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9장 하늘에 가득찬 영광의 하나님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102번 나라사랑 (4)
(인도자) 그 땅 이스라엘 모든 산에서 그들이 한 나라를 이루어서 한 임금이 모두 다스리게 하리니
(회중) 그들이 다시는 두 민족이 되지 아니하며 두 나라로 나누이지 아니할지라
(인도자) 그들이 그 우상들과 가증한 물건과 그 모든 죄악으로 더 이상 자신들을 더럽히지 아니하리라
(회중) 내가 그들을 그 범죄한 처소에서 구원하여 정결하게 한즉
(인도자)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겔 37:22-23)
(회중) 그가 열방 사이에 판단하시며 많은 백성을 판결하시리니
(인도자) 무리가 그들의 칼을 펴서 보습을 만들고 그들의 창을 쳐서 낫을 만들 것이며
(회중) 이 나라와 저 나라가 다시는 칼을 들고 서로 치지 아니하며 다시는 전쟁을 연습하지 아니하리라(사 2:4)
(인도자) 내가 에브라임의 병거와 예루살렘의 말을 끊겠고 전쟁하는 활도 끊으리니
(회중) 그가 이방 사람에게 화평을 전할 것이요
(인도자) 그의 통치는 바다에서 바다까지 이르고 유브라데 강에서 땅 끝까지 이르리라(슥 9:10)
(회중) 보라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인도자)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의 옷깃까지 내림같고
(회중)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1-3)
송영 _ 찬송가 4장 성부 성자와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410장 내 맘에 한 노래 있어
말씀 _ 마태복음 13장 24-30절, 36-43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우리는 계속해서 마태의 비유들에서 교훈을 얻고 있습니다. 지난 주일에 언급한 것처럼, 이 비유들은 12장에서 제기된 질문들에 대한 대답이라 할 수 있습니다. “왜 사람들이 예수를 거절하고 예수와 갈등 속에 있는가?”(Jensen, Preaching Matthew's Gospel, p. 118)
지난 주일에 비유를 통한 예수의 대답은, 예수께서 심으신 씨들이 다른 땅들에 떨어져서 더러는 열매를 맺고 더러는 열매를 맺지 못했다는 것이라면 이번 주에는 강조점이 “원수”(28-29절) 또는 “악한 자”(38절)에게 있습니다. 그들은 흠이 있는 열매를 맺게 하곤합니다.
누가 악한 영을 필요로 하는가?
이 이야기의 출처는 A Treasury of Jewish Folklore: Stories, Traditions, Legends, Humor, Wisdom and Folk Songs of the Jewish People, Edited by Nathan Ausubel, Copyright, 1948, Crown Publishers, Inc., New York입니다.
한 번은 악마가 낙담한 채로 와서 이렇게 하소연했다. “전능하신 하나님, 제가 눈물이 날 정도로 지루하다는 것을 아시지요! 저는 하루 종일 아무것도 하지 않고 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일이 조금도 없답니다!"
하나님이 이렇게 대답했다.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구나. 네가 좀 더 주도적으로 나서야 할 일이 많이 있는데, 왜 너는 사람들을 죄 짓게 하려고 애쓰지 않는 거지? 그게 네가 해야 할 인데 말이야!”
악마가 하나님을 경멸하듯이 이렇게 중얼거렸다. “사람들을 죄짓게 하라고요! 주님, 제가 누군가에게 축복의 말을 할 기회를 갖기도 전에 이미 그 사람은 가서 죄를 짓고 있거든요!” [p. 7]
오늘의 비유에서 진짜 문제는 다른 지점을 생각하게 합니다. 문제는 가라지와 알곡에 있지 않고 종들의 성급함에 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주인이 바라는 것을 정확하게 알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곤 성급한 결론을 내지요.
“그러면 우리가 가서 그것들을 뽑아 거두어 낼까요?”
종들의 행동이 “원수”의 행동보다 악한 결과를 발생하게 했을 수가 있습니다. 원수가 나쁜 씨앗을 뿌리는 일이 아마 밀의 결실을 일부 줄어들게 할 수는 있지만, 좋은 씨를 멸망시키지는 못할 것입니다. 그것이 주인을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주인은 밭에 잡초가 있어도 여전히 훌륭한 추수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비록 좋은 뜻에서였을지라도 종들이 원한 대로 잡초를 뽑았다면, 그들은 좋은 씨를 파괴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면 그들의 주인을 위한 결실을 기대할 수 없게 됩니다. 누가 원수일까요? 가라지를 뽑는 것이 추수를 망칠 수도 있습니다. 가라지를 뽑으려는 종들이, 우리들의 성급함이 원수보다 더 무서운 결과를 낳을 수도 있다는 것을 깨닫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종종 하나님의 가장 나쁜 원수들은 친구들이다!” <The Door >에 실린 Bill McNabb의 사설은 이 개념을 간단하게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변증학 강의를 한 문장으로 시작하고 한 문장으로 끝내는 신학교 노교수가 있었다. 그는 “여러분은 사자를 변호하는 것처럼 하나님을 변호한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방법에서 벗어나고 있다.” 하나님은 그분의 적들과 별로 문제가 없는 것 같은데, 하나님을 괴롭히는 것은 그의 친구들이다. … 신학자 Karl Rahner는 이렇게 말했다. “무신론의 첫 번째 원인은 그리스도인들이다. 입으로 하나님을 선포하고 그들의 생활방식에서 하나님을 부인하는 사람들은, 불신 세상이 단순히 믿을 수 없다고 생각하는 이유이다.” 아마도 하나님을 변호하는 최고의 방법은 입을 다물고 그분이 말씀하신 대로 사는 것 일 것이다. 그 때 복음은 능력과 매력을 갖게 되고, 우리가 복음의 변호에 관해 걱정할 필요가 없다.
비유에서의 쟁점은 밀밭에 있는 잡초들에게 있지만, 특히 밭을 일반적으로 교회나 성도로 해석하기보다는 38절에서처럼, 세상으로 규정한다면, 그 쟁점은 하나님의 종들인 우리가 해결하게 될 문제가 아닐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세상이나 또는 교회에서 조차 모든 악을 다 제거하지 못한다는 것이지요.
비유에서 문제의 일부는 식물들이 어릴 때 잡초와 밀을 구분할 수 없다는 데 있습니다. 좋은 것과 나쁜 것이 다 같아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식물들이 더 자라나서 구분할 수 있을 때, 잡초를 뽑으려면 서로 뿌리가 뒤얽혀서 좋은 것을 파괴하지 않고서 나쁜 것을 뽑아버릴 수 없다고 합니다.
결국, 최종 심판은 우리가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시는 것입니다. 분명, 심판하시는 하나님의 모습을 우리는 마태복음 13장 30절에서 살펴볼 수 있습니다. “추수 때에 내가 추수꾼에게 먼저 가라지를 거두어서 단으로 묶어 불태워버리라.”
이 비유에서 하나님의 종들의 올바른 태도는 인내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다른 마태의 구절을 사용하면, “비판을 받지 아니하려거든 비판하지 말라 너희가 비판하는 그 비판으로 너희가 비판을 받을 것이요 너희가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니라”(7:1-2).
예수 시대의 바리새인들은 훌륭한 “잡초 제거꾼들”이 되고자 힘썼습니다. 그들은 예수와 그의 집단을 잡초들로 간주했습니다. 사울은 스데반을 돌로 치는 것에 찬성했지요. 밀과 잡초를 구별하는 것이 늘 쉬운 것은 아닙니다.
“잡초 제거꾼들”의 다른 사람을 판단하는 태도는 그들의 생각과 행동이 은혜로우신 하나님보다 “원수”에 의해 심어졌다는 전형적인 증거입니다.
가만히 앉아서 기다리는 것이, 기도와 묵상에 시간을 보내면서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매우 마음에 들지 않을 수 있지만, 때로 그것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가장 나쁜 원수들은 자신들이 하나님의 친구들이고, 하나님의 일을 하고 있다고 종종 생각한다는 것이 지금까지의 나의 경험일 뿐이라는 것이 이 비유가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의 바른 종이라면, 자신들이 언제나 하나님의 소원을 알고 있다고 추정해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의 뜻을 분별하기 위해서는 성서연구와 기도뿐만 아니라, 공동체의 지혜가 수반되어야 합니다.
인자는 마지막 때 이전에 그의 종들을 보내기 보다는, 마지막 때의 수확을 위해 천사들을 보내실 것입니다. 따라서 나는 우리가 이 땅에 머무는 동안에 “그 나라의 자녀들”을 “악한 자의 자녀들”에게서 구분하는 것이 우리의 일이 아닙니다.
그때에, 하나님의 심판의 불을 통해 그들 안에 있는 모든 죄들과 불법을 깨끗하게 하실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울며 이를 가는”이란 문구는 마태복음에 6회(8:12; 13:42, 50; 22:13; 24:51; 25:30), 누가복음에서 단 1회(13:28) 등장하며 신약성서의 다른 곳에서 나오지 않습니다. 따라서 이것은 마태복음에서 많이 강조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마태의 6회의 용례에서 발견한 흥미 있는 사실은, 울며 이를 갈게 될 모든 사람들이 내부자들인 것 같다는 것입니다.
8:12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이다(아마도 유대인들 대 동서로부터 온 많은 사람들)
13:42 “그의 나라에서 거두어 낸” 사람들
13:50 의인 중에서 악인을 갈라낸다. 그러나 둘 다 “같은 그물에서 잡힌다.”"
22:13 혼인 잔치에 참여했지만 예복을 입지 않은 어떤 사람들
24:51 악한 종(그는 종으로서 그 집의 식구였다)
25:30 무익한 종(종으로서 그는 그 집의 식구였다)
이 엄격한 심판은 신앙 공동체 안에 있으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삶의 올바른 열매를 맺지 못한 사람들을 향해 말해진 것 같다는 것입니다. 구약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하나님의 가장 가혹한 심판은 그분의 백성들에게 선포됩니다. 따라서 마태 또한 그의 복음서에서 그렇게 전하고 있지요.
어떤 의미에서, 우리는 밖에 나가서, 저들은 풀무 불에 태워질 사람들이라고 선언해서는 안 되지만, 우리 자신을 들여다보면서 죄를 짓고 있지는 않은지, 율법을 무시하고 있지는 않은지, 다른 사람에게 악하게 하고 있지 않은지, 하나님께서 우리 주신 재물을 투자하는 일에 잘못하고 있지 않은지 등을 확인할 필요가 있습니다.
그 때에 의인들은 그들의 아버지 나라에서 해처럼 빛 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찬양 _ 찬송가 412장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