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5장 하나님의 크신 사랑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 _ 교독문 37번 시편91편

(인도자)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주하며
(회중) 전능자의 그늘 아래에 사는 자여
(인도자) 나는 여호와를 향하여 말하기를 그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내가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회중) 이는 그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심한 전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인도자) 그가 너를 그의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의 날개 아래에 피하리로다
(회중)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시나니(1-4)
(인도자) 천 명이 네 왼쪽에서, 만 명이 네 오른쪽에서 엎드러지나
(회중)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하지 못하리로다(7)
(인도자)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천사들을 명령하사
(회중) 네 모든 길에서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11)
(다같이) 하나님이 이르시되 그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그를 건지리라 그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그를 높이리라(14)

송영 _ 찬송가 3장 성부 성자와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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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187장 비둘기 같이 온유한

말씀 _ 마태복음 17장 1~8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은 주현절 마지막주일입니다. 주현절기는 예수님의 세례에서 시작하고, 예수님을 세상에 알리는(주현=“알게 하다”)예수님의 변모사건에서 끝이납니다.

Robert Smith (Matthew)는 17장을 다음의 설명으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17장의 이야기들은, 예수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이 믿음과 의심 사이, 즉 이해와 몰이해 사이를 어떻게 오가는지를 다시 한번 보여준다. 변화산에서 예수와 함께 있는 것은 세 제자들뿐이다(1-13절). 그들은 산에서 내려와서, 간질병 들린 소년과 관련한 아홉 제자의 무능함을 발견한다(17:14-21). 그 약함은 예수가 수난을 선언할 때 열 두 제자들 모두의 걱정과 연관이 있다(17:22-23; cf. 167:21-28). [p. 207]

우리는 변모사건을 어떻게 이해 하고 있었을까요?

1. 예수님의 얼굴이 해처럼 빛나고 그 옷은 빛처럼 희어졌다.

2. 베드로는 그 모습을 보고 ‘여기에 초막 셋을 지어 하나는 주님께, 하나는 모세에게, 하나는 엘리야에게 드리겠다’고 고백하였다.

이정도가 우리가 이해하는 변모사건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은 역시, 대단한 분이구나. 그의 얼굴은 해처럼 빛나고 옷마저 빛을 내시는구나. 아마도 우리와 같은 마음으로 베드로도 고백을 한 것이겠지요.

그런데 오늘의 본문 말씀을 다시 잘 살펴보면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됩니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니 내가 그를 기뻐한다.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나님은 베드로와 야고보와 그의 동생 요한에게 예수님이 누구인지를, 다시 말해 예수님은 하나님이 영화롭게 한 사랑하는 아들이라는 것을 계시하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말씀을 다시 살펴보면 베드로의 전혀 다른 모습을 보게 됩니다. ‘제자들은 그 소리를 듣고 얼굴을 대고 몹시 두려워하였다.’ 베드로의 마음이 갑자기 변했다고 해야할까요?

이런 면에서 17장은 예수님에 대한 제자들의 반응이 믿음과 의심 사이, 즉 이해와 몰이해 사이를 오가고 있다는 설명을 이해할 수 있게 됩니다.

인간의 약함, 두려움에 대한 이야기가 변모사건의 또다른 주제입니다.

이 약함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요? 우리는 모두 약함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 약한 우리가 어떤 결말을 맞이하게 될까요?

제자들의 두려움과 예수의 반응

5절의 놀랍고도 영광스러운 장면이 그들 안에 믿음을 생겨나게 했을까요?

“그렇지 않다, 그것은 매우 심한 두려움을 일으켰다.”

이것이 마태의 관점입니다. 그래서 17:6-7은 마태복음에만 등장합니다. 너무 두려운 나머지 제자들은 얼굴을 땅에 대고 엎어집니다. 헬라어 의미로는 넘어졌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너무 두려운 나머지 넘어졌습니다. 이 두려움은 어디서 오는 것일까요?

두려움은 “알수 없음”이란 단어와 함께하기도 합니다. ‘알수 없음’의 또다른 단어가 ‘이해할 수 없다’ 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니까 이해할 수 없을 때 우리는 두려움을 느끼게 됩니다. 사실, 우리는 인간이 모든 것을 이해한다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니 두려움은 우리에게 매우 자연스러운 현상일지도 모릅니다.

우리가 두려움에 넘어 졌을 때, 그 때 예수님이 가까이 다가오셨습니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의 약함의 결말이 결정됩니다.

예수님께서 심히 두려워하는 제자들을 위해서 무엇을 하셨을까요? 그는 심히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나아오십니다. 이 동일한 단어가 28장 18절에도 사용됩니다.

예수님께서 다가오셔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나는 하늘 안과 땅 위의 모든 권세를 받았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지키도록 그들을 가르치라, 보라, 나는 세상 끝까지 언제나 너희와 함께 있을 것이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과 우리에게 다가오실 때, 그 때 우리는 경배와 의심 사이를 오가고 있습니다. 이해와 몰이해를 오가고 있습니다.

그때에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를 어루만지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라.”

“일어나라”는 단어는 마태가 죽은 자들의 부활에 대해 사용하는 전문용어입니다.(10:8; 11:5; 14:2; 16:21; 17:9, 23; 20:19; 26:32; 27:52, 63, 64, 28:6, 7). 하지만 마태는 이 단어를 일상적인 맥락에서

요셉이 “잠에서 깨어 일어나는 것 ”(1:24;2:13,14,20,21), "중풍병자가 기적적으로 일어서는 것"(9:5,6,7), 그리고 "민족이 민족을 대적하여 일어나는 것"(24:7)과 같이 다른 의미로도 사용합니다.

그리고 17장 9절의 ‘일으킴’이라는 단어는 3번 등장하는데 아래와 같습니다.

너희는 인자가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일으킴을 받을 때까지 너희가 본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 (17:9)
그들에게 죽음을 받을 것이다. 그러나 인자는 사릏되는 날에 일으킴을 받을 것이다.(17:23)
그를 다른 민족 사람들에게 넘겨주어 조롱하고 채찍질 하며 십자가에 못 박게 할 것이다. 그러난 인자는 사흘째 되는 날에 일으킴을 받을 것이다. (20:29)

모두 “생명이 살아나는 것”과 관련이 있습니다. 심한 두려움으로 떨면서 머리를 숙이고 있는 이 제자들은 예수님에 의해 새로운 삶으로 일으켜집니다.

제자들의 약함은 예수님이 가까이 다가오셔서 어루만지실 때에 다른 결말을 향해 전환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변모사건은 변화되신 예수님의 이야기가 아니라 제자들의 변화의 순간을 그려내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워하고, 염려하고, 소극적인 겁쟁이에서, 용기 있고, 신념 있고, 믿음의 사람으로 변화됩니다.

그런데 여기서 또 하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그들이 그들의 변화를 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어루만지시고 “일어나라, 그리고 두려워하지 말라” 말씀하실 때에 그들은 그들의 변화를 알아차렸을까요?

본몬에서 우리는 그들이 스스로 변화되었다는 것을 알아채는 장면을 발견할 수 없습니다. 어쩌면 여전히 그들은 믿음과 의심 사이를 오가는 ‘약한’ 존재들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 그들을 어루만지셨을 때 이미 변화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의 결말이 달라졌습니다.

우리는 아직 우리들의 결말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들의 약함의 결말은 어떻게 될까요? 그런데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그들의 결말이 달라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가까이 오셔서 어루만지셨을 때 그들이 변화되었습니다. 그러니 우리의 문제는 약함이 아닙니다. 예수님이 우리에게 오실 때에 우리들의 변화가 시작됩니다. 우리는 이제 우리 공동체의 형제 자매들의 결말을 기대해 볼 수 있지 않을까요?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에 의해 새로운 삶으로 일으켜질 것입니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 또한 그렇게 어루만지며 살아가라는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영광스럽게” 보이기를 추구하기 보다는, 우리가 만나고 있는, 두려워 떨고 걱정하며 염려하는 사람들에게 가까이 다가가 그들을 어루만지며 그들이 예수님의 능력으로 일으켜짐을 경험하는 삶을 위해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러니 이제 “일어나십시오. 그리고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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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288장 예수를 나의 구주 삼고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