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20장 큰 영광 중에 계신 주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50번 시편 116편
(인도자) 여호와께서 내 음성과 간구를 들으시므로 내가 그를 사랑하는도다
(회중) 그의 귀를 내게 기울이셨으므로 내가 평생에 기도하리로다
(인도자) 사망의 줄이 나를 두르고 스올의 고통이 내게 이르므로 내가 환난과 슬픔을 만났을 때에
(회중)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기도하기를 여호와여 주께 구하오니 내 영혼을 건지소서 하였도다
(인도자)여호와는 은혜로우시며 의로우시며 우리 하나님은 긍휼이 많으시도다
(회중) 여호와께서는 순진한 자를 지키시나니 내가 어렸을 때에 나를 구원하셨도다
(인도자) 내 영혼아 네 평안함으로 돌아갈지어다 여호와께서 너를 후대하심이로다
(회중)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1-8)
(인도자) 내게 주신 모든 은혜를 내가 여호와께 무엇으로 보답할까
(회중) 내가 구원의 잔을 들고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인도자) 여호와의 모든 백성 앞에서 나는 나의 서원을 여호와께 갚으리로다
(회중) 그의 경건한 자들의 죽음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귀중한 것이로다(12-15)
송영 _ 찬송가 2장 찬양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251장 놀랍다 주님의 큰 은혜
말씀 _ 마가복음 6장 14~29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 말씀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1) 예수에 관한 소문들(14-16절)
(2) 세례 요한의 죽음(17-29절)
예수에 관한 소문(14-16절)
마가복음 6장 14절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예수님의 이름이 널리 알려졌기 때문에 헤롯 왕도 그 소식을 듣게 되었다.”
우리는 헤롯이 무엇을 들었는지 알지 못합니다. 아마 그것은 제자들의 선교와 관련이 있었음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6:6b-13). 제자들의 선교가 “예수의 이름을 널리 알려지게 했다”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14절을 다시 보면 그들의 그 “능력”(dynamis, 14d절, 참조 5:30;6:2,5을 참조하라)이 오해를 받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14~16절에서 사람들은 그 능력이
(1)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세례 요한
(2) 엘리야(말라기 4:5-6의 성취)
(3) 선지자들 가운데 한 사람(아마도 신명기 18:15-20에서 모세 같은 선지자에 대한 약속의 성취일 것이다)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런 기적적인 능력을 행하는 예수를 ‘다시 살아난 세례요한, 엘리야, 선지자 들 중 하나가 예수 안에서 행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17절부터 셰례요한의 죽음에 관한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이 세 가지 반응들은 예수께서 “사람들이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고 물었을 때의 제자들의 대답과 동일해 보입니다.(마가 8:27-28)
그런에 이전 단락(즉, 지난주의 본문)에서, 나사렛 사람들은 예수가 목수이고, 마리아의 아들이고, 예수의 형제자매들의 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것과 다른 부분이기도 하지요.
그래서 과연 예수는 누구인가? 그리스도에 관한 다음과 같은 고대의 다양한 이해들, 즉 많은 이단들의 견해와 정통적인 이해들이 있었습니다.
∙ 에비온파: 예수는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이었다. 그는 메시야였다. 그러나 신은 아니었다.
∙군주신론 또는 양자설: 예수는 세례 시에, 성령에 의해 신적인 능력을 에너지로 받은 유일무이한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아들로 불리었다.
∙ 아리우스 주의: "예수가 존재하지 않을 때가 있었다" = 예수는 아버지처럼 영원한 존 재가 아니었다. 그는 창조자와 피조물 사이의 중개자였다(오늘날의 여호와의 증인은 아리우스적인 기독론을 채택한다.)
∙ 오리겐주의 또는 종속설: 그리스도는 신적인 존재이다. 가장 최고의 신적 본질보다 다 소 낮은 신적인 존재이다. 가장 최고의 신적 수준에서부터 그의 존재가 파생된다.
∙ 네스토리안주의: 예수는 인성과 신성이라는 두 개의 구분된 인격으로 나눠진다. 마리아는 하나님의 어머니가 아니었다(theotokos, “God-bearer”). 신적인 로고스(“말씀”)는 인간의 고난과 죽음에 관여되지 않았다. 그리스도는 인성이 신성에 의해 융합되지 않고 극복되지 않을 때만 참된 인간이 될 수 있다.
∙단일신론: 하나의 인격, 하나의 본체, 하나의 본성이 있다. 그리스도의 인간성은 중요 하지 않게 된다. 그는 하나님이었다.
∙양태론적 단일신론: 하나님은 어느 한 때에 아버지의 모습으로 계시되었고, 다른 때에 아들의 모습으로, 그리고 또 다른 때에 성령의 모습으로 계시되었다.
∙이신론: 이 관점은 물질은 본질적으로 악하다는 헬라의 사상에서 시작된다. 예수는 진짜 된 “혈과 육”을 지닌 사람이 아니었고, 그는 단지 사람처럼 보였을 뿐이다. 그는 인간의 모양을 한 신이었다.
결국 수많은 주장과 논쟁들은 칼케돈 공의회에서 정리되어 지금에 이르고 있습니다.(Council of Chalcedon : 451년 10월 8일부터 11월 1일까지 소아시아의 비티니아의 도시 칼케돈(현재의 튀르키예 이스탄불 주)에서 열렸던 기독교의 공의회)
당시 공의회에서는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은 분리되지 않는다는 내용의 칼케돈 신조를 통해, 예수 그리스도는 완전한 인간이요, 완전한 하나님이라고 고백하였고 우리의 신앙고백 ‘삼위일체’가 그것입니다.
∙칼케돈의 정의 또는 정통주의(“올바른 믿음”):예수 그리스도는 한 분이시다. 그는 하나의 인격과 하나의 위격(“본체”)으로 보존된 두 본성을 갖고 있다. 두 본성들은 손상되지 않고 하나님과 인간과 “완전한” 동질이다. 그리스도는 선재했고, 동정녀에게서 태어 났다. 그리스도는 영원하고, 십자가에서 죽으신다.
예수에 관해 많은 다른 견해들이 있습니다. 그 가운데 많은 것이 매우 아주 성경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틀린 것일 수 있다는 것입니다.
Robert Capon이 그의 책 <Hunting the Divine Fox>의 “슈퍼맨”이란 장에서 그리스도의 본성에 관해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 장을 이렇게 시작하고 있습니다. “나사렛의 예수는 참 하나님과 완전한 인간으로 한 인격 안에서 분리될 수 없고 혼동되지 않은 연합을 이루고 있다.” [p. 85, ].
따라서 그리스도의 완전한 인간성은 단순한 인간성이다. 그리스도는 인간이다. 전적으로 인간이고, 인간에 지나지 않는다. (물론 예수는 또한 하나님이시다. 그러나 첫 번째 규칙은, 당신이 예수의 두 가지 본성을 두 개의 독립된 본성으로 따로 분리할 수 없지만, 또한 예수를 스크램블 달걀[즉, 흰자와 노른자를 마구 섞어서 만든 요리]처럼 만들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예수는 신성과 인간성의 혼합물이 아니다. 그의 본성들은 분리할 수 없지만 구별된다. 그의 신성 안에 인간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그의 인간성 안에 하나님의 파편이 일부 들어 있는 것이 아니다. 이 두 본성들의 연합은 정확하게 하나의 연합이지 융합이 아니다.)
이 모든 것이 필요한 이유는 거의 모든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인간성을 더 매력적으로 만들려는 유혹에 저항하지 않기 때문이다. 평범한 미국 사람이 예수에 대해 갖고 있는 진짜 패러다임은 슈퍼맨(Superman)이다. 우리들은 인간성을 갖고 구원받기를 원치 않는다. 우리는 인간성을 벗어버리기를 원한다. 우리는 예수가 하나님이었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하나님을 모독했기 때문에 그를 십자가에 못 박았다. 그는 하나님이라고 주장했고, 그 주장을 판단하는 우리들의 기준에 미치지 못했기 때문이다. 우리가 메시아를 찾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바로 그가 우리가 찾고 있는 사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우리가 찾는 유형의 메시아는 십자가로부터 내려올 것이다. 그는 그의 뒷주머니에 공중전화박스를 넣고 다닐 것이다. 그는 죽은 자로부터 살아나는 어리석은 일을 하지 않을 것이다. 그는 결코 죽지 않는 것과 같은 멋진 일을 할 것이다. [pp. 90-91]
여러분도 슈페맨을 원하십니까?
다음 이야기는 예수를 따르는 것의 인간적인 측면을 강하게 느끼게 해주는 것 같습니다.
세례 요한의 죽음(17-29절)
16절 이후 마가는 “왜 여기에서 세례요한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것일까요?”
세례 요한의 죽음은 이미 과거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그래서 마가는 예수에 관한 이 이야기의 어디 시점에든지 그 기사를 배치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는 마가복음 1:14a에서 요한이 체포되었다는 아주 간략한 말을 전해 들었습니다. 거기에서 그가 어떤 일로 체포되었는지 아무 언급을 하지 않았지요.
마가는 세례 요한의 죽음을 이 지점에 배치함으로써 우리에게 어떤 메시지를 제공하고 있는걸까요?
Juel (Mark, Augsburg Commentary) 은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성공과 인기를 누리고 있는 것 같은 때에, 요한에게로 되돌아감으로써 이야기에 다시 심각한 분위기가 도입된다. 다시 말해, 이것은 기득권층을 위협하는 설교자들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를 상기시키는 역할을 한다. 예수와 요한을 혼동함으로써 비슷한 운명이 예수를 기다리고 있음을 암시한다. [p.95]
십자가 위의 예수는 분명 ‘삼위일체’ 성자이십니다. 인간 예수의 운명은 혹독합니다. 그러나 그는 결코 우리의 기대처럼 십자가에서 멋지게 내려오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는 태초에 말씀이셨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 땅에 오셨고 ‘이 잔’을 피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그는 결코 엘리야가 아니고 예언자 중 한 명이 아니고 헤롯이 죽인 세례요한이 아닙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이 온전한 “예수”를 만나시길 소망합니다.
헤롯-가시떨기 땅의 한 사례
Richard Jensen은 그의 책 <Preaching Mark's Gospel>에서 Mary Ann Tolbert's의 씨 뿌리는 자의 비유의 유형론(복음의 씨 뿌리는 것)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Jensen과 Mary가 보기에, 헤롯은 가시떨기 사이에 뿌려진 씨앗의 한 사례입니다.(마가복음에서 영생을 구하는 관원[10:17-31]과 빌라도[15:1-15]가 가시떨기에 뿌려진 씨앗의 또 다른 사례들이다.)
헤롯은 요한을 두려워했습니다. 그는 요한이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는 요한을 보호하였습니다. 그는 요한의 말을 듣는 것을 좋아했고 말씀을 기쁘게 들었습니다. 씨앗이 뿌려졌습니다. 헤롯은 (예수께서 파송한 제자들에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했던 것처럼) 메신저들과 메시지를 거절한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런데 헤롯이 곤경에 처해집니다. 그녀의 부인 헤로디아가 세례요한에게 앙심을 품고 그를 죽이려고 마음먹었기 때문입니다. 결국 헤로디아는 헤롯에게 세례 요한의 머리를 달라는 간청을 합니다.
이 헤로디아의 간청 이후 Jensen은 다음과 같은 설명을 추가하고 있습니다.
헤롯은 곤경에 처했다. 그는 매우 당황하였다. 그러나 그는 신념을 버렸다! 그는 맹세했고 그의 손님들을 그것을 들었다. 그는 자신의 맹세를 지켜야 했다. 그 때문에 세상의 염려가 헤롯이 들었던 말씀을 질식시켰다. 요한이 뿌린 씨앗은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했다. [pp. 109-110]
Jensen은 헤롯의 이야기는 세상의 염려가 말씀을 질식시킨 한 사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있습니다.
“오늘날 사람들 사이에서 어떤 종류의 세상 염려들이 말씀을 질식시키는가?”
“당신이 하는 일이 옳지 않다”(18절)는 요한의 율법의 말씀에 대한 헤로디아와 헤롯의 반응이 대조적입니다.
헤로디아는 적개심으로 반응하면서, 요한을 죽이기를 원합니다.(19절, 헤로디아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길가에 뿌려진 씨앗과 같다). 그에 반해 헤롯은 좀 더 긍정적으로 반응하고 있습니다.(20절). 하지만 두 경우 모두, 씨앗이 뿌리를 내릴 수 없습니다.
두 경우 모두, 율법이 복음을 통해, 회개와 용서와 새로운 생명을 원하는 소원으로 이어지지 못하고 있습니다. 헤롯은 헤로디아에 비해 조금 더 호의적인 것처럼 보이지만, 말씀을 “기쁘게 듣는 것”과 말씀으로 인해 자기의 삶을 변화시키는 것은 같은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예수가 누구인가? 질문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변화시키고자 할 때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의 염려와 걱정 근심으로 질식되지 않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씨앗은 오직 하나님의 나라에 의지하여 심을 때 저절로 열매를 맺게 됩니다.
찬양 _ 314장 내 구주 예수를 더욱 사랑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