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9장 하늘에 가득찬 영광의 하나님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교독 _ 교독문 67번 잠언 3장

(인도자) 지혜를 얻은 자와 명철을 얻은 자는 복이 있나니
(회중) 이는 지혜를 얻는 것이 은을 얻는 것보다 낫고 그 이익이 정금보다 나음이니라
(인도자) 지혜는 진주보다 귀하니 네가 사모하는 모든 것으로도 이에 비교할 수 없도다
(회중) 그의 오른손에는 장수가 있고 그의 왼손에는 부귀가 있나니
(인도자) 그 길은 즐거운 길이요 그의 지름길은 다 평강이니라
(회중) 지혜는 그 얻은 자에게 생명 나무라 지혜를 가진 자는 복되도다
(인도자) 여호와께서는 지혜로 땅에 터를 놓으셨으며 명철로 하늘을 견고히 세우셨고
(회중) 그의 지식으로 깊은 바다를 갈라지게 하셨으며 공중에서 이슬에 내리게 하셨느니라
(인도자) 내 아들아 완전한 지혜와 근신을 지키고 이것들이 네 눈 앞에서 떠나지말게 하라(13-21)
(회중) 대저 여호와는 네가 의지할 이시니라 네 발을 지켜 걸리지 않게 하시리라(26)

송영 _ 찬송가 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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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90장 주 예수 내가 알기 전

말씀 _ 마태복음 5장 13~20절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지난주에 이어 오늘의 말씀이 이어집니다. 오늘 말씀을 살펴보기 전에 먼저 팔복의 번역 과정에서 역본들에서 사라진 것 가운데 하나를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은 복이 있다”는 표현의 본래의 의미가 그것입니다.

사용된 헬라어는 마카리오스(makarios)인데, “하나님에 의해 축복을 받았다”는 뜻이 아닙니다. 마카리오스는 좋은 삶(a good life, 올바른 삶, 덕망 높은 삶 또는 잘 사는 삶)의 정황에 대한 묘사입니다. 오늘날 영어의 “행복한”(happy)이란 단어는 너무 지나치게 감정적이고 심리적인 행복이란 뜻을 갖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것은 그 의미를 벗어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우리의 복이 마카리오스가 되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오늘의 말씀은 크게 세 개의 단어로 설명할 수 있습니다. 소금, 빛, 율법 이 세 개의 단어는 앞서 말씀드린 산상수훈에 이어지는 말씀이지요. 다른 말로하면 이 세 개의 단어가 복된 삶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더 넒게는 마태복음 5장 전체가 복된 삶(마카리오스)에 대한 가르침이라고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땅의 소금(세상의 소금)

소금(비교, 마가복음9:50;누가복음14:35)은 고대 세계에서 현재보다 더 여러 용도로 사용되었습니다. 구약성서에서 소금은 제물에 첨가 되었고(레위기2:13), 청결과 관련이 있고(출애굽기30:35;열왕기하2:19-22), 언약에 대한 충성을 상징했고(민수가18:19;에스라4:14)했고, 음식의 맛을 내는 데 사용되었다(욥6:6).

그런데 미쉬나에서 소금은 지혜와 연관이 있습니다.

미쉬나(Mishnah)란 히브리어로 '공부'라는 뜻으로, 히브리어 어원인 '샤나'는 '반복하다' 또는 (반복해서) '연구하다' 또는 (반복을 통해) '가르치다'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쉬나는 법전으로, 취급하고 있는 내용은 매우 다양할 뿐 아니라 상호 대조되는 자료들이 함께 편집되어 있지요.

지금, 예수님은 속담의 이미지를 사용하고 있는 중이십니다. 랍비들은 주로 소금을 지혜의 이미지로 사용하였고(골4:6,“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 이것은 맛을 잃어버린 것을 나타내는 헬라어 단어가 왜 “어리석다”(아프로네스)는 뜻이 되었는지를 이해하게 해 줍니다.

한글 개역성서에서는 세상의 소금이라고 되어 있는데, 영어성경은 땅/세상(earth)의 소금이란 표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어떤 주석들은 “땅”과 진흙(또는 오븐)을 의미하는 단어가 동일하다는 사실에 근거하여 “진흙 속의 소금”이라고 번역하기도 하는데, 이는 고대 근동에서 짐승의 배설물들을 건조하여 땔감으로 사용할 때에, 소금이 불을 잘 붙게 하는 촉매의 역할을 했고, 소금이 그런 촉매의 역할을 한 후에 쓸모없게 되어, 그 찌꺼기를 밖에 버리던 습관이 13절의 “맛을 잃은 소금을 밖에 버린다”는 것과 연관이 있다고 설명하기도 합니다.

어리석은 제자는 세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할 것입니다. 제자이면서도 세상에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것은 모순이 아닐까요?

"너희는 소금이다." 이 한 문장은 헬라어 본문에서 강조어법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너희”라는 대명사가 문장의 구조상 필요하지 않지만, 그것이 있을 때는 뒤의 내용을 강조하게 됩니다. 그러니 이런 의미가 됩니다. “이것은 다른 사람들이 아니라 바로 너희이다.” “너희가 바로 소금이다.”

세상의 빛

소금처럼 빛은 확실히 구별됨으로서 주변에 영향을 미칩니다. 이사야가 고난 받는 종에 대해 예언했던 것처럼(이사야 4:6;49:6), 예수는 세상의 특별한 빛(요한복음8:12)이고, 그 역할이 그의 제자들에게로 이어집니다.(사도행전13;47).

산 위에 있는 동네는 분명하게 다르게 되는 것의 중요성을 한층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산위에 있는 마을은 숨겨질 수 없기 때문입니다.

헬라어 본문에는 15절 말씀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등잔에 불을 켜서 등잔대 위에 놓는다. 그래야 등불이 집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빛을 비출 수 있다.”

숨길수 없고 숨겨질 수 없는 삶이 되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복된 삶이라는 것을 깨달으시길 바랍니다.

“소금과 빛”은 그 본질을 묘사합니다. 짠 맛이 소금의 본질인 것처럼, 비추는 것이 빛의 본질입니다. 소금의 경우에 짠 맛을 내는 것은 선택이 아닙니다. 빛을 비추는 것이 선택이 될 수 없고요. 우리들의 삶은 언제나 그것의 진정한 삶이 숨겨지지 않는 언덕 위에 있는 동네입니다.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들 앞에 비취게 하라. 그래서 그들이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이것이 복된 삶이 아니면 무엇일까요?

율법의 완성

“완성하러 왔다.”

마태복음에서 “성취”는 마태가 히브리 성서(구약성서)를 다시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들과 관련해서 하신 일들의 패턴들을 보았다는 뜻이자, 예수님께서 그 자신 안에 충만한 언약의 약속들을 갖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언약신학자들은 네 가자 주요한 언약들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a)노아 언약, (b)아브라함 언약, (c)모세 언약, 그리고 (d)다윗 언약.

이 네 언약이 예수님 안에서의 성취됩니다.

R.E. Friedman은 그것을 이렇게 명확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노아 언약은 우주의 안정성을 약속하고, 아브라함 언약은 백성들과 땅을 약속하고, 다윗언약은 주권을 약속하고, 모세 언약은 생명, 안전, 그리고 번영을 약속한다.”

언약이 바로 그 사이에 일어나는 모든 이야기들을 이해하는 틀이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이 네 가지 언약을 제거한다면, 우리들은 하나의 이야기 선집을 갖고 있는 것일 뿐, 그 이야기들을 이해하는 방편인 메타-내러티브(meta-narrative-스토리들을 해석하는 더 큰 스토리)를 갖지 못할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을 갖고 있습니다. 그 약속의 대부분이 무조건적이지만,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가 삶을 위한 완전함(a wholeness for life))을 제공하고, 그 완전함에 의해 우리가 하나님과의 온전한 관계를 자유롭게 시작할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17-18절처럼, 19절은 제자들에게 율법의 일점일획이라도 변경하거나 생략하지 말라고 경고하고 있습니다. 영어번역에서는 “깨트리다/위반하다”(break)는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헬라어는 “느슨하게 하라, 자유롭게 하다, 완화하다”는 뜻이고, 17절의 “폐하다”는 단어와 동일 어원입니다. 이 단어는 일반적으로 계명을 불순종하는 것보다는 계명을 “한쪽으로 치워두다” 또는 계명과 “다르게 가르치다”는 뜻이 됩니다.(16:19와 18:18의 ‘풀다’와 같은 동사이다).

율법은 곧 가르침입니다. 이 율법과 언약은 같은 선상에 있습니다. 율법주의자가 아니라 언약을 기억하고 하나님의 말씀, 계명에 순종하고 사랑하면 율법이 성취될 것입니다.

소금과 빛, 율법의 완성이 진정한 복입니다.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하는 자, 의를 위하여 핍박받는 자가 이와 같을 것입니다.

우리는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이고, 하나님을 볼 것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릴 것이며, 하늘나라가 우리들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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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393장 오 신실하신 주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