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0장 전능왕 오셔서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 교독 _ 교독문 117번 구주강림 (3)
(인도자) 광야와 메마른 땅이 기뻐하며 사막이 백합화같이 피어 즐거워하며
(회중) 무성하게 피어 기쁜 노래로 즐거워하며 레바논의 영광과 갈멜과 샤론의 아름다움을 얻을 것이라
(인도자) 그것들이 여호와의 영광 곧 우리 하나님의 아름다움을 보리로다
(회중) 너희는 약한 손을 강하게 하며 떨리는 무릎을 굳게 하며
(인도자) 겁내는 자들에게 이르기를 굳세어라, 두려워하지 말라, 보라 너희 하나님이 오사
(회중) 보복하시며 갚아 주실 것이라 하나님이 오사 너희를 구하시리라 하라
(인도자)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회중)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인도자)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
(회중) 뜨거운 사막이 변하여 못이 될 것이며 메마른 땅이 변하여 원천이 될 것이며
(인도자) 승냥이의 눕던 곳에 풀과 갈대와 부들이 날 것이며
(회중) 거기에 대로가 있어 그 길을 거룩한 길이라 일컫는 바 되리니
(다같이) 깨끗하지 못한 자는 지나가지 못하겠고 오직 구속함을 입은 자들을 위하여 있게 될 것이라(사35:1-8상)
송영 _ 찬송가 3장 성부 성자와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112장 그 맑고 환한 밤 중에
말씀 _ 마태복음 11장 2~11절 , 당신이 오실 그분입니까?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세례 요한이 감옥이 갇히고 그의 제자들이 세례요한을 찾아 와 그리스도께서 하신 일들을 전해듣고 그의 제자들을 예수님께 보내는 장면으로 시작합니다.
세례요한의 그리스도께 묻고자 자신의 제자들을 그에게로 보냈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께 무엇을 묻고 싶으신가요?
세례 요한의 질문은 아주 간결합니다.
“당신이 오실 그분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세례요한은 어떤 표정으로 자신의 질문을 그의 제자들에게 전했을까요?
세례요한의 표정이 궁금해집니다. 그는 감옥에 있는데 그가 묻고자 하는 것이 “당신이 그분이십니까?”라니 어떤 마음이었을지 잘 가늠이 되질 않습니다.
신학자 Carter (Matthew and the Margins: A Sociopolitical and Religious Reading)는 16 장20까지의 마태복음의 간략한 개요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 1:1-4:16은 사명을 감당하는 예수님에 대한 하나님의 주도권을 강조하고, 4:17-11:1은 예수께서 어떻게 그의 말(5-7장, 10장)과 행동(8-9장)으로 이 사명을 성실하게 이행하는가를 보여주고, 11:2-16:20에서는 예수의 행동과 말에 근거해서 예수의 정체성을 인식할 필요와, 헌신을 하든지 거절을 하든지 반응할 필요를 암시한다. [p. 249]
그는 계속해서 오늘 본문이 포함되는 단락의 개요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 11:2-19 예수와 요한의 정체성과 그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들
- 11:2-6 예수의 정체성에 대한 요한의 질문
- 11:7-15 요한의 정체성에 대한 예수의 진술
- 11:16-19 예수와 요한에 대한 부정적인 반응과 거절
우리는 지금 대강절, 그러니까 “기다림”의 절기를 보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카터의 설명에서 결론에 해당하는 말씀의 주제가 “거절”입니다.
이와 관련하여 신학자 Kingsbury (Matthew: Structure, Christology, Kingdom)는 이 절들을 포함하는 단락에 관해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복음서의 이 부분(11:2-12:50)에서는 이스라엘의 모든 분야의 사람들이 메시아 예수를 거절한 것에 대해 말하고 있다”[p. 18].
왜 그들의 결론은 거절이었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세례요한과 예수님을 거절하였습니다. 우리가 인정하고 싶지 않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을 거절하고 있습니다. 이 대강절이 지나면 성탄절입니다. 이제 우리의 마음을 잘 들여다보길 기도합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받아들을 수도 거절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날마다 기다리고 있다고 이야기하지만 우리의 삶은 예수님을 온 몸으로 “거절”하고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세례요한의 질문에 예수님은 어떤 대답을 하실까요?
세례요한 : “당신이 오실 그 분입니까?” “그렇지 않으면 다른 분을 기다려야 합니까?” 예수에게 가서 전해라!
예수 : 가서 너희가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전하라!
예수 : “눈먼 사람들이 보고 못 걷는 사람들이 걸으며, 나병환자들이 깨끗해지고 못 듣는 사람들이 들으며,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진다고 하라”
예수 : “그리고 나 때문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예수님의 대답에 세례요한은 만족하였을까요?
그가 기대한 대답이었을까요?
세례요한의 이 질문을 몇몇 신학자들이 그의 의심에서 시작되었다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아마도 요한의 의심은 예수님의 행동들에 집중함으로서 예수님(더 능력이 많으신 분)께서 그를 감옥에서 구출하거나 박해와 그리고 최후의 처형에서 그를 구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제기되었을 수도 있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예수님은 요한을 구원하는 어떤 일도 하지 않으셨지만 예수님은 자신을 따르는 자들에게 체포와 박해가 발생하게 될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다는 사실입니다.(마태복음 5:11-12;10:16-23;16:24-26).
신학자 Patte (The Gospel According to Matthew)은 이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왜 요한과 같은 헌신적인 사람들을 비롯하여 사람들이 예수 때문에 의심하고 실족하는 것인가? 이 단락에서는 사람들이 예수의 말, 예수의 가르침, 예수의 설교를 염두에 두지 않고, 예수의 행동을 생각하기 때문이라는 것을 강조한다. 그들은 예수와 그의 제자들의 사역을 형성하는 여러 요소들 중에 한 가지 만을 염두에 두고 있다(10:7-14). 제자들에 대한 거절이 제자들의 말에 대한 거절과 직접적으로 연관이 있다는 것을 우리가 주목할 때 10:7-14와 11:1-6 사이의 관계가 보이기 시작한다. 즉, “누구든지 너희를 영접하지도 아니하고 너희 말을 듣지도 아나하거든 …”(10:14). 간단히 말해서, 예수의 행동을 예수의 설교와 가르침의 관점에서보다는 그들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할 때, 의심을 하고, 실족하게 되고, 궁극적으로 예수와 그의 사역을 거절하게 된다. [p. 159]
나에게 지금 이루어지지 않은 예수님의 행동들이 우리의 거절의 이유가 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앉은 자를 일으키셨지만
나에겐 일어나지 않았고, 예수님은 눈먼 자를 고치셨지만
나에겐 일어나지 않았고, 예수님은 죽은 자를 살리셨지만
나에겐 일어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런데 여기서 가장 중요한 부분은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많은 “말씀”들은 듣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하신 여러 일들 중에 유독 나에게 좋은 그 한가지만 염두에 두고 있다는 것입니다. 또한 그 모든 것을 예수님의 관점이 아닌 자신의 입장에서 해석할 때 우리는 예수님을 “거절”하곤 합니다.
이 부분에서 다시 우리는 “회개”라는 단어를 기억해야 합니다.
헬라어 메타노에오(matanoeo)는 ‘바꾸다’란 뜻의 ‘메타’와 ‘생각’이란 뜻의 ‘노에오’의 합성어로 “생각(마음)을 바꾸다”는 뜻이라고 지난주에 말씀을 전했습니다. 히브리어 슈브(shuv)는 진행 방향을 바꾸다란 뜻으로 회개는 “사람의 길을 바꾸는 것”에서 비롯된다고도 하였지요.
“회개”하지 않으면 “우리의 입장”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의 생각”을 바꾸지 않으면 우리는 예수님을 거절하게 됩니다.
“회개”할 때 예수님의 행동들이 “은혜”로 다가오게 됩니다. 그러할 때 우리는 예수님을 기다리며 온 몸으로 그분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사람들은 회개함으로써, 주의 길(the way)을 준비하고 그의 길들(paths)을 곧게 한다. 이 두 단어는 하나님의 뜻과 목적을 나타내는 은유들이다.(신명기 5:33;예레미야 7:23;마태복음 7:13-14; 로마의 길들[ways]과 도로들[roads]과 대조된다). 요한의 회개의 요청에 대한 사람의 반응 여하에 따라 예수 안에서 명시된 하나님의 목적은 구원이나 정죄로 경험될 것이다. 때문에 회개하는 것은 삶의 체계나 방법들의 구체적인 변화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목적을 근본적으로 수용하는 것을 의미한다. [p. 94] Warren Carter (Matthew and the margins: A Sociopolitical and Religious Reading)
여기서 히브리서 3장 말씀을 찾아보시겠습니다.
히브리서 3장 1~13절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그러므로 성령이 이르신 바와 같이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
거기서 너희 열조가 나를 시험하여 증험하고 사십 년 동안 나의 행사를 보았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이 세대에게 노하여 이르기를 그들이 항상 마음이 미혹되어 내 길을 알지 못하는도다 하였고
내가 노하여 맹세한 바와 같이 그들은 내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리라 하였다 하였느니라
형제들아 너희는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조심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
우리가 우리교회가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거절하기 않도록) 서로 권면하시길 소망합니다.
우리가 서로를 권면할 수 있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1~6절 말씀이 이유가 됩니다.
그러므로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아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신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
그는 자기를 세우신 이에게 신실하시기를 모세가 하나님의 온 집에서 한 것과 같이 하셨으니
그는 모세보다 더욱 영광을 받을 만한 것이 마치 집 지은 자가 그 집보다 더욱 존귀함 같으니라
집마다 지은 이가 있으니 만물을 지으신 이는 하나님이시라
또한 모세는 장래에 말할 것을 증언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온 집에서 종으로서 신실하였고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집을 맡은 아들로서 그와 같이 하셨으니 우리가 소망의 확신과 자랑을 끝까지 굳게 잡고 있으면 우리는 그의 집이라
마지막으로 오늘의 본문 말씀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7~9절 말씀입니다.
예수님은 다시 우리에게 묻고 계십니다.
“너희는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었느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아니면 무엇을 보려고 나갔었느냐?” “고운 옷을 입은 사람이었느냐?”
“그러면 너희는 무엇을 보려고 나갔었느냐?” “예언자를 보러 나갔었느냐?”
저는 이 부분이 매우 아름다운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가셨을까요?
여러분은 무엇을 보려고 교회에 오셨을까요?
여러분은 무엇을 보려고 거기에 가셨을까요?
“흔들리는 갈대?” “잘 차려입은 사람?” “예언자?”
이제, 다가올 크리스마스(성탄절)엔 무엇을 보려고 어디에 가시려하십니까?
세례요한은 신학자들의 이야기와 같이 의심하고 흔들리며 예수님께 물었는지 몰라도 그는 예수님은 “그리스도”라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자’란 뜻으로 히브리어 ‘마쉬아흐’(메시야)의 헬라어 음역입니다. 기름 부음을 받았다는 것은 “왕”의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세례요한이 기다린 이는 그의 메시야, 그리스도였습니다.
우리가 기다리는 이가 누구입니까?
가서 너희가 듣고 보는 것을 요한에게 전하라!
“눈먼 사람들이 보고 못 걷는 사람들이 걸으며, 나병환자들이 깨끗해지고 못 듣는 사람들이 들으며, 죽은 사람들이 살아나고 가난한 사람들에게 복음이 전해진다고 하라”
“그리고 나 때문에 걸려 넘어지지 않는 사람은 복이 있다.”
내가 생각한대로 내 뜻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일들로 인해 주님을 거절하지 않으실 간절히 기도합니다. 그리고 주님의 말씀으로 영혼이 살아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예수께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한에게 믿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눈먼 사람이 보고, 못 걷는 사람들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해지는데 요한은 감옥에 갇혀 있습니다. 그리고 끝내, 감옥에서 죽음을 맞게 됩니다. 그럼에도 예수께서는 그에게 믿으라고 말씀하십니다. 내가 곧 그다. 다른이를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
찬양 _ 찬송가 125장 천사들의 노래가
주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