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9장 하늘에 가득찬 영광의 하나님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문 _ 115번 구주강림(1)

(인도자) 성문으로 나아가라 나아가라 백성이 올 길을 닦으라
(회중) 큰 길을 수축하고 수축하라 돌을 제하라 만민을 위하여 기치를 들라
(인도자) 여호와께서 땅 끝까지 선포하시되 너희는 딸 시온에게 이르라 보라 네 구원이 이르렀느니라
(회중) 보라 상급이 그에게 있고 보응이 그 앞에 있느니라 하셨느니라
(인도자) 사람들이 너를 일컬어 거룩한 백성이라 여호와께서 구속하신 자라 하겠고
(회중) 또 너를 일컬어 찾은 바 된 자요 버림 받지 아니한 성읍이라 하리라(시62:10-12)
(인도자) 선지자 이사야의 책에 쓴 바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가 있어 이르되
(회중) 너희는 주의 길을 준비하라 그의 오실 길을 곧게 하라
(인도자) 모든 골짜기가 메워지고 모든 산과 작은 산이 낮아지고
(회중) 굽은 것이 곧아지고 험한 길이 평탄하여질 것이요
(다같이) 모든 육체가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리라 함과 같으니라(눅3:4-6)

송영 _ 찬송가 4장 성부 성자와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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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228장 오 나의 주님 친히 뵈오니

말씀 _ 마태복음 24장 36~44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부터 강림절, 또는 대림절과 대강절이라고 불리는 기다림의 절기가 시작되었습니다.

강림절 [Adventszeit , 降臨節]은 크리스마스가 되기 이전에 네 번의 주일을 포함해서 지켜지는 절기로 4세기부터 지켜왔습니다. 부활절 이전에 준비기간으로서 사순절을 지키는 것과 같이 성탄절 이전 네 주간 동안 지켜지는 절기입니다. 성탄절 이전 네번째 주일이 첫 강림절이고 이날 강림절 화환에 준비된 네 개의 촛대 가운데 한 곳에 불이 붙여지고 두번째 주일에 다시 촛불이 하나 더 켜지며, 이렇게 해서 네번째 주일은 모든 촛불에 불이 켜지게 됩니다.

강림절, 첫 번째 주일 본문이 오늘의 말씀입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아들도 모르고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24:36)

“기다림”이란 언제나 “언제”라는 질문을 가지고 오는 것 같습니다. 기다림이 힘든 이유도 바로 그 날이 언제일지 모르기 때문이겠지요. 그런데 “언제”라는 미래적 질문을 떠나 기다림이 “소망”이 되고 그날을 소망하며 오늘을 살아간다면 우리는 얼마나 다른 삶을 살 수 있을까요?

“기다림”이 소망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예수님이 마침내 우리에게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성탄절의 앞 4주간이 대강절이 된 이유이기도 합니다.

Richard Jensen은 그의 <마태복음 설교하기>에서, 마태복음을 가지고 대림절 설교를 하는 다른 접근법을 제안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마태복음을 하나의 이야기로 접근한다면, 오늘 배정된 본문은 그 책 전체의 10분의 9쯤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그러니 오늘의 본문말씀 또한,(또는) 대강절의 말씀을 마태복음 1장에서부터 이해해야한다는 설명입니다. 그러면서 마태복음만의 특성을 다시 설명하고 있습니다.

“마태는 예수의 족보에 여자들을 포함시킴으로서 매우 놀라운 방식으로 그의 이야기를 시작한다. 유대의 족보에 여자들은 들어가지 않는다! 이방인 여자들은 더더욱 유대의 족보에 들어가지 않는다. 마태의 이야기의 시작 구절들에서 이 여자들은 무엇을 하고 있는가? 분명한 것은, 여자들은 마태이야기의 주인공인 나사렛의 예수가 이 땅의 모든 사람들에게 구원을 가져다 줌(1:21-23)을 암시하고 있다는 점이다.” (p. 210)

결국 오늘의 말씀은 오래전부터 시작된 구원의 이야기와 연결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이야기는 반드시 결말을 드러내게 되어있지요. 그것이 바로 구원의 완성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오심(재림)입니다.

오늘의 본문말씀은 크게 두 개의 질문에 대한 대답으로 구성해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징조?”란 질문에 대한 대답이 24:4-35이고

언제?”라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 24:36-25:46입니다.

그리고 오늘의 본문은 다른 복음서들의 여러 곳에서 발견되는 다섯 가지 다른 진술들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이것은 마태(나 초기의 편집자)가 이 진술들을 편집했다는 것을 강하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36절 아버지만 아신다//마가복음 13:32

∙37-39절 노아의 때와 같이//누가복음 7:26-27

∙40-41절 데려가거나 버려둠을 당할 것이라//누가복음 17:334-35

∙42절 주의 다시 오심을 위해 깨어있으라//마가복음 13:35

∙43-44절 집주인과 도둑//누가복음 12:39-40

하나님 외에는 아무도 모른다.

본문 말씀은 마태복음의 예수님의 마지막 설교의 중간에서 선택된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성전의 멸망을 예고할 때(24:1-2), 제자들은 그것이 언제 일어나며, 그의 오심과 세상 종말의 징조가 무엇인가를 질문합니다.(24:3). 지금 24:36에서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그의 질문의 “언제” 부분에 대해 직접적인 대답을 전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대답은 그들이 희망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예수 그 자신을 포함하여 하나님 외에는 누구도 그 답을 알 가능성을 부인하고 있습니다. “그 날과 그 때는 아무도 모르나니, 오직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그리고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너희가 알지 못함이라.”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그들은 아무 것도 알지 못했다(24:37-39)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노아의 시대에 사람들이 홍수가 닥치기 직전까지 평상시처럼 생활했다는 것을 상기시키고 있습니다. 여기서 그들을 휩쓸어 버렸던 갑작스럽고 예기치 못한 대대적인 파괴가 강조되고 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경고가 없었고, 회개의 요구가 없었고, 다가오는 것을 그들에게 경고해 주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그들은 홍수가 올 때까지 아무것도 알지 못했다”(24:39).

노아조차도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를 일반적인 차원에서만 알았다는 것입니다. “인자”의 오심이 확실하다는 것을 알지만, 그것이 언제 일어날지를 알지 못하는 것은 예수님의 제자들과 오늘의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하지만 우리는 십자가와 부활에서 죽음을 들어 올릴 수 있고, 본질이 밝혀지는 결정적인 순간은 언제 일어날지도 모르는 역사의 끝에 있을 예수님의 승리의 강림이 아니라,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진정한 능력이 계시되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를 알고 있는 사람들에게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한 사람은 데려가고, 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하고(24:40-41)

지난 세기 동안에 이 구절들은 “휴거” 신학을 지지하는 것으로 자주 해석되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종말에 가까운 곳에 살고 있다는 것을 도식화하려는 시도인데, 정확하게는 예수님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하지 말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24:40-41의 유사한 두 사례들은 다른 사람들이 “뒤에 남겨져서” 환난과 최후의 심판을 기다리는 동안에 의인들은 이 땅에서 뽑혀 하늘로 데려감을 당하는 순간을 묘사하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이 진술들은 단순히 데려감을 당하거나 뒤에 남겨진 사람들의 입장에서 심판이나 보상의 이유를 암시하지 않고 단지 갑작스럽고 놀라운 분리를 묘사하고 있는 것입니다.

초점은 낙담시키는 이런 환경에서, 불확실한 기다림의 한가운데서 계속 깨어있게 하는 데 있는 것입니다.

계속 깨어 준비하라!

노아의 시대의 사람들이나 들에 있는 사람들과 맷돌질을 하고 있는 여자들처럼, 집주인은 그가 도둑이 주위에 있다는 것을 알았더라면 다른 방도를 취했을 것이지만 그들 중 누구도 알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또한 그리스도인들도 주께서 언제 임할지 알지 못하고, 알 수 없고, 알기로 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극복하려고 시도할 것이 아니라, 우리가 수용해야할 상황이 됩니다.

깨어서 준비하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 것일까요?

마태복음 28:1-7에서 막달라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 재판과 처형동안에 멀리서 예수님을 따른 여인 둘은 예수님께서 죽으신 후에 안식일 새벽 무렵에 무덤으로 갔습니다.

마가는 우리에게 그들이 장례를 위해 시신에 기름을 바르기 위해 갔다고 말하고 있지요. 마태는 동기에 대해 아무것도 말하지 않고 있습니다. 무덤에서 돌을 굴린 천사는 그들이 예수님을 찾으러 왔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28:5). 그들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볼 수 있는 곳에 자신들을 두었습니다. 그들은 보고 있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오늘날에도 “강림”이 의미하듯이 “하나님의 임재”를 볼 수 있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하나님의 임재하는 곳에 우리가 있기를 소망합니다. 그렇게 우리 모두가 깨어 있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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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410장 내 맘에 한 노래 있어

주기도문(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