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26장 구세주를 아는 이들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53번 시편121편
(인도자)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회중)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인도자)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 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
(회중)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인도자)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회중)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인도자)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영혼을 지키시리로다
(회중) 여호와게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가지 지키시리로다(1-8)
송영 _ 찬송가 4장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432장 큰 물결이 설레는 어둔 바다
말씀 _ 마가복음 4장 35~41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 말씀 마가복음 4:35-5:43은 예수께서 폭풍을 잔잔케 하시는 장면입니다. 잠시 폭퐁우를 상상해보시면 좋겠습니다. 살면서 가장 두려움에 떨만큼 압도적인 폭풍우를 경험해 보신 적이 있으신가요? 제겐 없습니다. 그저 ‘소나기’를 경험했을 뿐입니다.
많은 고대의 신화에서 바다의 신은 혼돈의 신입니다. 잔잔한 바다는 거의 순식간에 치명적인 파도로 변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혼돈의 신이인 것이지요. 이런 바다를 우리는 통제할 수 없습니다.
혼돈의 바다에 대한 고대 신화의 한 모습은 욥기 38:1-11에서 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은 문들과 경계들을 가지고 바다를 통제하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바다를 통제하는 이 동일한 능력은 시편 107편의 주제이기도 합니다. (시편 107:1-3, 23-32)
오늘 말씀을 들으시면서 이 폭풍우에 대한 상상을 계속해 보시기 바랍니다. 어떠한 폭풍우인가? 폭풍우를 만난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과연 누가 이 폭풍우를 잠잠케 할 수 있는가?
오늘의 장면은 지난주 말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나라 비유 말씀을 마치시니 날이 저물었습니다.
35절 말씀입니다. 그 날 저물 때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우리가 저편으로 건너가자!
아마도 무리를 떠나 한적한 곳으로 이동을 하려다보니 건너편으로 가자고 하신 것 같습니다. 그 주변으로 이동한다면 이 무리가 따라올 수 있으니 “배”를 타고 이 무리가 따라올 수 없는 것으로 가자고 하신 것이지요.
그래서 예수와 제자들은 “배”를 탔습니다. 그러자 옆 배들도 함께 따라 옵니다.
그렇게 날이 저물고 있습니다. 얼마나 지났을까요?
갑자기 광풍이 불기 시작했습니다. 분명 출발할 땐 고요한 바다였는데 갑자기 광풍이 불더니 37절의 묘사에 따르면 물결이 배에 부딪쳐 물이 들이치기 시작했습니다.
순식간에 난리가 났습니다. “우리가 죽게된 것인가?” “선생님은 어디계신거지?”
“선생님, 선생님, 선생님, 우리가 죽을 것 같습니다. 어찌하여 우리가 죽게된 것을 돌보지 않으십니까?”
마가는 그 때, 예수님은 고물에서 베개를 베고 주무시고 있으셨다고 전하고 있습니다. 고물은 배의 뒷부분을 이르는 말입니다. 배의 뒷부분에서 주무시고 계셨으니 예수께서 폭풍우를 모르셨다고 생각하기 어렵지요. 그러니까 같은 상황에서 예수는 주무시고 계셨고 이를 본 제자들은 우리는 죽을 것 같은데 어떻게 잘 수가 있느냐?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제자들의 다급한 목소리를 들은 예수님은 깨어 나시더니 곧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에게 말씀하십니다. “잠잠하라! 고요하라!” 그러자 곧 바다가 잔잔하여졌습니다.
이 장면에서 등장한 “꾸짖다”라는 단어가 사용된 대상이 무엇인지 여러분 아십니까?
예수께서 꾸짖는 대상이 “바람”입니다. 저라면 제자들을 꾸짖었을 텐데요......
예수가 바람을 “꾸짖을 때” 사용된 단어는 일반적으로 악한 귀신들을 “꾸짖을 때” 사용되는 단어입니다. (1:25;3:12; 9:25;그리고 8장 33절에서 “사탄”이 된 베드로에게 사용되었습니다.)
“바람”이 문제입니다. “바람”을 꾸짖으신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향해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어찌하여 이렇게 무서워하느냐? 너희가 어찌 믿음이 없느냐?”
그런데 이 말씀을 들은 제자들의 반응을 마가는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41절 마지막 절입니다.
그들이 심히 두려워 하여 서로 말하되 “그가 누구이기에 바람과 바다도 순종하는가?”
“그가 누구기에?”
여러분은 폭풍우를 꾸짖으시는 예수님을 상상해 보셨는지요?
지금, 떠올려 보신다면 여러분이 말 그대로 직관하는 중이라면 어떤 생각? 어떤 마음이 들까요?
“고요하라! 잠잠하라!” 바람과 바다를 보시며 말씀하시는 예수님을 보고 있다면, 그 때 우리는 죽을 것 같다는 생각에 절박하여 예수님을 깨웠으나 “고요하라! 잠잠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믿을 수 있을까요?
우리가 만약 믿을 수 없다는 결론에 도달한다면 2가지 경우의 수를 생각해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정말 다급한 일이 아니라는 것이지요. 죽을 것 같다고 말을 하고 있지만 정말 죽을 상황은 아니니 “고요하라!, 잠잠하라!” 말씀에 순종하거나 압도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고요하라!, 잠잠하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이 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호들갑 떨지 말아라! 제발 잠잠해라!
정말 죽을 상황인데 이 말씀을 못 믿는다면 애초 믿음이 없었다는 것이겠지요. 살길이 이 것 밖에 없는데 믿지 않는다는 것은 원래 믿음이 없었다는 것을 알게 되는 상황일 것입니다.
마가는 혼돈의 바다를 길들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하나님 외에 다른 사람이 이런 일을 할 수 없다고 증언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단순한 인간 존재 그 이상이라는 것을 전하는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는 것입니다.(1:1, 11, 24). 그러나 제자들은 예수의 정체성의 중요한 의미를 알아차릴 수 없었습니다.
우리의 삶의 혼돈은 우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사람들이나 상황들이나 악한 세력들에 의해 야기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갑자기, 생각지 못한 때에, 잔잔한 우리의 일상을 뒤엎습니다.
그런데 때때로 그것은 우리의 잘못이 아닙니다. 예수께서 “바람”을 꾸짖으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때로 좋은 사람들에게 나쁜 일이 일어납니다. 때로 신실한 그리스도인의 세계가 와르르 무너지기도 합니다. (선한 사람들이 부당하게 고난 받는 것의 한 사례로서 성서는 욥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중요한 지점은 오늘의 본문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그런 혼란 속에 빠진 이유가 예수께서 “건너편으로 가자”고 말씀하신대로 행동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과 그 배를 타지 않았다면,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않았다면 결코 겪지 않았어도 되는 폭풍우였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또 하나의 선택을 할 수 있게 됩니다. 원망을 할 것인가? 아니면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에 의지할 것인가?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그 혼돈을 통제할 능력을 갖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스케줄에 따라 잠잠케하는 것은 아닐 수 있습니다. 때로 하나님은 우리의 세계가 무너지는 동안에 배 안에서 주무시는 것처럼 보일 수가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것이 풍랑을 잔잔하게 할 능력이 하나님께 없다는 뜻은 아닐 것입니다.
그가 누구이기에?
그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십니다.
그는 바람을 꾸짖으시며 바다를 잠잠케하시는 분입니다.
베드로를 물 위를 걷게 하시며
사랑으로 십자가를 지셨고
무덤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오직, 그이기에!
찬양 _ 찬송가 304장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