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9장 하늘에 가득 찬 영광의 하나님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63번 시편145편

(인도자) 왕이신 나의 하나님이여 내가 주를 높이고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회중) 내가 날마다 주를 송축하며 영원히 주의 이름을 송축하리이다
(인도자) 여호와는 위대하시니 크게 찬양할 것이라 그의 위대하심을 측량하지 못하리로다
(회중) 대대로 주께서 행하시는 일을 크게 찬양하며 주의 능한 일을 선포하리로다
(인도자) 주의 존귀하고 영광스러운 위엄과 주의 기이한 일들을 나는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회중) 사람들은 주의 두려운 일의 권능을 말할 것이요 나도 주의 위대하심을 선포하리이다
(인도자) 그들이 주의 크신 은혜를 기념하여 말하며 주의 의를 노래하리이다
(회중) 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며 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인자하심이 크시도다
(인도자)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선대하시며 그 지으신 모든 것에 긍휼을 베푸시는도다
**(회중) 여호와여 주께서 지으신 모든 것들이 주께 감사하며 주의 성도들이 주를 송축하리이다(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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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 _ 찬송가 5장 이 천지간 만물들아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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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214장 나 주의 도움 받고자

말씀 _ 마가복음 5장 21~43절

오늘의 복음서 본문은 기적 이야기 안에 기적 이야기가 들어 있습니다. 오늘의 기적은 이것입니다. 예수님은 그의 의지와 상관없이 한 여자를 치유하시고, 한 소녀를 죽음에서 되살리셨습니다.

여러분은 기적을 바라시나요?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마다 사람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저마다의 사연과 이유가 있었겠지요. 하지만 대다수는 소문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이 작은 나라를 들썩이게하는 소문들... 그가 누구인가? 소문의 주인공 “예수” 때문에 “희망”이라는 것이 꿈틀대기 시작한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그 “희망”을 갖기 시작한 많은 사람들 때문에 유대의 종교지도자들과 바리새인, 사두개인 즉 기득권을 가진 이들은 예수를 죽이기로 결정을 내린 것 같습니다.

기적은 희망과 다를까요?

오늘의 기적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마가복음 5장 22절입니다. 회당장 야이로가 예수님을 찾아 왔습니다. 회당장은 마태복음의 표현을 빌리면 ‘지도자’입니다. 사회의 지도자, 또는 유력한 사람으로 회당의 업무를 책임지고 예배 준비를 책임지는 ‘지위’와 ‘명예’를 가진 사람입니다.

그가 예수를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먼 발치에서 예수를 보았습니다. 그리곤 예수님만을 바라보며 예수님께 나아갑니다. 드디어 예수님 앞에 다다른 야이로는 예수님의 발 아래 엎드립니다.

“내 어린 딸이 죽어가고 있습니다. 부디 오셔서 그 아이에게 손을 얹으시어 그 아이를 고쳐 주시고 살게 해 주십시오.”

마가는 이 장면을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그는 간절히 애원하였고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와 함께 가셨다.’

간절히 애원하였다는 표현에 주목해 봅니다. 애원이 무엇일까요? 오늘의 이야기에서 애원은 엎드리는 것입니다. 무릎을 꿇고 고개를 숙이고 엎드리는 것입니다.

이 애원이 ‘기도’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기도’할 때 이런 모습을 잃지 않기를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 야이로와 같이 그의 집으로 가시는 길에 또 다른 기적이 일어납니다. 그런데 이 기적은 예수님께서 모르는 사이에 일어났고 예수님은 그 기적의 사람을 찾으셨습니다.

한 여자가 있었습니다. 그 여인도 예수님의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자신도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에 끼어들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과 가까이 하려고, 예수님을 놓치지 않으려고 그분만을 따라갑니다. 어떻게든 가까이 가려는 그녀의 마음이 어느새, 어느 순간 이루어졌고 그 때 그녀는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습니다.

예수님의 몸에 손을 댄 것이 아니라 옷자락에 살짝 스친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녀는 그 스치는 순간에 시선을 고정하였고 그녀는 그 순간 무슨 일이 일어날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녀 이미 알고 있던 그 일이 그 순간 그녀에게 일어났습니다. 자신의 병이 나은 것을 그녀의 몸이 느꼈습니다. 놀라움도 잠시 예수님의 목소리가 들렸습니다.

“누가 내 옷에 손을 대었느냐?”

이 여인은 한번도 이런 장면을 생각해 보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저 예수님 몰래 이 일을 마치려던 그녀는 얼마나 놀랐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제자들은 사람들이 너무 많아 서로 밀치면서 그런 것 같다고 대답을 하지요. 하지만 예수님은 그 일을 행한 사람을 찾으려 주변을 살피셨고 그 때 여인이 예수님 앞에 엎드리어 모든 사실을 말씀드립니다.

이 여인은 12년 동안 혈루증을 앓고 있었습니다. 마가에 따르면 많은 의사들에게 엄청난 고통을 받았고 모든 방법을 다 써보았지만 아무 효과 없이 오히려 병세가 더욱 악화되고 있었습니다. 그런 여인에게도 ‘소문’이 들렸고 여인은 간절한 마음으로 예수님을 찾아, 그 무리에 끼어 들었습니다.

“내가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구원을 받게 될 거야!” 그녀는 그런 마음으로 예수님의 옷자락에 손을 대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이해할 수 없는 지점이 발생합니다. 12년 동안 모든 방법을 다 써봤지만 소용이 없었다면 아무런 ‘희망’이 없다는 것을 그 여인이 알고 있었다는 것이지요. 그녀는 12년 동안을 고통 가운데 ‘불가능’을 배웠습니다.

그런데 본적도 없었던 예수님, 그저 소문을 듣고 예수님의 옷에 손을 대기만 해도 구원을 받게 될 것이란 생각은 어떻게 가능한 것일까요?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는 그녀의 생각은 “믿음”일까요? 아니면 “간절함” 때문일까요?

믿음은 이 “간절함” 때문에 오해와 왜곡으로 그 본질에서 벗어나 우리를 혼란하게 하기도 합니다. 또는 ‘간절함’이 없다면 ‘믿음’이 없는 것인가?라고 물으며 우리시대의 ‘믿음’이 없음을 탄식하곤 합니다.

예수님은 당신의 발 앞에 엎드린 그녀를 보시고 말씀하십니다.

“딸아,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평안히 가라. 그리고 병에서 완전히 벗어나 건강해져라!”

믿음과 간절함 사이에 헤메이는 우리들에게 예수님은 그녀를 딸이라 부르시면서 ‘믿음’이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녀는 분명 예수의 옷을 만지면 구원받을 것(치유 받을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리고 이 믿음으로 단지 이 진리를 말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예수님께 나아왔습니다. 그녀는 그것을 참으로 믿음이라 생각하는 것을 실천하기 위해 그녀에 대한 사회적 편견, 즉 그녀가 걸어가는 길에 따라오는 시선을 감내하였습니다. 이 지점에서 야이로 또한 마찬가지이지요.

야이로는 예수님과 함께 그의 집으로 가는 길에 딸의 죽음을 전해 듣습니다. 그런데도 야이로는 그 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두려워하지 말고 믿기만 하라”

야이로는 집으로 가는 길, 집에서 들리는 통곡소리, 그래도 예수님과 함께 그의 딸에게로 갑니다. 이것이 야이로의 ‘믿음’입니다.

우리는 12년 동안 고통 받았던 이름모를 여인과 야이로를 통해 ‘간절함’을 넘어선 ‘믿음’을 보게됩니다.

믿음은 사랑하는 딸의 죽음이나 “부정(병듦)”이나 불쾌한 감정과 같은 장애물들이 예수님에 대한 우리의 희망이 사라지지 않게 하는 것을 의미할 수가 있습니다.

믿는다는 것이 ‘기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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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315장 내 주 되신 주를 참 사랑하고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