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0장 전능왕 오셔서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45번 시편 108편
(인도자) 하나님이여 내 마음을 정하였사오니
(회중) 내가 노래하며 나의 마음을 다하여 찬양하리로다
(인도자)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회중)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인도자) 여호와여 내가 만민 중에서 주께 감사하고
(회중) 뭇 나라 중에서 주를 찬양하오리니
(인도자) 주의 인자하심이 하늘보다 높으시며
(회중) 주의 진실은 궁창에까지 이르나이다
(인도자) 하나님이여 주는 하늘 위에 높이 들리시며
(회중) 주의 영광이 온 땅에서 높임 받으시기를 원하나이다
(다같이)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을 건지시기 위하여 우리에게 응답하사 오른손으로 구원하소서(1-6)
송영 _ 찬송가 3장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393장 오 신실하신 주
말씀 _ 마가복음 6장 30~34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각 마을을 돌아다니며 가르치고 행하였던 12명의 제자들이 돌아와 예수님께 그 모든 일들을 전하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마가복음 6장 7~13절 말씀에 이어지는 장면이지요.
∙열 두 제자의 귀환(30-32절)
∙목자 없는 양(33-34절)
∙ [예수께서 오천 명을 먹이다(30-44절)]
∙ [예수께서 물 위를 걷다(45-52절)]
∙게네사렛에서의 기적(vv. 53-56)
우리는 마가복음 6장 13절에서, 귀신을 쫓아내고, 아픈 사람을 고치는 제자들의 “성공”을 전해 들었습니다. 그 다음에 세례 요한의 처형 기사가 삽입되어 29절 말씀으로 정리가 됩니다.
지금 사도들은 예수께 모여, 그들이 행하고 가르친 모든 것을 보고합니다. 그런데 본문 말씀에서 우리는 그들이 무엇을 했고, 무엇을 가르쳤는가에 대해 아무 것도 듣지 못합니다.
여러분의 마가의 의도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아마 상세하게 언급하지 않는 것이 더 좋겠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또는 그들이 한 상세한 그 일들은 이미 앞서 우리가 알고 있는 그 가르침과 행함에 모두 포함되어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여기서 우리는 질문을 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무슨 일을 하고 무엇을 가르칠 필요가 있는가? 사도들의 선교를 계승하고 있는 우리는,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 장소들에서 무슨 일을 하고 무엇을 가르칠 필요가 있는가를 결정해야만 합니다. 다시 말해, 예수께서 우리에게 주신 “더러운 귀신들을 제어하는” 권세를 우리가 어떻게 사용하고 있는가?(마가복음 6:7). 우리는 처음 제자들의 말과 행동을 단지 반복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시대와 장소에서 우리의 말과 행동으로 복음을 잘 전파할 수 있는 방법을 찾을 필요가 있습니다.
우리가 오늘 예배 후 각자의 집으로 돌아가는 것이, 예수께서 제자들을 각 마을로 보내셨던 파송과 같다면? 다시 다음 주 예배에 우리는 무엇을 이야기 할 수 있을까요?
매주 우리가 각자의 처소로, 일터로, 세상으로 파송을 받은 것이라면? 우리의 예배는 분명 달라져야 합니다.
우리가 이렇게 고민에 휩싸여 있을 때, 단 한분 만이 우리와 다른 감정과 다른 생각을 갖고 계십니다.
“따로 외딴 곳으로 가서 잠시 쉬도록 해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예수님이 알고 계셨습니다. 그들을 보고 계셨습니다. 제자들이 오고가는 사람들이 너무 많이 먹을 시간조차 없었다는 것을 알고 계셨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사람들, 무리들을 피해 외딴 곳으로 가자고 말씀하십니다.
“잠시 쉬도록 해라”
“안식일”과 마찬가지로 “쉬다”(anapauo)로 번역된 단어는 “중단하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여기서 사용된 동사의 중간 명령형은 “매우 많은 일을 하는 것을 멈추다”를 뜻합니다. 이 동사의 다른 의미들은 활동의 중단으로 인해 예상되는 결과들, 즉, “쉬는 것,” “(육체적으로) 생기를 되찾는 것,” “잠자는 것,” 그리고 “죽는 것”과 관계있습니다.
지난주 말씀에 예수님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그는 엘리야도 모세도 선지자 중 하나도 세례요한도 아닙니다.
예수는 우리에게 ‘얘, 잠시 쉬도록 해라.’ 말씀하시는 분입니다. 이런 예수님께 한없는 위로와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배에서 내리시어 많은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는데 그 이유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들과 같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많은 것들을 가르쳐 주기 시작하셨다. 34절
모든 고을로부터 온 많은 사람들이 예수와 제자들인 줄 알아보고, 그들이 가려는 곳으로 (먼저) 달려왔습니다. 군중들의 도착으로 인해 배를 타고 떠나려는 예수의 의도는 좌절되었습니다. 무리들은 예수를 따라갑니다. (실제로, 무리들은 33절에서 예수보다 먼저 간다). 그런데 그들이 예수를 따르는 자들일까요? 그들은 예수에게서 무엇을 기대하고 있는 걸까요?
본문에서 무리들의 동기에 관해 아무것도 듣지 못하지만, 그들을 향한 예수님의 마음과 생각을 들을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무리들을 불쌍히 여기셨다는 것입니다.
예수는 왜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는가? “그들이 목자 없는 양 같아서.”
예수는 무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는 그들을 사랑하십니다. 그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이것이 우리를 다음 단계로 이끌어 갑니다.
그의 사랑으로 오병이어(빵5개 물고기2마리)의 기적이 시작됩니다.
Perkins (Mark, New Interpreter's Bible)은 본문 말씀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부분은 예수께서 무리들을 향한 연민을 표현하는 데서 시작한다. 가르치심과 먹이심은 예수가 목자이심을 보여준다. 이 조합은 예수의 모든 사역의 특징이었던 가르침과 치유의 또 다른 모습이다. 오늘날 사람들은 기독교의 책임과 관련 있는 두 가지를 균형 있게 하는 것이 어렵다고 느낀다. 어떤 사람들은 교회의 사회적 봉사가 그리스도가 세상에 임재하게 하는데 필요한 모든 것이라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은 지역 사회에서 누군가를 도울 필요가 있을 때를 제외하고 교회는 음식공급과 치유와는 상관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 주장에 의하면, 교회의 사역은 복음을 전파하고 공적 예배를 제공하는 데 있다.
양측이 다 틀렸다. 복음을 전파하지 않으면 기독교가 존재하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신앙에 필수적인 것처럼, 기도와 기독교 공동체에 속하는 것 또한 필수적이다. 예수께서 보여주신 고통 받는 자들에 대한 연민을 행사하는 공동체는 이미 회심한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것에만 만족해서는 안 된다. 기독교의 사회봉사를 통해 교회의 구성원이 되는 사람들의 숫자가 얼마 되지 않더라도 기독교는 다른 사람들의 절박한 사회적 물질적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애써야 한다.
교회는 세상을 위해 예수의 사랑을 전파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이 사랑은 우리가 타자(Other, 즉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것을 알게 될 때 가능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돌아온 제자들을 먼저 쉬게 하셨습니다. 알고 계셨습니다. 그의 사랑은 세상을 향한 사랑이지만 그 사랑은 오직 저와 여러분 각자를 향한 사랑에서 출발합니다.
그 때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예수께서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안다”고 기꺼이 고백하면서도 자기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자긍심은 자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자긍심은 우리가 진실로 다른 사람들에 의해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시작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그런 위대한 사랑을 선언하시는데, 우리가 어찌 우리 자신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오늘 말씀은 이렇게 결론을 맺습니다.
사람들이 곧 예수를 알아보고 그 모든 지역으로 두루 뛰어다니며 예수님이 계시다는 곳이면 어디든지 몸이 아픈 사람들을 자리에 눕혀서 데례오기 시작하였다. 그리하여 마을이든 읍내이든 농촌이든 예수님께서 들어가시는 곳이면 어디든지 그들은 아픈 사람들을 장터에 데려다 놓았다. 그리고는 예수님의 옷깃에라도 손을 대게 해 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리고 손을 댄 사람들은 모두 구원받았다.
할렐루야!
찬양 _ 찬송가 410장 내 맘에 한 노래 있어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