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0장 전능왕 오셔서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67번 잠언 3장
(인도자)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회중)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인도자)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회중) 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인도자)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의 지름길은 다 평강이니라
(회중)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인도자)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에 터를 놓으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견고히 세우셨고
(회중) 그의 지식으로 깊은 바다를 갈라지게 하셨으며 공중에서 이슬에 내리게 하셨느니라
(인도자)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이 네 눈 앞에서 떠나지 말게 하라(13-21)
(회중) 대저 여호와는 네가 의지할 이시니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26)
송영 _ 4장 성부 성자와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286장 주 예수님 내 맘에 오사
말씀 _ 마태복음 22장 15~22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성서는 비유의 세상에서 나와 죽음과 세금이 있는 현실 세상으로 옮겨 갑니다.
1789년에 벤자민 프랭클린은 친구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이 세상에서 죽음과 세금처럼 확실한 것은 그 어디에도 없다”가 썼습니다. 약 150년 후인 1936년에 마거릿 미첼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비슷한 문구를 사용했지요. “죽음과 세금과 그리고 어린아이들의 탄생! 그들 중 어느 것을 하기에 편안한 시간이 없다.”
성서에서 말하는 세금에 사용되는 단어는 모두 넷입니다.
•∙가장 일반적인 단어는 마태복음 17:25과 로마서 13;7에서 “세금”에 대해 사용된 단어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사용된 단어는 성인 한 사람이 정부에 납부하는 세금으로 마태복음17:2과 22:17,19 마가복음12:14에서 사용되었습니다.
•∙누가복음의 병행구절에서 사용된 단어는 한 민족이 다른 민족에 지불하는 세금으로 이 세금은 복종과 의존의 상징임이 암시되고 있습니다. 누가복음 20:22, 23:2과 로마서 13:47에 사용되었습니다.
•∙마지막 단어는 두 드라크마를 성전에 납부하는 것을 가리키며 모든 남성 유대인에게 요구되었고 마태복음17:5에 등장합니다.
옥스퍼드 대학이 발간한 백과사전 『The Oxford Companion』 에서는 우리가 이 세금에 관해 상세하게 알지 못한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이렇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금은) 14세부터 65세까지의 모든 남성과 12세부터 65세까지의 모든 여성에게 부과되는 정액제 개인세로 이루어졌으며, 최소한 연간 1데나리온(하루 임금 정도) 정도가 부과되었다.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지만) 후에 재산세와 결합되었다.”
우리는 예수님 당시의 로마제국에서의 유대인의 삶이 21세기 오늘날의 삶과 전혀 달랐다는 것을 명심할 필요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유대인들에게 주신 땅은 외국의 점령 하에 있었습니다. Boring (Matthew, New Interpreters Bible)에 따르면, 유대가 로마의 속국이 되었을 때인 주전 6년에 “인구조사세”(census tax)가 제정되었습니다.
예수의 시대 동전에 새겨진 일반적인 문장은 “신성한 아우구스투스의 존엄한 아들이며, 대 제사장인 디베리우스 시저”(Tiberius Caesar, august son of the divine Augustus, high priest)였습니다. 유대인들과 기독교인이 보기에 “새긴 형상들”과 다신론은 신성모독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 부분입니다. 따라서 로마 동전으로 세금을 납부하는 것은 정치적 문제와 종교적 문제 둘 다를 야기했습니다.
청구된 세금 때문 아니라, 로마의 돈을 사용할 때 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이 정복을 당했다는 것과, 황제가 스스로를 신성시하고 있다는 것을 떠올렸을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십계명에서 유대인들에게 엄격하게 금지한 일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요?
마태복음 22장 15절과 17절입니다.
“그 때에 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면 예수님의 말씀을 트집 잡아 그를 함정에 빠뜨릴 수 있을까 하고 의논하였다.”
“가이사에게 세금을 바치는 것이 옳습니까? 옳지 않습니까?”
저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그들의 악함을 명확하게 아시고 말씀하십니다. “위선자들아, 왜 너희가 나를 시험하느냐?”
그들은 악한이들입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의 악함을 아신다고 말씀하십니다. “시험하는(perazo)” 사람, “외식하는 사람들”로 묘사되는 사람들이 악함 사람들입니다. 악함을 모르는 이 시대에 예수님의 말씀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 자신과 사회를 돌아보게 하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뜻 밖의 행동을 취하십니다.
“세금으로 내는 돈을 내게 보이라.”
그 동전은 한 데나리온입니다. 사람들의 피, 땀, 그리고 눈물을 반영하는 보통의 하루임금입니다. 예수는 일상생활이 힘들다는 것을 알고 있고, 일반인들에게 생계의 유지가 중요한 일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이 동전은 그들의 힘듦을 상징하기도 합니다. 매우 복잡하고 억압적일지라도 지역 경제의 일부이기도 합니다.
또 예수님은 이렇게 물으십니다. “이 형상과 이 글이 누구의 것인가?”(22:20). 그는 로마 제국의 모든 것들이 악한 것들이 아님을 인정하는 것일 수 있습니다. 로마제국은 악할지라도 그 안에서 생존하고 있는 사람들 모두, 그 관계, 삶 자체가 악한 것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악한 제도와 체제 안에서도 삶은 소중하고 생명을 이어가는 것은 숭고한 일이기도 합니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세계관은 너무도 순진한 것일 수 있습니다. 세상에 빛과 어둠에 있는 것처럼, 사람들은 때로 둘 다를 직면하게 되고, 지혜롭게 살아가면서 하나님의 뜻을 행해야 하기에 말씀의 힘과 능력이 더욱 중요해 지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은 “가이사의 것”이라고 대답했습니다. 그것은 맞는 대답입니다. 그러자 예수님은 이렇게 말하십니다. “그런즉 가이사의 것은 가이사에게 하나님의 것은 하나님께 바치라”(22:21).
예수님의 대답에 만족하셨나요? 분명 예수님의 대답은 회피하는 것 같으면서도, 핵심을 관통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그의 말씀을 듣는 모든 사람들, 즉 그의 제자들과 그의 반대자들 모두에게 진실처럼 들립니다.
왜그럴까요? 왜냐하면 근본적으로 신학적이거나 윤리적인 입장은 각 개인에 의해 결정되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는 세상의 현실들과 그것들의 하나님과의 관계를 읽고 분석해야만 합니다.
그러하면 어떤 것이나 무엇이 하나님께 속했는지, 아니면 가이사에게 속했는지를 어떻게 알 수 있을까요?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세상에 대한 비판적인 해석과, 그에 따른 두려움 없는 결정과 그리고 우리가 진실이라고 믿는 것에 근거한 양심적인 세상에 관여하는 것입니다.
마태의 관점에서 볼 때, 삶의 목표는 단순히 제국을 물리치는 것이나, “이것 아니면 저것”의 정책을 채택하는데 있지 않고, 적들을 포함하여 사람들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추구하고, 지금과 미래 사이를 희망으로 살아가는 데 있습니다.
예수의 대답에서 “바치다”는 단어는 “돌려주다”(apodidomi)는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이미 다른 사람의 것이 된 것을 돌려준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이런 생각은 “가이사의 것”과 “하나님의 것”이란 표현에서 전달되고 있습니다. 소유격은 소유, 즉 가이사나 하나님께 속한 것들을 나타냅니다.
Mark Allan Powell은 그의 저서 『Giving to God: The Bible's Good News about Living a Generous Life』의 서언을 다음과 같은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갈리아 사람들의 세례에 관한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는가? 역사적으로 사실이 아닐 수도 있지만, 이 책은 역사책이 아니므로 우리는 그것에 관해 크게 걱정하지 않는다.
갈리아 사람들은 지금의 프랑스와 벨기에 지역에 거주하던 호전적인 고대인들이었다. 그들은 캘트어를 사용했고 종교적으로는 드루이드교를 신봉했다. 기독교 시대의 시기에 그들은 로마에 정복당했고, 아마 그들의 통제를 받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 통제의 정도는 다양했는데, 갈리아 사람들은 정복당했다는 것을 잘 인정하지 않았고, 그에 따라 수많은 갈리아 사람들의 반란이 이어졌다.
많은 기독교 선교사들이 위험을 무릅쓰고 갈리아 지역으로 들어갔다. 시간이 지나면서 많은 갈리아 사람들이 기독교인이 되었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따르면, 개종한 전사가 강이나 시내에서 세례를 받을 때 선교사들이 그를 물속으로 집어넣을 때, 한 팔을 공중을 향해 높이 들어올렸다. 이것은 특별한 풍습처럼 보였고, 선교사들은 머지않아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다음 전투나 작은 소동이 있을 때에 호전적인 갈리아 사람들은 “이 팔은 세례를 받지 않았다!”고 외치고는 몽둥이나 칼이나 도끼를 움켜쥐고, 매우 비기독교적인 방식으로 그의 적들을 멸하기 위해 말을 타고 달려갔다.
앞서 말했듯이 이 이야기는 역사적으로 확실하지 않을 수 있다. 내 짐작으로는 그것은 우리가 “도시의 전설”이라고 부를 수 있는 것의 중세 버전일 것이다. 나는 이야기를 다시 들려줄 때에, 갈리아 사람들이나 그들의 조상들을 비방할 의도가 분명히 없다. 단지 그 이미지, 즉 세례의 영향으로부터 몸의 한 부분이나 그들의 정체성의 한 측면을 지키려고 하는 어떤 누군가의 모습이 매우 강하게 내게 다가 왔을 뿐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모든 작은 부분까지도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우리 신자의 가장 작은 부분들, 즉 우리 마음속의 가장 작은 생각들까지 하나님의 것이라는 의미이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그들의 마음(minds) 드릴 수는 있지만
그러나 그들의 마음(hearts)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그들의 마음(hearts)을 드릴 수는 있지만,
그러나 말씀(Word) 안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배우길 원하지 않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께 그들의 근육을 드릴 수는 있지만,
그러나 그들의 몸을 가지고 예배나 성경공부에 나오길 원하지 않습니다.
많은 사람이 일주일에 한두 시간을 하나님께 드리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일주일에 168시간 모두를 원하십니다.
많은 사람들이 수입의 2%, 어쩌면 10% 정도를 하나님께 드리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100%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이 부분은 하나님의 것이므로 그것을 하나님께 드린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모든 것,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것, 우리가 가진 모든 것을 하나님께 돌려드려야 합니다. 이 사실을 믿음으로 고백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간절히 기도합니다.
찬양 _ 찬송가412장 내 영혼의 그윽히 깊은데서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