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35장 큰 영화로신 주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105번 감사절
(인도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회중)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07:1)
(인도자)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회중)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시105:1)
(인도자)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회중)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인도자)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회중)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인도자)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회중)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시107:4-9)
송영 _ 찬송가 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289장 주 예수 내 맘에 들어와
말씀 _ 마가복음 6장 1~13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 본문에는 두 개의 이야기가 들어있습니다. 하나는 나사렛에서 예수의 거절당하심(6:1-6a)과 다른 하나는 열 두 제자의 파송입니다.(6:7-13). 그리고 열 두 제자 파송의 결론은, 6장 30절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 때 그들은 돌아와 예수님께 자신들이 행하고 가르쳤던 모든 것을 예수님께 보고하며 끝이 납니다.
이러한 오늘 말씀은 지난주 말씀과 따로 떨어진 것 같지만 지난 주 말씀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야이로의 딸과 12년 동안 혈루병을 앓았던 여인의 회복에 사람들은 크게 놀랐고 또 놀랐습니다.(5장 42절) 그 놀람에 대한 단어가 오늘 본문에도 등장하는데요. 6장 6절 말씀, 예수님께서 놀라시는 장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대해 놀라워하셨다.”
사람들의 놀람은 ‘기적’에 있었고 예수님의 놀람은 ‘그들이 믿지 않는 것’에 있습니다.
무엇이 더 놀라운 일일까요?
기적을 보는 것? 아니면 기적을 보고도, 예수를 앞에 두고고 믿지 않는 것?
믿음과 기적들
Richard Jensen은 그의 책 <Preaching Mark's Gospel>에서 믿음을 기적의 필수요건으로 보는 것은, 위험한 신학적인 바탕 위에 서 있는 것이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마가복음에는 (귀신축출을 포함하여) 15개의 치유기적들과 5개의 자연 기적들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 20개의 기적 기사들은 아래와 같습니다.
1:21-28 회당에서의 치유- 믿음이 언급되지 않음
1:29-31 베드로의 장모를 고치심-믿음이 언급되지 않음
1:32-34 모든 병자를 고치심-믿음이 언급되지 않음
1:40-45 나병환자를 고치심-믿음이 언급되지 않음
2:1-12 중풍병자를 고치심-예수가 네 친구들의 믿음을 보신다(!)
3:1-6 손 마른 사람을 고치심-믿음이 언급되지 않음
4:35-41 폭풍을 잔잔하게 하심-제자들의 믿음의 부족이 언급됨
5:1-20 거라사의 귀신들린 사람을 고치심-믿음이 언급되지 않음
5:21-24a, 35-43 야이로의 딸을 고치심-믿으라는 말을 듣는 야이로
5:24b-34 혈루증 여자를 고치심-“네 믿음이 너를 구원했다.”
6:5-6 나사렛에서 소수를 고치심-예수가 그들의 불신을 보로 놀라심
6:30-44 오천 명을 먹이심-제자들의 믿음의 부족이 암시됨
6:45-52 물 위를 걸으심 - 제자들의 완고한 마음이 언급됨
6:53-56 게네사렛에서 병자를 고치심-믿음이 언급되지 않음
7:24-30 수로보니게 사람의 딸을 고치심-믿음이 언급되지 않지만, 그녀가 예수께 대한 대답에서 믿음의 사례를 보게 됨.
7:31-37 귀먹고 말 더듬는 사람을 고치심- 믿음이 언급되지 않음
8:1-10 사천 명을 먹이심-제자들의 믿음의 부족이 암시됨
8:22-26 맹인을 고치심-믿음이 언급되지 않음
9:14-29 귀신들린 아이를 고치심-예수께서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다:고 말하신다. 아버지는 부분적인 믿음을 표현한다:”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주소서.“
10:46-52 맹인 바디매오를 고치심-“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11:12-14, 20-24 무화과나무를 저주하심-예수께서 기적 후에 이렇게 말하신다. “누구든지 이 산더러 들리어 바다에 던져지라 하며 그 말하는 것이 이루어질 줄 믿고 마음에 의심하지 아니하면 그대로 되리라.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무엇이든지 기도하고 구하는 것은 받은 줄로 믿으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그대로 되리라.”
놀랍게도 믿음은 마가복음의 대부분의 기적들에서 언급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기적들에 대해 이렇게 정리할 수 있습니다.
“치유 받은 사람들이 치유를 간청할 때도 있지만, 간청하지 않을 때도 있다. 신성한 기적은 우리의 믿음이나 기도로 통제되어지지 않는다. 그 기적들은 하나님의 뜻과 능력에서 비롯된다.”
2절 말씀입니다. “이 사람의 손으로 행해지는 이런 권능은 어떤 것인가?”
기적은 우리의 믿음이 아니라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이 사실을 가슴 깊이 새기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나의 믿음의 크기가 아니라 먼저 하나님의 “권능”입니다.
하지만 Williamson은 믿음과 기적에 대하여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명확하게 암시되고 있는 의미는 그들이 예수를 믿었다면 예수께서 더 많은 기적을 행할 수 있었다는 것이다. 회중의 영적 분위기, 회중의 기대감,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역사하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한 개방성이 개별 공동체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훨씬 더 많이 행사되게 하는 데 많은 영향을 미치게 될 것이다. 우리의 불신이 하나님을 무력하게 만들지는 않지만, 회중 안에서 불신이 지배적일 때 그 시간과 장소에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권능의 감소효과는 분명하고 슬픈 현상이다. [pp. 116-117]
사람들의 믿음의 부족은 그들이 예수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는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납니다.
바로 6장 1~6절의 나사렛의 모습입니다. 5절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곳에서 몇몇 아픈 사람들에게 손을 얹어 병을 고쳐 주셨을 뿐 다른 기적은 행하실 수 없었다.”
그들은 치유를 위해 병자를 데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축복을 위해 자녀들을 데려오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가르침을 듣기 위해 오지 않았습니다.
나사렛의 사람들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를 거부했기 때문이지요.
믿음에는 행동이 뒤따른다고 말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아무 것도 하지 않는 사람은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는 의미가 되지 않을까요?
믿음이 있으니 “행동”하라는 의미가 아닙니다. 믿음이 있다면 “행동”하게 된다는 말이고 “행동”하지 않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하고 계십니까?
믿음에는 행동이 뒤따릅니다. 예수에 대한 믿음이 없는 사람들은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7절에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부르시고 둘씩 짝지어 보내시는 장면으로 이어집니다.
현대사회 많은 기독교인들이 “기능적 무신론자들”(functional atheists)라고 합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생활하며 기능을 수행한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믿지 않으며 교회에 다닌다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하면 아무 것도 바꾸지 않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며 믿는다는 것이지요.
나사렛은 예수님을 거부하였습니다. 이 '거부하다'는 단어는 NRSV에서 “존경을 받지 못하는”으로 번역된 아티모스(atimos)라는 단어와 관계가 있습니다. 이 단어의 기본적인 의미는 “가격이나 가치를 매기다”입니다.
사람은 높은 가치를 매기는 물건들과 사람들을 “귀중하게 여깁니다.”
그러니까 나사렛이 거부했다는 말은 밀치거나 내쫓았다는 말이 아니라 그들이 예수님께 가치를 부여하지 않았다는 뜻입니다. 그는 목수에 불과하였고 가난한 마리아의 아들에 불과하였습니다.
우리가 예수를 거부하지 않았다는 변명을 여기서 멈추게 됩니다. 우리가 예수를 ‘귀중하게’ 최고의 가치에 두지 않았다는 것이 예수를 거부하는 것입니다.
즉, 우리가 예수에게 가치를 두지 않는 한 ‘기적’은 일어날 수 없는 것이지요. 바로 예수를 거부했기 때문입니다.
7절 말씀에서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권세”를 주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떠나가서 사람들에게 “회개하라!” 선포하고 많은 귀신들을 쫓아내며 많은 환자들에게 기름을 부어 병을 고쳐 주었습니다.
이런 일들이 대단한 일처럼 느껴지시나요? 오늘 말씀에 따르면 그들은 그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아니하 그 무엇이라도 행하였다는 것입니다.
그 무엇이라도 했다는 것입니다. “권세” “권능”을 부여받은 제자들도 거절 당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처럼 말입니다. 그러니 예수님께서 하신 말씀을 제자들은 기억해야 합니다.
“어느 곳이든 너희를 받아 들이지 않거나 너희 말도 듣지 않으면 그곳을 떠날 때 너희의 발 아래 있는 먼지를 털어 버려 그들에게 증거로 삼으라”
예수님께서 믿지 않는 그들에게 놀라셨습니다. 더 이상 예수께서 더 이상 다른 기적을 행하실 수 없는 곳이 많아지고 있습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그리고 우리가 행동해야하는 이유입니다.
찬양 _ 찬송가 302장 내 주 하나님 넓고 큰 은혜는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