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26장 구세주를 아는 이들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115번 구주강림1

(인도자) 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백성이 올 길을 닦으라
(회중) 큰 길을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기치를 들라
(인도자)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선포하시되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이르렀느니라
(회중)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하셨느니라
(인도자) 사람들이 너를 일컬어 거룩한 백성이라 여호와께서 구속하신 자라 하겠고
(회중) 또 너를 일컬어 찾은 바 된 자요 버림 받지 아니한 성읍이라 하리라(시62:10-12)
(인도자)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회중)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인도자)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회중)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다같이)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눅3:4-6)

송영 _ 찬송가 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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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104장 곧 오소서 임마누엘

말씀 _ 마가복음 13장 24~37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13장은 이 복음서를 기록하게 된 상황을 파악하는 데 최고의 단서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복음이 기록되기 전에는, 예수와 관련된 이야기들을 말해주는 것만으로 충분하였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어떤 배경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그리스도의 복음”(1:1)에 대한 이야기를 기록할 필요성이 생겨나게 한 것이지요.

이런 면에서 다음과 같은 13장의 정황이 이 복음서 기록의 이유가 될 것입니다.

1. 예수의 이름으로 와서 자신이 예수라고 주장하며 신자들을 미혹하는 이들이 있었다(6, 21-22절). 이런 가짜들 때문에 예수에 대한 영구적인 기록을 하여 예수에 관한 진실을 보존하는 것이 필요했었다.
2. 신자들은 (심지어 가족들에 의해서조차) 박해를 받았거나 체포당했다(9-13절). 예수의 원 제자들 가운데 많은 이들이 순교 당함으로써 그들의 증언의 “권위”가 없어졌고, 따라서 기록된 기사와 같은 또 하나의 신뢰할 수 있는 “권위”의 필요성이 생겼다.
3. “멸망의 가능한 것”(성전에 있는 황제의 형상?)이 있었으므로, 아직 성전은 파괴되었던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14절), 따라서 이 복음서의 저작 시기는 70년의 예루살렘 멸망 직전으로 추정된다.

기록의 이유, 그것은 언제나 시대의 상황과 관련이 있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지금의 시대는 무엇을 요청하고 있을까요?

‘소망’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래, 한번 믿어보자.’ 절망을 넘어, ‘빛’을 기다리는 절기가 대림절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진정 간절히 바라는 ‘소망’이 있을까요? 정말 간절히 원하는 소망이 있다면... 그 ‘소망’을 발견하시는 2023년 대림절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대림절 첫 번째 주일의 복음서의 교훈은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에서 이 다시 오심은 마태복음이나 누가복음에서와는 약간 다른 뉘앙스를 갖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은 4복음서 중 가장 먼저 기록된 책입니다.

마가복음보다 20여년 또는 그보다 더 늦게 기록된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는 죽음과 부활 이후에도 거룩한 임재가 지속되지요. 마태복음은 제자들과 항상 함께 있겠다고 약속하는 예수로 끝납니다.(28:20). 누가복음은 제자들에게 능력/성령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는 예수의 이야기로 마무리 됩니다.(24:49;행 1:4-5, 8).

그런데 마가복음의 맨 마지막 메시지는 제자들에게 갈릴리에 가서 기다리라는 것입니다. 마가는 갈릴리에서 그들이 뵙게 될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을 강조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때에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으로 구름 가운데 오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 때에 인자는 천사들을 보낼 것이며 그들은 땅 끝에서 하늘 끝까지 선택한 사람들을 사방에서 모을 것이다.”

종말을 위해 준비할 시기가 늘 현재 속에 있습니다. 종말은 항상 “주의하라”(blepete), “경계를 게을리 하지 말라”(agrypneite), “깨어 있으라”(grygoreite)의 현재 시제와 등장합니다. 아마도 우리의 소망은 마지막 날이 있기에 가능하며 또 그 날을 기다리며 우리의 참된 소망을 발견하게 되는 것 같습니다.

“내가 밤에 환상을 보았을 때, 구름타고 오는 사람과 같은 이(각주: 아람어로는 ‘사람의 아들/인자 같은 이’)를 보았다.”

26절의 이미지는 다니엘서에서 온 것입니다.

다니엘서에서는 이스라엘을 지배했던 “잔혹한” 왕국들과 통치자들에 대한 환상과, 하나님께서 보내실 “자비로운” 왕국과 통치자에 대한 환상이 대조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 독자들의 환난을 감안할 때, 그들의 종말론적 희망은 다니엘서의 독자들의 희망과 같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1) 그들의 고통은 그들의 신실함의 결과이다(고난이 사람들의 죄악의 결과로 온다는 예언서들과 대조적이다)).
(2) 그들의 신실함이 보상을 받고, 그들의 박해자들은 형벌을 받고 멸망할 때가 오게 될 것이다.

그런데 그날은 또는 이런 일이 일어나는 그 때는 로마와의 현재의 전쟁을 통해서가 아니라, 인자가 다시 오실 때뿐이라는 것입니다. 전쟁으로 인한 종말의 이미지를 우리 안에 지워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무화과나무”와 “잎”들은 마가복음 11장 13절에도 등장하고 있습니다. 11장에서 예수는 무화과나무를 보시고 어떤 것을 찾을 수 있을까?하여 가까이 가셨으나 열매가 없음을 보시고 무화과나무는 곧 말라 죽게 됩니다. 이것은 적절한 열매를 맺으라는 강력한 권고라고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13장에 등장하는 무화과나무는 보편적인, 또는 자연의 이치를 담고 있습니다.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잎이 돋으면 너희는 여름이 가다온 줄을 알게 된다.”

모든 세대들이 “이 일들이 발생하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의 주변, 환경, 사회 곳곳에 무화과나무가 있습니다. 무화과나무를 ‘보고’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시대를 보십시오. 보고자 한다면 알 수 있습니다. 무화과나무 가지가 부드러워지고 잎이 돋으면 너희는 여름이 가까이 온 줄을 알게 된다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 말씀을 통해 “그날”이, 그(또는 그것)가 문 앞에 가까이 있다는 것을 “계속해서 알아야”합니다. 매일매일 ‘그날’을 보고 또 보는 삶이 “깨어있는” 삶입니다.

우리의 소망도 여기에서 시작되길 원합니다. 무화과나무를 보십시오. 지금 우리의 계절은, 우리의 시대는 무엇을 우리에게 알게 하고 있는지요?

대림절이 시작되었습니다. 주님의 은총이 저와 여러분에게 ‘무화과나무를 보는 눈’을 허락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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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211장 값비싼 향유를 주께 드린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