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9장 하늘에 가득 찬 영광의 하나님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71번 이사야 55장

(인도자) 오호라 너희 모든 목마른 자들아 물로 나아오라 돈 없는 자도 오라
(회중) 너희는 와서 사 먹되 돈 없이, 값 없이 와서 포도주와 젖을 사라
(인도자) 너희가 어찌하여 양식이 아닌 것을 위하여 은을 달아 주며
(회중) 배부르게 하지 못할 것을 위하여 수고하느냐
(인도자) 내게 듣고 들을지어다 그리하면 너희가 좋은 것을 먹을 것이며
(회중) 너희 자신들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으리라
(인도자)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회중)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
(인도자) 내가 너희를 위하여 영원한 언약을 맺으리니
(회중) 곧 다윗에게 허락한 확실한 은혜이니라(1-3)
(인도자)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회중)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인도자)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회중)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다같이)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6-7)

송영 _ 찬송가 5장 이 천지 간 만물들아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등록하기

찬양 _ 찬송가 407장 구주와 함께 나 죽었으니

말씀 _ 마가복음 9장 38~50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이번 주 본문은 여덟 개의 서로 다른 교훈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상이나 표현에서 서로 연관이 있지만, 병행구절들이 다른 복음서의 여러 곳에 나오는 것으로 보아 독립된 교훈이었지만, 마가가 그것들을 한군데 모아 놓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1. 우리를 위하는 자 또는 우리를 반대하는 자(마가9:38-40//누가 9:49-50;마태 12:30;누가 11:23)

39b절에 관한 문자적 번역과 설명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 이름으로 능한 일(dynamis)을 행하고(미래 시제), 즉시 나에 대해 악한 말을 할 수 있는(dynamai, 미래시제)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행하고”는 미래시제인데, (대부분의 번역들에서처럼) “ 행하고 있다”는 현재시제의 의미거나, “행했을”이란 부정과거 가정법입니다. 나는 이 문장에 대한 해석의 중요한 열쇠는 “능한 일””에 있지 않고 “내 이름으로”에 있습니다. 예수에 대해 악한 말을 하지 않는 것은 기적들을 행하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의 이름으로” 그렇게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이런 사람들은 그대로 두라고 말씀하시며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 사람은 우리를 위한 사람이라고 설명하셨습니다. 그들이 행한 일은 ‘기적’이고 그들이 그런 일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예수의 이름’이었다는 것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합니다.

9장에는 “이름”이란 단어가 자주 등장합니다.

누구든지 내 이름으로 이런 어린아이 하나를 영접하면(37절)
주의 이름으로 귀신을 내쫓는 사람(38절)
내 이름으로 능한 일을 행하고(39절)
너희가 그리스도의 이름을 가지고 있다고 하여(개역개정에는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 하여”) 물 한 그릇을 주면(41절)

예수의 이름으로 살아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2. 물 한잔(마가복음 9:41//마태복음 10:42)

“너희가 그리스도에게 속한 사람이기 때문에 너희에게 물 한 잔이라도 주는 사람은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말하는데 자기가 받을 상을 결코 잃지 않을 것이다.”

이 문장을 다시 정리해 보면,

<너희=제자, 제자=물을 받아 먹는 사람, 주는 사람=제자가 아닌 사람, 상을 받을 것>입니다.

마가복음에서 potizo(“마시라고 주다”)라는 단어가 유일하게 사용된 다른 곳은 예수께서 십자가에 달리실 때, 어떤 이가 신포도주에 적신 해면을 갈대에 꿰어 예수에게 주어 마시게 했을 때입니다.(15:36).

이렇게 보면 아마 이 친절한 행동을 통해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우리를 반대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일 수 있으며, 이를 통해 그는 우리를 위하는 사람, 기독교인이 받을 상을 받을 자격이 있는 사람이 된다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 구절은 행위로 말미암은 구원에 대해 말하고 있는 걸까요? 이 약속은 대접받는 사람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돕는 사람들에게 들려진 약속이라기보다는 도움을 주는 불신자들을 향한 신자들의 태도 및 행동에 관한 것으로 보입니다. 박해의 시기 동안 1세기 동안에, 도움을 주는 불신자들을 향해 신자들은 예수께서 하신 이 말씀을 근거하여 그들의 ‘복’을 빌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할렐루야!

3. 연자 맷돌(마가복음 9:42 / 마태복음 18:6; 누가복음 17:2)

영어역본 NRSV에서는 42절과 41절 사이의 연관성이 모호하지만 문자적으로 각 절은 다음과 같이 시작합니다.

누구든지 너희에게 물 한 잔을 주어 마시게 하면,

그리고 누구든지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신자들에게 물 한 잔을 주는 사람들과 대조적으로, 신자들을 실족하게 하는/죄를 짓게 하는(skandalizo) 사람들이 있습니다. 은혜를 베푸는 사람이 상을 놓치지 않는 것과 대조적으로 사악한 사람들은 “시멘트 신발”을 신고 강물에 던져지는 것보다 더 나쁜 운명에 처해질 것입니다.

박해의 시기 동안에, 이 본문은 신자들에게 희망을 주었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사는 동안에, 그들을 선대한 불신자들과 그들을 나쁘게 대한 사람들이 마지막에 그들의 합당한 “상”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이 심판이 결코 우리를 피해 가지 않습니다. 불신자들에게 해당하는 말씀이 아니요. 우리에게 하신 말씀이십니다.

4. 손, 발, 눈(마가복음 9:43-47//마태복음 5:29-30;18:8-9)

42, 43, 45, 47절의 “실족하게 하다”의 본래 의미는 “함정에 빠뜨리다”입니다. 좀 더 구체적으로 말하면, 함정에 빠지게 하는 메커니즘을 가리킵니다. skandalethron은 미끼가 걸려있는 막대기였는데, 그것을 건들면 함정에 빠지게 되어 있습니다.

이 능동동사는 다음과 같은 뜻을 가질 수 있습니다.

1)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더 이상 믿지 않게 하거나,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잘못된      것을 믿게 하는 것

2)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죄를 짓게 하는 것

3)실족하게 하는 말과 행동 때문에 누군가가 분노나 충격을 경험하게 하는 것

이 세 가지 의미들 가운데  이 구절들에서는 어떤 뜻을 적용해야 할까요?

42절에서 “믿다”는 단어가 사용되고 있기 때문에,  skandalizo의 의미가 “믿지 않게 하는 것”과 연관이 있을 것입니다.

“실족하게 한”것의 결과는 지옥(gehenna)에 던져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지옥에 던져지는 죄는 불신이나 거짓 믿음이요. 하나님께 대해 짓는 어떤 사소한 잘못들이 아닙니다.

우리로 하여금 ‘믿음’을 갖지 못하게 하는 것들은 무엇일까요?

동의하실 수 없겠지만 우리의 ‘손, 발, 눈’입니다. 다른 말로하면 우리의 경험들이 우리로 하여금 ‘믿음’을 가질 수 없게 만듭니다.

이것이 무서운 것은 ‘나를 누군가 믿지 못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내 손에 갖고 싶은 것, 내 발로 가고 싶은 곳, 내가 보는 것이 나로 실족케하는, 즉 믿음을 가질 수 없게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가 실족케 되는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누구 때문입니까?

그래서 회개는 실족하는 (skandalizo) 사람들에게 희망의 단어입니다. 그리고 예수님의 “약속”이 희망입니다.

마가복음 14장 27절 말씀입니다. “너희들은 모두 걸려 넘어질 것이다. 그러나 내가 일으킴을 받은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갈 것이다.”

5. 영원한 불(마가복음 9:48//이사야 66:24)

이 간단한 말씀은 이사야의 마지막 절을 생각나게 합니다.

“그들이 나가서 내게 패역한 자들의 시체들을 볼 것이라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 모든 혈육에게 가증함이 되리라.”(이사야 66:24).  .

이 이미지는 우리 자신이나 다른 사람들을 죄 짓게 하는 것이 하나님을 향한 심각한 범죄이고, 신자들조차도 이런 잘못을 할 수 있음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원하시는 것은 지금 당장 행동을 변화시키는 데에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해야 여러분의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해야 한국교회는 변화될까요?

6. 불로 소금 치듯(마가 9:49)

Schweizer (The Good News according to Mark)는 이절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절에 대한 가장 합리적인 해석은 (박해의 고통이나 종말이나 성령을 상징하는) 하나님의 불이 (고기를 절일 때 사용하는) 소금처럼 부패를 방지한다고 보는 것이다.”[p. 199]

Witherington (The Gospel of Mark)도 매우 비슷한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실제로 시련들이 어떻게 그리스도인의 성품을 강화하거나. 보존할 수 있느냐와 관련이 있다. 단순히 그 성품을 시험하는 데 있지 않다.” [p. 273].

소금으로 정결하게 하듯 시련이나 박해를 나타내는 ‘불’은 영의 부패와 타락을 막아주며 모든 죄악을 태워 정결케 하는 의미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인에게 ‘불’도 ‘정결케 함’에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거룩한 이들이 그리스도인입니다.

7. 소금으로 소금 치듯(마가복음 9:50a//마태복음 5:13;누가복음 14:34-35).

소금이 어떻게 맛을 잃어버릴까요? 그 “소금”은 다시 짜게 만들 수 없습니다. 우리 신앙의 순수성에 불순물이 섞이거나 약화될 때, 순수한 ‘소금’은 서서히 사라져서 “맛”을 잃는 믿음으로 버려지거나, 순수한 신앙을 회복할 가능성이 없게 될 것입니다. 경고의 메시지인 것입니다.

다음의 이야기를 잘 새겨 보아야 할 것 같습니다.

“ 그들의 삶에서 겸손한 섬김이나 다른 그리스도인을 향한 개방성, 믿음의 어린아이들을 돌보는 것, 그리고 엄격한 자기 훈련과 같은 특성을 찾아볼 수 없는 제자들은 맛 잃은 소금과 같다. 그들은 자신들을 주변 환경과 구별해 주고, 그들의 유용성을 입증하는 날카로움을 상실했다. 그러므로 예수가 소금이었다는 점에서(31, 35-37절), 제자들은 소금 그리스도인들이 되어야만 한다."(Williamson (Mark Interpretation)

8. 소금과 화목(마가복음 9:50b절)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의 중요한 특성은 그들이 서로 관계를 맺는 방식에 있습니다. “너희 속에 계속 소금을 두고 살아가라”(현재시제)는 것은 계속 해서 서로 평강 속에 살아가는 것(현재시제)을 뜻하지요.

이 부분을 동의어적 병행 구절로 표현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너희 자신들 안에/너희 자신들 사이에/너희들이 함께 소금을 두고
서로 안에서/서로 사이에/서로 함께 평안으로 살아가라

헬라어 에이레네(eirene, “peace.” 평강")는 개인적이고 내적인 평온보다는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를 주로 가리키는 것입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과 전쟁을 하거나 논쟁을 하거나, 다른 사람의 일을 방해하는 것과 정반대입니다. 주로 “다른 사람들과의 조화”를 의미하고 히브리어 shalom처럼 온전함, 잘 지냄, 건강함의 속성들을 뜻하기도 합니다.

Witherington (The Gospel of Mark)은 다음과 같은 말로 이 부분에 대한 주해를 마치고 있습니다.

제자들이 소금이 되어야 하고, 서로 화목해야 한다는 견해는 레위기 2장 13절의  “네 모든 소제물에 소금을 치라 네 하나님의 언약의 소금을 네 소제에 빼지 못할지니 네 모든 예물에 소금을 드릴지라”에 근거를 두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또한 소금 언약에 대해 말하는 민수기 18장 19절을 참조하라. 그러므로 누군가와 소금을 공유하는 것은 그 누군가와 친교하거나 심지어 언약관계를 맺는 것이다. 따라서 “너희 속에 소금을 두고”의 강조점은 제자들에게 논쟁을 멈추고 서로 참된 언약의 교제를 하라는 데 있다. 우리는 이 단락의 시작으로 되돌아간다. [pp. 274]

소금, 즉 언약을 지니고 서로 평화롭게 지내는 가정과 교회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등록하기

찬양 _ 찬송가 620장 여기에 모인 우리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