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8장 거룩 거룩 거룩 전능하신 주님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문 _ 63번 시편 145편
(인도자)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회중)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인도자)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위대하심을 측량하지 못하리로다
(회중) 대대로 주께서 행하시는 일을 크게 찬양하며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로다
(인도자) 주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과 주의 기이한 일들을 나는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회중) 사람들은 주의 두려운 일의 권능을 말할 것이요 나도 주의 위대하심을 선포하리이다
(인도자) 그들이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말하며 주의 의를 노래하리이다
(회중)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인도자)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회중) 여호와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것들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성도들이 주를 송축하리이다(1-10)
송영 _ 찬송가 6장 목소리 높여서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93장 예수는 나의 힘이요
봉헌 _ 마음을 다하여
말씀 _ 마가복음 12장 38~44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먼저 이렇게 정리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서기관과 과부, 큰 돈과 모든 돈입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가 들을 말씀은 “조심하라!”입니다.
지난주 말씀에 이어 서기관이 등장합니다. 서기관은 어떤 사람들이었을까요?
영어 성경은 서기관을 “the teachers of the law” 율법선생님이라고 번역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서기관과 율법학자를 같은 의미로 사용하기도 합니다. 일반적으로 서기관들은 읽고 쓸 수 있던 사람들이라는 의미로 헬라어, grammateus(그라마투스)를 번역한 것입니다. 서기관들은 2000년 전, 여러 국가들에선 중요한 직업이었습니다. 서기관이란 단어는 교육받았다는 의미를 담고 있었으며 ‘지혜있는 자’, ‘변론자’와 비슷한 의미로 사용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면 마가는 다른 구절들에서 “서기관들”에 관해 우리에게 어떻게 말하고 있을까요?
• 그들은 교사들이었다(그러나 예수님과 같은 권위는 없었다)(1:22)
• 그들은 예수님에게 자주 질문을 했다.(죄 용서에 관해(2:6)/ 세리와 죄인들과 함께 먹는 것에 관해(2:16)/ 부정한 손으로 먹는 것에 관해(7:1, 5) / 예수의 권위의 출처에 관해(11:27)
• 그들은 예수가 바알세불에게 사로잡혔다고 비난했다(3:22) )
• 그들은 예수를 거절한 사람들의 일원이 될 것이다(8:31; 10:33)
• (성경전문가들로서) 그들은 엘리아가 먼저 와야 한다고 말한다(9:11)
• 그들은 예수의 제자들과 논쟁한다(9:14)
• 그들은 예수를 체포하고 죽이려고 시도한다(11:18; 14:1, 43, 53; 15:1)
• (성경전문가들로서) 그들은 메시아가 다윗의 자손이라고 말한다(12:35)
• 그들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를 희롱한다(15:31)
“서기관들”에 대해 마가는 긍정적으로 보고 있지 않은 것 같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도 서기관들은 문자적으로 다음과 같이 묘사되고 있습니다.
• 긴 옷을 입고 다니길 원한다.
• 시장에서 문안 받기를 원한다.
• 회당의 높은 자리를 원한다.
• 잔치의 윗자리를 원한다.
• 과부의 가산을 삼킨다.
• 거짓된 동기로(또는 단지 사람에게 보여주기 위해), 길게 기도한다.
긴 옷을 입고 인사받기를 좋아하며 높은자리와 윗자리에 앉는 그들은 과부의 재산을 삼키고 거짓된 동기로,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해 길게 기도하는 사람을 서기관이라고 예수님은 설명하고 있습니다.

사실, 여기서 말하는 서기관은 “서기관들” 자체가 아니라, 위와 같은 방식으로 행동하는 사람들을 지칭하는 단어입니다.
이런 사람들을 조심하라고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조심하라!”
아이들에게 제일 많이 하는 말 중에 하나가 조심해! 인 것 같습니다.
조심해! 그런데 서기관을 조심하는 예수님의 말씀은 조금 이해가 안될 수 있습니다.
좋은 직장에 다니는 배우고 성공한 사람인 서기관을 조심하라니요? 서기관은 우리의 눈으로 보면 멋있는 사람일 수 있습니다.
더구나 조심하라는 말에는 경계하라는 뜻을 담고 있는데 긴옷을 입고 잔칫상에서 윗자리에 앉았다고 경계하라는 말은 잘 수긍하기가 어렵기도 합니다.
무엇이 잘못이라는 것일까요?
오늘날에도 많은 성직자들이 적어도 예배동안은 긴 옷을 입고 있습니다. 카톨릭의 경우 긴 옷을 입지 않고 미사(예배)를 주관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인사를 받지 않으려 해도 사람들이 시장과 다른 공개적인 장소들에서 우리에게 인사를 할 수도 있습니다. 특별한 장소의 특별한 위치에서 그런 특별한 자리들에 앉을 수도 있습니다. 이런 일들을 원하거나 받아들이는 것이 잘못일까요?
예수님은 서기관들이 잘못하였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지만 그와 동시에 서기관처럼 하고 싶어하는 사람들, 서기관처럼 살고 싶어하는 사람들을 향해 “조심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예수님은 행위 그 자체를 비판하시는 것이 아니라, 이런 일들을 하고 싶어 하는 욕구, 그 마음을 조심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높은 자리에 앉을 수도 있습니다. 잔치에서 대접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때로 긴옷과 좋은 입을 입을 수도 있습니다. 인사를 받을 수도 있습니다. 다 저마다 합당한 이유와 상황이 있을 수 있습니다. 진심으로 감사의 인사를 받을 수도 있고 대접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나라를 위하여 높은 자리에 오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되고 싶어하는 끝없는 욕구, 그 마음을 조심하라고 말씀하고 계신 것입니다.
“다른 종교지도자들(즉, 서기관들)을 조심하라. 그들처럼 되지 말라.”
우리가 얼마나 자주 세상적인 기준에 의해 “성공한 사람”처럼 보이고자 하는 유혹을 받고 있나요?
여기서 서기관들에 대한 중요한 묘사가 있습니다.
외식으로 길게 기도하는 자,
“외식으로”란 표현은 “어떤 특정한 활동에 전념하는 체 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잘못된 동기”가 “외식”입니다. 그들은 무엇이든 “체 하면서”, 가장 약한 자인 “과부”의 가산을 탐욕스럽게 집어 삼킵니다.
외식하는 자들은 진실하지도 않지만 그들은 탐욕을 멈출 줄 몰라 가난한 과부의 재산까지도 집어 삼킵니다. 그렇게 그들은 긴 옷을 입고 높은 자리에 오르고 잔칫상의 윗자리에 앉아 있는 것입니다. 그들에겐 자신의 긴 옷만이 중요할 뿐이지요. 자신들처럼 긴 옷을 입지 못한 사람들에겐 눈길조차 주지 않습니다. 그렇게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기 위해 길게 기도하는 체 합니다.
우리는 “기도하는 체” 한 적이 없을까요? 우리의 기도의 진실성은 우리의 기도의 말들보다는 우리의 행동에 의해 결정될 것입니다.
서기관들의 “과부의 가산을 탐하는 것”이 정확하게 어떤 의미인지, 신학자 체드 마이어스는(Ched Myers)는 다음과 같이 설명합니다.
서기관의 풍요는 “과부의 가산을 삼키며 외식으로 길게 기도한 것”의 결실이다(12:40). 과부의 토지를 서기관에게 신탁하는 관습을 마가가 언급하는 있는 것이 확실하다. 당시에는 과부들에게 그들의 죽은 남편의 일들을 관리하는 것이 허용되지 않았다. 그리고 서기관들은 그들의 경건과 신뢰로 얻은 사회적 명성으로 인해, 과부의 자산을 관리하는 법적인 권리를 획득했을 것이다. 그 관리에 대한 보상으로 그들은 보통 재산의 일정비율을 받았을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이 서기관들이 더 중한 판결을 받게 될 것이라고 선언하고 계십니다. 문맥상으로는 “좀 더 엄한” 판결이라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서기관들의 훈련과 지식은 약한 자와 무기력한 자를 착취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들을 돕기 위해 사용되어져야 했습니다.

이 때 성전에 한 과부가 들어왔습니다. 그리곤 헌금함에 자신의 헌금을 넣었습니다. “두 렙돈” 너무도 가난한 여인의 처지를 그대로 보여주는 헌금입니다. 작은 동전은 그 소리조차 들리지 않는 작은 금액이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녀의 헌금은 모든 돈이라고 말씀하시고 부자의 헌금은 큰 돈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부자들이 큰 돈을 헌금함에 넣었으나 가난한 이 과부는 모든 돈을 헌금함에 넣었으니 다른 많은 사람들보다 더 많이 넣었다고 말씀하십니다.
큰 돈과 모든 돈은 비교할 수 있을까요? 큰 돈이 아무리 많아도 모든 돈보다 클 순 없습니다. 물론 큰 돈도 모든 돈이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부자가 천국에 들어가는 것이 낙타가 바늘귀에 들어가기보다 어렵다고 말씀하셨을 것입니다.(마태복음 19장 24절)
그런데 우리는 지난주 말씀을 기억하고 있습니다. “마음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주 여호와를 사랑하라.”
헌금의 많고 적음을 문제삼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 설명하고 계신 것이지요.
우리의 마음을 아시는 주님이십니다. 저와 여러분이 "조심하라!" 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 오늘 주일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찬양 _ 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주기도문(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