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찬양 _ 찬송가 26장 구세주를 아는 이들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124번 사순절 제1주
(인도자) 내 하나님이여 내 하나님이여 어찌 나를 버리셨나이까
(회중) 어찌 나를 멀리 하여 돕지 아니하시오며 내 신음 소리를 듣지 아니하시나이까
(인도자) 내 하나님이여 내가 낮에도 부르짖고 밤에도 잠잠하지 아니하오나 응답하지 아니하시나이다
(회중) 이스라엘의 찬송 중에 계시는 주여 주는 거룩하시니이다
(인도자) 우리 조상들이 주께 의뢰하고 의뢰하였으므로 그들을 건지셨나이다
(회중) 그들이 주께 부르짖어 구원을 얻고 주께 의뢰하여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였나이다(시22:1-5)
(인도자) 나를 멀리 하지 마옵소서 환난이 가까우나 도울 자 없나이다(시22:11)
(회중) 악한 무리가 나를 둘러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
(인도자) 내가 내 모든 뼈를 셀 수 있나이다 그들이 나를 주목하여 보고 내 겉옷을 나누며 속옷을 제비 뽑나이다
(회중) 여호와여 멀리 하지 마옵소서 나의 힘이시여 속히 나를 도우소서(시22:16하-19)
(인도자) 나를 사자의 입에서 구하소서 주께서 내게 응답하시고 들소의 뿔에서 구원하셨나이다
(회중) 내가 주의 이름을 형제에게 선포하고 회중 가운데에서 주를 찬송하리이다
(인도자) 여호와를 두려워하는 너희여 그를 찬송할지어다
(회중) 야곱의 모든 자손이여 그에게 영광을 돌릴지어다 너희 이스라엘 모든 자손이여 그를 경외할지어다(시22:21-23)
송영 _ 찬송가 4장 성부 성자와 성령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찬양 _ 찬송가 70장 피난처 있으니
말씀 _ 마태복음 4장 1~11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매년 사순절 첫 번째 주일에는 예수님의 시험받으심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석을 번역할 때, temptation은 유혹으로, test나 testing은 시험으로 번역됩니다.
마태복음 4장 1절의 “시험을 받다(peirazo)”와 마태복음 4장 7절의 “시험하다(ekpeirazo)”는
70인역에서 보통 하나님께서 사람들을 시험하는(testing)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그의 아들을 번제로 드리라고 요구함으로써 그를 시험하셨다.
하나님이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실 때, 그들에게 그 날을 위해 충분한 양만을 거둘 것을 요구하셨다.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출애굽기16:4).
하나님이 왜 사람들을 시험하시는걸까요?
가능하다면 우리는 시험을 피하고 싶은데 말입니다.
한가지 이유가 신명기 13정 3절에 나와 있습니다.
“이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는 여부를 알려 하사 너희를 시험하심이니라.”
또 다른 설명은 신명기 8장 16절입니다.
“이는 다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라”
예수님도 시험을 받으십니다. 예수님께서 시험을 받으시는 이유를 신명기 8장 2~3절 말씀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 사십 년 동안에 네게 광야 길을 걷게 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는 너를 낮추시며 너를 시험하사 네 마음이 어떠한지 그 명령을 지키는지 지키지 않는지 알려 하심이라. 너를 낮추시며 너를 주리게 하시며 또 너도 알지 못하며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네게 먹이신 것은 사람이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요 여호와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사는 줄을 네가 알게 하려 하심이니라. (3절은 예수께서 첫 번째 시험에 대답(마4:4)할 때 인용하신 말씀입니다.)
우리가 지금 시험을 받고 있다면, 분명 그 시험의 이유를 찾으시길 바랍니다. 그 시험의 이유가 분명 있습니다.
바라건대 우리의 시험이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사랑하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Boring (Matthew, NIB)은 예수님의 시험을 다음과 같이 정의하고 있습니다.
“예수가 유혹받으신 것은 악마적인 힘에 의해 고통을 받는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을 향한 그의 순종의 일부이다” [p. 163].
유혹은 강요가 아니다.
유혹(시험)이 올 때마다 유혹(시험)하는 자는 누군가로 강제로 어떤 일을 하게 할 힘을 갖고 있지 않습니다. 유혹(시험)은 강요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동산에서 뱀이 아담과 하와가 사과를 먹게 만든 것이 아니었습니다. 이와같이 오늘 본문의 마귀는 예수님께서 돌을 떡으로 바꾸게 만들 수 없습니다.
“유혹”은 누군가에게 어떤 일을 하라고 설득하고자 시도한다는 뜻입니다. 유혹은 누군가가 어떤 것을 하길 원하도록 유인한다는 뜻이기도 하지요. 유혹하는 자들은 누군가가 나쁜 어떤 일을 하도록 만들 수 없지만, 유혹당하는 사람으로 하여금 나쁜 어떤 일을 하길 원하도록 만들고자 시도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의지를 빼앗아 가지 않습니다. 오히려 그들은 사람의 의지를 바꾸려고 시도하는 것입니다.
디아볼로(diabolos)는 흔히 마귀로 번역되지만, 문자적으로 “중상하는 자”나 형용사로 “중상하는”을 뜻합니다.
일반적으로 마귀(diabolos)는 우리에게 커다란 악을 행하라고 유인하지 않습니다. 다만 마귀는 잘못된 동기로 착한 일을 하라고 우리를 유인합니다. 그저, 진리를 왜곡할 뿐입니다. 예수님께서 받으신 시험 가운데 어느 것도 큰 악을 행하라는 것이 아니었습니다. 잘못된 시기에 잘못된 동기로 좋은 일을 하라는 것일 뿐입니다.
(만약 우리가 그렇게 할 수 있다면)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기 위해 돌을 떡으로 만드는 것이 무슨 잘못일까요?
이후에 등장하는 말씀은 예수님께서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5,000명을 먹이신 이야기입니다.
성경을 매우 확실하게 믿기에, 천사들이 자신을 보호할 것이라고 신뢰하는 것이 무슨 잘못일까요?
이후에 예수님께서는 물 위를 걸으실 것입니다. 성전에서 뛰어내려도 천사들이 보호하는 것과 무엇이 더 어려울까요?
왕이신 예수님께서 천하만국을 다스린다고 생각하는 것이 무슨 잘못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재림 때에 기대하는 일이 아닌가요?
중상하는 자(마귀)는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 매우 잘 어울리는 착한 일을 하라고 예수님을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 훌륭한 간청들과 관련해서 무엇이 악마적인 걸까요?
세 가지 유혹 모두가 갖고 있는 문제는 그 유혹들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다른 말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하나미의 말씀이 아닌, 마귀의 요구이자 또는 사람들의 요구에서 시작된다는 점을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Gundry (Matthew)는 다음과 같은 설명을 덧붙이고 있습니다.
“마귀는 예수에게 그의 세례에서 방금 선포된 하나님의 아들의 신분을 의심하라고 유혹하지 않고, 그를 십자가의 길에 불복종하게 이끌 수 있는 이기적인 방법으로 그 아들의 신분을 이용하라고 유혹한다”[p. 55].
결국, 마귀의 유혹은 매우 이기적인 방향으로 우리들의 의지를 바꾸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자신의 배고픔을 채우기 위하여, 아들의 신분을 이용하고
성전 꼭대기에서 자신의 능력을 보란 듯 증명하기 위하여 아들의 신분을 이용하고
이 모든 것을 가질 수 있으니 경배하라는 마귀의 속삭임은 우리에게 이기적으로 살아가라는 속삭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사람[anthropos)이 떡으로만 살지 못한다”
우리가 그토록 이기적인 이유는 “떡” 때문이지요. 그런데 우리가 “떡”으로만 살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면 우리는 어떠한 삶을 살아가게 될까요?
다시 세 개의 시험은 누가복음의 시험기사와 비교해 보면 두 번째와 세 번째 유혹의 순서가 바뀌고 있습니다. 유혹은 광야뿐 아니라 성전에서 일어납니다. 광야에도 높은 절벽이 있었고, 사탄은 예수에게 그 절벽에서 뛰어 내리라고 유혹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Gundry (Matthew)는 “성전을 선정한 것은 메시아 표적의 공개적인 전시를 암시한다”[p. 56].고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명령하신 “메시아 표적”은 십자가입니다. 슈퍼맨과 같은 형태의 퍼포먼스가 아닙니다.
사람들은 성경을 하나님의 약속, 곧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물로 간주하기 보다는, 유혹하는 자처럼 하나님의 뜻을 바꾸기 위해, 하나님을 조종하기 위해 사용할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시험하기 위해 성경을 사용할 때, 하나님과 우리 자신의 신실함을 시험하는 것이기에 심판의 도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조종하고자 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바꾸곤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살기보다는 우리의 말들에 따라 하나님이 행동하시게 하려고 시도합니다. (“당신이 정말 충분한 믿음을 갖고 있었다면, 당신이 나를 위해 기도했을 것이고, 하나님께서 나를 고쳐주셨을 것이다.”)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십니다.
“너희가 맛사에서 시험한 것 같이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를 시험하지 말라”
출애굽기 17장 7절입니다. “그가 그 곳 이름을 맛사 또는 므리바라 불렀으니 이는 이스라엘 자손이 다투었음이요 또는 그들이 여호와를 시험하여 이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하였음이더라.”
“시험”은 우리 가운데 하나님의 임재를 의심하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임재를 증명하기 위해 기적들을 찾기 시작할 때,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의 말씀에 의지해서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기적을 보지 않고도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까요?
세 번째 시험은 높은 산에서 이뤄집니다. (높은 산은 변모사건에서 사용된 것과 동일한 표현입니다.)
“여호와께서 온 땅을 그에게 보이셨다”(신명기 34:1).
마귀가 예수님에게 줄 천하만국의 소유자일까요?
Carter (Matthew and the Margins) 는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주권, 즉 “세상이 누구에게 속한 것인가?”이다. 하나님에게(비교, 창세기 1장;레위기 25:23;시편24:1) 속한 것인가, 아니면 마귀에게 속한 것인가?
예수님의 대답은 신명기 6장13절을 그대로 인용하고 있습니다.
“주 너의 하나님께 엎드려 경배하고 오직 그분만을 섬기라.”
“섬기다”는 단어는 “숭배의 일환으로 종교적인 의식들을 수행하다”는 뜻이고 이것은 “예배”나 “섬김”으로 번역되는데, 이 단어 또한 “절하다, -앞에 엎드리다”는 뜻을 갖고 있습니다. 이것은 신체적인 자세와 태도나, 경외하거나 존경하는 행동 둘 다를 가리킵니다.
오직 그분만을 섬기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끝으로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에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탄아, 물러가라!"고 말씀하시자 마귀는 떠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힘을 믿고 그 능력으로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되시길 기도합니다.
찬양 _ 찬송가 92장 위에 계신 나의 친구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