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월 9일 성령강림후 제10주 남북평화통일공동기도주일, 광복기념주일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의 이야기입니다.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 이 말씀을 읽고, 들을 때에 쉽게 이해가 가시나요?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 저는 사실 잘 상상이 가지 않습니다.
어떻게? 물위를 걸으셨다는 것인지? 제겐 상상이 잘 되지 않는, 믿을 수 없는 장면이 오늘의 본문 말씀이었습니다.
사실, 예수님과 관련된 모든 이야기가 사실과 믿을 수 없음이 항상 함께합니다.
십자가의 예수님은 역사적 사실로, 성경이 아닌 여러 문서에 그 기록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죽음은 사실로 쉽게 받아들여집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부활은 누군가에겐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누군가에게 믿을 수 있는 이야기가 됩니다. 신기하게도 예수님의 부활도 예수님의 죽음과 같이 똑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의 무덤 문이 열리고 빈 무덤이었다.' 그러나 이 기록에 사람들은 무수히 많은 해석을 내놓습니다. 또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다는 예수님의 제자들의 기록은 누군가에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됩니다.
사실, 믿을 수 있는 이야기,
믿음, 믿을 수 없는 이야기
오늘 말씀은 사건의 배경을 이해해야 하나의 큰 이야기가 완성될 수 있습니다.
먼저 마태복음 4장을 살펴보면 예수님께서는 복음을 전파하시며 또한 수많은 병든자들을 고쳐주셨음을 알 수 있습니다. 이런 예수님의 소문은 예루살렘과 온 이스라엘에 퍼져 나가기 시작했고 예수님께서 가시는 곳곳마다 많은 무리가 따랐습니다.
어느 날 예수께서 말씀을 전파하시려 마을에 들어가시니 많은 무리가 따라와 말씀을 전하실 수 없게 되자 산등성이로 자리를 옮기셨습니다. 그리고 저녁이 되자 함께 한 무리에게 보리떡 다섯 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오천명을 먹이시고 12바구니가 남았습니다.
이 사건이 바로 마태복음 14장 13~21절 오늘 말씀 바로 전의 이야기입니다.
다시 정리하면
예수님이 복음을 전하시며 동시에 행하신 기적 때문에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라 다니기 시작하였고 이 날도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찾아 왔고 저녁까지 예수님의 말씀을 듣던 무리에게 5개의 보리떡과 2마리의 물고기로 저녁을 먹이셨는데 5,000명 이상이 먹었다는 것입니다. 남자만 5,000명, 여자와 아이들을 생각해 본다면 적어도 10,000명이 넘는 무리가 상상이 되시나요? 축구장에 가득한 사람을 생각해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22절은, 그 후 무리가 저녁을 먹자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부르시고 배에 태우시더니 먼저 건너편으로 가 있으라고 하시고 모였던 무리를 흩어 보내시는 내용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제자들을 배에 태우시고 무리를 흩어 돌려 보내시고, 예수님께서는 혼자 따로 기도하시려고 산으로 올라가셨고 저녁때까지 거기에 혼자 계셨습니다.(23절)
그런데 예수님께서 혼자 기도하신 그 때, 제자들은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건너가고 있을 때인데 바람이 불며 파도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었습니다.(24절)
이 때 밤 사경, 새벽 3~6시 사이에 예수님께서 물위를 걸어 제자들에게 오셨습니다.(25절)
“유령이다.” 그리고 무서워서 크게 비명을 질렀다. 헬라어 성경을 그대로 번역한 말씀입니다.
새벽 3시쯤 물 위, 거기다 바람불고, 파도가 출렁이는 물 위를 걸어오는 형체는 “유령”이라고 생각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때 소리가 들립니다. “용기를 내라. 나다. 두려워하지 말아라.”(27절)
“나다” 그러자 바로 베드로가 대답합니다. “주님이시면, 제게 물위를 걸어 주님께로 오라고 명령하십시오.”
“오라” 말씀하시자 베드로가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 예수님께로 갔습니다.
용기를 낸 베드로, 그러나 곧 거센 바람을 보자 두려움에 휩싸였고 물에 빠지기 시작했습니다. 그 때 베드로는 소리를 지릅니다. “주님, 저를 구원해 주십시오.”
그러자 예수님께서 즉시 손을 내밀어 그를 붙잡으시며 말씀하십니다.
“믿음이 적은 자야, 왜 의심하였느냐?”


캄캄한 밤 거센 파도 위를 걸어오는 형체에서 들려오는 목소리는 분명 예수님의 목소리였습니다. “나다” 그 음성을 들은 베드로는 주님께 요청합니다. 제가 이 물 위를 걸어 주님께 갈 수 있도록 명령하여 주십시오.
세상을 험한 바다에 비유하곤 합니다. 거센 바람과 거친 파도, 캄캄한 그 바다와 같은 이 세상에서, 세상을 향해 나아간다는 것은 그 분의 음성을 들었을 때, 그 때 비로서 가능한 일인 것 같습니다.
“용기를 내라.” “나다.” “내가 이 바다의 주인이다.” 이 음성을 우리가 모두가 들을 수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이 음성을 더 많은 우리의 아이들과 이 땅의 청년들이, 또한 이주민들이, 지치고 연약한 가난한 영혼들이 들을 수 있기를 더욱 기도합니다.
“용기를 내라” 베드로가 말씀에 따라 발걸음을 내딛습니다. 그러나 곧 베드로는 거센 바람을 보고 물에 빠지기 시작합니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 주님께로 오라고 명령하여 주님께 가는 베드로입니다. 그런데 베드로는 배에서 내려 물 위를 걸어가다 곧 거센 바람을 보았습니다.
예수님께로 걸어가는 길, 거센바람 불고 거친 파도 덮쳐도 예수님만을 바라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우리가 가는 길이 예수님께로 가는 길인데 왜 우리는 예수님을 바라보며 가지 못하고 거센바람, 거친파도를 바라보며 걸어가는 것일까요?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보리떡 5개 물고기 2두리, 우리가 오병이어의 기적이라고 부르는 이 말씀에 대한 해석은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적어도 10,000명이 넘는 사람들이 먹고도 12바구니가 남았다는 이야기는 한 어린이의 도시락을 예수님께 드림으로 시작되어 이를 본 많은 이들이 또 자기의 것을 드리고 서로 나누다 보니 기적이 이루어졌다는 해석도 가능해집니다. 물론, 이 말씀의 해석을 통해 우리가 들어야하는 말씀이 있는 것이지요. 드림과 나눔, 우리가 꼭 가슴에 새길 말씀의 의미입니다.
그런데 오병이어, 그 기적, 그 자체를 들었을 때, 우리는 어떻게 받아들이고 있을까요?
믿을 수 있는 이야기인가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인가요?
성서는 역사적 사실과 믿을 수 없는 이야기가 항상 함께하고 있습니다.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의 이야기는 믿을 수 없는 이야기이기도 합니다.
이 말씀을 이해하기 위하여 갈릴리 호수에 대한 설명을 더 할 수도 있습니다. 당시에는 사람이 걸을 수 있을 만큼 물의 높이가 낮았다거나 환상을 본 것이라고 설명을 할 수도 있습니다. 믿을 수 없는 이 말씀을 납득하도록 하기 위한 방법이지요. 또한 말씀, 베드로를 통해 우리가 깨닫고 가슴에 새길 말씀의 의미가 분명있습니다. 이를 위한 비유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해 다시 한번 우리의 마음을 살펴보길 원합니다.
“믿음이 적은 자여, 왜 의심하였느냐?”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우리가 아나니 보이는 것은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니라.”(히브리서 11장1,3절)
말씀을 이해하려는 것을 넘어 말씀을 진정 믿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원하고 바라고 기도합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가 됩니다.
믿음이 곧 믿음의 이유가 되는 것입니다. 믿음이 아니고서는 그 어디서도 증거를 찾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맹목적인 믿음을 말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맹목적인 믿음은 목적을 위하여 모든 것을 목적에 맞춰 믿는 행위입니다. 다른 말씀들과 전체를 이해하지 않고 그 것만을 믿는 것을 믿음이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그러나 말씀을 믿을 수 있는 이야기와 믿을 수 없는 이야기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은 아닌지?
우리에게 진정 “믿음”이 있는지? 마음 속 깊이 묻는 오늘 이 아침이 되기를 바랍니다.
베드로가 예수님의 음성을 듣고 배에서 내려 물 위에 발을 내딛었습니다.
그 순간이, 우리의 삶 속에서 날마다 이루어지길 기도합니다.
그리고 베드로가 바라보았던 거친파도, 세상과 현실을 바라보지 않고 예수님만을 바라보고 예수님께로 걸어가는 믿음의 사람들이 믿음으로 모든 세계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것을 증거하게 되길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