 마가복음 13장을 우리에게 전하고자 한 것입니다. 고난의 현장에 살아가는 마가의 공동체는 “묵시문학의 목적은 미래를 미리 알려주는 데 있지 않고, 신실함과 인내로 현재(the present time)를 살아가라고 격려하는 데 있다.”고 전하고 있는 것입니다.
현재를 신실하게 살아가는 힘, 마가복음 13장의 말씀입니다. 우리가 고난의 시기를 걸어가지 않는다면 우리는 더욱 신실하게 살아가야 할 것입니다. 다가올 미래에 대한 두려움에 떨기보다는 오늘을 신실하게 살아가는 이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이것이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깨어 있는 그리스도인으로 이제부터 그날까지 살아가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찬양 _ 찬송가 408장 나 어느 곳에 있든지
주기도문(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