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0장 전능왕 오셔서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72번 이사야 58장
(인도자) 내가 기뻐하는 금식은 흉악의 결박을 풀어 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 주며
(회중)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하게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인도자) 또 주린 자에게 네 양식을 나누어 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집에 들이며
(회중) 헐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는 것이 아니겠느냐
(인도자) 그리하면 네 빛이 새벽같이 비 칠 것이며 네 치유가 급속할 것이며
(회중) 네 공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인도자)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회중)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
(인도자) 만일 네가 너희 중에서 멍에와 손가락질과 허망한 말을 제하여 버리고
(회중) 주린 자에게 네 심정이 동하며 괴로워하는 자의 심정을 만족하게 하면
(인도자) 네 빛이 흑암 중에서 떠올라 네 어둠이 낮과 같이 될 것이며
(회중)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메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하게 하며네 뼈를 견고하게 하리니
(다같이)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6-11)
송영 _ 찬송가 2장 찬양 성부 성자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93장 예수는 나의 힘이요
말씀 _ 마태복음 25장 1~13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11월 둘째주일을 맞이하며 어느덧 우리는 교회력의 마지막 강론을 향해가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의 최종 강론은 크게 두 가지 주요한 질문을 다루고 있습니다.
(1) “그리스도가 언제 오시는가?”(대답: 아무도 알지 못하지만, 징조들이 있게 될 것이다. 나는 그 징조들이 늘 우리와 함께 있다고 생각한다.)
(2)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 무엇을 해야 하는가?”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에 대한 기대가 있으신가요? 아니 다른 말로 예수께서 오시길 기대하고 있으신가요?
쉽게 다가오지 않을 수도 있는 이 말씀, 즉 그리스도의 다시 오심에 대한 기대는 기독교인의 삶에 중심에 있다는 것을 분명히 해야합니다.
묵시문학
묵시문학은 박해받는 사람들에게 희망을 제공하기 위해 생겨났습니다. 묵시문학의 기본 메시지는 “너희가 악한 세상에서 고난당하는 이유는 너희가 신실하기 때문이다. 계속해서 신실하라. 너희가 마지막에 상을 받게 될 것이다.” 입니다.
(이것은 “너희가 고난당하시는 이유는 죄를 짓기 때문이다. 회개하라, 너의 길들을 바꾸라. 너의 고난이 끝나게 될 것이다.”라는 예언문학의 기본 메시지와 매우 대조적입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경우, 우리는 21세기 그리스도인들은 고난을 당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말씀을 어떻게 이해하고 살아가야 할까요?
오늘날 마지막 날에 대해 말하는 것을 사이비 종교를 추종하는 이상한 개인들의 영역으로 치부될 수 있지만 이 구절의 메시지는 그렇지 않다는 것을 잘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깨어 있으라! 왜냐하면 너희는 그날과 그 시간을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가 기다릴 그날이 있습니다. 마지막 날입니다. 그런데 그 날은 세상이 말하는 종말의 날과 다른 날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하나님의 뜻이 예수 그리스도의 다시오심으로 완성되는 그 날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늘에 있는 것이 아니요. 죽어서만 가는 나라가 아니라는 것을 또한 깨닫게 됩니다. 그날을 기다리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이어야 합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 날과 그 시간을 알 수 없다고 예수께서 분명히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고 당부하십니다.
예수께서 종말 때의 징조들에 대해 말씀하시기는 하지만(마태24:3-35), 하나님 외에는 그 종말의 날이나 때를 아무도 알지 못한다고 거듭 말하셨습니다.(마태24:36;참조, 마가13:1-37).
이런 의미에서 복음서의 관점은 그리스도의 두 번째 오심을 예언하겠다고 주장하는 오늘날의 거짓 선지자들의 견해와 크게 다릅니다. 마태는 이와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이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그 날이 있기에 오늘을 살아가는 것입니다. 어둠과 고통, 슬픔과 아픔 속에서도 그 날이 있기에 오늘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인자의 다시 오심의 시기를 알 수 없기 때문에 준비가 필수적입니다.
열 명의 신부 들러리의 비유는 주인의 다시 옴을 위한 준비를 강조하는 두 개의 짧은 이야기들 사이에 삽입되어 있습니다.
마태복음 24:45-51에서는 그의 주인이 올 때에 일하고 있는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마태복음 24:45-46)과 다른 사람을 학대하다가 주인이 다시 오는 것을 보고 놀라는 악한 종(마태복음 24:48-50)을 대조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마태복음 25:14-30은 주인이 자신의 재산을 종에게 맡기고 종의 부지런한 투자를 기대하는 비유가 배치되어 있습니다.
두 비유 모두 주인이 없을 때의 종들의 행동을 강조하고 있습니다. 주인이 없을 때 종들이 하는 행동을 통해 그들의 신실함이 알려지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예수의 다시 오심을 기대한다는 것은 예수께서 ‘현재’ 이 땅에 함께하고 있지 않음(물리적으로)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제자들과 함께 밥을 먹고, 함께 주무시고, 함께 다니시던 예수님을 이제 다시 만질 수 없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인의 부재가 배경이 되는 것입니다. 주인의 부재, 그 때 종의 면모가 그대로 드러나게 되는 것이지요.
충분한 기름을 가지라
문자적으로 오늘 본문은 “우리가 기다리는 동안에 무엇을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에 “사용할 기름이 충분한지 확인하라”고 대답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한 가지 어려움이 생기게 됩니다. 기름이 무엇을 상징하는가?입니다.
마틴 루터는 기름이 믿음을 표상한다고 생각했는데, 믿음이 떨어질 수 있다고 볼 수 있을까요?
많은 현대의 주석가들은 기름이 착한 행실을 표상한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등불”을 뜻하는 헬라어의 관련 동사가 마태복음 5:15-16에서 착한 행실과 관련하여 사용되고 있습니다.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그러므로 집 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또 어리석음을 뜻하는 동사형이 선행구절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5: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문자적으로는 “어리석게 되다”는 뜻이다],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 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
“지혜로운”과 “어리석은”을 뜻하는 동일한 단어들이 마태복음 7:24-27에서 사용됩니다. 거기에서 두 명의 건축자들 사이의 차이는 그들이 예수의 말씀대로 행동하느냐의 여부에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는 자는 그 집을 반석 위에 지은 지혜로운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되 무너지지 아니하나니 이는 주추를 반석 위에 놓은 까닭이요 나의 이 말을 듣고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 집을 모래 위에 지은 어리석은 사람 같으리니 비가 내리고 창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 그 집에 부딪치매 무너져 그 무너짐이 심하니라
그리고 “지혜로운”을 뜻하는 동일한 단어가 24장 45절에서 사용되고 있습니다. 거기에서는 적절한 때에 바른 행동을 하는 것이란 뜻을 갖고 있습니다.
충성되고 지혜 있는 종이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사람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눠 줄 자가 누구냐?
하지만 Carter(Matthew and the Margins)는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어떤 준비가 필요한가? 등잔 기름이 무엇인가를 표상한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몇몇 사람들이 구체적인 대답(착한 행실, 성령)을 시도했지만, 특별하게 암시하는 것이 없기 때문에, 복음서 전체에서 규정하는 충성되고 순종하는 제자도(faithful and obedient discipleship)에 대한 일반적인 언급이라고 보는 것이 더 설득력 있는 것 같아 보인다. (1) 문맥이 이것을 지지한다. 처녀들은 하라고 지시받은 일을 적극적으로 성실하게 순종적으로 수행하는 종들과 같은 사람들(24:45-47)이다. (2) 7:24-27(지혜로운, 어리석은 자)의 맥락 또한 이 결론을 지지한다. 그들은 예수의 말씀을 “듣고 행해야” 한다(7:24-27). (3)시편 119:105에서 하나님의 말씀은“내 발의 등불”로 묘사된다. [p. 486]
다른 말로 말하면, (마태복음 7:24-25에서처럼) 기름은 사람들을 행동하거나 행동하지 않도록 이끄는 하나님의 말씀(또는 성령?)입니다. 또는 약간 다른 이미지를 사용하면, “기름”은 우리의 착한 행실의 배후에 있는 원천과 능력이신 하나님과 그 사람의 관계라고 해석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 비유에서 마태의 일반적인 이미지를 사용하면, 기름은 “열매 맺음”이 됩니다. (3:8, 10; 7:16, 17, 18, 19, 20; 12:33; 13:8, 23, 26; 21:19, 34, 41, 43).
NRSV에서 “신부들러리들”로 번역된 단어는 NIV와 TNIV에서처럼, “처녀들”로 번역될 수가 있습니다. 좀 더 문자적으로, 이 단어는 아직 결혼하지 않았지만, 사춘기를 지난 소녀들을 가리킵니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11장 2절에서 이 단어를 고린도교회와 관련하여 상징적으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열심히 너희를 위하여 열심을 내노니 내가 너희를 정결한 처녀로 한 남편인 그리스도께 드리려고 중매함이로다
그러나 나는 뱀이 그 간계로 하와를 미혹한 것 같이 너희 마음이 그리스도를 향하는 진실함과 깨끗함에서 부패할까 두려워하노라[주: “깨끗한”으로 번역된 헬라어 단어 hagnotes는 앞 절에서 “정결한”으로 번역된 단어인 hagnos와 관련이 있다.]
바울의 이미지를 사용하면, 우리는 처녀들은, 다른 신에게 자신을 바치기보다는 그리스도를 향해 “진실하고 깨끗한 헌신”을 하는 사람들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누구 입니까?
진실하고 깨끗한 헌신을 요청받은 주의 제자들입니다.
그 때, 우리는 깨어 있게 됩니다.
우리는 오늘 말씀을 통해 깨어 있으라는 말의 의미가 준비하라는 말씀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기름”을 준비해야 합니다. 그날이 언제 일지 알수 없어 기름을 준비해야합니다. 그런데 다시 말하면 ‘기름’을 준비하지 않으면 그 날을 기다릴 수 없다는 의미가 됩니다.
‘그 날’을 기대하는 것이 그리스도인의 삶의 중심입니다. 그런데 그 날은 그냥 기다려지는 것이 아니라는 말입니다. ‘기름’이 있어야 우리 안에 착한 행실’이 있어야 기다릴 수 있습니다. ‘말씀’과 ‘성령’이 있어야 그날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우리 안에 ‘능력’이 있어야, ‘열매 맺음’이 있어야 그날을 기다릴 수 있습니다.
저와 여러분 모두, 자기 ‘등’을 준비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
찬양 _ 찬송가 510장 하나님의 진리 등대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