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4장 주 우리 하나님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70번 이사야 42장
(인도자) 내가 붙드는 나의 종, 내 마음에 기뻐하는 자 곧 내가 택한 사람을 보라
(회중) 내가 나의 영을 그에게 주었은즉 그가 이방에 정의를 베풀리라
(인도자) 그는 외치지 아니하며 목소리를 높이지 아니하며 그 소리를 거리에 들리게 하지 아니하며
(회중)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등불을 끄지 아니하고 진실로 정의를 시행할 것이며
(인도자) 그는 쇠하지 아니하며 낙담하지 아니하고 세상에 정의를 세우기에 이르리니
(회중) 섬들이 그 교훈을 앙망하리라(1-4)
(인도자) 나 여호와가 의로 너를 불렀은즉 내가 네 손을 잡아 너를 보호하며
(회중) 너를 세워 백성의 언약과 이방의 빛이 되게 하리니
(인도자) 네가 눈먼 자들의 눈을 밝히며 갇힌 자를 감옥에서 이끌어 내며
(회중) 흑암에 앉은 자를 감방에서 나오게 하리라(6-7)
송영 _ 찬송가 4장 성부 성자와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79장 주 하나님 지으신 모든 세계
말씀 _ 마태복음 25장 31~46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의 본문 말씀은 최후의 심판에 관한 주님의 가르침이요. 예수의 모든 제자들에게 부서진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의 전령들이 되라고 도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이들은 영원한 형벌을 받으러 갈 것이고 의인들은 영원한 생명을 누리러 갈 것이다.” (25:46)
먼저 오늘의 말씀은 그리스도의 왕권을 전달하는 종말론적 이미지로 시작하고 있습니다.
“인자가 자기 영광 가운데 모든 천사들과 함께 올 때에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것이다. 그리고 모든 민족들은 그 앞에 모일 것이며 그는 목자가 염소들 중에서 양들을 갈라놓는 것처럼 그들을 서로에게서 갈라놓을 것이다.” (25:31)
영광 중에 오시는 인자의 이미지는 다니엘서 7장 13~14절의 이미지를 반영한 것입니다. 그리고 마태복음에서 예수께서 다가올 심판을 예언한 다른 곳들(24:30~31, 26:64)을 떠올리게 합니다.
마태복음 24장에서 예수는 제자들에게 거짓 선지자들이 나타나서 많은 사람들이 믿음을 잃게 될 어두운 날이 올 것이라고 개인적으로 경고하신 후에, “구름을 타고 능력과 큰 영광으로 오는 인자”(24:30)로 인해 고난이 중단되게 될 것이라고 그를 따르는 자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는 천사들을 보내어 모든 택한 자들을 모을 것(24:31)이라고 말씀하셨고 오늘 본문에서, 인자가 천사들과 함께 도착해서 지금 보좌에 앉아 계십니다. 거기서 인자는 왕으로 말씀하십니다.
왕으로서의 그리스도의 모습은 어떤 이미지를 전하게 될까요?
세상의 모든 민족들이 그 앞에서 모여 그의 위엄을 쳐다봅니다. 주님이 감람산에 설 때 모든 민족이 주님의 왕권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Louw와 Nida는 신약성서 헬라어-영어 사전에서 나라(basileuo/basileia)에 대해 다음과 같은 설명을 제공합니다.
왕으로 통치한다는 뜻으로, 완전한 권위를 갖고 있으며, 왕의 아들이나 가까운 친척에게 통치권을 물려줄 수 있는 가능성을 암시한다. 따라서 이 단어는 “통치하다, 왕이 되다, 지배하다, 다스리다”는 뜻이다. 보통 바실리아 토 데우(basileia tou theou)를 “하나님의 나라”라고 번역하여, 하나님이 통치하는 특별한 장소를 가리키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심각한 잘못이다. 신약에서 이 문구의 의미에는 특정 장소나 특정 기간보다는 통치한다는 사실이 수반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다”와 같은 표현은 “천국/하늘에 가는 것”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를 받아들이다” 또는 “하나님의 통치를 환영하는 것”으로 이해되어야만 한다. 37.64
우리가 창세로부터 우리를 위하여 예비 된 나라를 상속받을 때, 그것은 장소가 아니라, 우리의 삶을 통치하는 하나님과 함께 (지금) 살아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삶에서 하나님의 통치를 이렇게 받아들일 때 우리는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돌아보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통치와 일치하게 행동할 때 우리는 나라를 상속받게 됩니다.
그리고 이 상속받은 자들을 예수님은 “복 받은 사람”이라고 부르십니다.
“복 받은 사람”하면 어떤 분들이 떠오르시나요?
‘잘 사는 사람’ ‘건강한 사람’ ‘성공한 사람’ ‘예쁜 사람’......
그런데 예수님은 복받은 사람을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굶주렸을 때 먹을 것을 주는 사람” “목말랐을 때 마시게 하는 사람” “나그네를 받아들이는 사람” “헐벗은 사람을 입혀주는 사람” “병든 사람을 돌봐주는 사람” “감옥에 있는 사람들을 찾아가는 사람” 이런 사람들을 복받은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는 양들을 “내 아버지께 복 받을 자들”이라고 부르셨습니다(25:34). 이 복 받은 자들은 팔복의 축복을 떠올리게 합니다. 25장34절의 “복 받은 자”라는 헬라어 단어는 팔복에서 사용된 단어와 동일하지는 않지만, 둘 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축복이란 개념을 전달하고 있습니다.
팔복에서 예수께서는 의를 위해 핍박을 받고 그들의 신앙 때문에 욕을 먹는 사람들을 축복하셨습니다.(5:10-11). 마찬가지로, 양의 축복에 대한 예수의 가르침은 그가 제자들에게 그들이 세상의 미움을 받고 그를 위해 고통을 겪게 될 것이라고 경고하신 후에 이루어집니다.(24:9). 그리스도의 왕국에서, 복 받은 사람들은 폭력으로 보복하지 않고 다른 사람을 섬김으로써 새로운 왕국을 증언하는 사람들입니다.(25:31-46). 복 받은 사람들은 사랑의 친절을 수행함으로서 그들의 신실함을 증명합니다.
가난하고 불우한 사람들을 돌보는 일은 성경 곳곳에서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예수님의 사역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도래를 선포하는 동시에 아픈 자들을 치유하고(예를 들어, 8:28-9:8, 9:18-38, 12:9-14, 14:34-36, 15:29-31), 멸시받는 자들을 영접하고(9:9-13), 굶주린 자들에게 먹을 것을 제공하셨습니다.(14:13-21, 15:32-39). 그리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와 같이 행하여 그의 사역을 수행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10:5-15, 40-42).
“지극히 작은 자들”에 대한 섬김은 모든 곳의 모든 사람들과 관련이 있습니다. 36절의 감옥에 있을 때 돌보아 주었다는 구절의 맥락은 신자들이 고통 받고 감옥에 갇힌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것을 확실하게 암시하고 있습니다.
그 당시의 감옥의 주된 목적은 개인들을 형벌의 기간 내개 가두어두는 곳이라기보다는 재판을 기다리는 장소를 제공하는 데 있었습니다. 누군가 감옥에 있게 되면, 그 사람이 쓸 기본적인 생필품을 제공하는 것은 보통 사랑하는 관계에 있는 사람들이 책임이었지요. 신자들은 서로를 위해 이 봉사를 제공해야 할 뿐만 아니라, 돌봐 줄 사람이 없는 다른 사람들을 섬김으로써 그리스도의 사랑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의인들은 자신들이 그리스도를 섬기는 중이라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하고 그 행동들을 수행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들이 주린 사람들에게 음식을 주고, 나그네들을 영접하고, 헐벗은 자들에게 옷을 주고, 병든 자나 감옥에 갇힌 자를 방문했을 때마다 예수 그 자신에게 행한 것이라고 말하십니다.
반면에 불우한 사람들의 필요를 보지 못한 사람들은 마치 예수를 본 적이 없는 것처럼 행동했습니다. 그들은 그리스도의 발걸음을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주인이 그들에게 하라고 한 그 일을 계속하지 않았습니다(24:45-51). 그들은 진짜 왕이 누구인지를 보여주지 않았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예수께선 “저주 받은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저주 받은 자들아,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 부하들을 위해 준비된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가라. 왜냐하면 너희는 내가 굶주렸을 때 내게 먹을 것을 주지 않았고 내가 목말랐을 때 내게 마시게 해 주지 않았으며 내가 나그네였을 때 나를 맞아들이지 않았고 내가 헐벗었을 때에 내게 입혀 주지 않았고 내가 병들고 감옥에 있을 때 나를 찾아오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한 사람은 이전에 살던 삶으로 돌아갈 수 없습니다. 신학자 Stanley Hauerwas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따르는 사람과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 사이의 차이는, 예수를 본 사람들은 ‘이 지극히 작은 자들’을 회피하기 위해 어떤 변명도 하지 못한다는 데 있다.”
복 받은 사람들은 이 세상의 왕들과 같지 않은 왕(a King)을 본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복 받은 사람이 된 것은 진정한 평화를 가져다주고, 궁핍한 자를 돌보시고, 억눌린 자의 울부짖음을 들으시는 왕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배고프거나 헐벗거나 아프거나 외로운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를 왕으로 증언하는 것은 그 나라의 메신저가 되는 것이고, 다른 사람들을 섬김으로써 하나님의 영광스러운 왕국을 고백하는 사람들이 되는 것입니다.
이제 강림절이 시작됩니다. 복받은 사람으로 살아가기 너무도 좋은 계절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복받은 사람으로 살아가시길 축원합니다.
찬양 _ 찬송가 84장 온 세상이 캄캄하여서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