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8장 거룩거룩거룩 전능하신 주님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52번 시편 119편
(인도자) 청년이 무엇으로 그의 행실을 깨끗하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만 지킬 따름이니이다
(회중) 내가 전심으로 주를 찾았사오니 주의 계명에서 떠나지 말게 하소서
(인도자)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 하여 주의 말씀을 내 마음에 두었나이다
(회중) 찬송을 받으실 주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을 내게 가르치소서(9-12)
(인도자) 내가 주의 법도들을 작ㅇ든 소리로 읊조리며 주의 길들에 주의하며
(회중) 주의 율례들을 즐거워하며 주의 말씀을 잊지 아니하리이다(15-16)
(인도자) 주의 법이 나의 즐거움이 되지 아니하였더면 내가 내 고난 중에 멸망하였으리이다
(회중) 내가 주의 법도들을 영원히 잊지 아니하오니 주께서 이것들 대문에 나를 살게 하심이니이다
(인도자) 나는 주의 것이오니 나를 구원하소서 내가 주의 법도들만을 찾았나이다
(회중) 악인들이 나를 멸하려고 엿보오나 나는 주의 증거들만을 생각하겠나이다
(인도자) 내가 보니 모든 완전한 것이 다 끝이 있어도 주의 계명들은 심히 넓으니이다
(회중)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작은 소리로 읊조리나이다(92-97)
송영 _ 찬송가 2장 찬양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187장 비둘기 같이 온유한
말씀 _ 마태복음 18장 15~20절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가서 단 둘이 만나 그의 잘못을 지적해 주어라”라는 예수님의 말씀으로 시작하는 오늘의 본문은 누군가 우리에게 잘못했을 때 우리가 보통 하는 행동과 다른 모습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억울한 일을 당했을 때, 우리는 늘 그 사람과 대립하는 것만은 아닙니다. 그 대신에 우리는 두세 명 이상의 친구들에게 가서 “나한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느냐?”고 말하지요. 예수께서는 “가서 저 멍청이가 네게 무슨 일을 했는지를 모든 사람에게 말하라”고 하지 않으십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에게, “저 멍청이에게 가서 그(그 여자)가 마음 아프게 한 행동에 관해 말하라”고 하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여기저기 다니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말하지 말고, 그 사람에게 가서 말해야 합니다.
사실, 오늘의 말씀은 큰 틀에서 보면 “죄”와 “관계”에 대한 말씀입니다.
15절의 “형제”라는 표현은 중요한 의미가 있습니다. 잘못한 사람을 형제라고 일컫는다는 것은 우리가 믿음의 공동체에서 서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 가를 강조하고, 우리가 회개의 길에서 서로 함께 서는 것에 관해 많은 신경을 써야하는 지를 강조하고 있는 것이지요.
두 번째로 예수께서는 잘못을 한 사람이 바로 잡을 수 있는 기회를 줄 것을 계속 강조하고 계시다는 것입니다. 15절은 그가 듣는다면 "네 형제를 얻게 될 것이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먼저 “잘못” “죄”에 대하여 본문 말씀을 살펴보겠습니다.
심리학자인 Scott Peck는 그의 책 <People of the Lie: The Hope for Healing Human Evil>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악한 사람들의 특성은 그들의 죄 자체에 있지 않고, 그 죄의 미묘함과 지속성, 그리고 일관성에 있다. 악한 사람들의 핵심적인 결함은 죄에 있지 않고, 죄를 인정하기를 거절하는데 있기 때문이다. [p. 69]
게다가 악은 다른 사람들을 희생양으로 삼기 위해 대부분 범해지고, 내가 악한 사람으로 분류하는 사람들은 고질적인 희생양들이다. … 다시 말해서 악한 자들은 자신들의 실패와 마주하기 보다는 다른 사람들을 공격한다. 영적 성장에는 자신이 성장할 필요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이 필요하다. 그것을 인정을 할 수 없다면, 불완전함의 증거를 없애려고 시도하는 것 말고는 선택할 것이 없다. [p. 74]
Peck에 따르면, 죄를 범하는 것과 악한 것은 같은 의미가 아닙니다. 어떤 의미에서 우리 모두는 죄를 지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한 사람이나 두 세 사람 또는 교회의 말을 듣지 않는 죄인들은 제거될 필요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죄인들이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악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그들은 자신들의 죄에 대한 진실을 들으려고 하지 않고, 그들 자신의 실패를 마주하기보다 다른 사람들을 공격하기 때문입니다. 이 경우, “가족(the family)”을 함께 유지하려고 노력하는 것보다는 전체를 파괴할 수 있는 악한 (암적인) 부분을 제거하는 것이 몸(the body)에 더 좋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악은 자신과 회중의 모든 문제를 죄인 한 사람 탓으로 돌리려는 사람들에게서도 발견될 수 있습니다.
“그만 없애면 우리가 훨씬 더 나아질 텐데.” 때때로 그것은 사실이며 ' “암”을 제거하면 회중의 건강이 회복될 수 있습니다. 하지만 다른 사람을 제거하려는 욕망은 또 다른 악한 사람에 의해 희생양이 될 수가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다른 사람을 대할 때의 우리의 주된 동기가 용서와 화해에 있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분노와 원한이 그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면 그것이 악이 되곤합니다.
잘못과 죄를 우리는 다시 곰곰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네 형제가 죄를 짓거든?,,,” 이 말씀은 우리 자신에게 해당하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우리는 이 주일 예배를 통해 우리의 지난 “죄”를 살펴보고 동시에 예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성찬의 예식에 참여함으로 “죄사함”의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거룩한 과정에서 중요한 하나의 과정이 “그의 잘못을 지적”해 주고 다른 말로 “지적을 듣고” 예수께서 그토록 원하시는 “회개”의 길에 들어서는 것입니다.
17절의 말씀을 다시 들어보아야 합니다. “그를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기라.”
첫 번째로, 네가 가고 두 번째로 두세 사람이 함께 가고 마지막으로 교회에 말하고 그래도 듣지 않는다면 이방인이나 세리처럼 여기라는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형제가 말하는 것을 “들으라”는 당부이며 그 과정에서 “공동체”를 이루어 갈 수 있다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기독교 신앙은 공동체에서 살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원하심은 회개와 공동체로의 회복을 보고자 하시는 것이 분명합니다. 하나님의 좋은 소식은 회개가 가능하다는 것이지요. 하나님의 좋은 소식은 하나님이 우리로 책임과 지원의 공동체를 형성하게 하시고, 우리에게 용서뿐만 아니라 회개와 화해와 진실을 말하고 개혁하는 메커니즘을 제공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들을 실천할 때, 사람들은 죄로부터 돌아서서 다시 하나님과 서로를 향하게 될 것입니다. 모든 종류의 상처들, 우리가 상처를 준 사람들, 그리고 우리로 다른 사람에게 상처를 주게 한 사람들을 치유하는 것이 신앙의 가족 사이에서 가능한 것은 예수그리스도와 그분의 방법들 때문이다. 이것은 참으로 좋은 소식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18장이 “하늘나라에서 누가 큽니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되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18장 15~20절의 말씀은 1~14절까지의 말씀 위에서 전해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의 제자들에게 “작은 자들”에게 해를 끼치지 않게 하기 위해 스스로를 경계하고 절제하라고 가르치셨고, 가서 길 잃은 자를 찾겠다는 그의 뜻을 밝히셨습니다.
오늘 본문 다음에서는, 그를 따르는 사람들이 용서를 실천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에 관한 이야기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이 말씀을 단순히 죄를 지은 사람들에게 가서 그의 ‘죄’를 지적하라는 말씀으로 이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오늘의 말씀은 공동체, ‘관계’ 안에서 이루어져야하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이 관계가 바로 ‘기도’위에 세워져 간다는 점입니다. 우리가 우리의 교회를 공동체라고 부를 수 있는 이유가 바로 ‘기도’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아마도 화해를 추구하는 것이 매우 중요한 이유 가운데 하나도 진정한 기도를 위해 우리가 서로를 필요로 한다는 점일 것입니다.
18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여져 있을 것이요.”
19절 말씀입니다. “너희 중 두 사람이 땅에서 마음을 모아 구하는 것은 무엇이든지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께서 그들에게 이루어 주실 것이다.”
20절 말씀입니다. “두 사람이나 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여 있는 거기에 나도 그들 가운데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우리 가운데서 예수의 임재를 경험하기 위해서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우리는 짐을 함께 지고 기쁨을 나누기 위해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특히 기독교가 불법이었을 때, 신자들이 사회의 중심에서 밀려날 때, 그들은 믿음을 지키도록 서로 도와주는 이들이 필요했습니다.
우리는 혼자서는 그것을 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합니다.
그런데 만약 19절의 말씀을 따라 새 차를 위해서나 복권당첨을 위해 누군가와 함께 기도하는 사람이 있다면, 둘 이상의 사람이 그것에 관해 동의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자동적으로 그 간구를 들어주실 것이라는 의미를 암시하고 있다고 생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이 말씀이 암시하는 것은 두 사람이 그들의 화해에 관해 동의하고, 하나님께 그 화해에 관해 구할 때, 하나님께서 그 간구를 들어주실 것이라는 점입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죄에 관해 진실을 말하는 것과 같은 어려운 일에 전념하는 이유입니다. 우리가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삼위일체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그 변화의 힘을 진정으로 알고 선포하게 될 수 있을까요?
저와 여러분이 우리의 믿음을 지키기 위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모여 마음을 모아 기도하길 원합니다. 그때 예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며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찬양 _ 찬송가 406장 곤한 내 영혼 편히 쉴 곳과
주기도 (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