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9장 하늘에 가득 찬 영광의 하나님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121번 주현절(1)
(인도자) 여호와여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에 있고
(회중) 주의 진실하심이 공중에 사무쳤으며
(인도자) 주의 의는 하나님의 산들과 같고 주의 심판은 큰 바다와 같으니이다
(회중) 여호와여 주는 사람과 짐승을 구하여 주시나이다
(인도자)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이 어찌 그리 보배로우신지요
(회중) 사람들이 주의 날개 그늘 아래에 피하나이다
(인도자) 그들이 주의 집에 있는 살진 것으로 풍족할 것이라
(회중) 주께서 주의 복락의 강물을 마시게 하시리이다
(인도자)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회중)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인도자) 주를 아는 자들에게 주의 인자하심을 계속 베푸시며
(회중)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주의 공의를 베푸소서(시36:5-10)
송영 _ 찬송가 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79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말씀 _ 마가복음 1장 9~11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은 주현절 첫째 주일입니다. 주현절은 예수님의 세례로 시작하고, 예수님의 산상변화로 끝이 납니다. 예수에게 하늘에서 “빛이 비친다” 이것이 ‘주현epiphaino’의 문자적 의미입니다. 그리고 마가는 우리에게 하늘로부터의 음성을 들려줍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매우 좋아한다.”
우리는 예수의 탄생을 매우 중요하고 특별한 사건으로 보고 있지만, 성서에서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만이 크리스마스 기사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에 반해 예수의 세례에 관해서는 마태복음, 마가복음, 누가복음, 요한복음, 사도행전, 로마서에서 세례의 사건을 전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하면 예수님의 세례는 예수님의 탄생보다 훨씬 더 중요한 사건입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이 바로 예수께서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는 장면입니다.
성서의 말씀을 그대로 따른다면 우리도 태어난 것보다 ‘세례’가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세례에 대한 다양한 신학적 의미를 다룰 수 있겠지만 세례 이전과 이후로 나눈다면 그것은 “육신의 자녀”와 “하나님의 자녀”라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는 그 순간 하늘에서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James R. Edwards (The Gospel according to Mark) 는 이 장면을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예수의 공적 사역의 첫 사건으로서의 세례는 우리에게 예수가 무슨 일을 하시는가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그에게 무슨 일을 하시는가를 말해준다.”[p. 34].
마틴 루터는 의심하라는 유혹을 받을 때, “나는 세례 받았다”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가 누구이던지, 그의 믿음의 힘은 하나님께서 그에 대해 주장하시는 사건인 그의 세례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 또한 모든 상황과 모든 사람이 “너는 아무것도 아닌 사람이다”와 같은 숱한 이야기와 상황을 만날 때에도 우리는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던 그 장면에서 하늘의 음성을 들을 수 있습니다.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다. 내가 너를 매우 좋아한다.” 어떤 순간을 만나도 우리가 기억해야 하는 음성이 있다면 바로 이 하나님의 음성입니다.
요한의 세례와 기독교의 세례 사이의 차이는 무엇일까요? 요한도 세례를 베풀었습니다. 세례를 베풀며 그는 선포합니다. “회개하라!, 나는 너희를 회개시키려고 물로 세례를 준다.”(마3:11) 그런데 “그분은 너희에게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다.”(마3:11)
예수님의 세례는 새로운 세례입니다. 요한의 세례처럼 단지 죄를 씻는 세례가 아니라, 성령의 능력과 하나님과의 특별한 관계를 가져다주는 세례입니다.
“내가 너를 매우 좋아한다.” 하나님의 선언입니다. 다른 번역으로는 “매우 기뻐한다.”입니다.
2024년 우리교회의 표어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교회입니다.” 스바냐 3장 17절에서 가져온 말씀입니다.
스바냐서는 요엘서나 아모스서와 마찬가지로 ‘여호와의 날’이 중심 주제입니다. ‘여호와의 날’ 이란 이중적 의미를 갖는데, 불법하고 경건치 못한 자에게는 심판의 날이지만 고난 중에도 신앙을 지키는 의로운 자에게는 구원의 날이요 은혜의 날이 될 것입니다.
스바냐는 히스기야 왕의 4대손으로 요시야 왕(B.C. 640-609년) 때 활동하였습니다. 스바냐서는 요시야 왕이 종교개혁(대하 34:8-35:19, B.C. 622년)을 단행하기 전, 대략 B.C. 640-622년경 기록된 것으로 요시야 왕의 종교개혁은 스바냐 선지자의 영향이 컸을 것으로 보입니다.
당시는 앗술바니팔(B.C. 669-633년)이 앗수르 제국을 다스리며 여전히 막강한 위용을 자랑하던 때였습니다. 그후 B.C. 626년 신흥 강대국 바벨론이 앗수르를 공격하였고, B.C. 612년에 앗수르(니느웨)를 멸망시켰습니다.
이 시기에 유다 왕국에서는 므낫세(B.C. 697-642년), 아몬(B.C. 642-640년)이 통치하였고, 뒤를 이어 요시야 (B.C. 640-609년)가 왕이 되어 그 혼돈의 시기에서 우상을 철폐하고 신앙 회복을 위해 혼신의 힘을 기울였습니다. 스바냐는 이 시기에 요시야 왕을 도와 신앙 부흥 운동에 앞장섰고 그렇게 스바냐서가 기록되었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며 공의와 겸손을 구하라 너희가 혹시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으리라’(습 2:3).
그리고 스바냐는 이렇게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며 스바냐서를 마칩니다.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하신 분이시다. 그분께서는 너를 두고 기뻐하고 즐거워하신다. 자신의 사랑 안에서 너를 새롭게 해 주시고, 너 때문에 환성을 올리며 기뻐하실 것이다.”
저와 여러분이 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여호와를 진정으로 찾으신다면,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우리를 통해 즐거워하실 것입니다.
찬양 _ 찬송가 208장 내 주의 나라와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