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용한 기도

경배와 찬양 _ 찬송가 10장 전능왕 오셔서

신앙고백 _ 사도신경(새번역)

나는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천지의 창조주를 믿습니다. 나는 그의 유일하신 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는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으며, 하늘에 오르시어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거기로부터 살아 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십니다. 나는 성령을 믿으며 거룩한 공교회와 성도의 교제와, 죄를 용서받는 것과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습니다. 아멘

말씀교독 _ 교독문 105번 감사절

(인도자)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회중)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시107:1)
(인도자) 여호와께 감사하고 그의 이름을 불러 아뢰며
(회중) 그가 하는 일을 만민 중에 알게 할지어다(시105:1)
(인도자)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회중)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인도자)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회중)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인도자)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회중)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시107:4-9)

송영 _ 찬송가 1장 만복의 근원 하나님

기도 _ 가정과 교회를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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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421장 내가 예수 믿고서

말씀 _ 누가복음 10장 1~11, 16-20절, 보냄을 받은 사람들

주님의 이름으로 평안을 전합니다.

먼저 “제자들”과 “사도들”이란 단어의 차이를 이해해야 오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제자들,” 즉 “배우는 사람들” 일 때가 있고, “사도들,” 즉 “ 보냄을 받은 사람들”일 때가 있습니다.

사해바다를 알고 계시나요?

우리는 사해바다에 대한 오래된 설명, 즉 유입되기만 하고 유출되지 않는 모든 것은 죽음을 유발한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어떤 것이 유입되지 않으면 아무 것도 유출할 수 없습니다. 생명을 주는 믿음은 훈련된 배움(즉, 제자도)을 통한 유입과 메시지를 가지고 세상으로 보냄을 받는(즉, 사도적인 사명) 유출 둘 다, 필요로 합니다.

보냄을 받은 이들 (1-11절)

누가복음 10장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각 마을로 보내시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보내심을 받은 이들, 앞선 말씀드린 '사도'가 바로 이들입니다.

이런 사도들을 예수님은 ‘일꾼’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도는 일꾼이요, 노동자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보내시면서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이리들 가운데 양을 보내는 것과 같다.”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

이리들에게 보내시는 것 같다는 말씀과 아무 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는 말씀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말 그대로 이리들입니다. 그런데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동시에 일꾼들이라 부르시면서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 하시면서 먹고, 마시라! 말씀하십니다.

이 두가지 상황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요?

먼저 6절 말씀을 살펴보면 “이리들”과 달리, 거기에는 또한 “평안의 아들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6절;NRSV에는 “평화에 참여하는 자들”).

세상이 이리떼와 같을 수 있습니다. 그런 그 곳에 “평안의 아들”, “평안을 받을 사람”이 분명 있다는 것입니다.

“사도들”을 통해 이 평안의 사람들이 드러나게 되는 것이 오늘 본문의 주제가 되는 것입니다. “사도들”을 통해 우리는 누가 평화의 사람인지 알게 된다는 말씀입니다. 이리떼를 두려워 할 것이 아니라 “평안의 아들”들을 찾으시는 하나님, 그리고 사도들입니다.

두 번째 아무것도 가지고 가지 말라 말씀하셨지만 동시에 사도들에게 수확을 약속하셨습니다.

“일꾼이 자기의 품삯을 받는 것은 마땅하다.” 그런데 품삯이라는 말은 원래 내 것이 아닌 것을 받는 것이지요.

주인이 주는 것이 품삯입니다. 그러니 일꾼은 자기 것을 가지고 갈 필요가 없는 것입니다.

내 것은 품삯이 아니기 때문이지요. 예수님은 일꾼이 자기의 품삯을 받는 것을 당연하다고 말씀하시면서 차린 것을 먹고 마시라!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많은 수확을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때, 이렇게 생각을 하곤 합니다.

“이리떼에서 무엇을 수확한다는 말인가?”

“믿는 자들이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예수님은 추수할 것은 많다고 말씀하시면서 일꾼이 적다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의 관점은 “일꾼”에 있습니다. 심지어 “믿는 사람들”이 적다고 말씀하시지 않고 “일꾼”이 없다고 말씀 하셨습니다.

우리는 왜 예수님처럼 볼 수 없을까요? 여전히 우리에게도 추수할 것이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 여전히 일꾼이 적은 것은 아닐까요?

저와 여러분이 충실한 일꾼이 되시길 소망합니다.

회개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임하는 화들(11-15절)

“화가 있으라!” 회개하지 않는 마을들을 향한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그런데

이 심판의 말들은, 세상을 향한 “사도들”의 선포의 일부가 아니었고, 사람들이 회개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가지고 나가는 그들의 동기의 일부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있다는 것을 알라”

하나님의 (진노가 아니라) “인자하심”(kindness)은, 그 목적이 사람들을 인도하여 회개하게 하기 위함입니다.

사도는 (16절)

“너희 말을 듣는 사람은 내 말을 듣는 사람이요. 너희를 배척하는 사람은 나를 배척하는 것이요. 나를 배척하는 사람은 나를 보내신 분을 배척하는 것이다.”

예수님과 사도들의 관계는 요한복음 말씀을 떠올리게 합니다.

“내가 내 아버지 안에 있고 너희는 내 안에 있으며 또 내가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요한복음 14장 20절) 저와 여러분이 “사도”의 정의를 다시 하시는 오늘이 되시길 바랍니다. 세상으로 보냄을 받은 이들, 사도는 주님과 함께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학자 Culpepper의 “선교의 10가지 원칙들”을 다시 살펴보 필요가 있습니다.

1. 이것은 세상이 교회의 선교를 필요로 한다는 것을 단언한다. 즉, “추수할 것은 많다.” 추수할 일꾼들보다 해야 할 일이 더 많다.

2.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주신 임무(commission)는 교회의 선교를 지원할 때의 기도의 중요성을 강조하고 있다, 즉,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라.”

3. 이것은 제자 한 사람 한 사람의 적극적인 참여를 강조한다. 즉, “갈지어다.” 교회의 일은 단순히 선택된 소수를 부르는 것이 아니다. 신자들은 나름의 방법으로 그리고 그들의 영적 여행의 사정에 따라 교회의 일에 기여할 수 있다.

4. 예수는 장차 직면하게 될 위험들을 경고하고, 가이드라인을 제공하신다. 즉, “내가 너희를 보냄이 어린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예수는 이 은유를 사용함으로써, 분노와 위험에서 벗어나는 수단들로 순수함과 성실함, 연약함과 무저항을 조언하고 있는 것 같다.

5. 예수는 목적 하나 만을 요구하신다. “길에서 아무에게도 문안하지 말라”

6. 이 임무는 선교의 목적을 구체적으로 말한다. 즉, “‘이 집이 평안할지어다’와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에게 가까이 왔다’”고 말하라. 제자들은 하나님께서 어떤 일을 하고 계신가를 선언하고, 누구든지 그들을 영접하는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평안을 가져다준다. “너희를 영접하는 사람과 먹고 마시라.”

7. 제자들의 증언을 위해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은 손님이 아니라, 주인이다. 즉, “너희 앞에 차려진 것을 먹으라.” 제자들은 메뉴를 주문하거나, 다른 사람에게 그들 자신의 문화적 배경을 강요하지 않는다.

8. 예수의 명령은 제자들이 늘 성공하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다. 즉, “그들이 너희를 영접하지 아니하거든….” 예수는 제자들이 수시로 저항과 거절에 직면하게 될 것을 아셨다.

9. 예수는 제자들에게 참으라고 권면한다. 즉, “너희 발에 묻은 먼지를 떨어버리라.”

10. 예수는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구속사업의 성취에 관해 확신의 말을 하신다. 즉,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온 줄을 알라.”

여러분은 보냄을 받은 이들인가요? 하나님께서 우리를 (세상에) 보내셨을 때, 꼭 기억해야 하는 일을 마지막 말씀에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70인(72인) 제자의 귀환(17-20절)

“사도들”은 떠났고 다시 돌아왔습니다. 그리고 돌아와 다음과 같이 보고합니다.

“주님, 귀신들이 주님의 이름으로 말하면 우리에게 굴복했습니다.”

그러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셨습니다. “사탄이 하늘로부터 번개불처럼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다. 보라, 나는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짓밝고 원수의 모든 능력을 제압하는 권세를 주었으니 그 누구도 너희를 해치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너희는 영들이 너희에게 굴복한다고 기뻐하지 말고 너희 이름들이 하늘에 기록된 것을 기뻐하라.”

보냄을 받은 이들이 기억해야하는

첫 번째는 주님께 돌아와 보고하는 것입니다.

늘, 언제나 다시 주님께 돌아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언제나 어디론가, 어디로나 보내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반드시 주님께 매일매일 돌아와야 합니다. 무엇을 하던지 매일매일 주님께 돌아와 보고해야 한다는 것을 기억하시길 바랍니다.

두 번째는 기뻐하는 것입니다.

무엇을 보냄을 받은 이들의 ‘마침표’는 ‘기쁨’입니다. 어떠한 상황이든지 기뻐할 수 있는 것은 ‘사람들의 반응’과 ‘영의 굴복’ 때문이 아니라 하늘에 기록된 ‘사도’의 이름 때문입니다.

21절의 예수님의 말씀은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 성령으로 말미암아 기쁨에 넘쳐서 말씀하셨다.”

다시 17절의 말씀을 읽어보겠습니다. “칠십(이) 명이 기뻐하면서 돌아왔다.” 돌아 온 이들에게 주어진 것은 ‘기쁨’입니다.

여러분, ‘사도’와 함께하는 단어는 ‘힘듦’이 아니라 ‘기쁨’입니다. 이 사실을 마음에 새기시길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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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_ 찬송가 503장 세상 모두 사랑없어

주기도(새번역)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며, 아버지의 나라가 오게 하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와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하소서. 오늘 우리에게 일용한 양식을 주시고, 우리가 우리에게 잘못한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같이, 우리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소서. 나라와 권능과 영광이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