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4장 주 우리 하나님

신앙고백 _ 사도신경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51번 시편 118편

(인도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회중) 이제 이스라엘은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인도자) 이제 아론의 집은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회중) 이제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말하기를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다 할지로다
(인도자)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회중)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인도자)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회중)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인도자) 여호와게서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회중) 뭇 나라가 나를 에워쌌으니 내가 여호와의 이름으로 그들을 끊으리로다(1-10)
(인도자) 너는 나를 밀쳐 넘어뜨리려 하였으나 여호와께서는 나를 도우셨도다
(회중) 여호와는 나의 능력과 찬송이시오 도 나의 구원이 되셨도다(13-14)

송영 _ 찬송가 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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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429 세상 모든 풍파 너를 흔들어

말씀 _ 마태복음 5장 1~12절, 복 있는 사람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우리가 산상설교 또는 산상수훈이라고 알려진 말씀입니다. 산상수훈은 문자그대로 산위에서 전해진 교훈이라는 뜻이지요. 이 말씀에 대한 해석은 너무도 많지만, 단 하나의 단어는 하나님의 나라일 것입니다. 그리고 그 하나님의 나라를 팔복(8개의 복)으로 소개하고 있습니다.

다음은 Allan Powell의 책 <God With Us: A Pastoral Theology of Matthew's Gospel(Fortress, 1995)> “사회적 정의”란 챕터에서 소개하고 있는 “팔복”입니다.

A. 산성설교 소개(5:1-2)

B. 복이 있는 사람들(5:3-12)

1. 3인칭 축복들(“그들은 복이 있다”)(5:3-10)

a. 불행한 사람들을 향한 종말론적인 반전의 약속들(5:3-6)

b. 미덕을 실천하는 사람들을 향한 종말론적인 보상의 약속들(5:7-10)

2. 2인칭 축복들(“너희는 복이 있다”)(5:11-12)

 

예수님의 가르침이 제자들에게만 말해진 것처럼 보이지만(1b-2절), 또한 “무리들”을 위해서였다는 암시들이 있습니다. 산상설교는 무리를 보시는 예수에게서 시작하고(5:1)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라는 진술로 끝이 납니다(7:28).

산상설교 전에 예수를 따랐던 유일한 사람들은 예수님의 부르심을 받은 네 어부들이었지요.(4:20,22) 그리고 오늘의 말씀은 예수님을 “따르는” 모든 사람들로 확대되고 있습니다.

여기서 중요한 지점이 등장합니다. 예수님의 4명의 제자든지, 무리들이든지 이 모든 대상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을 향한 말씀이라는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편하게 전해지는 말씀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복”을 바라지 않는 사람들이 없을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의 복은 전제 조건이 분명합니다. 이 “복”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은 이 “복”을 바라는 사람들에게만 임한다는 것입니다.

8개의 복들을 4개씩 두 그룹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처음 4개의 복은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에게 주어지는 복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4개의 복은 긍흉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하는 자, 의를 위해 핍박받는 자에게 주어지는 복입니다.

심령이 가난한 자

가난한 자(ptochoi)는 70인역에서 번역할 때 사용되는데, 이스라엘에서 빼앗기고 버림을 받은 사람들을 뜻합니다. 그런데 마태는 심령”을 포함시킵니다. 산상수훈의 말씀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서 전해지는데 누가복음에는 “가난한 사람들은 복이 있다.”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렇다면 가난한 사람, 또는 심령이 가난한 사람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하고 있을까요? 불쌍한 사람들? 힘이 없는 사람들 이땅에선 가난하지만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는 사람들?

Boring (Matthew, NIB)은 우리가 생각하는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해석을 다르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에 따르면 시편이 기록된 때부터,(BC1000전부터) “가난한 자”는 하나님의 참된 백성들, 즉, 그들의 삶이 그들의 손에 있지 않고, 하나님을 의존한다는 것을 아는 사람들의 특성이라는 것입니다. 시편의 말씀과 마태복음 둘 다, 이 말씀의 주제는 경제적인 측면이나 영적인 측면에 있지 않고, 하나님의 백성들의 정체성에 있고 이것이 마태의 주제라는 것이지요.

“심령의 가난”은 사람이 얻고자 하는 특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들의 특성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그들의 것”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요. 이 하나님의 백성이 심령이 가난한 자라는 것입니다. 이 가난한 자들에겐 세상 것에 영향을 받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삶이 오직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갈수 밖에 없음을 아는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나라가 그들의 것이라는 말씀은 “하늘의 통치가 그들 위에 있다”로 이해할 수 있습니다.

애통하는 자들

최근에 대부분의 학자들은 ‘애통하는 자’는 슬퍼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슬픔을 원하는 사람들이 있을까요?

정호승 시인의 <슬픔이 기쁨이에게>라는 시가 있습니다.

나는 이제 너에게도 슬픔을 주겠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을 주겠다.

겨울밤 거리에서 귤 몇개 놓고

살아온 추위와 떨고 있는 할머니에게

귤값을 깎으면서 기뻐하던 너를 위하여

나는 슬픔의 평등한 얼굴을 보여주겠다.

 

마태복음에서 말하는 슬픈 사람들은 위와 같은 사람들을 말하는 것이겠지요. 슬퍼하는 사람들, 사랑보다 소중한 슬픔의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들, 그래서 애통하는 자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의 특성이 됩니다. 슬퍼하는 이가 있다면 이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이요. 그래서 위로를 받을 것입니다.

온유한 자

온유한 자(praus)는 70인역에서 가난한 자를 뜻하는 의미로 매우 자주 사용됩니다. 이것은 “겸손한” 또는 “온유한”이란 긍정적인 의미를 지닐 수도 있지만, “굴욕을 당한/수치를 당한”이란 부정적인 의미를 지닐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그들이 “짓밟히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에게 당하고 가만히 있는 사람들,” “무력한 사람들”이라고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온유한 자(the praus)는 이 땅에 대한 그들의 몫을 받지 못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재물에의 접근이 거부된 사람들일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마침내 땅을 차지하게 될 것입니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네 번째 복은 첫 번째 연의 결론 역할을 하고, 지금까지의 전체 단락의 사상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거부하고 있는 정의에 굶주리고 목마른 사람들은 희망할 이유가 없는 사람들, 기뻐할 까닭이 없는 사람들, 이 세상의 자원들에 접근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포함하는 의에 주리고 목마는 자들에게 마침내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져 그들에게 복이 있습니다. 신학적으로 이 처음 네 가지 복의 의미는 “천국에 들어가는 조건들”을 제공하는 데 있지 않고, 천국의 특징인 하나님의 통치의 성격을 묘사하는 데 있습니다. ….

하나님의 나라가 이루어진다는 것은 그들에게 축복이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가 아니면, 희망할 이유가 없거나, 기뻐할 까닭이 없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올 것이라는 것은 축복입니다.

네 개의 복을 실현하는데 도움을 주는 사람들을 위한 복

예수님께서 5:7-10에서 복이 있다고 선언하는 사람들은 5:3-6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약속된 복들을 실현하는데 도움을 주는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실천하는 사람들, 실현하는 사람들에게 주어지는 복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

“긍휼”(eleos)은 참으로 광범위한 의미들을 갖고 있습니다. “죄를 용서하는 것”을 뜻할 수도 있고, 가난한 자들에게 돈을 기부하는 것을 가리킬 수도 있습니다.(6:2,3,4). “긍휼을 베푸는 것”(eleeo)은 “아픈 사람들을 치료하는 것”(9:27;20:30,31)이나 “귀신들린 사람들을 치료하는 것”(15:22;17:17)을 뜻할 수 있습니다. 마태복음에서 예수님은 호세아 6:6의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를 두 번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 중 첫 번째는 9:13, 두번째는12:7에서, 긍휼은 은유적으로 아픈 사람들의 의사가 되거나 배고픈 사람에게 먹을 것을 주는 것입니다.

이렇게 보면 “긍휼이 여기는 사람들”은 치유자들, 즉 잘못된 것을 바로 잡고자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삶이 하나님의 의도하신 대로 되지 못하게 하는 모든 것을 바로 잡고자 애쓰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 복이 있습니다.

마음이 청결한 자

마음이 청결한 자에 대한 힌트를 마태복음 13장과 18장에서 찾아 볼 수 있는데 “마음으로 이해하는” 것(13:15)은 진실로 이해하는 것을 뜻하고, “마음으로부터 용서하는 것”(18:35)은 진실로 용서하는 것을 뜻하고 있습니다. 여섯째 복에서 실제로 강조하는 것은 진실성(integrity, 겉과 안이 동일한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명기의 말씀에 따르면 마음과 뜻과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라고 설명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화평하게 하는 자들과 의를 위해 핍박받는 자

마태복음에서 “화평하게 하는 것”은 수동적인 태도가 아니라, 화해를 위해 긍정적인 행동을 수행하는 것이고 의를 위해 핍박받는 이들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헌신하는 자들입니다.

이 여덟 번째 복은 두 번째 연의 네 개의 복에 어울리는 결론으로, 이 단락의 기본적인 사상을 요약하고 있습니다. 긍휼을 베푸는 사람들과 하나님의 평화를 확립하기 위해 일하는 사람들은 의를 위해 헌신을 다하는 사람들의 본보기들입니다. 그리고 만약 이 사람들이 마음이 청결하다면, 그들의 헌신은 박해에 직면해서도 흔들리지 않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너희에게 복이 있다.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그들이 바로 너희, 우리입니다. 진정으로 복있는 사람이 되시길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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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620장 여기에 모인 우리

주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